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이, 이거 진짜 소총인데?”
“그럼 가짜겠냐, 시발…….”
야쿠자들이 그동안 겪은 싸움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주먹이나 회칼 같은 날붙이를 휘두르는 조직 간 구역 다툼뿐이었다.
물론 간혹가다 진짜 총을 쓰는 경우가 있기도 했지만, 거의 8~90%는 일본 정부 아래 그들만의 리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뭐, 정착촌 주민들 정도야 겁박과 폭력만 있어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지 않은가?
한반도로 넘어온 야쿠자들은 아직 총기의 필요성까지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 챙겨!”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1인당 한 정씩 주어지고 있는 이 자동 소총들은 분명 연사 기능이 달린 일제 군수용 장비, 즉 진짜 전쟁을 위한 무기들이었다.
얼떨결에 방탄복까지 지급받게 된 야쿠자들은 당황한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맞아?’
단순히 조직 간 벌이는 깡패짓과 군인들이 치르는 전쟁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그동안 각자의 영역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었던 일본 야쿠자들은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강릉은 군대도 있지 않나?”
“박범석 그 인간 진짜 괴물이라던데.”
특히 강릉은 불과 1년 사이 수많은 전투와 작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강군 중 강군이었다.
그동안 순찰대가 투입되어 이 모양이지, 진짜 전쟁이었으면 일찍이 모두 죽었다.
“난, 난 못해.”
결국 야쿠자 중 막내가 들고 있던 소총을 내려놓으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평소라면 사방에서 고함과 욕설이 들려왔겠지만, 오늘은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건 아니다.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순찰대에게 달려가 자수하는 게 옳았다.
“뭐 하는 짓거리야!”
퍽!
그런데 그 순간 부두 창고로 들어온 간부 중 하나가 막내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어찌나 강하게 때렸는지 그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퍽! 퍼억!
하지만 간부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기절시켜 버렸다.
확실한 본보기, 여기서 명령을 어겼다가는 이렇게 만들겠다는 그들만의 경고였다.
순간 도망치려 했던 야쿠자들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기립할 수밖에 없었다.
“두목, 이쪽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늦게 도착한 야마구치가 어두운 부두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거의 반절도 남지 않은 부하들을 바라보며 참담한 심정을 애써 감췄다.
“놈들이 삼척을 봉쇄했다는 소식이다. 도망갈 생각이었으면 그냥 포기하는 게 좋아.”
어찌나 대처가 빠른지 부산으로 내려가는 육로는 물론 선박 이동까지 모두 막혔다.
말 그대로 자신들을 잡을 때까지 이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는 암묵적 경고였다.
“강릉이 우리를 살려둘 것 같나? 어차피 여기서 물러나면 죽는 건 마찬가지야.”
그렇게 야마구치는 항복해도 죽는다고 거짓말하며 부하들을 계속 독려했다.
사무라이 정신! 전쟁터로 사람을 몰아넣는 건 조상들의 오랜 전통이었으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와.”
이판사판, 선택권이라는 건 없는 상황에서 야쿠자들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곧 어두운 부두 창고를 우르르 빠져나와 하나둘 승합차에 탑승했다.
야마구치와 함께 자리에 앉은 중간 간부 하나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삼척 시청 근처에 임시 구호소가 있다. 거기 강릉 시장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어.”
주민으로 위장한 내부 협조자를 통해 박범석이 삼척 시내에 있다는 걸 알아냈다.
우리가 총기와 방탄복으로 무장했으리라고는 예상조차 못 하고 있을 터.
이제는 강릉 그 자체인 박범석만 잡을 수 있다면 자신에게도 승산이 있었다.
“출발해.”
고개를 끄덕인 부하 하나가 시동을 걸고 폐쇄된 항구 부두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뒤이어 낡은 승합차들이 따라오며 한적한 국도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저 멀리,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삼척 시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좋아.’
시간은 새벽 3시, 통금시간이 훨씬 지난 만큼 대부분 건물의 불이 꺼져 있었다.
덕분에 검문소를 피해 샛길로 빠진 승합차들은 한적한 공터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간다.
차에서 내린 야마구치는 무장한 부하들을 데리고 삼척 시청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부우우우웅 - - -!!
때마침 주차장에서 출발한 순찰대 차량이 갑자기 시청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잔당을 찾기 위해 나서는 건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야마구치는 주먹을 쥐었다.
신이 우리를 돕는구나!
주변을 경계하던 순찰대 숫자가 줄어든 지금이 습격을 가할 절호의 기회다.
야마구치는 임시 구호소를 가리키며 뒤따라오던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쳐!”
고작 사람을 패는 게 전부인 야쿠자들에게 기도비닉이라는 게 존재할 리가 없다.
놈들은 무작정 임시 구호소로 우르르 몰려가 험악한 얼굴로 입구를 부쉈다.
쾅!
하지만 생각보다 경계는 허술했고 구호소 내부 또한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야쿠자들은 일단 조명이 켜져 있는 방을 향해 냅다 총부터 난사하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 - - -!!
드르르륵! 드르륵!
조용하던 임시 구호소 내부는 순식간에 총알과 파편이 날아들며 난장판이 되었다.
기습이 제대로 통한 걸까, 조명 뒤 그림자들은 힘없이 쓰러지며 저항조차 못 했다.
“모조리 죽여!”
기세등등해진 야쿠자들은 고함을 지르며 건물 2층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시장! 그 강릉 시장이라는 새끼를 잡아야 한다. 모두가 흥분으로 두 눈이 멀었다.
“두목, 이쪽입니다.”
그사이 안전한 후방에 남아있던 야마구치는 뒤늦게 안으로 들어오며 당황했다.
이렇게 쉽게 뚫릴 줄이야. 이대로만 간다면 계획대로 강릉 시장을 처리할 수 있다.
마음이 조급해진 야마구치는 나머지 부하들을 붙잡고 반대편 문으로 밀어 넣었다.
“너희는 도주로부터 확보해!”
“예!”
총성이 이만큼 울렸으니 이쯤 되면 강릉 쪽에서도 침입을 눈치챘을 것이다.
초조한 얼굴로 바깥을 살핀 야마구치는 혼자 현장에 남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놈들이 사용하는 무전기가 있을 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자.
야마구치는 부하들이 쑥대밭으로 만든 방 안으로 들어가 시체를 살펴보려고 했다.
“…………?”
하지만 방안에는 시체가 아닌 대충 옷가지로 만들어둔 더미가 쓰러져 있었다.
“뭐, 뭐야.”
애초에 사람인 줄 알고 총을 쏴버렸던 모든 그림자는 애초에 미리 설치된 더미였다.
속임수?
우리가 속았다고?
깜짝 놀란 야마구치는 부하들이 올라갔던 2층을 향해 다급히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콰아아앙 - - - -!!
그런데 그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2층에 설치된 부비트랩이 큰 폭발을 일으켰다.
뭣 모르고 위층으로 향하던 야쿠자들은 이에 휘말려 비명과 함께 터져나갔다.
병신들, 이걸 속니?
이 모든 건 자신들을 함정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강릉 시장의 미끼였었다.
‘내가 범의 아가리로 들어왔구나.’
한쪽 눈을 파르르 떤 야마구치는 그만, 들고 있던 소총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 * *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한다.
만약 일기가 미래를 예언해주지 않았더라면 놈들이 이 정도 무장을 갖췄다는 것도,
또 그 무장을 바탕으로 구호소를 노릴 거라는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마터면 내 안위는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뻔한 게 아닌가?
까불어서 죄송합니다!
나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전능하신 미래 일기를 찬양하고 또 찬양했다.
다시는 먼저 움직이지 않고 우리 미래 일기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닐 것이다.
콰아아앙 - - - !!
미리 설치해 둔 부비트랩이 터졌는지 저 멀리 임시 구호소 2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신호를 시작으로 창고에서 대기 중이던 방위군이 차량을 이끌고 달려갔다.
놈들이 총을 든 순간, 우리도 치안 활동이 아닌 군사 작전으로 화답해줄 예정이다.
치익.
“작전 개시.”
헬리콥터 위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무전을 통해 작전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방위군은 기다렸다는 듯 구호소 건물을 향해 집중 사격을 시작했다.
투두두두두 - - - -!!!!
퐁! 콰아앙!
어차피 전투가 끝나고 나면 철거한 뒤, 정착촌 관리 사무소를 다시 지을 것이다.
원 없이 쏘라는 말에 방위군은 구호소 건물을 아예 걸레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쨍그랑!
타앙! 탕!
야쿠자들은 마지막 발악하려는지 황급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응전했다.
하지만 놈들이 아무리 자동 소총과 방탄복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이쪽은 정규군.
방위군은 침착하게 화력을 집중해 반짝이는 총구를 하나씩 침묵시키기 시작했다.
굳이 특전대가 나설 필요도 없겠는데?
헬기를 타고 대기 중이던 나와 대원들은 한밤중 불꽃놀이를 보며 수다를 떨었다.
“형님, 혹시 무당 아니죠?”
“응?”
“아니, 그렇잖아요. 아무리 첩보가 있다고 해도 타이밍이 너무 정확하시니까…….”
세간에서는 내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는 해괴망측한 소문이 들려오고 있다.
그동안 이를 믿지 않고 있던 경태는 오늘만큼은 진지한 얼굴로 묻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말해줄까?”
“네!”
이에 귀 기울이고 있던 1팀 대원들은 진짜 알려준다는 말에 덩달아 숨죽였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경태를 보며 그동안 숨기고 있던 진실을 털어놓았다.
“할아버지가 책장에 남기고 가신 일기장이 하나 있거든? 근데 걔가 밤마다 자기 혼자 소설을 막 쓰기 시작하는데, 그게 앞으로 일어난 미래였어. 어때, 존나 신기하지?”
그러자 경태는 인상을 팍 찡그렸고 사방에선 야유와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형님, 진짜!”
“구라도 좀 그럴싸하게 쳐봐요!”
아니, 진짜라니까? 사실을 이야기해줘도 내가 자기들을 놀리는 줄 알고 있다.
어휴 답답해! 나는 가슴을 팡팡 치며 야속하기 짝이 없는 미래 일기를 탓했다.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그게 진짜 내 정체라는 건 오직 할아버지만이 알고 계셨다.
콰아앙 - - -!!
그 순간 포위망을 좁혀가던 방위군을 향해 발사형 유탄 여러 개가 날아와 터졌다.
폭발에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후퇴 기동하는 무장 트럭을 향해 무전을 날렸다.
“괜찮습니까?”
[예! 사상자 없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여파로 전투 현장은 잠시 어수선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야쿠자 놈들이 차량이 있는 공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수십 명이 넘던 부하들은 모두 도륙당하고 야마구치만이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었다.
[꽉 잡으십시오!]
이를 발견한 헬리콥터 조종사는 제자리 비행을 멈춘 뒤 서둘러 그쪽으로 날아갔다.
투두두두두두 - - -!!
거친 로터 소리와 함께 헬리콥터 조명이 도망치는 야쿠자 놈들을 환하게 비췄다.
내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문 상사와 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탕! 탕탕!
“커억!”
헬기를 향해 발사형 유탄을 쏘려던 야쿠자 하나가 가슴이 꿰뚫린 채 쓰러진다.
끝까지 대응 사격하려던 나머지 놈들 또한 순식간에 숨이 끊기며 바닥에 쓰러졌다.
“히, 히익!”
이제 남은 것은 야쿠자 두목인 야마구치뿐, 놈은 권총을 난사하며 끝까지 발악했다.
하지만 그게 맞을 리가 있나. 나는 소총을 조준한 뒤 놈의 허벅지를 날려버렸다.
타앙!
“끄아아아악 - - - -!!”
야마구치는 너무나 맥없이 권총을 떨어트리며 바닥에 우당탕 주저앉고 말았다.
헬리콥터는 기다렸다는 듯 공터에 착륙했고 나는 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항, 항복! 항복한다!”
그러자 사태 파악이 너무나 빠른 야마구치는 피를 질질 흘리며 냅다 양손을 들었다.
아니, 사태 파악이 빠르다는 새끼가 부하들이 다 죽고 나서야 항복하고 자빠졌네.
나는 목숨을 구걸하는 야마구치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차 뒤로 넘어트렸다.
“커억, 컥!”
“많은 걸 묻지는 않을 거거든?”
우르르 몰려가서 뒤지고 깔끔하게 자살하는 게 얘들이 말하는 명예 아닌가.
사나이 박범석, 유서 깊은 국가의 전통 정도는 존중해줄 수 있는 자상한 남자다.
“다 끝나면 할복하게 해줄게.”
나는 그대로 개머리판을 들어 비명을 지르려는 야마구치의 얼굴을 후려쳐버렸다.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