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윙슈트는 세상에서 부상자 발생률이 가장 적은 아주 안전한 익스트림 스포츠다.
최대 250km/h 속도로 떨어지는 자유 낙하는 웬만하면 고통 없이 즉사하니 말이다.
특히 고고도로 날고 있는 항공기에서 한밤중 낙하하는 건…… 아주 재밌는 행위였다.
[이걸 자살행위요!]
그날 밤, 하필 날씨가 좋지 않아 개야도 상공은 비행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돌풍까지 불어 윙슈트 운용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울부짖는 조종사를 뒤로한 채 냅다 비행기에서 뛰어버렸다.
“우와아아아악!”
살면서 후회라는 걸 딱 두 번 정도 해봤는데, 그날 이후 또 한 개가 추가됐다.
이건 자살행위라는 항공기 조종사의 말을 뛰어내리고 나서야 체감했기 때문이다.
후우우우우웅!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엄청난 속도로 땅에 처박히기 시작하는 하늘다람쥐!
떨어지는 사과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줬다면, 나는 생각 좀 하며 살라는 교훈을 주게 생겼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뒤지겠다는 생각에 일단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시발!”
아래를 내려다보자 바다와 개야도는커녕 연합군이 주둔 중인 지상이 보였다.
기겁한 나는 하늘 위를 허우적허우적 날아 필사적으로 목적지를 찾아 헤맸다.
개야도, 개야도가 어디야? 분명 수십 번이나 지도를 확인했는데 어두워서 모르겠다.
‘저깄다!’
하지만 미래 일기가 보우하사 머지않아 목적지를 찾고 제대로 하강을 시작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윙슈트를 능숙하게 움직여 개야도를 향해 하강했다.
그러자 멀게만 느껴지던 바다와 외로운 섬 하나가 점차 하늘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펄럭!
거리와 시간상으로 거의 신기록을 찍은 나는 감 하나만을 믿고 냅다 낙하산을 펼쳤다.
‘큭!’
하지만 공교롭게도 타이밍이 살짝 느려 목적지가 아닌 해안가에 처박히고 말았다.
풍덩!
진짜 재수도 없지, 그나마 완충재가 있는 숲이 아닌 멀리 떨어진 바다에 처박히다니.
나는 입안으로 들어온 모래와 바닷물을 에퉤퉤 내뱉으며 열심히 해안가로 헤엄쳤다.
치익!
그런데 그 순간 어째선지 주인보다 멀쩡한 무전기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서쪽 해안가에서 식별 불가능한 적 접근 중! 젠장, 함정이었습니다! 피하십시오!]
이 엄석현 개새끼! 어쩐지 고분고분하더라니. 또 뒤에서 대가리를 굴리고 있었다.
나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김태하 소장을 향해 다급히 무전을 보내려고 했다.
‘음?’
잠깐, 분명 하늘에서 떨어질 때 마지막으로 본 정확한 위치는 서쪽 해안이었다.
그렇다는 건 현재 섬으로 접근 중인 적과 현재 나의 위치가 얼추 비슷하다는 뜻.
‘뭐야, 저 새끼들?’
아니나 다를까, 불과 100m도 되지 않는 해안에서 무언가가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 새끼들, 근처 다른 섬에 숨어 있다가 무려 수영으로 여기 개야도까지 온 것이다.
어쩐지 안 보이더라니. 나는 살금살금 접근해 거리를 빠르게 좁히기 시작했다.
치익!
힘겹게 해안가 앞까지 올라온 놈들은 서둘러 잠수복을 벗고 어딘가로 무전을 했다.
‘일본어?’
풍겨오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꽤나 하는 새끼들 같은데, 소속이 어째 일본으로 보인다.
나는 아직 무기를 건져 올리지 못한 놈들을 노려보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철컥!
방수 처리된 가방에서 소음기가 장착된 아음속 권총을 뽑아 놈들을 향해 겨눴다.
퓨슝!
맨 뒤에서 주변을 살피던 한 놈이 그대로 관자놀이가 꿰뚫려 바닥에 쓰러졌다.
퓨슝!
퓨슝!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다음 놈, 또 다음 놈을 정확히 머리만 쏴서 죽였다.
갑작스런 공격에 깜짝 놀란 놈들은 허겁지겁 몸을 피하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철컥!
하지만 해가 떠 있을 때라면 모를까, 이곳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해안가다.
특히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에 놈들은 몸을 엄폐할 곳조차 찾지 못했다.
서걱!
“컥, 커억!”
사격이 끝난 즉시, 잠영을 시작한 나는 한 놈씩 차분하게 뒤를 잡아 목을 땄다.
물론 상대도 핫바지 병신은 아닌지 드문드문 반격을 가해오기도 했지만.
퓨슝!
퓨슝!
대부분 제대로 된 반항을 해보기도 전에 머리가 꿰뚫리며 바다 위에 쓰러져야 했다.
변이종이나 군락을 상대하다 오랜만에 인간과 싸우니 이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11명쯤 되는 인원을 순식간에 몰살시킨 나는 놈들의 무전기를 습득했다.
치익!
[갈대밭 근처라며! 젠장, 당신들 도대체 어디야! 시발…… 여기 접선 장소 맞아?]
우연히 습득한 무전기에선 어째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갈대밭.
갈대밭이라…….
온몸을 피와 바닷물로 흠뻑 적신 나는 해안가를 벗어나 갈대밭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경호원 다섯 명과 엄석현이 해안가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봐! 지금 시간이…… 커억, 컥!”
그중 하나가 나를 같은 편이라 착각하고 다가오다 그대로 목에 토마호크가 박혔다.
“어, 어어?”
“시발! 적이다!”
그리고 당황하는 적을 앞에 두고 나는 짙게 깔린 어둠과 갈대밭 사이로 숨어들었다.
타앙!
탕! 탕! 탕!
성급한 총성이 울린다. 경호원들은 일단 기겁하며 방아쇠부터 당기고 봤다.
서걱!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위치만 알려줄 뿐. 경각에 달한 죽음을 한 발자국 앞당겼다.
끄아아아악!
살, 살려줘! 괴물이다!
놈들이 지르는 비명은 곧 숨을 껄떡이는 처절한 단말마가 되어 하나둘 사라졌다.
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토마호크를 들고 제 발에 걸려 넘어진 엄석현을 바라봤다.
“머리 좀 썼더라.”
“아, 아아…….”
“근데 너무 뻔해.”
바지에 오줌을 지린 놈은 비명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철컥!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최 대위의 권총을 꺼내 놈의 허벅지를 향해 발사했다.
타앙!
엄석현은 비명과 함께 그대로 쓰러지며 눈이 쌓인 갈대밭 위를 허우적거렸다.
피를 한 움큼이나 흘리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놈은 양손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잠, 잠시만!”
“말해.”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진, 진짜 전쟁이라도 원하는 거야?! 내가 죽으면…… 컥!”
나는 끝까지 개소리를 지껄이는 엄석현에게 다가가 얼굴을 힘껏 걷어차 주었다.
무척이나 재수 없게 보여서 예전부터 부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안경이 부러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물러빠진 인간들 데리고 참 재밌게도 놀았지. 아무리 쑤시고 건드려도 호구같이 꾹 참고만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인생 시발, 참 쉽고 편하네. 딱 그렇게 생각했지?”
“제, 제발……!”
“근데 적당히 했어야지, 왜 미련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숫제 병신 취급을 해. 선을 넘어서 잘 놀았으면, 주제도 모르고 지랄 좀 했으면, 이제 슬슬 알아야 하잖아.”
나는 최 대위가 늘 지니고 있던 권총을 겨누며 놈의 이마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세상에는 나 같은 새끼도 있다는 걸.”
“아아아악! 안 돼!”
가망이 없다는 걸 눈치 챈 엄석현은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바닥을 기었다.
탕!
하지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겨 이 지겨운 전쟁의 끝을 알렸다.
* * *
엄석현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남부군은 서둘러 군산에서 후퇴하려 했다.
하지만 서천이 아닌 익산에서 대기 중이던 수방사 기갑 부대가 퇴로를 틀어막았다.
동시에 바다 건너 본대는 금강대교를 넘어 군산을 향한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쾅! 콰르르르릉!
구심점이 사라진 마당에 도망칠 수 있는 퇴로까지 전부 차단당한 남부군이다.
가뜩이나 오합지졸이던 놈들은 무언가를 해볼 틈도 없이 군산 요새로 도망쳤고, 곧 대단위 포격에 노출되어 하나둘 백기를 걸고 요새 밖으로 걸어 나와야만 했다.
‘목,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엄석현에게 협조했던 각 요새 지도자들은 그대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당연히 광주와 목포는 모두 무장 해제되어 연합군에게 점령당하는 절차를 밟았다.
대한민국이 멸망한 이후, 수많은 요새로 분열되어 불안한 공존을 이어가던 한반도.
이솔하가 그토록 바랐던 통합이 아이러니하게도 군인들의 군홧발 아래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전쟁으로 이뤄진 평화라고 해도 그 명분과 과정이 너무나 순탄했다.
와아아아아아-!!
압제해서 해방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행군하는 연합군들을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 없는 과거가 아닌 앞으로 살아갈 미래.
이제 혹독하기만 했던 겨울은 끝이요, 곧 새로운 봄이 찾아온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전쟁과 내전으로 붉게 물들었던 이 땅에는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당신들 정말 미쳤소?’
물론 한반도가 빠르게 격변하는 사이, 바다 너머에선 치열한 격론이 오가고 있었다.
이번 내전에 일본이 몰래 개입하려 했다는 증거가 밝혀지면서 그동안 참고 있던 미연방이 드디어 질타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눈을 감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반란 세력이랑 손을 잡은 것도 모자라 한 나라의 수장을 직접 죽이려 들었다고?
아무리 세상이 이따위로 변했어도 분명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경고는 끝이오!’
그동안 비협조적인 태도에 신물이 나 있던 제프리는 아예 외교라인을 끊어버렸다.
거기다 호의적이던 몇몇 의원들마저 등을 돌려버리며 마지막 끈조차 떨어져 나갔다.
이제 물자 지원은커녕 가장 중요한 백신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되어버린 일본 정부.
그들은 자신들이 자초한 늪에 허우적거리며 점차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백신 접종 1일 차.’
물론 우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토록 기다렸던 과업을 하나둘 실행해나갔다.
바로 미국에서 보낸 백신을 강릉 전역으로 보내 본격적인 접종을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앙! 아파!’
‘뚝! 엄마가 사탕 줄게.’
애, 어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강릉 주민이라면 누구나 백신을 접종받았다.
1차, 2차로 나눠 맞아야 면역이 생기는 만큼 행정 절차가 무척이나 까다로웠지만, 이번 일에 사활을 건 태식 씨와 직원들 덕분에 접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 속도라면 강릉은 물론 서울과 다른 지방도 올해 내로 접종이 가능할 것 같았다.
[어때? 생각보다 맞을 만해?]
“살짝 아파요. 그냥 미열과 두통 정도?”
[다행이군. 다들 거부감은 없겠어.]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굳이 맞을 필요가 없는 백신을 내 손으로 직접 투여했다.
걱정과는 달리 미약한 열과 두통만 있을 뿐, 이렇다 할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
“소장님도 와서 맞으시죠?”
[다 늙어빠진 노인보다는 젊은 애들이 먼저야. 괜한 편법 쓰지 말고 내버려 둬.]
“겨우 한두 개인데요, 뭘.”
[그런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시스템이 무너지는 거야. 한 집단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늘 주의해야지. 너도 항상 명심하고 있어.]
“참 여전하시네요.”
[그래서 말 나온 김에…… 너 언제 오냐?]
“예?”
[서울 오는 거 아니었어?]
“엥? 제가 서울을 왜 갑니까?”
[대통령 해야지! 설마 여기까지 와놓고는 도망치게? 지금 밀린 업무만 해도……!]
“어, 어어!? 전화기가 갑자기 이상하네!”
나는 멀쩡한 위성 전화기를 공중에서 붕붕 흔든 다음 자연스럽게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배터리를 재빨리 분리한 다음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열쇠로 잠가버렸다.
“엿될 뻔했네.”
이 조그마한 강릉 하나만 해도 벅찬데, 뭐? 나한테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라고?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대통령 대행 자리를 뺏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열심히 뺑이치십시오.
나중에 연금 받으시면 되잖습니까.
나는 저 멀리서 울부짖고 있을 김태하 소장의 명복을 빌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읏차!
굵직굵직한 위기는 모두 넘겼으니 이제는 다가오는 봄이나 즐기며 살아볼 생각이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응?”
하지만 그 꼴은 절대 못 보겠다는 듯 만년필과 미래 일기가 갑자기 집필을 시작했다.
분명 눈도 입도 없는 것들이 오늘은 왠지 낄낄 웃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지?
아니라고 해,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