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수방사 주요 전력이었던 기계화 부대가 이탈함에 따라 동두천 방어선은 붕괴했다.
남은 병력만으로는 이 지역을 지킬 수 없기에 일단 경계면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후퇴가 아닌 김태하 소장의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지하로 간다.’
그는 소요산과 지행역으로 이어지는 1호선 지하철로 모든 병력을 이동시켰다.
그리고 승강장 아래를 벙커로 만들어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임시 기지를 건설했다.
‘폭파!’
그날을 기점으로 동두천을 빠져나갈 수 있는 모든 길목과 다리가 폭파되었다.
이는 여기서 감염체 웨이브를 끝까지 막겠다는 김태하 소장의 강력한 의지였다.
물론 이는 단순한 농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감염체를 상대로 한 게릴라전이었다.
끼이이이익-!!
동두천 방어 부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하를 빠져나가 감염체를 유인했다.
특히 빼곡하게 깔린 아파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놈들의 신경을 제대로 건드렸다.
“빨리! 빨리!”
“여기까지 왔다!”
옥상에서 사격을 가하다 감염체가 몰려오면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몰려있는 아파트 단지만 해도 수십 개가 넘었기에 동두천 전역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지상에서 일렁이는 감염체 웨이브는 마치 도시를 집어삼킨 해일을 연상케 했다.
투두두두두-!!
그나마 육군 수송 헬기가 남아있어 병사들이 빠져나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옥상 사이를 도망치다가 때가 되면 헬기를 타고 복귀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죽음.’
하지만 점점 쌓여가는 피로감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동두천 고립 사흘째, 현장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조금 전 연락이 끊겼습니다.”
“다시 확인해봤나?”
“예. 전원 사망입니다.”
침통한 얼굴로 보고하는 부관도, 이를 듣고 있던 김태하 소장도 모두 할 말을 잃는다.
이러한 일이 오늘만 해도 벌써 다섯 번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태하 소장은 흙먼지가 묻은 모자를 내려놓으며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확인했다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제발, 제발 오늘은 이 무전이 마지막 보고이기를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잔혹한 현실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뼛속 깊이 체감해야 했다.
얼마나 더 버텨야 할까, 차라리 내가 죽으면 이 괴로운 전쟁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몸도 마음도 모두 무너져버린 김태하 소장은 또 한 번 가슴 통증을 느꼈다.
쿨럭! 쿨럭!
속에서 끓어오른 무언가를 뱉어내니 시뻘건 피가 입 밖으로 묻어나온다.
“의무병!”
이에 깜짝 놀란 부관들이 서둘러 달려와 다급히 의무병을 호출하려고 했다.
“됐네.”
하지만 김태하 소장은 그런 부관을 제지하며 옷소매로 피 묻은 입을 닦았다.
피곤으로 한껏 일그러져 있던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무거운 중압감이 내려앉아 있었다.
‘마지막 최후까지.’
자신이 얼마나 버텨주느냐에 따라 박범석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늘어난다.
너무 무거운 짐을 준 것 같아 가슴이 아프지만, 어떤 선택을 하던 원망은 없었다.
“현장으로 가보지.”
그렇게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잡은 김태하 소장은 부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났다.
모든 이들이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고작 피 몇 번 토했다고 쉴 생각은 없었다.
“소장님.”
“……?”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막사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김태하 소장은 서둘러 고개를 돌려 막사를 찾아온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여기 계셨네요.”
갑작스러운 이솔하의 방문에 부관과 병사들은 깜짝 놀라며 다급히 경례를 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이 이곳을 직접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여긴 왜……!”
이는 김태하 소장도 마찬가지였는지 평소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초췌한 얼굴로 웃고 있는 이솔하를 보자마자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현재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는 그녀 본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돌아가면 방법이 있나요?”
“그건…….”
“이제 의미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무능한 대통령, 끈 떨어진 정치인, 현재 자신을 수식하는 부정적인 꼬리표다.
그만큼 그녀가 걸어온 길은 잘못되었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솔하는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할 일을 찾아 돕고자 찾아왔다.
“최대한 병력을 모아왔어요.”
“병력을?”
“예. 흩어졌던 경기도 예하 부대요.”
지휘 체계가 무너짐에 따라 경기도 예하 부대들은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상황이었다.
이솔하는 그런 그들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직접 찾아다니며 통제권을 받아왔다.
그리고 작게는 소대, 크게는 대대까지 전부 끌어 모아 하나의 부대로 재편했다.
비록 그 규모가 크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원이 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정말 미안해요.”
김태하 소장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솔하는 그런 그의 손을 꾹 붙잡았다.
군부 정권을 무너트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함께 해왔던 우리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것은 폐허요,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뿐이다.
고통, 후회, 연민. 김태하와 이솔하는 복잡한 심경을 공유하며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한 자들에게도 실패한 결말이 있는 법,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해야 할 때가 왔다.
쿠르르릉!
그 순간 지하철 천장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다급한 보고가 무전을 통해 전해졌다.
“소요산역 현재 공격받는 중!”
“놈들이 벙커를 눈치 챈 것 같습니다!”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군락이 드디어 지하 벙커의 존재와 위치를 알아내고 말았다.
김태하 소장과 이솔하는 그 즉시 막사를 뛰쳐나와 군인들과 함께 총을 챙겨 들었다.
“통로 봉쇄해! 끝까지 버틴다!”
“알겠습니다!”
설치해둔 폭약으로 인해 동두천 가장 남쪽인 지행역 지하 통로가 무너져 내렸다.
스스로 마지막 퇴로를 끊은 동두천 방어 부대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자 했다.
.
.
.
하지만 김태하 소장과 이솔하가 딱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도하 준비!”
“간격 좁혀! 서두르란 말이야!”
바로 최후인 줄 알았던 그들을 위해 누군가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쿠르르르릉-!!
고성을 출발한 수방사 기계화 부대와 강릉 연합군이 벌써 양구를 지나치고 있었다.
일렁이는 기갑 웨이브.
감염체를 휩쓸 강철의 진격이었다.
* * *
‘쉿.’
위험을 감지한 내가 수신호를 보내자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몸을 숨겼다.
끼기기긱.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능선에선 진화형 군락 하나가 빠르게 기어 오고 있었다.
분명 여기 있었는데?
짧은 찰나, 우리의 흔적을 발견했던 놈은 연신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끼익.
하지만 곧 아무것도 찾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대편으로 돌아가 버렸고, 그 뒤를 따라오던 변이종 무리 또한 아쉬운 울음소리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위험했어.’
빈집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둥지를 지키는 군락과 변이종 숫자가 너무나 많았다.
대규모 웨이브를 그렇게 보내놓고도 아직 주변을 지킬 여력이 남아있는 걸까.
이는 아무리 봐도 단순한 계산 실수라기보다는 또 다른 변수에 의한 것으로 보였다.
‘다시 이동.’
나는 심각한 얼굴로 산맥을 둘러보다 이내 다시 대원들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갔다.
시간은 어느덧 밤, 짙게 깔린 야음과 교란기가 소리와 그림자를 감춰주고 있었다.
사박, 사박, 사박.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어느덧 검은 흙과 오물이 가득한 둥지에 도착했다.
나는 그 즉시 방독면 착용을 지시한 뒤 둥지 입구를 찾아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일단 하나.’
산맥 전체를 통째로 품고 있는 상위 군락의 둥지답게 출입구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모두 이어지는 통로라는 걸 알기에 굳이 한곳을 고를 필요는 없었다.
‘출력 올려.’
군락 교란기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던 경태가 조심스럽게 배터리 출력을 올린다.
이 정도면 아마 우리를 둥지로 복귀하는 군락 중에 하나라고 착각할 것이다.
자, 이제 시작이다.
조심스럽게 입구를 확보한 나는 대원들과 함께 둥지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달빛이 비춰주던 세상은 둥지의 칠흑과도 같은 어둠으로 휩싸였다.
후욱, 후욱.
둥지가 협소하던 다른 놈들과는 달리 상위 군락의 소굴은 통로조차 큼직큼직했다.
하지만 반대로 토양을 오염시킨 오물과 유독 가스 수치는 상상을 초월했는데, 만약 장시간 이곳에 머무르려 한다면 정말이지 산소통이라도 가지고 와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 익숙한 나와 대원들은 방독면에 의지한 채 능숙히 걸음을 옮겼다.
끼기긱, 끼익!
둥지 이곳저곳에선 진화형 군락과 변이종들이 정말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감염체라기보다는 진짜 굴을 파고 돌아다니는 개미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군락 교란기 속에 모습을 감추면서 그 뒤를 바짝 따라가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진화형 군락들이 둥지 중심부로 향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중심부, 즉 둥지에서 가장 중요한 곳.
나는 군락 한 마리가 지나갔던 가파른 절벽 앞에 멈춰 살며시 아래로 고개를 내밀었다.
끼기끽, 끼이익.
끼익, 끼아아아악!
그러자 여태 소거한 둥지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 산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대원들은 이에 경악하면서도 산란장 이곳저곳을 바삐 관찰하기 시작했다.
‘끔찍하군.’
하위 군락이 감염체와 변이종을 생산한다면 상위 군락은 군락 그 자체를 생산한다.
이곳은 상위 군락뿐만이 아닌 하위 개체가 함께 만들어지는 집단 군체였다.
이로써 비정상적으로 컸던 감염체 웨이브와 수많은 군락의 존재가 이해되었다.
‘어디냐.’
하지만 특전대의 진짜 목적은 산란장 소거가 아닌 상위 군락 본체를 찾는 것이다.
나는 하위 군락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산란장 이곳저곳을 살피며 출구를 찾았다.
‘음?’
그리고 곧 진화형 군락이 갓 태어난 유체 군락을 어딘가로 옮기는 걸 발견했다.
그 입구는 유난히 크고 넓었으며, 마치 사념과도 같은 존재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기다.
나는 직감적으로 저 통로 너머에 상위 군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무 깊어.’
이제 문제는 이 가파른 절벽과 놈들이 득실거리는 산란장을 어떻게 지나느냐는 것이다.
나는 숨이 턱턱 막혀오는 지옥을 내려다보며 한동안 고민에 빠져있어야 했다.
‘형님.’
그런데 그 순간 옆에서 가만히 교란기를 끌어안고 있던 경태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왼쪽 벽 옆으로 길게 이어진 틈이 시야에 들어왔다.
놈들이 통로를 파다가 만 건가?
거대한 군락이라면 몰라도 사람 하나는 게걸음으로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크기였다.
저쪽으로 몰래 이동해 아래로 내려간다면…… 어? 산란장을 지나지 않아도 된다.
‘로프 꺼내.’
나는 그 즉시 가방을 열고 혹시 몰라서 챙겨온 로프를 한곳으로 모았다.
어차피 교란기가 여기 있는 이상, 조를 나누거나 하는 짓은 더 이상 못한다.
죽으나 사나 저 절벽 틈을 같이 건너서 상위 군락을 죽이고 전쟁을 끝내야 했다.
‘묶어.’
내가 뭘 하려는지 눈치 챈 대원들은 로프로 허리를 묶고 서로를 하나로 연결했다.
그리고 무거운 장비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개인화기만을 챙겨 절벽 틈으로 걸어갔다.
꿀꺽.
다행히 지반은 튼튼했다. 침을 꿀꺽 삼킨 나는 가장 먼저 틈을 밟고 걸어갔다.
그러자 그 뒤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대원들이 조심스럽게 따라오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끼이익!
떨어지면 최소 뼈가 가루가 되거나 재수 없으면 놈들에게 산채로 물어 뜯긴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로 묶여있기에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걸음을 앞으로 내밀었다.
할 수 있다.
우리는 로프를 통해 전해지는 떨림을 공유하며 천천히 상위 군락을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