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수면 깊이 잠들어 있던 의식을 시작으로 점점 몸과 감각에 힘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나는 불현듯 몰려오는 지독한 갈증과 두통에 신음하며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어우…….”
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고, 바로 옆으로는 삑삑거리는 바이탈신호기가 보였다.
머리 위로 보이는 새하얀 천장만 봐도 이곳이 어디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또 기절한 거야?
대원들에게 업혀 헬기로 달려가던 기억이 드문드문 나는 게, 꿈은 아니었던 모양.
이젠 이런 상황조차 지겨웠던 나는 아무렇지 않게 눈을 비비며 정신을 차렸다.
어째 병원 천장이 익숙하다 했더니 늘 신세를 지고 있는 동인병원 1인 병실이었다.
“선, 선생님! 깨어나셨어요!”
내 상태를 살피기 위해 들어왔던 담당 간호사는 깜짝 놀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이어 병원 복도가 갑자기 시끄러워지더니 익숙한 의료진들이 급히 병실로 달려왔다.
“시장님!”
이젠 주치의나 마찬가지인 차지철 씨가 가장 먼저 의사 가운을 날리며 달려왔다.
정말 오랜만인 그와 반갑게 인사한 나는 욱신거리는 상반신을 일으키려고 했다.
“가만히 계세요.”
하지만 차지철은 그런 나를 강하게 제지하며 몸 상태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부상이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지 지난번과는 달리 모두 침착한 분위기였다.
“어지럽지는 않으십니까?”
“머리가 좀 아프네요.”
“방금 깨어나셔서 그럴 겁니다. 좀 안정되시면 정밀 검사를 다시 한 번 해보시죠.”
저승사자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외과 의사 차지철이라는 소문은 이미 유명했다.
의학적인 부분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습니까?”
“동인병원으로 호송되시고 정확히 사흘째입니다. 이미 수술도 한 차례 하셨고요.”
“그럼 전쟁은…….”
전쟁은 어떻게 되었냐는 말에 차지철과 주변 간호사들은 조용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진심 어린 존경과 따뜻한 감정이 맴돌고 있었다.
그래, 끝났구나.
여기까지 정말 힘들게 버티며 살아온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안도할 수 있었다.
덜컹!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더니 환자복 차림인 경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 형님!?”
녀석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눈물을 터트리며 병상을 향해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에 뒤따라 달려오던 가은이도 그만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안겨 왔다.
으아아앙!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녀석들이 정말 애처럼 엉엉 울고 있다.
평소였으면 나잇값 좀 하라고 나무랐겠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선배.”
그러자 울음바다인 병실로 송지영을 필두로 대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전장이 워낙 치열했던 만큼 대원들 모두는 크고 작은 부상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슬프게 하는 건 이런 사소한 부상 따위가 아닌 누군가의 빈자리였다.
“최, 최 대위님이……!”
울음을 터트리는 가은이 앞에서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최 대위가 있어야 할 맨 오른편 자리에는 차가운 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잘그락.
문 상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품에 가지고 있던 군번줄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수십 개가 넘는 그 군번줄은 레드존에서 돌아오지 못한 대원들의 마지막 표식이었다.
“시체는…… 찾았습니까?”
“전부 강릉항으로 운구했습니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동료를 지킨다는 일념 하나로 감염체를 막아선 대원들이었다.
나는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최 대위의 군번줄을 쥐며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나 무겁다.
대원들이 남기고 간 군번줄도,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이 책임감도 모두 말이다.
살아남았다는 기쁨도 잠시, 혼자 살아남았다는 슬픔에 가슴 한쪽이 쓰라려 왔다.
창밖으로는 눈이 내렸다.
눈이 시릴 만큼 차가운 함박눈이었다.
* * *
보름 정도 지나자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도 될 만큼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완치까지는 아니었기에 업무를 본다거나 하는 일은 아직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온종일 병실에서 빈둥거리며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한반도는 전후처리로 인해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몸은 좀 어떤가.]
“뭐, 괜찮습니다.”
[하하, 아직 죽을 때는 아닌가 보군.]
“소장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죽을 각오로 동두천 방어선을 지키고 있던 김태하 소장도 결국 나처럼 살아남았다.
소문으로는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도 잘 받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실상은 제대로 분기탱천한 구 단장과 함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놈들과 천안에서 대치중이야.]
“전면전을 하기로 한 겁니까?”
[구 단장이 협상하러 온 대전 시장한테 총을 쏴버렸거든. 다행히 맞지는 않았는데 그쪽에서 어지간히 겁을 먹은 모양이야.]
“총을 쐈다고요? 뭐라고 했길래…….”
[뭐, 뻔하지. 한반도 통합 건에 대해 다시 협의하자더군. 나는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고, 구 단장은 그냥 바로 총부터 쏴버렸어.]
구 단장 그 양반 참. 젊었을 때도 성격이 불같더니 나이를 먹어도 장난이 아니다.
나는 당황했을 김태하 소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협상장에서 총을 쏜 만행과는 별개로 속이 뻥 뚫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저라도 쐈을 겁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김태하 소장이 건재했을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감염체가 쳐들어오자마자 은근슬쩍 이솔하 뒤통수를 쳐버리는 것은 물론, 뒤에서 엄석현과 붙어먹으며 서울과 강릉 연합을 향해 그 더러운 야욕을 드러냈다.
협상?
이제 와서 오리발을 내밀어봤자, 우리는 이미 끝을 볼 생각까지 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건 늘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머리로 임해야 하는 법.
마냥 전면전을 각오하고 달려가기에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부대 규모로만 따지면 상대가 더 우위야. 엄석현이 그동안 꽤나 노력했더군.]
일단 충청, 호남권 요새들이 전부 합심한 만큼 기본적인 병력이 상당히 많다.
특히 엄석현 쪽으로 붙은 군부 인사들이 몇 있어 정규군 숫자도 꽤 많은 편이었다.
저쪽에서 먼저 쳐들어와 준다면 모를까, 우리도 일부 출혈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
가뜩이나 피해가 컸던 서울-강릉 연합군은 섣부른 전면전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피난민도 문제겠군요.”
[우리가 제일 걱정하는 게 바로 그거야. 저쪽에서 쉽사리 돌려보내 줄 리는 없고, 아마도 계속해서 인질로 잡고 있을 확률이 높겠지.]
거기다 본격적인 도로 통제가 이뤄지면서 남쪽으로 내려갔던 피난민들이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꼴을 무려 보름이나 지켜보고 있어야 했던 김태하 소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실 겁니까?”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권력을 양도하고 또 마지막까지 동두천 전선에 남아 서울 시민을 지키려고 했던 김태하 소장이다.
어찌 보면 착해빠지고 고지식한 그 성향을 엄석현은 너무도 잘 이용해 먹고 있었다.
[보름 사이 참 많은 생각을 했어. 내가 그동안 너무 우습게 보인 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김태하 소장은 뼈저리게 후회했던 과거를 또 다시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이젠 좀 바뀌어야겠더군.]
그동안 대의를 위해 참고 있었던 늙은 산군이 드디어 그 흉포한 이를 드러냈다.
[곧 연락하지.]
“알겠습니다.”
다음 날 서울-강릉 연합군이 드디어 포격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무차별 포격은 다름 아닌 놈들의 본거지인 대전 요새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김태하 소장이 말한 ‘연락’은 상황을 방관하고 악화시킨 놈들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 * *
“아이고! 창식아!”
비틀비틀 관 앞까지 다가온 한 노모가 그만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응? 여기서 뭐 하냐고 이놈아! 엄마가 왔는데 일어나야지……!”
그리고 차가운 관을 꼭 끌어안으며 결국 주검이 되어 돌아온 아들 앞에서 오열했다.
그 서글픈 울음소리는 부모와 자식을 찾으러 온 다른 유족들까지 엉엉 울게 했다.
“흐윽, 흑!”
“아버지, 제발 진정하세요!”
강릉 연합이 창설된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가 이번 감염체 전쟁에서 발생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매몰된 시체를 수습하는 데에만 보름이 넘게 걸렸고, 마땅히 화장할 터가 없어 시청 주도하에 합동 장례식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자식을 잃은 노모,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조용히 울고 있는 한 어린 과부와 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한겨울 고성에는 서글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형님.”
“왔어?”
벌써 두 시간째 앉아있는 나를 보다 못해 경태가 담요를 가져와 등에 얹어주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힘없이 웃어준 뒤 다시 시선을 돌려 앞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번 작전에서 사망한 특전대원들의 관이 운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으면 백화꽃이 마치 눈처럼 쌓여있는 걸까.
나는 그 광경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꽃을 꺼냈다.
“부축해드릴게요.”
그들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남들이 다 하는 꽃 한 송이 두고 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래서야 마음 편히 가지 못할까 싶어 드디어 대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이제 오십니까?’
그러자 익숙한 온기와 함께 왁자지껄 떠들던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
하지만 그것이 흔한 바람 소리라는 걸 알 때쯤, 나는 어느새 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잘그락.
떨리는 손으로 최 대위의 관을 쓸어내리고 주머니 속에 넣어둔 군번줄을 꺼냈다.
그리고 팔랑이는 백화꽃과 하나로 엮어 새하얀 천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마침 바람이 불자 겨울에는 피지 못하는 꽃송이들이 관 주변으로 불어왔다.
‘고생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의무를 지키고, 아무도 감사하지 않는 헌신을 다했다.
또, 아무나 올 수 없는 전장에서 죽어 이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묻히려 한다.
그 사실이 너무나 슬퍼 나는 차마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끅.
떠나기 전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목 끝까지 차오른 울음이 이를 막는다.
나는 결국 참고 참았던 감정을 대신 터트리며 꽃이 흘러내리는 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부디 다음 생에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곳에서 태어나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다시는 나 같은 사람 만나지 말고 그토록 원하던 평온을 맞이할 수 있기를.
우리는 이 슬픔마저 불어오는 바람 속에 묻어 보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눈물을 닦고 올려다본 하늘은 백화꽃을 닮은 새하얀 눈을 연신 뿌려대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 고통스러운 내세에서 벗어나 떠날 준비를 끝낸 나비를 보는 것 같았다.
날아오르자.
날아오르자꾸나.
흩날리는 눈발 사이를 가로지른 우리는 눈이 쌓인 언덕 아래로 발자국을 남겼다.
아마 다음 겨울이 오면 이 발자국도 지워지겠지. 그럼 그때 또 발자국을 남기러 와야겠다.
내 친구, 내 전우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