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부산 요새는 두 차례 전쟁을 겪으며 인구 구성원이 거의 초기화되다시피 했다.
특히 2차 난민 유입이 발생하면서 90%에 가까운 숫자가 순수 일본인이었다.
살고 있던 지역도, 한반도로 유입된 경로도 모두 제각각인 상황에서 벌어진 사태.
그 중심에 한국인이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알아냈어요.”
하지만 그 의문은 곧 그 중년 남성의 신상 정보를 쫓고 있던 엠마가 모두 풀어주었다.
“과거에는 오봉구, 현재는 일본식으로 개명해 타다요시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다들 일본에서 살던 재일교포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다나카 밑에서 일하던 야쿠자예요.”
“간부였습니까?”
“아뇨, 직속 수하라기보다는 더러운 일을 대신 처리하는 하청 조직이었죠. 그쪽 세계에선 끈 떨어진 퇴물 신세였나 봐요.”
야쿠자들 사이에서는 실력은 없는데 나이를 먹은 이들을 흔히 오와콘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조직에서 알아서 은퇴를 하거나, 어디 술집의 문지기로나 살아간다고 들었는데, 김태하 소장의 대대적인 토벌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운 좋게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신분을 세탁하려고 했으면 좀 깔끔하게 하지 이렇게 티를 내면 어쩌나.
나는 오봉구의 야쿠자 시절 사진을 내려놓으며 불쾌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쓰고 버리기는 딱 좋네요.”
“네. 일본 입장에서도 그럴 거예요.”
상식적으로 능력이 없어 은퇴한 퇴물 따위가 이만한 집단을 이끌 수 있을 리는 없다.
그 뒤에는 당연히 배후가 있을 것이고, 거의 99% 확률로 섬나라 새끼들일 것이다.
진짜 이번 일만 끝나봐라. 머리 위로 먹기 좋은 폭탄이라도 하나 떨궈줄 테니까.
내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거칠게 비벼 끄자 문 상사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현재 인질들은 공관으로 사용되던 부산 시청 건물에 억류되어있습니다. 주변 통제가 생각보다 삼엄해 정보원이 아직 자세한 위치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통제요?”
“예. 해가 진 이후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답니다. 배급도 철저하게 제한 중이고요.”
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선량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봉구와 그 수하들은 꽤나 거칠고 가혹한 방식으로 난민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뭐, 듣자 하니 부산 총궐기 연합이라는 이상한 시민 단체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성난 군중들과는 반대로 이런 분위기에 떨고 있는 난민들도 꽤 많은 모양이었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분위기.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이쪽에서 선수를 쳐야 한다.
나는 문 상사가 확보한 시청 구조도를 살피며 진입 경로를 대원들과 상의하려 했다.
“저, 저기.”
“예?”
그런데 그 순간 한쪽에서 조용히 참관하고 있던 대구 시장이 손을 들었다.
“혹시 교전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까?”
“물론이죠.”
우리야 뭐 굳이 적을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다.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이 늘 그렇듯, 아마도 상대측에선 일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으음.”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대구 시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죽는 사람이 나오면 여론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 지금도 서로 죽이니 마니 하는데 오봉구 그 작자라면 이걸 기회로 삼을 게 분명합니다. 전 그게 우려돼서…….”
확실히 시장 자리는 그냥 앉은 게 아닌지 시국을 읽는 눈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책도 미리 마련해두었던 나는 경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달 안 해드렸냐?”
“앗! 깜빡했어요.”
“휴가도 한번 깜빡해볼래?”
“죄송합니다! 바로 가져다드릴게요!”
경태는 허겁지겁 사무실로 뛰어가 대량으로 인쇄된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왔다.
이를 전달받은 대구 시장은 곧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다 말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이게 뭡니까?”
“잘 만든 선동 찌라시입니다. 앞으로 4시간 뒤 부산 상공에 한가득 뿌릴 예정이죠.”
그냥 가볍게 놈들이 물자를 착복했다는 증거를 모두 담아 선동 찌라시를 만들었다.
물론 중간중간 엄청난 과장과 왜곡을 섞는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은 건 덤이었다.
사실은 모든 주장이 거짓이었고 자신들이 선동 당했다는 걸 깨달으면 얼마나 분노할까.
전문 용어로 갈라치기라고 하지.
원래 내부에서 시작된 균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크고 화려하게 깨지는 법이니까.
“굳이 어울려줄 필요 있겠습니까?”
상대가 더럽고 치사하게 나온다면 이쪽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면 그만이다.
나는 수천 장씩 생산되고 있는 찌라시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악역이 바뀐 거 같은데요?”
“저렇게 웃으니까 꼭 악당 같지 않습니까.”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원들은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떠들었다.
다 들리거든?
나는 좋다고 웃고 있는 경태 녀석을 노려보며 휴가가 사라지는 마술을 보여주었다.
* * *
새벽 늦게 불침번과 교대한 한 남성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투덜거렸다.
“새벽 3시부터 이게 뭔 개고생이냐. 아니, 일을 시킬 거면 먹을 거라도 잘 주던가.”
“배급받잖아.”
“배급? 그 냄새 나는 옥수수죽을 말하는 거냐? 시발, 그렇게 만드는 것도 재주다.”
“그것조차 못 먹는 사람도 많아. 괜한 트집 잡히기 전에 우리 일이나 잘하자고. 어?”
강릉 연합이 보내주는 지원 물자가 끊긴 이후로 대부분의 이들이 쫄쫄 굶고 있었다.
그나마 시민 단체 소속이라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거지, 아니었다면 진즉 죽었다.
한참 투덜거리던 두 남성은 빛 한점 들지 않는 도로를 지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응?”
그 순간 바로 옆 골목에서 무언가가 날갯짓하는 이질적인 소음이 들려왔다.
위잉.
벌써 모기가 날아다니나? 남성은 별생각 없이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끕!”
하지만 갑자기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무언가에 잡혀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우두둑.
물론 그 옆에서 같이 근무를 서던 동료 또한 이미 바닥에 쓰러진 지 오래였다.
경비를 순식간에 제압한 나와 대원들은 하나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드론 낮게 띄우지 말라니까?”
“죄송해요.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뒤에서 소형 드론을 조종하고 있던 송지영이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주의를 준 뒤 바로 앞에 위치한 시청 건물을 바라봤다.
젠장, 이렇게 깊숙한 곳에 있는 줄 알았으면 윙슈트라도 입고 떨어질 걸 그랬나.
그나마 최단 경로를 미친 듯이 달려와 다행이지 하마터면 시간이 지체될 뻔했다.
“확인해봐.”
고개를 끄덕인 송지영은 조심스럽게 드론을 조작해 시청 건물로 접근했다.
당연히 전기가 끊겼기에 내부 대부분은 어둡고 적막한 침묵만이 깔려있었다.
‘촛불이다.’
하지만 13층만큼은 촛불로 추정되는 미세한 불빛이 창문 사이로 반짝이고 있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송지영은 꼼지락꼼지락 조종 버튼을 눌러 내부를 살폈다.
‘있다!’
사무실로 보이는 13층 내부에는 인질로 추정되는 민간인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오랜 겁박으로 지쳐있었는지 하나같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벽에 기대있었다.
“……!”
그런데 그 순간, 아이를 끌어안고 있던 한 여성이 갑자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졸지에 눈이 마주쳐버린 송지영의 드론은 화들짝 놀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
하지만 아이 엄마는 정말 영리하게도 자기 입을 틀어막으며 가까스로 소리를 삼켰다.
눈치챈 건가?
송지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드론을 슬그머니 움직여 양쪽으로 뱅뱅 돌았다.
그러자 아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으로 엉금엉금 기어 왔다.
‘무전기 올려 보내줘.’
마침 잘 됐다. 우리는 드론에 소형 무전기를 묶어 13층 건물로 올려 보내줬다.
아이 엄마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받으며 곧 우리와의 접선에 성공했다.
[여, 여보세요?]
“쉿. 말소리 죽이십시오. 저희는 여러분들을 구출하기 위해 온 강릉 소속 특임대입니다. 혹시 문을 지키는 경비가 있습니까?”
[계속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어요…….]
“총 몇 명인지는 아십니까?”
[말, 말소리를 들어보면 한 10명쯤? 건물 전체로 따지면 더 많을지도 몰라요.]
13층을 지키는 경비만 10명이고, 더 많은 인원이 시청 건물을 지키고 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에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드론을 번갈아 바라봤다.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들키지 않고 인질을 밖으로 빼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내가 올라간다.’
나는 가방에서 장비를 꺼내 착용하고 재빨리 건물 외벽으로 달려가 매달렸다.
그리고는 창틀과 버려진 에어컨 실외기를 밟고 한 층 한 층 위로 등반하기 시작했다.
끼긱.
마음 같아선 안전 장비를 먼저 고정하고 움직였으면 싶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는 마치 한 마리 원숭이가 된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외벽 창틀에 매달렸다.
후욱.
바람이 불 때마다 위태로웠다. 나는 흘러내린 콧물을 훌쩍 삼키며 위를 바라봤다.
어느새 13층이 코앞, 혹시 몰라 권총을 뽑은 뒤 슬그머니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
그 순간 드론이 건네준 무전기를 소중히 쥐고 있던 아이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우리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주변으로는 정신을 차린 인질들이 모여 있었다.
‘쉿.’
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준 뒤 조심스럽게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가방에서 질긴 로프와 소형 완강기를 꺼내 창틀에 하나둘 설치했다.
‘아이 먼저.’
목숨이 오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인질 모두는 침착하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울다가 지쳐 잠이 든 아이와 그 아이 엄마를 완강기에 태워 내렸다.
치이익.
밑에서 대기 중이던 대원들이 서둘러 안전을 확보하고 위쪽으로 사인을 보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둘 아래로 내려 보냈다.
이대로 건물을 빠져나가 헬기가 오기로 약속된 접선 장소까지 도망치면 그만이다.
나는 제발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며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이봐! 방금 무슨 소리야!”
그런데 그 순간, 복도를 돌아다니던 경비 하나가 문을 쿵쿵 두드리며 윽박질렀다.
깜짝 놀란 사람들은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으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려 했다.
“애, 애가 울어서 말입니다.”
“애새끼가 우는 게 어디 한두 번이야?”
“그게…….”
“시발! 꼭 일을 번거롭게 만드네.”
하지만 이를 수상하다 여긴 경비는 끈질기게 추궁하며 잠겨있던 문을 열려했다.
철컹!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미세한 소리가 순간 모든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탁!
생각보다 행동이 빨랐다. 나는 순식간에 나이프를 뽑아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모두 벽보고 뒤돌…… 끕!”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경비의 입을 틀어막고 왼쪽 가슴으로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동시에 시체를 안쪽으로 끌어당긴 뒤 문을 온몸으로 틀어막으며 다시 무전을 보냈다.
“들켰다. 모두 준비해.”
일단 들어오는 경비를 빠르게 제압하기는 했지만, 다른 경비가 아직 남아있다.
결국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기에 나는 황급히 지시를 내리며 이를 악물었다.
치이이익!
침착하게 완강기에 탑승한 사람들이 하나둘 지상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봐! 거기 무슨 일이야!”
“안에서 잠갔는데? 시발, 안 나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경비들이 몰려오며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다.
쾅쾅!
필요한 시간은 5분. 거칠게 숨을 몰아쉰 나는 들고 있던 권총에 소음기를 장착했다.
끼릭끼릭.
쾅!
문이 열리기 직전 반대편 경비를 발로 걷어차 넘어트리고 총구를 겨누었다.
퓽!
졸지에 바닥에 넘어진 경비는 날아오는 아음속 탄에 이마가 꿰뚫려 즉사했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경비가 우르르 몰려오는 복도 사이로 몸을 날렸다.
“적, 적이다……!”
“아아아악!”
바닥으로 떨어진 손전등 불빛이 어둡고 협소한 복도 이곳저곳에서 반짝였다.
퓨슝!
퓨슝!
하지만 그 어떠한 빛도 적을 찾지 못한 채 핏물과 탄피 위를 나뒹굴었다.
우드득!
나는 달려드는 경비의 멱을 잡고 반대로 꺾은 뒤 대원들을 향해 무전을 날렸다.
“먼저 가.”
여기 좀 정리하고 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