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속자-124화 (124/180)

124화

희망 FM과 강릉 지역 신문을 통해 방위군 2기를 뽑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아무래도 인구와 관할 영토가 늘어난 만큼 이를 커버할 인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 1기와 비교해 두 배 넘게 늘어난 모집 인원은 혹시 몰라 넉넉하게 잡은 숫자였다.

‘아니, 새치기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왔잖아요.’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모병소에는 그 이상의 수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고향을 지킨다는 좋은 이미지, 뛰어난 장비와 보급, 그리고 내 의견이 짙게 반영된 엄청난 급여가 모두의 눈길을 끈 것이다.

와, 어쩌지?

당황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임의로 체력평가와 필기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강릉 전역에는 방위군으로 들어가기 위한 수험생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험이 끝난 다음 날, 모병소와 각 지역 시청 앞에는 합격자 명단이 걸렸다.

‘엄마! 엄마, 나 합격했어!’

‘다음 모집은 언제랍니까?’

우글우글 모인 인파 속에서 누군가는 울고, 또 누군가는 웃게 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모습이 꼭 과거 수능 시험을 보는 것 같아 오랜만에 옛 향수를 느끼게 했다.

합격한 이들은 가족과 친구들의 열띤 배웅을 받으며 하나둘 훈련소로 입소했다.

아마 올해가 지날 때쯤 그들은 고향과 가족을 지키는 방위군으로 거듭날 것이다.

‘8명 정도 뽑았습니다.’

물론 대대적인 방위군 모집 기한에 맞춰 우리 특전대도 멤버를 추가로 모집했다.

아무리 최정예 대원들이 모이는 특전대라도 죽거나 은퇴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

그동안 손실을 고려해 기존 방위군 내부에서 8명 정도 되는 인원을 선발했다.

최 대위가 직접 고르고 또 고른 만큼 그 8명은 내 기준을 통과하기 충분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오랜만에 맡은 병아리 냄새에 문 상사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특전대는 그 즉시 새로 뽑힌 병아리들을 데리고 저 멀리 대관령 정상으로 떠났다.

아마 모두가 만족한 결과를 낼 때까지는 한동안 산 아래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형님, 금방 다녀올게요.]

“그래, 몸조심하고.”

하지만 그들과 함께할 예정이었던 나는 오늘만큼은 집무실에 남아있어야 했다.

한동안 시장 자리를 비울 만큼 주변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과격 단체가 시위대에 합류함에 따라 경찰이 동원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정부를 정면으로 규탄하며 강릉에 대한 대책 마련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이솔하 대통령은 사실무근이라는 뜻을 밝히며 피해가 발생할……….]

지난주 발생한 이슈로 인해 현재 서울 요새를 포함한 한반도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원인은 다름 아닌 포항의 행보와 오산 하이테크의 협상 결렬 소식 때문이었다.

물론 현재 떠돌고 있는 이야기 대부분은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이 대부분.

사실무근인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니 여론이 안 좋아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이 사태의 원인이 좀 더 근본적인 곳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 슬슬 우리가 거슬리는 모양이네요.”

한반도 통합을 원하는 서울 요새에 있어 강릉은 그리 달가운 대상이 아니다.

일단 독립을 공표하기도 했으며 미국과 긴밀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건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기에는 무척 신경이 쓰이는 불편한 이웃.

서울 수뇌부 쪽에서 아쉬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솔하가 배후 아닐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만약 그 여자가 이번 일을 작당하고 꾸몄다면 뭘 해도 껄끄러운 티가 났을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이솔하를 제외한 다른 배후가 사태를 유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너무하네요.”

그 순간 미간을 찡그리고 있던 태식 씨가 처음으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시장님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러는 겁니까? 솔직히 치료제고 백신이고 전부 시장님 덕분에 얻은 거잖습니까.”

“진정하세요.”

“너무 화가 나서 그럽니다. 양심이라는 게 있으면 적어도 말리는 사람이 있어야죠.”

원래 인간이라는 게 어떨 때는 숭고하고 또 어떨 때는 한없이 치졸한 법이다.

이에 항상 기대하고 실망하면 본인 머리만 아프지, 뚜렷한 대책이 생기지는 않는다.

“일단 앉으세요.”

나는 오랜만에 흥분한 태식 씨를 진정시키며 일단 해야 할 일부터 지시했다.

“당분간은 계속 이럴 겁니다. 서울로 가는 캐러밴부터 주의시키시고 열차 승무원 신변에 이상 없도록 호위 병력 배치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자 가까스로 이성이 돌아온 태식 씨는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아무리 화가 나도 역시 강릉 주민들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던 모양이다.

달칵.

태식 씨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위성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찾았다.

한동안 바빠 연락하지 못했던 김태하 소장을 향해 전화를 걸어볼 생각이었다.

삐리리리리!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위성 전화기가 울리며 발신 목록에 익숙한 이름이 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김태하 소장 쪽에서 먼저 연락해 온 것이다.

달칵.

[박범석 시장님?]

“……누구십니까?”

[충성! 대위 오진영이라고 합니다. 혹시 지금 부산으로 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전화를 걸어온 이는 김태하 소장 본인이 아닌 그가 아끼는 부관 중 하나였다.

무슨 일이 생겼구나. 불길함을 직감한 나는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 * *

운용 가능한 수송 헬기를 수배해 원정군이 주둔 중인 부산으로 급히 날아갔다.

목적지는 전쟁 피해를 받지 않은 유일한 지역, 병원이 있는 부산 외곽이었다.

“이쪽입니다!”

병원 옥상에 헬기가 착륙하자 오진영 대위가 마중 나와 나를 직접 안내했다.

심경이 복잡한 건 오진영 대위도 마찬가지인지 표정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회의 중 갑자기 쓰러지셔서 일단 병원으로 급히 호송했습니다. 아마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신 것 같습니다.”

한참 현장을 지휘할 때도 자잘한 부상과 지병을 달고 살았던 김태하 소장이다.

별을 단 이후로 조금 조심하나 싶었는데 이번 원정에서 많이 무리한 모양이었다.

이 양반이 이제 나이를 생각해야지 혼자 무리하다가 쓰러지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담배를 태우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참으며 오진영 대위를 따라갔다.

“충성!”

“비켜.”

김태하 소장이 쓰러졌다는 소식은 아직 부대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복도를 지나 최상층에 있는 VIP 병실로 들어갔다.

덜컹, 끼익.

문을 열자 한참 책을 읽고 있던 김태하 소장이 안경을 벗으며 나를 반겼다.

“음, 범석이 왔구나.”

“……소장님.”

매번 볼 때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체감이 되던 그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조용히 한숨을 내쉰 나는 깨끗하게 손을 소독한 뒤 침상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괜찮으세요?”

“진영이가 또 호들갑을 떤 모양이구나. 괜히 바쁜 사람을 불러서 미안하다.”

오진영 대위가 호들갑을 떨었다기에는 김태하 소장의 안색이 너무 좋지 않았다.

나는 애써 괜찮은척하는 그를 보며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제는 진짜 그의 은퇴를 진지하게 권유할 때가 된 것이다.

“은퇴하시죠, 소장님.”

“………….”

“이 정도면 충분히 하셨습니다. 그만 강릉으로 오셔서 편하게 노후 보내세요.”

한때 어리숙했던 이솔하도 이제는 어엿한 정치 기반과 지지층을 확보해왔다.

이제 김태하 소장이 없더라도 이 바닥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간곡한 부탁에도 김태하 소장은 그저 희미한 웃음만을 짓고 있었다.

“범석아.”

“예.”

“가끔 너를 보면 옛날 생각이 나. 네가 처음 우리 부대로 발령받았을 때, 웬 산송장이 걸어서 오냐고 놀랐었거든. 그때는 다들 곧 탈영하거나 죽을 놈이겠거니 무시했는데 너희 중대장 혼자서만 생각이 달랐어.”

“중대장님이요?”

“응. 눈빛이 살아있다고. 언젠가는 살아서 나갈 놈이라고 자기가 데려간다 했지.”

김태하 소장은 마치 옛 과거를 회상하듯 흐릿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 그때 있던 녀석들은 다 죽고, 너만 살아남았으니까. 그래, 원래 이럴 운명이었던 거야.”

잘그락, 김태하 소장은 들고 있던 군번줄을 꾹 쥐며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조용히 두 눈을 감은 채 내가 침대 위로 올려둔 손을 다정하게 두드려주었다.

“주저하고 있지?”

“네?”

“이번 일 말이야. 확실히 선을 그을 수 있는데 나 하나 때문에 망설이고 있잖아.”

“……아닙니다, 소장님.”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마. 지금은 그냥 뒤 따라오는 사람들만 생각해. 그들이 누구를 가장 의지하고 있는지, 너도 알고 있잖아.”

김태하 소장은 평소 가지고 있던 낡은 군번줄을 이제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이젠 세상에 없는 김원진 중대장의 군번줄이었다.

“이번 일에 군은 관여하지 않기로 약속했어. 걱정하는 내전은 없을 테니까, 저들에게 확실하게 말해. 넌 그럴 자격이 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게서 손을 뗀 김태하 소장은 다시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던 그는 오늘만큼은 많은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범석아, 싸움을 멈추지 마.”

잠꼬대와 같은 김태하 소장의 읊조림을 마지막으로 나는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칙칙한 회색빛만이 감돌던 부산 하늘에는 새하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 * *

“뭐 좀 보여?”

“아니, 평소랑 같아.”

이젠 거대한 산림 지대가 된 비무장 지대를 한 낡은 경비행기가 빠르게 가로지른다.

서울 전방부대 소속인 그 경비행기는 오늘도 휴전선 너머를 정찰하고 있었다.

“고도가 너무 낮은 거 아니야?”

“좀 참아. 오늘 내로 무조건 찾으래.”

“아니, 없는 걸 어떻게 찾냐니까? 벌써 4번째인데 웨이브는 코빼기도 발견 못했잖아.”

그들의 임무는 하루 3번, 휴전선 너머 옛 비무장 지대를 감시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 따라 감염체 침범이 많아지며 웨이브를 찾으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소속 부대 비행기가 겨우 2대뿐인데 이 넓은 비무장 지대를 어떻게 커버하라고.

오늘만 벌써 4번째 출동인 부조종사는 투덜거리며 망원경으로 사방을 살폈다.

“야, 근데 그거 사실이야?”

“뭐가.”

“박범석 그 양반 말이야. 서울이랑 아예 다른 노선으로 간다는데? 이번에 포항까지 합류하면 통합은 물 건너가는 거잖아.”

“그게 우리랑 뭔 상관인데.”

“왜 상관없어. 대한민국이라도 다시 생기면 우리도 편해질지 모르잖아. 언제까지 여기서 감염체랑 투닥거리고 있을래?”

현재 서울은 역량의 절반을 이곳 감염체 레드존을 막고 있는 것에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곳 비무장 지대는 군인의 무덤이라 불릴 만큼 무척이나 열약한 곳이었다.

“그런가?”

“그렇다니까!”

하지만 그의 말처럼 한반도가 통합이라도 된다면 이곳에 대한 지원도 늘어날 터.

벌써 2년째 경비행기만 몰고 있는 그 둘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어보고 있었다.

“어?”

그런데 그 순간 한참 웃고 있던 부조종사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깜짝 놀란다.

“잠깐, 저거 보여?”

“뭐가.”

“아니, 저기 안 보이냐고!”

흥분한 동료의 말에 미간을 팍 찡그린 조종사는 고도를 높여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곧 동료가 가리킨 방향에서 그동안 관측할 수 없었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군락.”

감염체 레드존 한가운데 있는 산맥을 쭉 따라, 갑자기 지형이 바뀌어있는 산등성이.

그곳에는 분명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흙산이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빨, 빨리 보고해!”

10년째 봉쇄되어 있던 비무장 지대에 드디어 상위 군락이 모습을 드러내고만 것이다.

이에 깜짝 놀란 그 둘은 서둘러 자신이 속한 부대로 무전을 보내려고 했다.

치지지직, 치이익!

“시발! 왜 이래!”

“꽉 잡아!”

그런데 급히 선회하던 경비행기 계기판이 갑자기 먹통이 되며 움직임을 멈췄다.

조종사는 필사적으로 고도를 높이려고 했지만, 곧 레드존 한가운데 추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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