120화
“이거 놔!”
“입 닥쳐, 쌍년아!”
급히 달려간 미치코의 집은 이미 누군가가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지 오래였다.
물론 그 누군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귀가한 집주인에게도 해코지를 가했다.
이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미치코와 그런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한 남성.
놈은 탐욕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내가 건네줬던 어음을 살펴보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대충 보인다.
거의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온 나와 상식 아저씨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너네?”
그 순간 근처에서 낄낄 웃고 있던 한 야쿠자 새끼 하나가 우리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곧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리며 우리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불렀으면 말을…….”
콰직!
하지만 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냅다 주먹을 휘둘러 턱을 가볍게 후려쳐버렸다.
빠악! 하는 통쾌한 타격음과 함께 놈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털석!
그러자 비명과 고함으로 가득하던 수금 현장은 순식간에 침묵으로 휩싸였다.
손을 탁탁 턴 나와 상식 아저씨는 4명쯤 되어 보이는 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뭐, 뭐야. 맞은 거야?”
“시발! 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일본어 욕설과 함께 두 놈이 동시에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래도 얼굴과 팔뚝에 보이는 흉터가 장식은 아닌지 꽤 위협적인 속도였다.
‘왼쪽, 오른쪽 하나씩.’
하지만 밥 먹듯이 군락을 잡고 또 후식으로 감염체까지 데리고 노는 게 일상이다.
군락의 속도를 본 적이 있는 내게 이러한 움직임은 너무나 느리게만 보일 뿐이었다.
콰직!
끄아아아악!
공격을 가뿐하게 피했다. 그대로 오른 손목을 잡아 팔꿈치 반대편으로 접어주었다.
툭!
퍼억!
그사이 반대편에서 달려든 놈을 가볍게 발을 걸어 넘어트리고 머리를 걷어찼다.
순식간에 두 명을 처리하는 모습에 나머지 놈들은 당황한 얼굴로 주춤거렸다.
스릉!
그래, 이쯤 되면 칼이 나와 줘야지.
두 눈이 독기로 가득한 한 놈이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잭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죽어!”
그리고 내가 아닌 비교적 체구가 작은 상식 아저씨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탁!
“읏차!”
하지만 겉으로만 만만해 보였지 아저씨 또한 현장에서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이다.
능숙하게 칼부림을 피한 상식 아저씨는 삼단봉을 뽑아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빠악!
일본 피난민들 사이에서 공포로 군림하던 야쿠자 셋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작게 혀를 차며 담배를 물고 있던 나머지 놈은 목소리를 떨며 칼을 뽑았다.
“시, 시발! 다가오지 마!”
그리고 머리채를 잡고 있던 미치코를 강제로 일으켜 인질로 잡으려고 했다.
스릉!
물론 그전에 이미 토마호크를 뽑아두었던 나는 놈을 향해 힘껏 도끼를 던졌다.
후웅!
콰직!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 토마호크가 이마에 그대로 명중한다.
머리통이 깨진 놈은 그대로 절명했고 풀려난 미치코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괜찮아요?”
칼을 쓰려고 하길래 어쩔 수 없었다.
가볍게 상황을 정리한 우리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미치코를 향해 다가갔다.
“당, 당신들 미쳤어요?”
하지만 그녀는 고맙다는 말 대신 죽어버린 야쿠자를 보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미 넘어버린 선,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는 공범이 되어버렸다.
“- - - - - - -!!!”
그 순간 저 멀리 골목에서 시끄러운 일본어와 함께 다른 놈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꽤 많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권총집으로 손을 옮겼다.
“이쪽이에요!”
그런데 그 순간 정신 차리고 어음을 챙긴 미치코가 다급히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그곳에는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조그마한 개구멍이 하나 파여 있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재촉하는 미치코를 따라 좁은 구멍을 빠르게 통과했다.
구멍 밖 세상은 마치 불규칙한 개미굴처럼 골목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망쳤어! 쫓아!”
“시발, 어디 구역 놈들이야!”
소란을 듣고 달려온 야쿠자들이 잔뜩 흥분한 고함과 함께 사방을 돌아다닌다.
우리가 주범이라는 걸 아는 주민들은 서둘러 창문을 닫고 황급히 문을 잠갔다.
“흥.”
하지만 미치코는 익숙하다는 듯 그 어둠을 틈타 더욱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나와 상식 아저씨는 그런 그녀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생각보다 놈들 숫자가 많은디?”
“네. 싸웠으면 좆될뻔했네요.”
방금 저 골목으로 지나간 야쿠자 놈들만 해도 20명은 가뿐히 넘어 보인다.
만약 거기서 권총이라도 발사했다면 밤새 판자촌에서 혈투를 벌일 뻔했다.
“시끄럽고 빨리 와요!”
그 순간 우리를 안전한 지역까지 안내해준 미치코가 뭐하냐는 얼굴로 손짓한다.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버려진 지 오래된 한 허름한 축사가 풀숲에 숨겨져 있었다.
덜컹!
마지막으로 내가 안에 들어가자 미치코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어둠이 짙게 깔린다.
잠시 뒤, 알싸한 기름 냄새와 함께 축사 한쪽에서 작은 등유 난로가 켜졌다.
“오래 못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숨어 있다가 블라디보스토크 정착촌으로 같이 도망쳐요. 어음은 넉넉하게 가지고 있으시죠?”
“예, 뭐.”
졸지에 휘말려서 원망할 법도 한데 미치코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처음 볼 때부터 느끼고 있었던 건데, 눈치와 순발력 하나는 타고난 사람 같았다.
잠시 우물쭈물 무언가를 망설이던 미치코가 곧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해왔다.
“그리고 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그쪽도 분명 도와주시려고 그러신 건데…….”
“괜찮습니다.”
그래. 당장 처한 현실이 힘들고 아파서 그렇지, 고마움을 모르는 여자는 아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소독약과 손수건을 건네주며 미치코가 있는 난로로 다가갔다.
“놈들하고는 어떤 관계입니까? 꼭 돈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들처럼 보이던데요.”
“항생제를 두 알 빌린 적이 있어요. 그게 계속 이자가 쌓여서 직접 찾아온 거예요.”
“안 갚은 겁니까?”
“하! 안 갚았겠어요? 분명 빌린 건 두 알인데 갚을 때는 한 통을 가져오라잖아요.”
급한 사람한테 물자를 빌려주고 나중 가서는 엄청난 이자로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전형적인 사채업자 수법에 미치코도 휘말린 모양이다.
나는 손과 목소리를 덜덜 떠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진짜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겠군요.”
“끌려가서 못 돌아온 사람도 많아요.”
좋아, 좋아. 이 정도면 순찰대를 투입해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상식 아저씨가 내미는 무전기를 받았다.
“잠, 잠깐! 지금 뭐 하세요?”
그러자 깜짝 놀란 미치코가 황급히 손을 붙잡으며 무전기를 강제로 뺏으려 했다.
“아는 사람들 좀 여기로 부르려고요.”
“안 돼요! 그럼 놈들이 눈치를…….”
하지만 곧 모자와 마스크를 벗은 내 얼굴을 확인했는지 스스륵 손에 힘을 풀었다.
오직 칙칙한 감정밖에 느껴지지 않던 그녀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빛이 들어왔다.
“당, 당신 진짜 강릉 시장이에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도시 외곽에서 대기 중인 순찰대를 호출했다.
투다다다다다- - - !!
잠시 뒤, 어둠이 깔린 밤하늘에는 조명을 매단 헬리콥터 한 대가 급히 날아왔다.
한참 판자촌을 이 잡듯이 뒤지던 야쿠자들은 넋 놓은 얼굴로 도망쳐야만 했다.
강릉이 개입했다.
무법지대였던 일본인 정착촌에는 감히 항거하지 못할 엄청난 파문이 일어났다.
* * *
콰앙!
굳게 닫혀 있던 창고 문이 강제로 열리며 강릉 순찰대가 일시에 들이닥친다.
촤르륵!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데 이골이 난 순찰 대원들은 살벌한 눈으로 삼단봉을 꺼냈다.
“쳐!”
그리고 당황하는 야쿠자를 향해 정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패싸움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강릉판 범죄와의 전쟁, 정착촌을 안정화하는 본격적인 치안 활동이었다.
“시, 시발! 막아!”
“도망치지 말라고, 병신들아!”
본거지가 어디 따로 있다면 모를까, 놈들도 삼척으로 피난 온 건 모두 마찬가지다.
야쿠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순찰대와 싸워야 할 수밖에 없었다.
콰직!
쿵! 끄아아아악!
하지만 아무리 밥 먹듯이 사람을 패고 죽이는 야쿠자라도 수준 차이라는 것 있다.
거의 준 정규군에 가까운 순찰대는 실력과 장비 모든 면에서 놈들을 압도했다.
“모조리 끌고 가!”
특히 총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범죄자를 제압한다는 점에서 특전대와 방위군과는 확연하게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위는 방위, 치안은 치안.
시간이 갈수록 구분되는 각자의 영역 안에서 순찰대는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다.
“진짜 잡혀가는 거야?”
“꼴좋다, 이 개새끼들!”
강릉이 개입했다는 말에 정착촌 주민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굴이 피떡이 된 채 끌려가는 야쿠자들을 보며 환호했다.
그동안 저놈들한테 빼앗긴 돈이 얼마이며 끌려가서 죽은 사람이 몇몇인가.
어찌 보면 피해자나 마찬가지인 정착촌 주민들은 순찰대에게 기꺼이 협조해주었다.
“저쪽으로 도망쳤습니다.”
“거기가 놈들 물자 창고에요!”
덕분에 우리는 도망치는 놈들을 일일이 쫓을 필요 없이 조직 사업장을 찾아냈다.
쾅!
도, 도망쳐!
사창가부터 시작해서 고리대금, 도박, 밀수업까지 손을 대지 않은 범죄가 없다.
순찰대는 그러한 불법 사업장 쥐 잡듯이 뒤져 연관된 모든 이를 체포한 것은 물론,
강제로 끌려온 사창가 여성들과 실종되었던 아이들까지 전부 구출할 수 있었다.
강릉을 향한 지지가 우상향을 그려갈수록 야쿠자들이 발붙일 자리는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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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이쪽입니다!”
그 시각 추격을 피해 간신히 빠져나온 야쿠자 두목 야마구치는 황급히 차에 탔다.
그러자 부하들이 황급히 운전대를 잡고 난리가 난 사업장을 겨우겨우 빠져나왔다.
조금만 늦었어도 잡힐 뻔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야마구치는 앞좌석을 발로 걷어차며 분통을 터트렸다.
쿵!
“이 개새끼들아! 너희 도대체 뭘 한 거야! 강릉이 여기서 갑자기 왜 개입하냐고!”
“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몰라? 모르면 끝이야!? 지금 사업장에 두고 온 물건만 얼마인 줄 아냐고, 새끼야!”
이 영동지방에서 강릉을 건들면 안 된다는 건 거의 절대적인 법칙이나 마찬가지다.
야쿠자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최대한 음지에 숨어 힘을 기른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말 불시에 들이닥친 강릉 순찰대는 부하들은 순식간에 잡아들였고,
유일한 자금줄인 사업장마저 일망타진하며 움직일 수 있는 팔다리를 모두 끊어버렸다.
“일단 도망치시죠, 형님.”
“도망? 어디로 도망칠 건데. 어?”
열도는 이미 지옥이 되었고 그나마 비빌 틈이었던 부산은 폐허가 된 지 오래다.
여기서 도주해봤자, 금방 잡히거나 평생 숨어 다니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게 뻔했다.
그래, 어차피 이판사판이야.
한참을 고민하던 야마구치는 결국 이를 악물며 운전하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대진항으로 가.”
“배를 타실 겁니까?”
“아니, 거기 부두 창고로 갈 거야. 나머지 애들한테도 다 그쪽으로 모이라고 해.”
일본에서 활동하는 야쿠자들 대부분은 뒷배로 극우 단체들을 하나씩 달고 있다.
이는 야마구치도 마찬가지였고 넘어오기 전 받은 ‘그것’을 부두 창고에 숨겨놓았다.
“형님 설마…….”
“그럼 이대로 죽으려고?”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극우 세력이 가지고 있던 각종 총기와 폭탄들이었다.
“어차피 대가리 따면 강릉도 끝이야. 차라리 그 새끼가 예상하지 못할 때 쳐야 해.”
한 번 선을 넘었는데 그 이상이라고 못할까? 만약 실패한다면 모든 게 끝이지만, 반대로 성공한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야마구치는 비열한 속내를 숨기며 저 멀리 삼척 시내를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물론 이를 지켜보고 있던 미래 일기는 이미 신나게 집필을 시작한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