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속자-130화 (130/180)

<130화>

‘연천 기지 함락!’

‘감염체 웨이브! 동두천으로 남하 중!’

감염체 웨이브가 바로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소식이 서울 요새 전역을 강타했다.

이에 끝까지 정부를 믿고 있던 시민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혼란에 빠졌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피소를 뛰쳐나와 아비규환이 된 서울을 탈출하려고 했다.

“넘,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비켜 새끼들아! 다 죽일 셈이야!”

그동안 이솔하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에 그나마 유지가 되고 있던 피난민 통제였다.

하지만 대다수 서울 시민이 탈출을 시작한 지금은 경찰만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

통제는 삽시간에 무너져내렸으며 서울 전역에서는 대규모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꺄아아아악!”

“모조리 챙겨! 빨리!”

기회를 틈타 물자를 약탈하고 사람을 해치는 이들로 인해 치안은 악화됐다.

설상가상 주요 시설에서 화재가 일어나며 기본적인 인프라 또한 하나둘 붕괴됐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 이를 돕기는커녕 먼저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

한반도 최대 요새라 불렸던 서울이 무너지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피난민을 받을 수 없다뇨!”

그 시각, 대통령 이솔하는 한반도 요새 지도자들을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있었다.

“재차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도 이미 한계입니다. 벌써 유입된 피난민만 수만 명이 넘는데 어떻게 더 수용하라는 말입니까? 현지에서도 주민들 원성이 자자합니다.”

“지금이 그런 걸 따질 때입니까! 아무리 상황이 그래도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죠!”

당장 수백만 명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들 원성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참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에 참다못한 이솔하가 결국 책상을 쾅 치며 일어났다.

“크흠!”

하지만 요새 지도자들은 슬그머니 시선만 피할 뿐 마지막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피난민들은 그저 책임지기 싫은 거북한 일 중 하나에 불과했다.

‘멍청한 인간들.’

그 모습에 엄청난 환멸감을 느낀 이솔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부르르 떨었다.

김태하 소장과 군대가 건재할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더니,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박쥐처럼 태도를 싹 바꿔 본인들 이득만 챙기려 하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뭘 한 거지?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과 한반도 통합을 꿈꿨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솔하는 마음속 무언가가 우르르 무너져내림을 느끼며 결국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럼 저희는 이만…….”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 모습에 조용히 혀를 차던 요새 지도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항상 사람들로 붐비던 회의실에는 오직 이솔하만이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각하! 이만 가셔야 합니다!”

그 순간 반대편 문이 열리며 권총을 찬 경호실장이 다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솔하는 아무도 남지 않은 복도와 건물을 둘러보며 물었다.

“직원들은 다 대피했나요?”

“예! 현재 저희만 남았습니다.”

원래 대통령이 먼저 대피해야 하는 게 맞지만, 요새 지도자들을 설득하느라 타이밍을 놓쳤다.

고개를 끄덕인 이솔하는 경호원들을 따라 아수라장이 된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쪽입니다!”

옥상에는 이미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가 이솔하를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잠깐.”

하지만 정작 자신의 곁을 지켜야 하는 수석비서관들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갔습니까?”

“먼저 대전으로 대피하셨습니다.”

대통령이 아직 집무실에 남아있는데 수석비서관이라는 놈들이 먼저 도망쳐버렸다고?

더 이상 화를 낼 기운도 없었던 이솔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비서실장은요.”

“……광주로 출장 가셨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혹시 연락 못 받으셨습니까?”

그리고 역시나 비서실장 엄석현 또한 출장을 핑계로 집무실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나마 남아있던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진 이솔하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출발하겠습니다.”

아무런 대꾸가 없자 경호실장은 눈치껏 문을 열고 그녀를 보조석 안에 태웠다.

투두두두두-!!

헬기는 곧 고도를 올려 더 이상 사람이 남지 않은 용산 집무실을 벗어났다.

‘끝이야.’

저 멀리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와 두려움에 빠져 도망치는 피난 행렬이 보였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졌으며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는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전부 다 내 잘못이야.’

이솔하는 그 광경을 텅 빈 눈으로 내려다보며 지난 과거를 후회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그녀는 꾹 쥐고 있던 양손을 펼치며 눈물이 흐르는 것만 같은 얼굴을 애써 가렸다.

부끄러움, 후회, 절망과 슬픔. 모두 자신이 짊어지기에는 턱없이 무거운 짐.

마음 같아서는 저 비겁자들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방향.”

“예?”

“방향 돌리세요.”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기에는 자신은 너무도 먼 길을 돌아왔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위태롭게 자리에서 일어난 이솔하는 입고 있던 정장을 벗으며 이를 악물었다.

“다시 용산으로 가겠습니다.”

대전으로 내려가던 헬기는 즉각 방향을 돌려 조금 전 떠났던 용산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선택은 비겁한 외면이나 방관이 아닌 위험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일이었다.

* * *

“살,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이제 막 20살이 된 앳된 군인 하나가 산채로 물어 뜯겨 고통스럽게 죽어 나갔다.

하지만 주변 그 어디에도 앳된 병사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2차 방어선은 이미 함락되었고 그가 참호의 마지막 생존자였기 때문이다.

이미 지옥이 돼버린 연천과 더불어 감염체 웨이브로 까맣게 물들고 있는 동두천.

마지막 3차 방어선만을 앞둔 지금, 더 이상 우회할 곳도 물러설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실패했나.”

지금쯤이면 전열을 정비한 후방 부대가 전방으로 지원을 왔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지원군은커녕 원래 있던 다른 예하 부대조차 동두천 방어선을 돕지 않았다.

자신들이 목숨 걸고 시간을 끄는 사이 모조리 남쪽으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부질없군.”

이미 백발노인이 된 김태하 소장은 들고 있던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눈을 감았다.

이를 보다 못한 오진영 대위와 그의 부관들은 남으려는 그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소장님, 이젠 정말로 가셔야 합니다.”

“저희는 할 만큼 하지 않았습니까!”

이정도 시간을 끈 것만 해도 김태하 소장과 그의 부하들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나라에서조차 알아주지 않는 의무를 더 이상 지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후퇴하면 서울은? 아직 도망치지 못한 시민들은 다 죽으라는 말인가?”

“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그 꼴은 못 봐. 자네들은 알아서 떠나도 되니까, 이만하지.”

하지만 동두천을 사수해야 한다는 김태하 소장의 의지는 너무도 확고했다.

떠나도 된다는 말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부관들은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참 여전한 양반이군. 안 그런가?”

그런데 그 순간 고성이 오가는 지휘부 천막 안으로 한 중년 남성이 들어섰다.

“단, 단장님?”

이에 깜짝 놀란 부관들과 당직병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붙였다.

“충성!”

지휘부 천막을 찾아온 중년 남성은 다름 아닌 국군 정보 사령관 구중탁 소장.

안양 주둔지에 있을 줄 알았던 그가 직접 최전방 동두천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오, 구 단장.”

“하도 답답하게 굴어서 직접 왔지. 보아하니 꼴이 영 말이 아니구먼, 김 소장.”

서로 말은 까칠하게 해도 그동안 좋은 친구로서 군을 잘 이끌어왔던 그 둘이었다.

김태하 소장은 그제야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을 풀며 그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서울 상황은 어떤가.”

“다들 도망치느라 바빠. 정보사도 겨우 수습해서 안양만 어떻게든 막고 있는 정도지.”

“이솔하는?”

“아직 용산에 버티고 있다. 그저 애송이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래도 깡이 좀 있더군?”

다행이다. 이솔하까지 도망쳤으면 진짜 수습 불가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태하 소장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쯧, 내가 뭐라 했나? 진즉에 목을 쳤어야지. 살려두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잖아.”

“실수를 반복하기 싫었다.”

“이제 다 늙어빠진 양반이 고집은 고집대로 부리는군.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야?”

동두천 함락이 확실시된 이상, 이제 전력을 물리느냐, 여기 남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이를 설득하기 위해 온 구 단장은 잠자코 앉아 김태하 소장의 결단은 기다렸다.

“난 여기 남을 걸세.”

“부대 지휘는 어쩌고?”

“그래서 자네가 온 거 아닌가. 아직 본대는 그대로 남아있으니 후방으로 데리고 가.”

기갑 부대를 비롯한 정예 기계화 병력은 마지막, 또 마지막까지 보존하고 있었다.

이를 후방으로 데려가 달라는 말에 구 단장은 한쪽 눈썹을 추켜 뜨며 말했다.

“설마 서울로 가라는 말은 아니겠지?”

분산된 병력을 서울로 데려가 봤자 마땅한 지휘관도, 예하 부대도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요새 지도자들을 포섭한 그 엄석현 그 새끼가 언제 눈독을 들일지 몰랐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김태하 소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부탁했다.

“강릉.”

“강릉?”

“박범석이 거기 있어. 아마 지금쯤 병력을 모아서 감염체 웨이브를 막고 있을 거야.”

“거기도 똑같은 상황일 텐데?”

“달라. 녀석이라면 고성에서 전부 틀어막고 있을 거야. 아니, 지금쯤 반격도 했겠지.”

항상 불가능한 작전을 완수하고 상황을 180도로 뒤집어버리던 녀석이다.

아마 지금도 감염체 놈들을 학살하고 군락과 정면으로 싸우고 있을 것이다.

김태하 소장은 자신의 군번줄을 꺼내 친구이자 전우였던 구 단장에게 부탁했다.

“녀석에게 전해줘.”

자신이 남길 수 있는 건 그동안 키워온 정예 부대와 자신의 군번줄뿐이었다.

상관의 군번줄을 두 개나 맡기게 되어 면목이 없었지만, 이것이 최선이었다.

이에 구 단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태하 소장이 건넨 군번줄을 소중히 챙기며 물었다.

“계획은 있나?”

“모든 길목을 끊고 놈들을 유인할 거야. 늦기 전에 국도를 타고 강릉까지 이동해.”

길목을 끊고 놈들을 유인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래. 알겠다.”

세월도 참 야속하지, 젊은 시절은 다 어디 가고 두 사람 다 뒷방 늙은이가 됐구나.

하지만 다 꺼져가는 친구의 얼굴에서는 젊은 생도 시절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꺼지기 전 가장 빛나는 촛불, 한때 주역이었던 이들은 화려한 퇴장을 준비했다.

* * *

툭!

한참동안 변이종을 처리하고 복귀하고 있는데 갑자기 군화 끈이 툭 하고 풀렸다.

대원들과 함께 막사로 돌아가려던 나는 잠시 허리를 숙여 끈을 다시 묶으려 했다.

“음?”

하지만 군화는 끝이 풀린 것이 아니라 엮어둔 매듭 부분 한쪽이 똑 끊어져 있었다.

엄청 질긴 녀석이라 칼로 썰어도 멀쩡한 재질인데 왜 갑자기 끊어져 버렸을까.

의아함을 느낀 나는 일단 군화를 벗고 끊어진 끈을 통째로 풀어 주머니에 넣었다.

“형님?”

“아, 군화 때문에.”

“엥? 끊어졌네요.”

“불량이었나 봐.”

“그것보다 오늘 무리하긴 하셨어요.”

“그런가?”

하긴, 벌써 이틀째 전장을 전전하고 있으니 지급받은 보급품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끊어진 군화 끈을 쓰레기통에 넣고 다시 막사로 걸어가려 했다.

지끈!

‘왜 이러지?’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자극하는 기분이다.

나는 먹구름이 낀 하늘과 흔들리는 나무를 번갈아 바라보며 조용히 미간을 찡그렸다.

분명 중요한 뭔가를 두고 온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분 탓인가.

오늘따라 눈이 시리게 내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