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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48화 (148/180)

<148화>

치익!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가 갑자기 울리는 무전기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4시, 밖은 아직 해조차 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시장님, 비상 상황입니다!]

일기를 읽다가 잠이 들었던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챙겨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대구에서 전해진 소식으로 인해 비상 연락망은 난리가 나 있었다.

덜컹!

나는 즉각 장비를 챙겨 들고 하나둘 조명이 켜지고 있는 요새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시장! 이쪽이여!”

아파트 앞에는 오늘 당직이었던 상식 아저씨가 직접 픽업트럭을 끌고 와 있었다.

부르르릉!

내가 빠르게 보조석에 올라타자 차량은 기다렸다는 듯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졸지에 목적지까지 함께 가게 된 상식 아저씨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지?”

“네.”

“어째 하루도 조용할 틈이 없구먼.”

오늘 새벽 3시경, 부산에 있는 난민 수용소에서 대규모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잠깐 확인한 바로는 무려 치안과 민원을 담당하던 건물 두 채가 통째로 불탔고, 그것도 모자라 대구에서 파견한 경비 병력과 직원들 수십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뚜렷한 전조 현상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조직적이고 또 계획적인 일로 추정되는바.

특히 임시 시청 건물이 점거되고 공관 직원들이 인질로 잡힌 건 몹시 충격적이었다.

“헬기는요?”

“가서 타기만 하면 될 겨.”

워낙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현재 대구만으로는 수습이 힘든 상황이었다.

전세기를 빌려 급히 돌아간 대구 시장을 따라 우리도 일단 현장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끼익!

도로를 빠른 속도로 가로지른 픽업트럭은 어느새 탑승장 앞까지 도착했다.

이미 출발 준비를 끝낸 수송용 헬기는 로터를 돌리며 탑승 인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저 멀리 막사에서 특임대 1팀 대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바늘 가는 곳에 실이 간다고, 이젠 전담 호위 역할까지 하는 1팀 대원들이었다.

나는 새벽 일찍부터 호출을 받고 달려와 준 그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병력은?”

“임무랑 휴가 중인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준비 끝났어요! 해가 뜨는 대로 출발하면 아마 내일 늦게나 모레쯤 도착할 거예요!”

혹시 모르는 일에 대비해 일부 방위군 병력이 부산으로 급히 이동 중이었다.

아마 헬기를 탄 우리가 먼저 도착할 테니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환복을 끝낸 나는 상식 아저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탁드릴게요.”

“여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어째 시장이라는 사람이 본인 연고지보다 다른 곳을 더 돌아다니는 기분이다.

나는 미안함 반, 고마움 반이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헬기에 탑승했다.

투두두두두두-!!

나와 1팀 대원들을 태운 수송 헬기는 상공으로 떠올라 빠르게 주둔지를 벗어났다.

이제 막 새벽녘이 다가오고 있는 이 땅은 포근한 여명을 한입 베어 물고 있었다.

* * *

상공에서 내려다본 부산은 코가 매캐해지는 검은 연기가 곳곳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시위대가 헬기 접근을 막기 위해 폐타이어를 쌓아 휘발유로 불을 붙인 것이다.

마치 소말리아를 연상케 하는 그 풍경에 대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보다 심각한데요?”

“시가지 접근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상공을 나는 헬기라도 공격에 노출되면 추락할 위험이 있다.

적의 무장 상태가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근처까지 접근할 필요는 없었다.

[우회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조종사는 능숙하게 경로를 변경한 뒤 안전한 장소에 착륙했다.

임시로 건설된 부산 통제선 근처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우글우글 모여있었다.

“오, 오셨습니까!”

전세기를 타고 먼저 와 있던 대구 시장이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뛰어왔다.

혼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그사이 사람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반쪽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위로해주기에는 통제선 분위기가 생각보다 심상치 않았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안 물러나면 어쩔 건데!”

최소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인파가 통제선 안에서 성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한 줌도 안 되는 대구 측 인원은 정말 힘겹게 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어, 어어? 방금 밀쳤어!”

“이 새끼 잡아! 다들 뭐하냐고!”

총과 포탄으로 적을 사살하는 전쟁과는 달리 민간인을 상대로 한 시위 진압이다.

인원도 장비도 부족했던 통제선은 금방이라도 뚫릴 듯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강릉 방위군이 한시라도 일찍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피곤한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대구 시장과 함께 통제선 바리케이드로 걸어갔다.

“인질은 몇 명입니까?”

“작업자와 공단 직원까지 해서 총 15명입니다. 그중 5살짜리 아이도 잡혀있어요.”

아무리 시켜서 하는 일라고 해도 결국 난민들을 돕기 위해 파견된 직원들이다.

5살짜리 아이를 인질로 잡으면서까지 하려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미간을 찡그린 나는 저 멀리 아우성치는 군중을 노려보며 조용히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 요구 조건이 뭐랍니까.”

“직,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주겠답니다.”

“저랑요?”

“예에…….”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대원들 사이에서 어이가 없다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현재 놈들의 요구는 허무맹랑한 개소리이면서 동시에 신경을 살살 긁었다.

“저기 박범석이다!”

그 순간 통제선 방향에서 어눌한 한국어와 함께 무언가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깜짝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머리로 날아오는 오물을 가까스로 피했다.

퍽!

하지만 바리케이드 벽에 맞고 떨어지는 파편은 피하지 못해 그만 옷을 더럽혔다.

헉!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구 시장은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철컥! 철컥!

함께 걷고 있던 특임대원들이 순식간에 내 주변을 감싸며 개인화기를 꺼내 들었다.

“어, 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 모습에 도리어 놀란 것은 오물을 던졌던 군중이었다.

설마 여기서 총을 꺼낼 줄은 몰랐던 그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꿀꺽.

복면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같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나운 맹수에 가깝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분위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눈치를 살피며 눈을 내리깔기 시작했다.

“내려.”

나는 그런 대원들을 제지하며 군중을 향해 겨누고 있던 총구를 모두 내리게 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결국 다 죽이고 끝내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그 말로가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일단 한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쪽에 만나자고 전하세요.”

“알, 알겠습니다.”

군중 사이에서 오물을 날렸던 사람은, 이제 고작 중학생이 된 어린 소년이었다.

조금 전 눈이 마주쳤던 나는 아무것도 못 본 척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들은 공범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인가.

아우성치는 군중의 성난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 * *

강릉 연합의 수장인 내가 직접 나서 얼굴을 보고 협상하자는 의사를 당당하게 밝혔다.

그러자 설마 이쪽에서 먼저 수락할 줄은 몰랐던 상대 진영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마 그들의 머릿속에는 유혈 진압과 같은 극단적인 시나리오만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군중들의 눈치를 보는지 놈들은 최대한 의연한 척 약속 장소를 잡았다.

투두두두두-!!

다음날, 우린 아침 일찍 통제선을 나와 수송 헬기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숨겨둔 무기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덜컹!

먼지가 쌓인 교실 안에는 왜소한 체구의 남성들이 잔뜩 무게를 잡은 채 앉아있었다.

물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나무 의자를 질질 끌고 와 그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중년 남성이 입을 열었다.

“반갑소, 박범석 시장.”

나머지 두 명은 국적을 모르겠는데 적어도 이 중년 남성은 일본인 같지는 않았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연스럽게 담뱃불을 붙여 아래로 연기를 내뿜었다.

크흠!

이에 중년 남성은 불쾌감을 느꼈는지 작은 헛기침과 함께 조용히 미간을 찡그렸다.

어쩌라고 씹새야.

나는 담배를 필터 앞까지 알뜰하게 피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냥 본론부터 이야기합시다.”

“……요구 사항을 말하는 거요?”

“예. 도대체 원하는 게 뭐길래 이제 겨우 다섯 살 된 꼬마까지 인질로 잡습니까?”

세상이 아무리 이따위로 변했어도 사람이라면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는 법이다.

내가 이를 콕 짚고 이야기하자 놈들은 표정을 굳히며 목소리를 사납게 낮췄다.

“당신들이 선만 지켰어도 이런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거요. 모두 강릉 연합이 자초한 일이라는 건 그쪽이 더 잘 알지 않소.”

“나는 모르겠는데.”

“시치미 떼지 마시오! 일부러 배급을 줄인 것! 공단 직원들이 피복을 착복한 것!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소!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한 게 잘못이란 말이요?”

열변을 토하는 중년 남성을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대구 시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걸 관리하는 게 연합인데 저희가 어떻게 빼돌린단 말입니까! 시장님, 저 진짜 억울합니다! 들킬 게 뻔한 짓을 왜 하겠습니까!”

“뻔뻔한 놈! 증인이 이렇게나 많은데 끝까지 거짓말이군! 박범석 시장! 당신도 눈이 있다면 똑똑히 보시오! 저런 인간들을 주변에 두니까, 부산이 이 모양 이 꼴인 거잖소!”

아마 일반 사람이라면 여기선 상대가 아닌 아군을 의심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과정에는 결과가 있듯, 이들이 이러는 것에도 분명 원인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내막을 알고 있던 나는 중년 남성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럴싸한 상황을 만들었네.’

사람들을 같은 편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적이 있다는 걸 명시하는 것이다.

특히 과장되게 꾸며진 가상의 적은 군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을 테니까.

“우린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소.”

아마 물자를 착복했다는 거짓 소문도 본인들이 직접 꾸민 흉계 중 하나일 터.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가져가는 계획 뒤에 누가 있는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생존권을 보장하시오. 물자를 착복하지 말고 제대로 된 급여를 지급하시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린 차지권을 행사할 거요.”

자신들이 난민이라는 피해의식을 이용해 강릉 연합을 철저히 악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군중을 하나로 묶어 함부로 진압할 수 없도록 든든한 방패를 세웠다.

나는 뻔히 보이는 꿍꿍이에 속으로 피식 웃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할 말 없습니까?”

“……이 땅 위에 정의가 다시 서길 바랄 뿐이오.”

“훌륭하군요.”

손을 내밀자 당황한 중년 남성은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았다.

“곧 다시 만납시다.”

웃음과 함께 손을 놓은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천천히 폐교를 빠져나왔다.

“시, 시장님?”

함께 따라온 대구 시장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무척 당황하는 눈치였다.

현재로서는 내가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들려온 무전이 이번 협상의 결과가 어떤지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치익!

[선배, 인질들 위치 파악했어요.]

어쭙잖게 머리 굴리는 건 좋은데, 그 대가리가 깨질 각오 정도는 했기를 빈다.

“준비해.”

나는 무척 기뻐하고 있는 중년 남성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지시를 내렸다.

“오늘 밤 간다.”

이에 특임대 1팀 대원들은 무전기 잡음을 울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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