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감염체 전쟁은 보통 공격 한 번, 개전 하루로 끝을 맺는 경우가 무척이나 드물다.
그만큼 놈들은 치가 떨릴 정도로 집요하며 또 기회를 엿보는 영악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수많은 하위 군락과 감염체를 거느리는 저 상위 군락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놈들이 또 온다!”
“장 씨! 이제 교대하자고!”
피곤이라는 것을 느끼는 인간과는 달리 감염체는 절대 지치지 않는다.
거의 10분에 한 번꼴로 몰아치는 산발적 공격 탓에 방어선은 쉴 틈이 없었다.
특히 감염체 놈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방위군은 그 피로감이 더욱 심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3시간마다 한 번씩 교대로 돌아가는 로테이션을 짜야 했고, 여차하면 예비병력을 투입해 방위군이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종양 변이체다!”
“방독면! 방독면 착용해!”
하지만 그런 잠깐뿐인 휴식도 변이체가 등장하는 날이면 모두 취소가 된다.
여차하면 방어선이 뚫릴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모든 전력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수시로 이륙하는 수송용 헬리콥터와 온갖 현장으로 투입되는 우리 특전 대원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고성 방어선은 사상자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위태로운 전장 상황을 균형 있게 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 개전 사흘째.
대 감염체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었다.
“천천히 먹어, 새끼야.”
“으어, 이제야 좀 살겠네.”
사람들은 주먹밥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하고 탄피가 가득 쌓인 참호에서 쪽잠을 자는 일상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물론 씻는다는 건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 하나같이 진흙범벅에다 거지꼴은 물론, 몰려오는 피로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라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며 인사를 해주는 그들을 보며 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편히 쉬세요.”
거의 반나절에 가까운 대공세가 끝나고 드디어 주어진 달콤한 휴식 시간.
나는 그들에게 편히 쉬라고 지시한 뒤 전방 순찰을 위해 헬기에 탑승하려고 했다.
“시장! 이쪽이여!”
“아저씨?”
그런데 그 순간 앞치마를 멘 상식 아저씨가 갑자기 튀어나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가 보니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또 먹고 있었다.
“팥죽이네요?”
그것은 다름 아닌 새하얀 새알이 동동 떠 있는 따뜻하고 맛있는 팥죽이었다.
내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이를 구경하자 상식 아저씨가 흐흐 웃으며 말해주었다.
“봉사하러 오신 아주머니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만든 거야. 딱 한 입만 먹고 가.”
평소 주먹밥과 간단한 간식을 만들어주던 아주머니들이 실력 발휘를 한 모양이었다.
이야, 전체 인원을 먹이려면 한 솥으로도 부족할 텐데 용케도 이 많은 양을 준비했네.
잃어버렸던 군침이 싹 도는 걸 느낀 나는 수저와 그릇을 챙겨 팥죽을 배급받았다.
“다른 사람들은요?”
“다들 교대로 쉬면서 먹고 있어. 다른 대원들도 다 먹였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잡숴.”
아니, 이런 특식이 왔으면 나한테 말을 해야지 자기들만 홀랑 먹고 가버려?
나는 휴식 중인 경태와 가은이를 속으로 씹으며 김이 폴폴 나는 팥죽을 떠먹었다.
“와, 미쳤다.”
“맛있지?”
늘 차갑게 식은 주먹밥만 먹다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니 몸이 기쁨의 비명을 지른다.
이에 육성으로 감탄한 나는 아예 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퍼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체 할라.”
또 전투가 시작되면 언제 어디서 특전대를 부르는 지원 요청이 올지 모른다.
이런 시간이 귀중하다는 걸 아는 나는 팥죽을 꿀떡 넘기며 강릉 상황을 물었다.
“사람들은 좀 어때요?”
“뭐, 늘 같지. 다들 도와줄 건 없나 계속 기웃거리면서 고성 소식만 기다리고 있어.”
현재 비상령이 떨어진 강릉은 도시 출입구를 포함해 거리 전체가 봉쇄되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침착하게 통제를 따르며 정해진 대피소로 하나둘 모여들었고,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며 고성에서 들려오는 소식만을 기다렸다.
누군가의 아들과 딸, 그리고 부모와 친구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치열한 전장.
강릉에 몇 없는 사찰과 교회에는 기도를 드리기 위한 주민들로 늘 문전성시였다.
“여기 계셨네요?”
때마침 물자 창고에서 돌아온 태식 씨가 맛있는 냄새를 맡고 이곳으로 찾아왔다.
나와 상식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엉덩이를 움직여 앉을 자리를 하나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태식 씨는 자연스럽게 팥죽 한 그릇을 받아와 우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아까 부탁하신 내용 확인하고 왔습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탄약은 정확히 반절, 포탄은 소모가 좀 빠른 편이라 이제 3분의 1정도 남았습니다.”
경상권 요새들이 지원해준 물자와 탄약 덕분에 지금까지는 잘 버텨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량이 결코 무한한 것은 아니기에 시간이 갈수록 소모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탄약은 그렇다 쳐도 포탄이 벌써 한계치를 보인다면 슬슬 문제가 될 터였다.
‘방법이 없을까.’
우리가 투사하는 화력의 비율은 사실상 포병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만약 포격 지원이 조금이라도 약해지거나 멈춘다면 장벽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전쟁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탄약을 아끼는 게 맞는 걸까.
나는 기계적으로 음식을 씹으며 머리로는 끊임없이 대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 시장님.”
“예?”
그 순간 조용히 팥죽을 먹고 있던 태식 씨가 갑자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외에 듣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했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서울과는 언제 마지막으로 연락하셨습니까?”
“뭐, 그거야…….”
상위 군락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일단 김태하 소장과 연락하기는 했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했던지라 이렇게 움직일 거라는 방침만 전달했을 뿐, 그 이후에는 김태하 소장과도 이솔하와도 이렇다 할 만한 연락은 주고받지 않았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현재 서울에서 저희 연락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 아시는 게 있으신가 해서요.”
그런데 뜬금없이 연락 두절이라니?
나는 순간 미간을 찡그리며 수저를 놓았다.
“언제부터요?”
“정확히 어제부터입니다. 혹시 일시적인 현상인가 싶어 계속 연락을 시도했는데 아예 통신 자체가 닿지 않습니다. 현재는 파견된 직원이 없는 상태라 파악도 힘들고요.”
“라디오나 TV 방송은 확인했습니까?”
“계속해서 같은 화면과 음성만 내보내고 있습니다. 전부 대피소를 안내하는 내용입니다.”
분명 방어 준비를 끝내고 연천에서 놈들을 저지한다고 했던 게 마지막 연락이었다.
서울 요새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막고도 남을 텐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시만요.”
나는 일단 주머니 속 위성 전화기를 꺼내 김태하 소장에게 연락을 취해보았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하지만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연락은 닿지 않았고, 이솔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표정이 갈수록 안 좋아지자 태식 씨는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단순한 통신 장애일 수도 있습니다. 지하 벙커나 군락의 전파 방해도 고려해봐야 하니까요. 너무 섣불리 판단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정 걱정되시면 저희 쪽에서 직원을 한 번 보내보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무리더라도 이번 주 내로는 아마 연락이 닿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김태하 소장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부디,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다시 헬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눈발이 거세다.
따뜻한 팥죽이 데워주었던 온기는 어느새 시린 날씨가 모두 뺏어가고 있었다.
* * *
계속된 공격으로 지친 인간들만큼이나 군락도 현재 엄청난 손해를 보는 중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거대한 규모였던 감염체 웨이브는 거의 3분의 1가량 줄어들었고, 비장의 카드인 변이체 또한 그 숫자와 출현 빈도가 현저하게 적어지고 있었다.
군락도 이성이라는 게 있는지라 생각보다 고성 방어선이 견고하다는 걸 안 것일까.
덕분에 우리는 탄약과 물자를 상당수 아껴가며 방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물론, 때때로는 장벽 밖으로 병력을 이끌고 나가 산발적인 반격으로 간을 보기도 했다.
‘끼이이이익!’
항상 공격하는 입장이었던 놈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어지간히 당황하는 눈치였다.
군락은 일단 대대적인 공격을 멈추고 감염체 웨이브를 산골짜기까지 물러나게 했다.
장기전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슬슬 전력으로 공격할 타이밍을 재려는 것이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동안 감염체 놈들의 파상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 온 우리 강릉 연합은 이제 군락과의 마지막 전투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시기를 앞둔 나는 뜬눈으로 깊은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신경이 계속 서울 쪽에 쏠린 나머지 그동안 잘 유지해오던 집중력이 깨지고 만 것이다.
펄럭!
답답함을 참지 못한 나는 결국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먹구름이 가신 밤하늘 아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장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설원.
나는 복잡했던 마음을 입김과 함께 훅 내뱉어 보았다.
‘참 미련하십니다.’
고목과도 같던 사람이라 고되고 힘들어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안 하던 양반이다.
아마 지금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을 게 뻔했다.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저 하늘의 별과 어렴풋이 떠오르는 과거뿐이었다.
먼저 간 이들도, 흩어진 이들도, 모두 이 하늘 아래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 정신 차리자.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이를 이끄는 내가 흔들려서는 안 되는 법이다.
잘그락.
나는 주머니 속 중대장의 군번줄을 꽉 쥐며 잠시 무뎌졌던 각오를 다시 되새겼다.
사각, 사각.
그러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만년필 소리가 빨리 해야 할 일을 하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
잠깐, 여긴 책이 없는데?
나는 깜짝 놀라 만년필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곳에는 만년필은커녕 적막한 설원과 어둠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막사로 돌아가려고 했던 나는 미간을 찡그린 채 저 멀리 장벽 너머를 노려봤다.
찌릿!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왼쪽 눈가의 흉터가 찌르르 울리며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왔다.
그동안은 느껴보지 못한 강도. 이는 군락이 여기로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두 깨워! 놈들이 온다!”
나는 즉각 무전기를 꺼내 외친 뒤 막사에서 장비를 챙겨 컨테이너 장벽으로 뛰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보초들이 참호를 뛰쳐나와 장벽 위 비상 사이렌을 울렸다.
에에에에엥!!
적막이 흐르던 전방 기지에 고막을 찢을 것 같은 비상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휴식 중이던 방위군은 총과 장비를 챙겨 서둘러 막사를 뛰쳐나왔다.
번쩍!
동시에 잠시 불을 꺼 두었던 기지 내 조명이 켜지며 어두웠던 주변이 환해졌다.
순식간에 방어 준비를 끝낸 병사들은 총구를 정면으로 겨눈 채 앞을 노려봤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선 아직 그 어떠한 감염체도 변이종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조명탄! 3시 방향으로 쏴!”
하지만 병사들 눈은 속일 수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내 왼쪽 눈은 속일 수 없다.
나는 감각이 반응하는 3시 방향을 정확히 지시하며 조명탄을 쏠 것을 지시했다.
퐁!
삐이이이이- 펑!
그러자 조명탄 수십 개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산이 우거진 곳을 환하게 밝혔다.
그곳에는 수많은 감염체와 변이종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진, 진화 군락이다!”
“시발! 놈들이 오른쪽에서 온다아아!”
자기 몸체를 진화시킨 거대한 군락이 감염체 사이에서 끔찍한 포효를 시작했다.
그 숫자는 무려 다섯 마리!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규모의 적들이 방어선에 들이쳤다.
끼아아아악-!!
전의를 상실케 하는 규모와 울음소리에 병사들은 모두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정신 차려!!”
하지만 나는 이에 상응하는 고함을 내지르며 넋이 나간 병사들 사이를 걸어갔다.
“자리 지켜! 총구 내리지 마!”
시선이 집중된다.
나는 그들의 총을 치고 어깨를 밀며 그들이 내뱉는 숨을 함께 내쉬었다.
어느덧 시선은 한쪽으로 집중되었고, 병사들은 주춤주춤 물러나던 자리를 지켰다.
“침착하게 화력을 집중한다! 방아쇠를 당겨 달려오는 표적을 쏘고 끝까지 넘어트려!”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총알도 포탄도 아닌, 서로를 하나로 묶는 끈끈한 결속이다.
나는 이를 잊지 말라고 소리치며 진정한 아포칼립스의 유산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놈들이 여길 지나가게 두지 마!”
하나둘 공포를 이겨낸 병사들은 몰려오는 감염체 놈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우리의 요새는 그 어느 때보다 견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