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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50화 (150/180)

<150화>

철컥! 철컥!

한참 불을 뿜던 권총이 빈 공이를 달칵달칵 때리며 약실이 비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요즘 실전 감각이 무뎌졌나. 머릿속으로 세고 있던 총알 개수가 하나 틀리고 말았다.

쯧.

작게 혀를 찬 나는 대가리를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려 빠르게 탄알집을 교환했다.

흐어어! 그러자 머리가 뚫릴 예정이었던 경비가 양쪽 손을 부들부들 떨며 사정했다.

“살, 살려줘! 제발 살……!”

탕!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마지막 경비마저 깔끔하게 사살했다.

후우.

조명이 꺼진 복도는 이미 수많은 시체가 탄피와 핏물 사이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문 앞에서 사살한 경비까지 총 12명, 하나도 빠짐없이 무력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형님! 빨리 나오세요!]

그사이 13층 사무실에 억류되어있던 인질들은 모두 지상으로 무사히 탈출했다.

1팀 대원 중 경태와 가은이만 남았는지 무전기에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가라니까!”

[퇴로는 확보해야 할 거 아니에요!]

누구한테 배웠는지 진짜 말 하나는 더럽게 안 듣는다.

다급한 목소리에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나는 곧바로 탈출하려 했다.

“빨리 지원요청부터 해!”

“시청 건물에서 교전 발생! 침입자다!”

그런데 그 순간 계단 바로 아래층에서 다급한 발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졸지에 발이 묶일 위기에 처한 나는 망설임 없이 수류탄을 꺼내 핀을 뽑았다.

핑!

핀이 뽑힌 묵직한 철공 뭉치가 비상구 계단 아래로 통통통 굴러 떨어진다.

“어?”

한창 바쁘게 위로 올라오던 놈들은 데구루루 굴러오는 수류탄에 깜짝 놀랐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막을 꿰뚫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나는 그 즉시 복도를 뛰쳐나와 인질들이 있던 사무실로 뛰어갔다.

달칵!

치이이익!

안전장치를 고정할 틈조차 없었다. 곧바로 로프를 붙잡고 지상으로 몸을 날렸다.

따다닥! 딱! 따다다닥!

건물 주차장에선 이미 경태와 가은이가 몰려오는 적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탁!

나는 빠른 속도로 바닥에 착지해 한쪽 벽에 세워두었던 자동소총을 견착했다.

투두두두두-!!

총구가 불을 뿜자 포위망을 좁혀오던 놈들이 하나둘 총에 맞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퇴로를 뚫어낸 우리는 재빨리 엄폐물을 뛰쳐나와 시청 담을 넘었다.

[배터리가 별로 없어요! 빨리!]

저 멀리 송지영이 조종하는 드론이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초록빛을 반짝였다.

나는 탄알집을 빠르게 교체한 뒤 윙윙 날아오르는 드론을 따라 주차장을 벗어났다.

에에에에에엥-!!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비상 사이렌이 울리며 부산 시내가 난리가 났다.

젠장, 최대한 조용히 돌아가려고 했는데 괜히 꿀 없는 벌집만 쑤신 꼴이 되었다.

“저기다!”

차량은 또 어디서 구했는지 사방에서 서치라이트들이 우리를 비추었다.

피융!

동시에 눈먼 총알까지 날아오며 머리 바로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앞서 날아가는 드론과 저 멀리 포위망을 구축하는 놈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형님, 이거!”

“젠장! 나도 알아!”

우리가 이대로 합류했다가는 인질을 확보한 1팀 대원들이 위험해지게 생겼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드론이 날아가던 경로와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주둔지에서 보자!”

[선배, 진짜 미쳤어요?!]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이냐!”

나는 비명을 지르는 송지영의 무전을 무시한 채 곧바로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에 미친 건 마찬가지인 경태와 가은이도 후다닥 뒤따라오며 드론을 따돌렸다.

후욱, 후욱!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덩달아 솟구친 아드레날린은 아예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피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내고 있었다.

“어, 어? 적! 침입자가 여기……!”

그 순간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던 놈 중 하나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기겁했다.

콰직!

나는 재빨리 개머리판으로 후려쳐 제압한 뒤 품속에서 차 키 하나를 노획해냈다.

건물 바로 옆 공터에는 연식이 나보다 많아 보이는 트럭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경태야! 운전!”

“이거 굴러가는 거 맞죠?!”

차 키를 낚아챈 경태는 재빨리 운전석으로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이에 가은이는 보조석에 착석했고, 나는 트럭 짐칸에 몸을 던져 올라탔다.

부르르릉!

걱정과는 달리 트럭은 우렁찬 엔진음을 내뿜으며 도로를 가로질렀다.

“어디로 갈까요!”

“일단 남쪽으로 쭉 달려!”

부산의 남쪽이면 해안가, 여기서 직선 경로로 달릴 수 있는 곳은 그쪽이 유일하다.

나는 경태가 가지고 있던 여유 탄약까지 몽땅 챙긴 뒤 짐칸에 몸을 고정했다.

부아아아아아앙-!!

가속이 붙은 트럭은 미친 듯이 덜컹거리며 부산 시내 한가운데를 질주했다.

이에 깜짝 놀란 놈들은 곧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채기 시작했다.

“차, 차량이 탈취당했다!”

“막아! 못 지나가게 막으라고!”

하지만 이미 가속이 붙은 트럭은 인간이 막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쾅!

터프하게 운전대를 꺾은 경태는 드럼통이고 뭐고 화끈하게 다 들이박아 버렸다.

투다다다다다-!!

이에 가세한 나와 가은이는 사방으로 총을 난사하며 달려드는 놈들을 저지했다.

쏘고 장전하고 또 쏘고 장전하고, 짐칸은 어느새 뜨거운 탄피로 가득해졌다.

‘슬슬 빠져나가야 해.’

부산 시내를 가로지르는 연수로는 곧 총성과 폭발 소리로 난리가 났다.

아마 이 정도면 인질을 확보한 1팀은 무사히 접선 장소에 도착했을 것이다.

끼이이이익!

이미 날아오는 총알에 만신창이가 된 트럭은 위태롭게 도로를 가로질렀다.

“형님! 이대로 가면 해운대래요!”

“야! 우리가 지금 좋아할 때야? 어?!”

여행가본 기억이 별로 없던 경태는 흥분했고, 가은이는 그런 녀석을 나무랐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트럭은 연수로를 가로질러 해운대로 질주하고 있었다.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퇴로,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투다다다다다-!!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서 프로펠러 로터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왔다!”

그것이 강릉 연합의 헬기라는 걸 눈치 챈 우리는 하늘을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위이이이잉!

투두두두두두!

수송 헬기에 장착된 거치 미니건이 불을 뿜으며 도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무사히 포위망을 빠져나온 우리는 진짜 해운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500m.

아무리 공중 지원이 왔다고는 해도 헬기를 해안에 착륙시키기에는 적이 너무 많다.

나는 이미 과열 직전까지 온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며 가까워지는 바다를 바라봤다.

“너희…….”

“예!”

“수영 좀 하지?”

“예?!”

가만히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던 경태와 가은이는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운대 바로 옆에 보이는 방파제를 가리켰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거든!”

위험한 지상에서의 착륙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바다로 도망치는 게 안전하다.

일단 도망치기만 하면 강릉 연합과 우리 대원들이 어떻게든 구조하러 와줄 테니까.

이렇게 된 이상 바다로 간다! 경태는 울음 섞인 비명을 지르며 냅다 속력을 올렸다.

부아아아아앙-!!

트럭은 최대한 가속을 받기 위해 직선 도로를 가로지르며 방파제로 향했다.

쾅!

동시에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펜스와 바리케이드를 무너트리며 날아올랐다.

위로 턱진 경사, 운 좋게 받은 반동 덕분에 트럭은 하늘 위를 힘차게 날아올랐다.

하늘을 날던 헬기도, 뒤쫓아오던 적들도 입을 헤 벌린 채 이 광경을 쳐다봤다.

풍덩!

채 1초도 되지 않던 부유감도 잠시. 날아오른 트럭은 그대로 바다에 꼬라박혔다.

꼬로록!

이미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나는 능숙하게 물속으로 잠영하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미리 빠져나올 준비를 끝냈던 경태와 가은이가 근처에서 수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

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저 멀리 날아오는 헬기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 * *

그 시각, 뒤늦게 집에서 나온 오봉구는 쑥대밭이 된 부산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확실해?”

“예, 예! 박범석이 분명하답니다.”

“고작 사람 하나 구하자고 여길 왔다고? 그것도 시장이라는 새끼가? 그게 말이 돼!”

평소 무게를 잔뜩 잡던 오봉구는 잠시 체통도 잊은 채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에 사실만을 보고했던 부하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하나같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다. 아직 분통을 터트릴 소식이 잔뜩 남아있었으니까.

“근데 그걸 또 놓쳐!”

인질이 구출된 것도 모자라 겨우 2명과 함께 도망치던 박범석을 놓쳤다.

그것도 사실상 자신들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인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말이다.

“큭……!”

얼굴이 터지기 직전인 오봉구는 결국 참지 못하고 부하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길바닥 거지들을 데려다가 사람대접을 해줬더니! 나를 개망신 시켜? 너희가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어?!”

물론 이번 사태에 대한 원인은 거의 80%가 상황을 지시했던 오봉구에게 있다.

하지만 무능하기 짝이 없는 놈은 도리어 부하들을 탓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젠장, 자기도 길바닥 출신이면서 라인 하나 잘 탔다고 끝까지 기세등등하네.

사이좋게 정강이를 얻어맞은 부하들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후욱, 후욱!

한참 난동을 부리던 오봉구는 헬기가 사라진 하늘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더니 갑자기 부산을 침공해 인질을 구출해갔다.

아마 내일 아침이 되면 진상을 알게 된 군중이 분노하며 거리로 뛰쳐나올 터.

지금까지는 이득을 위해 참고 있었다만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었다.

이를 뿌드득 간 오봉구는 뒤를 봐주고 있는 일본을 향해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쿄헤이 상, 나요.”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지?]

“방금 부산이 공격받았소.”

저쪽이 선공했다는 명분도 있겠다, 이제는 일본이 직접 나서줄 차례가 왔다.

오봉구는 비열함과 동시에 야심 가득한 미소를 숨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응?”

그런데 그 순간, 한 거대한 물체가 부산 상공을 빠른 속도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비, 비행기?”

“폭격이다! 모두 피해!”

갑작스런 수송기의 등장에 깜짝 놀란 오봉구는 헐레벌떡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펄럭!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송기는 폭탄이 아닌 하얀 무언가를 부산으로 투하했다.

졸지에 바닥에 주저앉고 만 오봉구는 마치 눈처럼 떨어지는 종이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이내 두 눈을 크게 뜨며 놈들이 뿌린 하얀 종이의 정체를 눈치 챘다.

“이게 지금……!”

종이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착복 증거와 자신의 과거가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오봉구는 입에 게거품을 물며 부하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이, 이거 모두 수거하라고 해! 빨리!”

“예? 이걸 다요?”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그의 업보처럼 종이는 이미 부산 전역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폭탄보다 확실하고 선동보다 날카로운 진실이 그의 목을 서서히 조여오고 있었다.

시끄러웠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거리에는 성난 군중들이 모여 한 인물을 규탄하며 죽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모인 곳은 지난날의 통제선이 아닌 부산 시청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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