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대, 대통령님?”
한참 고통을 호소하던 한 부상병이 이솔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요. 누워 계세요.”
하지만 그녀는 이를 극구 만류하며 그가 자리에 편히 누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붕대를 새것으로 갈아주기 위해 온 것이니 굳이 형식적인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다.
이솔하는 꼼꼼한 손길로 상처를 소독해주는 것은 물론 부상병을 위로해주기까지 했다.
“크윽……!”
“아아아아아악!”
지하철역 내부는 이미 피를 철철 흘리며 후송되어온 부상병들로 인산인해였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동두천으로 파견된 군의관과 의무병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나마 이솔하와 같은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워줘서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것이지, 아마 인원이 조금만 더 부족했어도 이 임시 병실은 아비규환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게 부족해.’
하지만 인력은 어떻게든 보충한다 해도 소모되는 물자에는 결국 한계가 있었다.
이미 보급이 끊긴 상황에서 총알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약품조차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 감염체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치료제는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
군의관들 사이에선 이미 사상자를 분류해야 한다는 심각한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한계다.’
지금도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앞으로 몰려올 부상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침통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덜컹!
이솔하는 벌써 붕대로 가득한 양동이를 들고 일어서며 조용히 눈가를 닦았다.
그러자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피 묻은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무리 학위가 있으면 뭐 하고, 성공한 로비스트에 또 대통령이면 뭘 하나.
여기서 자신은 겨우 허드렛일이나 돕는 신세였고 사람 하나조차 살릴 수가 없었다.
그동안 느꼈던 것이 무력감이었다면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공허함과 허탈함이었다.
그녀는 한쪽 복도를 채우고 있는 시체를 보며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그동안 자신이 보지 못했던 현실은 너무나 잔혹했으며 또 뼈가 시릴 만큼 비정했다.
쿠르르르릉!!
하지만 그러한 슬픔조차 느낄 겨를도 없이 또 한 번 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큰 폭발이 일어났기에 이 지하 깊숙한 곳까지 그 여파가 전달되는 걸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챈 이솔하는 황급히 1층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대통령 각하!”
그러자 경호실장이 기다렸다는 듯 계단에서 내려오며 그녀를 다급하게 불렀다.
이미 한차례 격전을 치렀는지 그의 얼굴과 옷은 땀으로 흥건하게 물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사거리 저지선이 뚫렸습니다!”
최후 결사를 다짐한 이후, 무려 이틀이라는 시간을 이곳 방어선에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가 찾아왔는지 모든 병력이 모여 있던 사거리가 뚫렸다.
이제 남은 곳은 최후방이나 다름없는 역 출구와 부상자들이 모인 지하뿐이었다.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그동안 이솔하 곁을 유일하게 지키고 있던 경호실장은 진지한 얼굴로 재차 설득했다.
아무리 국민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죽게 만들 수는 없다.
영웅 놀이는 이제 끝, 슬슬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 차례였다.
철컥!
하지만 이솔하는 대답 대신 누군가의 피가 묻어 있는 소총 하나를 주워들었다.
평생 총이라고는 쏴본 적 없던 그 여린 모습은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단호한 표정만큼은 이 자리에 모인 그 누구보다도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장전 좀 도와줄래요?”
“……각하.”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절대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그 모습에 경호실장은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현재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장전을 돕고 총 쏘는 법을 알려주는 것뿐이었다.
쿠르르르릉!
그사이 저 멀리서부터 시작된 폭음과 비명이 점차 이곳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끼이익!
전방에서부터 달려온 군용 레토나 한 대가 지행역 바리케이드 앞에 다급히 멈춰 섰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보조석에 있던 김태하 소장이 급히 자리에서 내렸다.
“전투 인원은 모두 역 앞으로 집결한다! 부상자들을 후송할 때까지 방어선을 지킨다!”
“알겠습니다!”
현재 모든 저지선이 돌파당하며 지행역은 감염체 웨이브에 포위당한 상황이었다.
김태하 소장은 어쩔 수 없이 모든 병력을 최후방으로 재집결시켜야만 했다.
사실상 궤멸을 앞둔 순간, 이제는 마지막 방어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놈, 놈들이 몰려옵니다!”
하지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감염체들은 그들이 후퇴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재집결이 채 끝나기도 전인데 놈들은 직진 경로를 따라 지행역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끼아아아아악-!!
그 압도적인 광경에 허겁지겁 바리케이드로 몰려들던 군인들은 얼굴을 굳혔다.
저 검은 해일을 막기에는 급조해서 쌓은 바리케이드가 너무나 연약해 보였다.
“폭파!”
김태하 소장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카드나 다름없는 폭발물을 터트려야만 했다.
콰르르르릉!
도로 옆에 설치해둔 부비트랩이 발동하며 콘크리트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우르르 몰려오던 감염체 웨이브는 그대로 깔리며 다져진 고기가 돼버렸다.
“쏴!”
급히 전열을 재정비한 김태하 소장은 모든 이들을 향해 사격 명령을 내렸다.
투두두두두두-!!
다친 군인, 민간인, 군의관 할 것 없이 모두가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에 콘크리트 잔해를 넘어오던 감염체들은 하나둘 검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끼이이이이익!
하지만 몰려오는 감염체 중에는 그들이 상대할 수 없는 적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군, 군락이다!”
온몸을 검은색으로 물들인 진화형 군락 한 마리가 화망을 가볍게 뚫고 달려왔다.
콰직!
그리고 방어선 한복판으로 난입하며 바리케이드를 미친 듯이 파괴하기 시작했다.
“살려줘! 살려줘!”
“끄아아아아아악!”
졸지에 방패막이가 사라진 사람들은 머리가 물어뜯기고 사지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바닥은 핏물과 내장으로 범벅이 되었고 사상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졌다.
“아, 아아…….”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이솔하는 손발을 덜덜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주변에서 함께 싸우던 사람들은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누워있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
그 순간 급히 달려온 경호실장이 넋이 나간 이솔하를 부축해 뒤로 달려갔다.
군락 난입으로 인해 이미 방어선은 무너지고 후방 또한 위험해져 버린 상태다.
이솔하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그나마 문을 닫을 수 있는 지행역으로 내려가야 했다.
끼기기기기긱!
하지만 이미 방어선을 넘어온 감염체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일부 감염체가 도망치던 경호실장과 이솔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젠장! 뒤로 물러나십시오!”
이를 악문 경호실장은 황급히 총을 꺼내 달려드는 놈들을 저지하려고 했다.
끼이이이익!
한두 마리는 혼자 쓰러트릴 수 있어도 여러 마리는 아무리 경호실장이라 해도 무리였다.
“크윽!”
그는 결국 가지고 있던 실탄이 떨어지며 달려드는 감염체 놈들에게 습격당했다.
‘도, 도와줘야 해.’
그제야 정신이 든 이솔하는 허둥지둥 탄알집을 교체하고 총을 발사하려고 했다.
달칵, 달칵!
하지만 하필 그때 약실에 탄이 걸리며 방아쇠가 제대로 당겨지지 않았다.
“아…….”
이솔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정면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과 몰려오는 감염체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죄송해요.’
누구를 향한 사과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해야만 할 것 같았기에 한 사과니까.
하지만 그러한 읊조림도 이내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묻혀 사라지고 있었다.
‘정말로.’
이솔하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감염체를 보며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삐이이이이이- 쾅!
그런데 그 순간, 우르르 몰려오던 감염체들 한복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대지를 뒤흔드는 엄청난 폭음에, 싸우고 있던 사람들도, 놈들도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초탄 명중! 효력사 실시한다!]
피로 물든 무전기에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
하지만 김태하 소장은 그 무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콰아아앙!
쾅! 콰앙!
강릉 연합군이 발사한 대단위 포격이 감염체 무리를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동시에 시가지에서는 거친 엔진음을 내뿜은 강철 맹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고, 방독면을 쓴 수많은 군인이 달려드는 감염체를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강릉에서 지원군이 도착했다.
개전 이후, 하염없이 밀리기만 하던 서부 전선에서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 *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며 그저 가만히 또 가만히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았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쳐 그냥 이대로 쭉 잠들고 싶었다.
사각, 사각, 사각.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시끄러운 만년필이 주변을 알짱거리며 나를 귀찮게 했다.
아무리 떨쳐내려 싫다고 외쳐 봐도 녀석은 의식을 깨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시발!
결국 참다못해 폭발해버린 나는 팔을 휘저으며 심연 속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쿨럭!”
그 순간 흙먼지로 막혀있던 목구멍이 뚫리며 거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잠깐, 지금은 잘 때가 아니잖아.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나는 온몸을 버둥거리며 잔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후욱, 후욱.
주변을 가득 메웠던 감염체들과 군체는 어디 가고 사방이 폐허로 가득해 있다.
나는 방독면 유리 부분을 손으로 닦으며 힘겹게 잔해를 헤치고 걸어 나왔다.
무전기, 무전기가 어디 갔지? 아니, 지금은 대원들이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야 한다.
나는 정신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잔해 어딘가에 파묻혔을 대원들을 찾았다.
“경태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경태를 발견하자마자 황급히 잔해 밖으로 끌어냈다.
“형, 형님?”
“그래, 새끼야!”
다행히 충격이 크지 않았던 경태는 금방 정신을 차리며 두 눈을 깜빡였다.
나는 그런 녀석을 반갑게 안아주며 일단 안전한 자리에 눕히고 치료제를 놔주었다.
“여, 여기 있습니다.”
“선배…… 살려줘요.”
그러자 소음을 듣고 깨어난 대원들이 잔해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벽 옆에 붙어있었던 덕분에 무너지는 잔해로부터 무사했던 모양이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허둥지둥 달려가 대원들을 하나둘 끌어냈다.
그렇게 약 30분가량을 분투한 나는 쓰러진 대원들 사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욱, 후욱.
나는 마지막 남은 붕대를 꺼내 상처가 터져버린 허벅지를 다시금 봉합하고 묶었다.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손발이 차가워지는 게 이미 신체는 한계가 온 모양이다.
찌르르르…….
하지만 찌르르 울려오는 왼쪽 눈 흉터는 아직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끝인 줄 알았던 상위 군락이 이곳 어딘가에 살아남아 도망치고 있다는 신호였다.
놓칠 수 없다.
나는 터져 나올 뻔한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질질.
일단 움직이지 못하는 대원들을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구덩이로 옮겨 숨겨놓았다.
혹여나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 수신기 또한 경태 품에 넣어두었다.
“형, 형님?”
그런데 그 순간 의식이 흐릿하던 경태 녀석이 갑자기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어디 가세요.”
“여기 숨어 있어.”
“같이 가요…….”
참 끝까지 미련하고 순박한 녀석.
이제는 힘들 법도 한데 끝까지 따라오려고 한다.
나는 두 눈을 깜빡이는 경태를 향해 피식 웃어준 뒤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금방 올게.”
그러자 경태는 떨리는 눈동자를 힘없이 감으며 곧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비틀비틀 구덩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스릉!
그 난리 통에도 토마호크는 여전히 날카롭게 빛나며 죽음을 갈구하고 있었다.
나는 감각이 이끄는 방향으로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며 상위 군락을 추격했다.
왼쪽 눈 흉터가 아파 올수록, 그동안의 수많은 희생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죽인다.
놈을 반드시 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