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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28화 (128/180)

128화

콰직!

묵직한 총성과 함께 달려드는 알비노 변이종 하나를 스노모빌 몸체로 짓뭉갰다.

그리고 반동을 이용해 자연스레 지상으로 착지하며 놈들 한가운데 떨어졌다.

끼이이이이이이익 - - - -!!!!!!!!

놈이 왔다. 그놈이다.

군락들은 나를 알아봤고 변이종 또한 내 존재를 증오하는지, 수십 마리 알비노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며 주변을 빈틈없이 포위했다.

철컥!

하지만 나는 도망치기는커녕 연사 기능이 달린 산탄총을 뽑는 것으로 화답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기괴한 비명을 지른 알비노 변이종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후웅!

하나. 머리 위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손톱을 피하고 바닥을 한 바퀴 구른다.

콰직!

둘. 아가리를 쩍 벌리는 놈의 아가리를 후리고 그 사이로 총구를 비집고 넣는다.

퍼엉!

방아쇠를 당기자 흉측한 납탄이 알비노 변이종의 대가리를 통째로 터트려 버린다.

끼아아아아악!

축포와도 같은 통쾌한 장면에 알비노 변이종은 더욱 좋다고 내게 달려들었다.

“- - - - - -!!!”

아드레날린이 폭발한다. 일순간 엿가락처럼 늘어졌던 시간이 더욱 느리게 흘렀다.

후욱!

나는 담배 연기 같은 입김을 훅 내뱉으며 놈들을 상대로 방아쇠를 꾹 당겼다.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오직 감염체를 잡기 위해 개조된 연사 산탄총이 미친 듯이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펑!

조준은 필요 없다. 빗맞힌다고 하더라도 신체 어느 한 부분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살점과 내장을 뒤집어쓰며 놈들을 일순간 청소해버렸다.

끼아아아아악 - - -!!!

하지만 군락은 쉽사리 놔주지 않겠다는 듯 더 많은 알비노를 나에게 보냈다.

철컥!

나는 눈사태가 역류하는 것 같은 그 광경을 노려보며 침착하게 탄을 장전했다.

[자리 잡았어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방으로 흩어졌던 가은이와 대원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1팀은 저격하기 좋은 포인트를 잡고 놈들을 역으로 포위한 지 오래였다.

타앙!

콰직!

100m 밖에서 날아온 대구경 탄환이 알비노 변이종 두 마리를 한 번에 꿰뚫는다.

타앙! 탕! 탕!

드르르륵!

그 사격을 시작으로 지정 사수들과 대원들은 움직이는 과녁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악!

나는 말 그대로 녹아버리는 알비노 변이종을 뒤로 하고 다시 스노모빌에 올라탔다.

“시장님!”

산 능선으로 올라가니 최 대위와 3팀이 이쪽으로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들 앞을 스노모빌로 가로막으며 감염체가 전진하는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후퇴하십시오! 여긴 우리가 맡겠습니다!”

“예!”

이동 수단이 없는 3팀은 자칫하다가는 감염체 무리 사이에 고립될 수 있다.

유인을 자처한 나는 그들을 합류 지점으로 급히 돌려보내고 능선을 따라 달려갔다.

끼아아아아아악 - - -!!

능선 바로 아래에는 벌써 여기까지 온 감염체들이 역류하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분노로 이성이 날아가 버린 군락이 기어코 내 쪽으로 감염체 웨이브를 보낸 것이다.

찌릿!

적대감, 증오, 살의! 온갖 부정적이고 질척한 붉은 감정이 피부를 핥고 지나간다.

‘됐다.’

하지만 내가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지연작전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부아아아아앙 - - - -!!!

속력을 올리자 가속이 붙은 스노모빌이 설원 한복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악!

그 뒤를 감염체와 변이종들이 피리를 따르는 쥐새끼처럼 빠르게 뒤따라온다.

실수는 곧 죽음.

나는 빽빽한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이 지역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선배! 위험해요!]

그런데 그 순간 헬기에 탑승해 있던 송지영이 부근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다.

고개를 황급히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검은 형체가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흑색종!’

나는 그 즉시 몸을 뒤로 돌려 스노모빌을 따라오는 흑색종을 저지하려고 했다.

콰직!

하지만 놈들은 영리하게도 내가 아닌 스노모빌을 노리며 동시에 몸을 던졌다.

쿵!

설원 위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던 스노모빌이 덜컹거리며 곧 중심을 잃고 만다.

덜컹!

치이이이이익!

시야가 뒤집어진다.

스노모빌에서 떨어진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눈 위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자 흑색종 놈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괴한 울음을 터트리며 이쪽으로 몰려왔다.

캬갸갸갹! 캬아아악!

거리는 불과 30m!

나는 미국에서 직접 공수한 모듈화 확산 폭탄을 꺼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삑!

그리고 놈들이 덮쳐오기 직전, 버튼을 눌러 확산 폭탄을 머리 위에서 터트렸다.

퍼엉!

하얀 거품을 연상케 하는 치료제 물질이 내 몸과 달려드는 흑색종을 집어삼켰다.

캬아아아악!

졸지에 이에 휘말린 놈들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콰직!

나는 그 즉시 토마호크를 꺼내 대가리를 찍었고 버둥거리는 흑색종을 발로 찼다.

지난번처럼 당해줄 생각 따위는 없다.

놈들이 실시간으로 진화하듯 우리 인간도 그에 맞춰 생존을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엄호해!]

투타다다다다다 - - -!!!

내가 확산 폭탄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 송지영이 지휘하는 수송 헬기가 도착했다.

그들은 즉각 중기관총을 난사해 몰려드는 흑색종을 다진 고기로 만들었다.

[선배! 잡아요!]

수송 헬기에서 떨어진 로프를 붙잡고 안전 고리와 함께 몸을 단단히 고정했다.

나를 확보한 수송 헬기는 그대로 고도를 높여 이 지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끼기긱! 끼익!

졸지에 표적을 놓쳐버린 감염체들은 헬기를 따라오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후우, 후우.

숨이 거칠다. 나는 땀과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쓸어내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3팀! 합류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저희도 벗어납니다.]

무전기에선 모두 무사하다는 보고와 함께 대원들이 작전 지역을 이탈하기 시작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내 감염체 웨이브가 모여있던 산골짜기를 내려다봤다.

‘성공이다.’

하나의 큰 덩어리였던 놈들은 어느새 통제를 잃고 중구난방 흩어져있었다.

아마 알비노를 보내 통제권을 가져온다고 해도 족히 하루에서 이틀은 더 걸릴 것이다.

‘일단 시간은 벌었어.’

하지만 아무리 진입로를 막았다고 한들 이 모든 건 결국 지연작전에 불과하다.

전쟁은 이미 예견된 사실, 최후의 격전지는 방어선이 건설되고 강원도 고성이었다.

“……복귀합시다.”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지연작전을 성공시킨 나와 대원들은 합류 지점으로 향했다.

우리가 떠난 빈자리에는 감염체와 군락의 울부짖음만이 공허하게 맴돌고 있었다.

* * *

“장 씨! 모래 가득 안 채우고 뭐 해?”

“하나라도 더 옮겨! 쉴 시간 없어!”

특전대가 지연작전을 펼치는 사이 고성은 한참 방어선 구축으로 시끄러웠다.

현재 운용할 수 있는 모든 중장비와 인력, 그리고 방위군까지 동원된 것은 물론,

강릉과 다른 영동 지방 주민들까지 지원을 자처하며 고성으로 몰려든 탓이다.

“컨테이너 들어온다!”

“거기 서 있지 말라니까, 이 양반들아!”

강릉 토박이, 초기 이주민, 블라디보스토크와 일본 정착민까지 몰린 대공사 현장.

고향과 터전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아래 모든 이들이 밤낮없이 공사에 매달렸다.

덕분에 컨테이너를 이용한 고성 1차 방어선은 빠른 속도로 구축되기 시작했고,

군필 주민들이 주를 이룬 임시 예비군 또한 하나둘 방위군 아래 재편되었다.

사실상 강릉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전력이 이곳 고성으로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하늘은 어느덧 어둑해졌지만, 고성 현장은 조명과 불꽃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아마 오늘 밤이면 마무리될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였던 박범석 시장의 공백 또한 직접 노구를 이끌고 나온 김춘식 회장으로 인해 완벽하게 메꿔지고 있었다.

“직원들 직접 보내서 꼼꼼하게 살펴. 하나라도 무너지면 뚫리는 건 삽시간이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특전대가 목숨을 담보로 벌어준 귀중한 시간을 한시라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김춘식 회장은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현장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회장님! 드디어 도착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직원이 급히 현장으로 달려오며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내가 직접 가지!”

그러자 얼굴이 환해진 김춘식과 김태식은 서둘러 걸음을 옮겨 공터로 달려갔다.

부우우우우웅 - - -!!

삐익! 삐익!

막사를 짓기 위해 마련된 공터에는 수많은 차량이 줄지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강릉 연합을 돕기 위해 포항 요새에서 파견한 지원군들이었다.

“아……!”

설마설마했는데 이 먼 고성까지 이 많은 지원군을 직접 보내올 줄은 몰랐다.

김춘식 회장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온 포항 시장을 버선발로 나가 맞이해주었다.

“포항 시장! 이쪽입니다!”

다른 요새들이 협정을 무시하고 있는 와중에 기꺼이 부름에 응해준 포항 시장이다.

이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김춘식 회장은 그의 두 손을 굳게 맞잡았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죠. 강릉과 함께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단순히 보여주기식 지원이 아닌 정말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이끌고 왔다.

가뜩이나 인력이 절실했던 김춘식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 보니 병력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원 물자 또한 속속히 고성에 도착하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신 건 아닙니까?”

“물자 지원은 다른 경상권 요새들이 맡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록 지원군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다른 경상권 요새들이 수많은 물자를 보내왔다.

이 정도 탄약과 보급품이면 놈들과 전면전을 벌여 봐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정도였다.

‘정말 대단해. 대단한 사람이야.’

김춘식 회장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저 멀리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박범석이 뿌려놓은 씨앗은 훌륭한 과실이 되어 강릉을 찾아오고 있었다.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예. 서둘러야겠습니다.”

현재 박범석과 강릉 특전대는 지연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복귀 중이다.

그전까지 그들은 방위군을 배치하고 도착한 지원군으로 전장으로 투입해야 했다.

빠르게 의기투합한 셋은 마지막 작전 회의를 위해 지휘 본부로 향하려고 했다.

투다다다다다 - - - !!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 고성 하늘을 뚫고 수송 헬기가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모든 이들은 바삐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오는 수송 헬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치익!

[접니다.]

현재 연결된 모든 무전 채널을 통해 박범석의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든 이들은 무전기 앞으로 후다닥 달려와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현재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 웨이브가 고성으로 접근 중입니다. 이는 강릉은 물론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정확히 하루. 내일 동이 트면 이 방어선 어디에도 안전한 지역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당장 내일을 버텨낸다고 해도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전쟁은 있을 겁니다. 언젠가는 나, 우리, 여러분 모두가 놈들에게 패배해 다시는 이 땅 위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절망스러운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최후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자리에 결집했고, 힘을 모았으며 또 기꺼이 무기를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게 누구를 위해서였습니까.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젠 스스로 외쳐야 할 차례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무전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동안 응어리져있던 환호성을 지르며 박범석의 마지막 말을 기다렸다.

[싸웁시다.]

한 인간이 던진 희망의 불씨는 거대한 불길이 되어 힘차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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