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우리는 출정을 준비하면서도 레드존 상위 군락을 토벌할 작전을 빠르게 수립했다.
그리고 이를 구 단장에게 알리자, 그는 무척이나 짧고 간단명료한 감상평을 남겼다.
“정신 나갔군.”
“전혀 예상 못 할 겁니다.”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수방사 기계화부대와 강릉 소속 방위군을 하나로 재편한다.
그다음 감염체를 상대하고 있는 동두천 방어선으로 전진해 김태하 소장을 지원한다.
한반도 전력이 한곳으로 집중된 만큼 상위 군락의 시선은 동부 전선으로 집중될 터.
그사이 특전대는 레드존으로 진입해 상위 군락을 발견하고 곧바로 소멸을 시도한다.
만약 성공만 한다면 하위 군락과 감염체는 통제권을 자연스레 잃게 될 것이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양동 작전, 그것이 이번 작전의 가장 큰 틀이었다.
쯧.
계획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구 단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짧게 혀를 찼다.
“자넨 목숨이 2개라도 되나? 그렇게 다쳐놓고 또 군락 놈들이랑 싸울 생각이야?”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서울을 구원하느냐, 정권을 찬탈하느냐.
그 무엇을 선택하든, 누군가는 어쨌거나 피를 봐야만 한다.
하지만 내가 제시한 이 방법은 최소한의 피해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엄석현이 원하는 두 세력간 전력 소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선이라…….”
“어떻습니까.”
구 단장이 원하는 본격적인 ‘정리’는 이번 전쟁이 끝나고 해도 늦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구 단장을 설득하며 마지막으로 의중을 물었다.
“……어쩔 수 없군. 따르지.”
그러자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한숨을 마지막으로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마 내가 망설였다면 본인이 직접 대전으로 내려가 엄석현을 쏴 죽였을 사람이다.
나는 큰 결단을 내려준 구 단장에게 감사를 표하며 본격적인 논의를 마무리했다.
“필요한 물자와 탄약은 저희가 전부 조달할 겁니다. 단장님은 지휘를 부탁드립니다.”
“그건 염려하지 말고 맡기게. 그나저나 우리 쪽 대원들은 정말 필요 없겠나?”
“예. 강릉 특전대면 충분합니다.”
다른 군사 작전이라면 모를까, 군락을 소멸시키는 것은 우리 특전대가 전문가다.
은밀한 기동을 위해서는 실력이 좋은 소수 인원을 지휘하는 것이 훨씬 안전했다.
구 단장도 이를 알기에 아무런 말없이 동의를 표하며 바쁘게 의견을 나눴다.
“경로와 배치는…….”
그 외 이동 경로, 합류 시간, 편제와 배치 등등, 고려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시간을 최대한 짜낸 나와 구 단장은 급조한 작전 위에 하나씩 살을 붙이고 있었다.
치익!
[형님, 시간 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전기를 통해 곧 출발해야 한다는 경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곧 가겠다는 대답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구 단장과 악수했다.
“나머지는 내가 맡겠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힘들게 성장시켜온 강릉 방위군이다.
나는 가족을 맡기고 간다는 심정으로 진심 어린 부탁을 남기며 고개를 숙였다.
“살아서 보자고, 박 중위.”
“전방에서 뵙겠습니다.”
그리고 살아서 보자는 비장한 말을 마지막으로 지휘부 천막을 빠져나왔다.
펄럭!
이제 막 아침이 찾아온 고성은 매서운 찬바람과 함께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보수를 시작한 방어선과 착륙장만큼은 분주한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헬기 착륙장을 향해 뛰어가자 경태가 기다렸다는 듯 장비를 들고 뛰어왔다.
“형님! 이것부터 챙기세요!”
대원들이 바쁜 나를 대신해 필요한 전투 장비를 모두 챙겨 이곳으로 가져왔다.
기본적인 탄약, 개인화기, 여분의 치료제와 확산 폭탄 그리고 숨통을 끊을 주입기까지.
나는 이를 서둘러 가방과 탄띠 속에 넣으며 마지막으로 특전대 인원을 점검했다.
“…….”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있을 때면 항상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던 특전 대원들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모두가 차분한 얼굴로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든든한지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가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었다.
출발 5분 전.
정비를 끝낸 헬기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하나둘 복귀하고 저 멀리서는 수방사와 방위군이 어느새 공터 앞에 모여 있었다.
우리가 곧 출발한다는 소식을 접한 모든 병력이 주둔지 앞으로 집결한 것이다.
나와 대원들은 그 광경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줄어드는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범석 씨!”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 공터에서 누군가가 눈밭을 가로지르며 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엠마?”
분명 전투가 끝나자마자 양양으로 급히 돌아갔다고 들었는데 여긴 또 어쩐 일인가.
나는 대원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착륙장으로 달려오는 엠마를 마주했다.
“양양으로 가신 거 아니었습니까?”
“잠깐 받아올 물건이 있어서요! 무거우니까, 일단 이 가방부터 좀 받아주실래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모양이다.
나는 엠마가 들고 있던 묵직한 가방을 건네받아 일단 내용물부터 살펴보았다.
음?
가방 안에는 복잡한 기계 장치와 길쭉한 안테나들이 마치 벌레처럼 달려 있었다.
“이게 뭡니까?”
“군락 교란 장치에요.”
“교란이요?”
“네. 군락끼리 주고받는 특정 주파수가 있거든요. 이 장치가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같은 출력으로 주파수를 발생시킬 거예요.”
“그럼 군락은…….”
“여러분을 동족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직접 보지 않는 한, 들킬 일은 없을 거예요.”
말 그대로 군락 교란 장치, 레드존 한복판에서 존재감을 숨겨주는 천연 위장막이다.
와락!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에, 환하게 웃고 있던 엠마와 살짝 포옹했다.
“고마워요, 정말로.”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요.”
양쪽 귀를 빨갛게 붉힌 그녀는 내 등을 토닥이며 무사 귀환을 기원해주었다.
치익.
[출발 1분 전!]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그 즉시 발걸음을 돌려 대원들과 함께 헬기에 탑승했다.
그러자 헬기 조종사는 기다렸다는 듯 로터를 돌리며 천천히 고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특전대 전원을 태운 수송 헬기는 급히 날아올라 고성 방어선 위를 순식간에 가로질렀다.
이에 우리는 하나둘 자리에 앉아 조금씩 멀어지는 고성 방어선을 내려다봤다.
“…….”
하얀 눈이 쌓인 공터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의 간절한 염원과 기도는 고성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었다.
* * *
예전에도 말했듯 레드존의 겨울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하얀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이런 한겨울에는 24시간 눈보라가 몰아치는 기상이변이 나타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문제가 뭐냐고?
하필 우리가 레드존으로 향하는 날, 이런 특이한 기상이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눈보라가 너무 거셉니다!]
목적지를 향해 한참 잘 날아가던 수송 헬기가 갑자기 거센 눈보라와 마주쳤다.
그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로터는 물론 기체가 통째로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
헬기는 어쩔 수 없이 고도를 내려 그나마 눈보라가 덜 부는 산골짜기로 내려왔다.
후우우우우웅-!!
지난번에도 그랬듯, 한 번 몰아친 레드존의 눈보라는 겨우 하루 가지곤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차라리 육로로 이동하는 게 빠를 수 있었다.
“하강 준비!”
그래도 실력 있는 헬기 조종사들 덕분에 목적지 부근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나와 대원들은 즉각 헬기 밖으로 로프를 던져 하나둘 지상으로 착지하기 시작했다.
[무운을 빕니다!]
하늘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수송 헬기들은 그 즉시 눈보라 지대를 벗어났다.
로터 소리로 시끄럽던 주변 설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한 침묵이 깔렸다.
“이동.”
우회하긴 했어도 거리상으로 따지면 지난번 수색 때보다 더 깊숙이 들어온 상태다.
나는 대원들 배치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써주며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거센 눈보라가 또 한 번 불어오며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다.
‘영하 25도.’
아무리 방한복을 껴입어도 몸이 덜덜 떨리고 손끝, 발끝의 감각이 사라지는 날씨다.
체감온도는 이보다 낮다는 생각에 나는 얼어붙은 온도계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몰려다니는 감염체뿐만 아니라, 혹독한 날씨 또한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다.
나는 비교적 눈보라가 역방향으로 불어오는 경로를 잡고 대원들을 안내해주었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걸으며, 오직 눈밖에 보이지 않는 설원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후욱, 후욱.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 같은 풍경뿐이던 주변 지형이 바뀌어 있었다.
대원들에게 잠시 휴식을 명령한 나는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 사방을 살펴보았다.
‘보이는 건 없다.’
당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눈을 감아도 군락을 찾을 수 있는 예리한 감각이 있었다.
찌릿!
저 멀리에 다른 군락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존재감이 마치 뱀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 둥지 규모가 얼마나 크기에 이 먼 거리까지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걸까.
저놈이 상위 군락이라고 직감한 나는 마지막으로 방향과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반나절.’
이 속도로 계속 이동한다면 밤이 찾아오기 전에는 상위 군락을 관측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대원들에게 알려주고자 숲속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찌릿!
“……!!”
그런데 그 순간, 예민한 감각 한줄기가 정면 3시 방향을 다급히 가리키기 시작했다.
진화형 군락이 근처까지 접근했다는 걸 눈치 챈 나는 서둘러 자세부터 낮추었다.
치익.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무전을 날린 뒤 특전대가 매복 중인 수풀로 뛰어 들어갔다.
이에 깜짝 놀란 대원들은 서둘러 수풀에 모습을 감추며 내 지시를 기다렸다.
‘300m 반경 안에 있다.’
아마 멀리서 헬기 소리를 들은 군락이 우리 흔적을 따라 여기까지 쫓아온 모양이다.
물론 구체적인 위치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들키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였다.
‘경태야.’
내가 다급히 손짓하자 경태가 기다렸다는 듯 굴러와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지익.
그리고 방수천으로 꼼꼼하게 포장한 군락 교란 장치를 꺼내 조심히 작동시켰다.
조그마한 잡음과 함께 군락끼리 주고받는다고 알려진 주파수가 사방으로 퍼졌다.
끼이이익.
됐다. 잠시 주변을 맴돌던 놈은 의아하다는 울음소리와 함께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
후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대원들은 내가 있는 수풀로 엉금엉금 기어 왔다.
“아직 남아있는 놈들이 있었네요.”
“교란기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무리 빈집이라도 최소한의 경비 병력이 상위 군락 근처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만약 군락 교란기가 없었다면 이를 피하느라 피똥 싸게 고생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엠마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끼며 대원들과 마지막 브리핑을 시작했다.
“여기서 반나절 정도 쭉 걸어가면 상위 군락이 보이는 위치까지 도달할 겁니다.”
“유인을 맡으면 됩니까?”
“아뇨, 교란기 성능이 생각보다 훨씬 좋습니다. 이번에는 다 같이 움직여봅시다.”
헬기가 없는 레드존에서 감염체를 유인하라는 건 사실상 자살 강요나 마찬가지였다.
마침 성능 좋은 교란기가 있으니 놈이 있는 둥지까지 몰래 다가가 볼 생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원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사박, 사박, 사박.
그렇게 약 6시간가량 불어오는 눈보라와 어슬렁거리는 진화형 군락을 피한 우리는 원래 목적지인 동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발.’
거대한 산줄기 한가운데 자리 잡은 상위 군락은 산 하나를 통째로 둥지 삼고 있었다.
물론 오염이 시작되어 그 일대 지역은 어떠한 동식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변 산맥은 이미 더러운 감염체 오물과 파헤친 토사로 인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곳은 블랙존.
상위 군락의 영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