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끼아아아악-!!
놈들은 여러 차례 공격을 통해 방어선 어디가 취약한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군락은 영악하게도 그쪽으로 감염체 무리를 유도하며 약점을 노리려고 했다.
이에 방어선에서 대기 중인 모든 예비병력은 오른쪽 방어선으로 이동해야 했다.
“빨리! 빨리!”
“안 뛰고 뭐 하는 거야!”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당황할 법도 한데, 방위군은 침착하게 지시에 반응했다.
전쟁 경험이 많은 선임들이 솔선수범해서 사람들을 이끌며 현장을 수습한 것이다.
참호를 빠져나온 수많은 방어 인력이 순식간에 오른쪽 방어선으로 투입되었다.
[쏴! 작살을 내버려!]
남아있는 포탄을 아끼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당장 방어선이 뚫릴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각 포대는 몰려오는 놈들을 1초라도 더 저지하기 위해 전방에 집중 포격을 가했다.
펑! 펑! 퍼엉!
포구가 불을 뿜자 장약을 가득 채운 고폭탄이 감염체 웨이브 한가운데 내리꽂혔다.
콰아앙! 콰르르르릉!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놈들이 몰려오던 일대가 모조리 초토화되었다.
[빗나갔다! 다시 조준해!]
[젠장, 시야에서 놓쳤습니다!]
하지만 군락은 영악하다 못해 소름 끼칠 정도로 지능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포격이 시작되었다는 걸 눈치챈 즉시, 그 지역에서 이탈해버리는 것은 물론. 빽빽한 숲과 어두운 야음을 은폐물 삼아 관측병의 시선을 철저하게 속였다.
놈들의 단단한 내구성과 엄청난 속도를 생각하면 사실상 정밀 조준이 불가능했다.
[100m 저지선 돌파!]
[놈들이 장벽으로 접근합니다!]
결국 우리는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100m 저지선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끼아아아아악-!!
감염체와 변이종을 방패막이 삼아 몰려오던 군락이 장벽을 향해 기어 왔다.
그 모습에 나는 재빨리 장벽 3층 위로 올라가 대원들에게 급히 무전을 날렸다.
“가은아!”
[알고 있어요!]
배치를 끝낸 특전대 지정 사수들이 장벽 꼭대기에서 대물 저격용 총을 준비했다.
동시에 특제 철갑탄을 장전한 모든 중기관총이 달려오는 군락을 정조준했다.
투쾅! 투쾅! 투쾅!
투두두두-!!
웬만한 엄폐물은 걸레짝으로 만들 만한 화력이 달려오는 군락을 향해 한순간에 집중됐다.
머리만을 집요하게 노리는 공격에 접근하던 진화형 군락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공, 공격이 안 통합니다!]
[젠장! 1층 장벽에서 물러나!]
하지만 진화형 군락은 우리가 그동안 상대해온 감염체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
갓 태어나 힘이 약했던 유체와는 달리 놈들은 이미 진화를 모두 끝낸 성체였다.
끼아아아악-!!
날아오는 총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군락은 장벽에 육중한 몸을 들이박았다.
쾅!
끼기기기긱!
그 순간 철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컨테이너가 일그러지며 균열이 생겼다.
콰직!
끄아아아악!
놈은 그 균열 사이로 흉측한 팔을 비집어 넣으며 참호 내부를 헤집기 시작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의 비명이 무전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왔다.
장벽이 뚫렸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달려가며 황급히 뒤따라오는 경태를 불러 세웠다.
“경태야!”
“여기 받으세요!”
그러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장전된 자동 산탄총을 꺼내 이쪽으로 던져주었다.
탁!
공중에서 산탄총을 낚아챈 나는 군락이 설치고 있는 1층 장벽으로 몸을 날렸다.
끼익?
한참 살육을 즐기다가 졸지에 이쪽과 눈이 마주친 놈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철컥!
나는 그대로 총구를 위로 들어 흉측한 대가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투쾅! 화르르륵!
일명 드래곤 브레스라고 불리는 특제 소이탄이 산탄총 총구에서 뿜어져 나왔다.
끼아아아악-!!
압도적인 열기에 화들짝 놀란 군락은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며 팔을 휘둘렀다.
후웅!
하지만 나는 한 마리 다람쥐처럼 공격을 피하고 좁은 장벽 틈으로 숨어들었다.
놈이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좁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움직임은 이쪽이 더 빨랐다.
투쾅!
투쾅!
투쾅!
침착하게 공격을 피한다. 그리고 또 한 발, 또 한 발, 모든 움직임을 판단 아래 둔다.
나는 군락을 정면으로 상대하며 대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고 있었다.
[바로 아래다! 준비해!]
[지금이야! 던져!]
그 사이 몰래몰래 주변을 포위한 특전대원들이 동시에 확산 폭탄을 던졌다.
적당한 타이밍과 위치로 던져진 확산 폭탄이 1층으로 굴러 떨어져 폭발했다.
퍼엉!
지랄발광하던 군락 주변으로 치료제 물질이 섞인 거품이 한순간 파악 퍼진다.
끼아아아악-!!
치이이익! 피부와 근육이 녹아내리는 소리와 함께 놈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군락이 성체라는 걸 생각하면 정확히 급소를 노려야 한 방으로 끝낼 수 있다.
탁!
나는 앞으로 뛰쳐나갔고 동시에 치료제 주입기를 꺼낸 가은이와 눈을 마주쳤다.
‘지금.’
눈빛을 교환한다.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구체적인 경로, 타이밍이 들어맞았다.
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숨을 참으며 군락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
놈은 순간 위험을 감지했는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본능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치이이익!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쪽은 공격이 아닌 바닥을 미끄러지는 회피를 선택했다.
설마 상대가 도망칠 줄 몰랐던 군락은 당황하며 황급히 위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푸슉!
그 순간 가은이가 발사한 치료제 주입기가 정확히 놈의 오른쪽 눈에 명중했다.
푹!
정적이 흐른다. 놈도, 우리도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찰나의 순간 모든 걸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움직임을 멈춘 군락은 그대로 허물어지며 장벽에서 떨어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모든 무전 채널에서 숨죽인 목소리가 하나둘 흘러나왔다.
[군, 군락 소거 확인!]
[놈이 죽었습니다!]
나는 그제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삐거덕 소리를 내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진화형 군락은 아직 4마리나 남아있으며 감염체 웨이브와 변이종 또한 건재하다.
끼아아아악!
놈들은 포화를 억지로 뚫으며 파괴된 컨테이너 장벽을 향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상자부터 옮겨!”
이에 사람들은 서둘러 참호 속 부상자를 옮기고 다시 방어 준비를 서둘렀다.
물론 지친 몸을 이끈 나는 그들을 도와 모래주머니로 파괴된 입구를 막았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현장.
사람들은 흙먼지와 포화 속에 뒤섞여 정신없이 다음 여파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 어어?! 젠, 젠장! 모두 피해요!]
그런데 그 순간 장벽 꼭대기에서 변이종을 사냥하던 가은이가 경악하며 외쳤다.
“……?”
한참 방어벽을 보수하던 우리는 그 목소리에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하고 말았다.
후웅!
어둠과 불빛이 뒤섞인 허공에서 육중한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그게 반으로 쪼개진 트럭이라는 걸 자각했을 때는 이미 피하기에 늦어있었다.
콰아아아앙-!!
군락이 던진 트럭 파편이 한창 보수 중이던 컨테이너 장벽에 정확히 명중한다.
한순간이었다.
함께 모래주머니를 쌓던 나와 병사들은 무언가를 할 틈도 없이 이에 휘말렸다.
쿠르르르릉!!
사방에서 충격이 전해진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보호했다.
뚝!
하지만 멀쩡하던 시야가 곧 검게 변하더니 수명을 다한 필라멘트처럼 꺼져버렸다.
어디로 휘말렸는지, 또 현재 상태가 어떤 지도 알아낼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
삐이이이이-.
오직 몰려오는 시끄러운 비명만이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항거할 수 없는 수마가 몰려오고 있었다.
‘정신 차려!’
나는 점점 심연 아래로 가라앉는 정신을 강제로 붙잡고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쿨럭!”
그러자 막혀있던 숨이 피와 함께 터져 나오며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끔찍한 고통이 엄습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리는 눈꺼풀을 열었다.
치치직, 칙!
한쪽에선 아직 가라앉지 않은 흙먼지와 함께 파괴된 조명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동시에 나와 함께 휘말린 사람들이 모두 파편 속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끄윽…….”
나는 일단 철근이 관통한 허벅지를 꾹 움켜잡고 흘러내리는 피부터 지혈했다.
쿠르르르릉.
그리고 흘러내린 토사물을 치워 무너져 내린 컨테이너 밖으로 겨우 기어 나왔다.
‘젠장.’
하지만 주변은 이미 장벽을 뚫은 감염체로 인해 쑥대밭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파편을 맞은 컨테이너가 하중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장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치이이익! 치이익!
온갖 고성과 비명으로 시끄러운 무전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는 방위군 병사들.
견고하기 그지없던 컨테이너 장벽은 점차 감염체로 인해 검게 물들고 있었다.
후우, 후우.
거칠게 숨을 몰아쉰 나는 저 멀리 떨어진 무전기로 엉금엉금 기어가려고 했다.
쿵! 쿵! 쿵!
그런데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육중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철컥, 탕!
나는 그 ‘무언가’가 보내는 시선과 존재감에 재빨리 콜트 파이슨을 뽑아 쐈다.
후웅, 콰직!
하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와 거대한 팔로 나를 잡아 집어던졌다.
“커억!”
어찌나 힘이 강한지 허공을 한참 동안 날아가고 나서야 흙바닥에 처박혔다.
가까스로 의식의 끈을 붙여 잡은 나는 바닥을 짚고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르르릉…….
그건 다른 진화형 군락보다 배는 큰 몸체에 온몸이 시커먼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특히 감각이 읽을 수 있는 존재감은 그 어떠한 개체보다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직감했다.
놈은 단순한 성체를 넘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아종이라는 것을 말이다.
‘드디어 잡았다.’
내가 군락을 알아봤듯 놈들 또한 나라는 존재를 일찍이 인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천적의 최후 앞에 군락들은 환희와 기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두려워하라.
다른 인간들이 그랬듯이!
오만하고 영악하기 짝이 없는 군락은 천천히 다가오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적을 쓰러트릴 마땅한 무기도, 언제나 옆을 지켜주었던 든든한 동료도 이제는 없다.
사방이 검은 연기와 비명뿐인 전장 한복판은 오직 누군가의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좆까네.’
하지만 아쉽게도 이쪽은 놈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스릉!
나는 무너져가던 다리에 끝까지 힘을 주며 허리춤에서 토마호크를 꺼냈다.
감염체 대가리를 수없이 박살 냈던 도끼날은 여전히 예리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거 기억나지?”
나는 도리어 토마호크를 까닥이며 감각을 공유하고 있을 군락을 여유롭게 도발했다.
“그래, 너희들 대가리 깨던 거.”
그러자 놈은 언제 비웃었냐는 듯 분노가 섞인 소리를 내지르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크아아아아-!!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육중한 팔과 흉측한 아가리가 집어삼킬 듯 다가왔다.
‘죽음.’
일기는 그랬다. 미래는 바꿀 수 없으며 우리는 운명에 순응하며 따라가는 거라고.
어쩌면 그 말이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희미한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미래 일기와 만년필에는 미안하지만, 마지막 장만큼은 직접 마무리할 것이다.
철컥!
이미 도망칠 생각 따위는 없었던 나는 품에서 확산탄과 수류탄 다발을 꺼냈다.
그리고 거리를 좁혀오는 아종 군락을 향해 달려들어 그대로 핀을 뽑으려고 했다.
퍼엉!
삐이이이익-!
“……?”
그런데 그 순간, 맹렬하게 달려오던 놈을 향해 정체불명의 투사체가 날아와 박혔다.
콰아아아앙!!
명중한 투사체는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군락의 한쪽 어깨를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크, 크르륵!
근육과 뼈를 작살내놓은 엄청난 위력 앞에 놈은 기우뚱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쿵!
졸지에 함께 넘어진 나는 멍청한 얼굴로 수류탄과 내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엥? 뭐지? 그 사이 초능력이라도 생긴 건지 갑자기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된…….
아니, 그럴 리는 없고.
빠르게 제정신이 돌아온 나는 포탄이 날아온 방향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파스스스!
숲이 흔들린다. 대지가 요동치며 어둠 사이로 길쭉한 포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르르르릉-!!
저 멀리 서쪽에선 수십 대가 넘는 흑표 전차가 육중한 엔진음을 울부짖고 있었다.
전장의 신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