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거리로 뛰쳐나온 성난 군중들로 인해 부산 전역은 또 한 번 들끓기 시작했다.
그동안 물자를 숨겨두었던 항만 창고가 우연히 발견되며 강릉 연합의 폭로가 사실이었다는 것이 진실로 밝혀진 것이다.
아니, 대의를 위해 조금만 참자고 외치던 놈들이 몰래 식량을 숨겨놓고 있었다고?
당장 내 자식과 부모가 굶고 있던 마당에 이성이라는 게 있을 리 없었다.
난리가 난 사람들은 오봉구와 그의 일당에게 진실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당장 해산하십시오!”
“뭘 잘했다고 삿대질이야!”
하지만 놈들은 해명하려는 노력은커녕 인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과격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총구가 우연히 정면으로 향했다.
탕!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시위대 근처를 서성이던 한 여성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모든 이들이 경악한 것도 잠시.
군중 사이에서 커다란 고성이 터져 나왔다.
“놈들이 총을 쐈다!”
이 순간만큼은 실수였다는 해명도 싸우지 말자는 중재도 모두 소용이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며 양측 간에 사상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건 민심을 잃어버린 오봉구와 그 일당들이었다.
‘모두 거짓말이었던 거야?’
고작 몇 달 사이에 정말 온갖 비리와 자잘한 범죄들이 놈들 손에서 일어났었다.
특히 자신들이 꼭두각시처럼 놀아났다는 것에 난민들은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국민들을 저버렸던 조국이 이제는 우리의 목숨마저 볼모로 삼으려고 했다니…….
극심한 배신감은 곧 분노로 변했고, 이는 쉽사리 막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오봉구와 그의 일당은 결국 본거지에서 몰래 탈출해 부산항으로 도망치고야 말았다.
‘통제선 열어.’
이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던 나는 강릉 연합이 개입할 타이밍을 계산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었다고 생각할 때쯤 물자와 의료팀을 투입했다.
“정, 정말 받아 가도 되는 겁니까?”
“네. 다치신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고요.”
진압군이 아닌 자원봉사자들의 등장에 난민들은 무척이나 당황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경계심을 풀고 연합이 제공하는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애초에 모든 사태가 놈들의 거짓말과 왜곡으로 인해 생겨난 오해이지 않은가.
나는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난민들은 기꺼이 고개를 숙이며 통제에 따라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부산항으로 헐레벌떡 도망친 오봉구와 그 일당을 잡는 일뿐이었다.
“식별 불가한 함정! 빠르게 접근 중!”
“포구를 우리 쪽으로 겨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 정부는 이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기어코 해상 병력을 부산으로 투입한 것이다.
펑! 콰르르릉!
이성이라는 마지막 고삐마저 풀려버린 놈들은 부산 앞바다를 빠르게 점거했다.
거기다 항만으로 진출하려는 연합군을 향해 경고 사격을 가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이는 더 이상 물러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이자 우리를 향한 마지막 경고였다.
‘비상 상황 발생!’
휴가 중이던 모든 병력이 본부로 복귀하며 강릉 방위군이 추가로 급파되었다.
동시에 이 소식을 접한 김태하 소장도 지원군을 편성해 급히 부산으로 남하했다.
이 모든 게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
한반도 전력이 집결한 부산엔 금방이라도 몰아칠 것 같은 전운이 감돌고 있었고, 나 또한 둘 중 하나가 죽는 총력전까지 각오하며 조용히 선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운명의 장난.’
하지만 아쉽게도 양측이 그토록 원하던 전쟁은 끝내 발생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못’했다.
그 끝이 어딘지를 알 수 없는 운명의 굴레 바퀴가 또 한 번 돌아가기 시작했으니까.
* * *
푸스스스스!
숲속에서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던 새들이 한순간 떼를 지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찍찍!
동시에 항만 창고에서 곡식을 파먹고 있던 쥐 떼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가만히 있던 개와 고양이가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며 짖어대면서 어딘가로 급히 도망쳤다.
이러한 현상은 동물들뿐만이 아니라 감이 예민한 일부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찌릿!
마지막 회의를 끝내고 나온 나는 갑작스러운 왼쪽 눈 통증에 깜짝 놀라서 멈추었다.
“방금 느꼈어?”
“예?”
함께 밖으로 나오던 대원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려 했다.
쿠르르르르릉-!!
그런데 그 순간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더니 갑자기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엎드려!”
깜짝 놀란 일행들은 황급히 바닥에 엎드리며 양손으로 머리 위를 가렸다.
쿵! 콰르릉!
끼이익! 끼기긱! 콰앙!
생각보다 큰 지진 규모에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구조물 외벽에는 금이 가고 있었다.
“밖으로! 밖으로 나가요!”
사람들은 서둘러 건물 밖으로 대피하거나 공터를 향해 줄지어 달려갔다.
쩍 갈라진 도로와 무너지는 구조물에 부산 시내는 한순간 아비규환이 되었다.
“형님!”
파편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나는 경태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일어났다.
“다들 무사해?”
“예! 우린 괜찮아요!”
건물 밖으로 나오던 중이라 다행이지 하마터면 구조물 아래 깔릴 뻔했다.
나는 얼굴에 묻은 흙먼지를 손으로 닦아내며 쑥대밭이 된 주변을 둘러봤다.
‘지진이다.’
처음에는 어디 대규모 포격이라도 떨어졌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지진이 발생했다.
이런 게 자주 발생했다면 모를까, 한반도에서는 살면서 몇 번 겪어보기 힘든 자연재해 아닌가.
대원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흔들렸던 바닥을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뭐해! 일단 사람들부터 도와!”
나는 그런 대원들 엉덩이를 한 번씩 차주며 안 움직이고 뭐 하냐며 윽박질렀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무전기를 챙겨 연합군 본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에에에에에엥-!!
전쟁이나 공습 때나 사용되던 사이렌을 설마 이럴 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쪽이야! 여기 사람이 깔렸어!”
“의료팀이 오고 있답니다! 기다려요!”
그래도 주둔 중이던 강릉 방위군이 서둘러 정신을 차리며 사태 수습에 들어갔다.
이런 경우 초동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거다.
줄지어 달려가는 차량과 군인들을 발견한 나는 안심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범석 씨…….”
“엠마!”
본부 건물로 올라가자 얼굴을 찡그린 엠마가 비틀비틀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떨어지는 물건에 머리라도 맞았는지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다쳤어요?”
“으, 별거 아니에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개인 노트북만은 소중하게 꼭 끌어안은 채 내게 손짓했다.
“일단 이것부터 좀 봐요.”
함께 사무실로 들어간 엠마는 쑥대밭이 된 책상을 옆으로 치우며 노트북을 열었다.
“저는 현장 수습 때문에…….”
“아뇨, 이게 더 급한 거예요.”
무척 심각해 보이는 그녀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엠마가 보여준 자료에는 한반도가 아닌 일본 홀로그램 지도가 출력되어 있었다.
“도쿄, 가나가와, 시즈오카 부근에서 진도 M7.4 이상의 대지진이 동시 발생했어요.”
현재 한반도뿐만 아니라 불의 고리 영향권 아래 있는 일본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다.
이런 경우는 엠마도 처음이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달칵달칵 엔터를 두드렸다.
“그리고 같은 시각, 홋카이도 하코다테시도 모든 연락이 끊겨버렸고요. 범석 씨가 이해하시기 쉽게 위성사진으로 보여드릴게요.”
“군락입니까?”
“예. 크기로 보나 규모로 보나 상위 군락이 확실해요. 이걸로 벌써 4번째 네임드죠.”
하코다테시는 홋카이도 최남단, 즉 일본 본토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다.
그곳에 상위 군락이 자리 잡았다는 건 사실상 일본 정부도 끝났다는 말과 같았다.
설마 힘이 약해졌다고 판단한 상위 군락이 홋카이도를 먼저 치고 올라올 줄이야.
죽을힘을 다해 레드존 군락을 소멸시켜놨더니 모든 게 허사가 돼버리고 말았다.
쿵!
“시발!”
답답함을 참지 못한 나는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범석 씨……”
표정이 어두워진 엠마가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조용히 위로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진정하려고 해도 욱신거려오는 왼쪽 눈은 계속 고통을 유발했다.
치익!
[시장님! 적들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책상 위에 올려둔 무전기에서 다급한 보고가 하나둘 전해져왔다.
아니나 다를까, 본진이 털린 일본 함정들이 서둘러 퇴각을 시도한 것이다.
[현재 파도가 불안정해 회피 기동이 힘든 모양입니다! 김태하 소장이 먼저 움직이셨고 우리 방위군도 곧 가세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지진의 여파는 지상인 부산뿐만 아니라 저 멀리 앞바다까지 영향을 줬다.
졸지에 높은 파도에 노출된 함정들은 자주포와 헬기에 융단 포격을 당하고 있었다.
“오봉구는요.”
[부산항 근처에 버려진 모양입니다. 현재 특임대가 접근하는 중인데 어떡할까요?]
“죽이십시오.”
어쭙잖게 대가리 굴리는 새끼들 때문에 일이 이 지경까지 되어버리고 말았다.
단호하게 사살 명령을 내린 나는 시끄러운 무전기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예.”
일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파악했으니 슬슬 뒷수습을 위해 움직일 차례다.
가장 먼저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온 나는 지구 반대편 미국 백악관에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 달칵.
[Mr. 박?]
“오랜만입니다, 제프리.”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 했는데 제가 한 발 늦었군요. 이번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괜찮습니다.”
[일단 상황이 급박한 만큼 본론부터 꺼내겠습니다. 현재 저희 미국에서도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동시에 지난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규모 감염체 공세가 시작됐고요.]
“우리가 속았군요.”
[예. 놈들도 4번째 상위 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부는 물론 동부까지 위험해집니다. 이는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한반도도 마찬가지죠.]
“체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으로 총동원령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는 그 순간까지 조국을 지킬 것이며 동시에 일본 상위 군락을 처리할 병력을 동원하겠습니다.]
단순히 LA 상위 군락을 막아낸다고 해서 이 기나긴 전쟁은 끝이 나지 않는다.
10년째 자국 방어라는 방침을 고수해오던 미연방이 드디어 큰 결단을 내렸다.
[니미츠급 항공모함이 한반도로 갈 겁니다.]
“……퇴역한 거 아니었습니까?”
[마지막 여력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퇴역한 줄 알았던 핵 항공모함 니미츠를 보내준다는 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이는 사실상 제프리와 미국이 이번 전쟁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좋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미국과 일본 두 곳에서 상위 군락을 상대로 한 각축전을 벌여야 한다.
정말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벅찬 숨을 삼키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아, 맞다! Mr. 박?]
“말씀하십시오.”
[전술핵은 당연히 고려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여차하면 다른 옵션도 있을 수 있으니 심사숙고해서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다른 옵션이요?”
[혹시나 작전이 실패하는 경우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정확히는 플랜B라고 말씀드리죠.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순간 제프리의 말뜻을 알아들은 나는 작게 탄식하며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전술핵이 아닌 전략핵.
중국 수도 한복판에 떨어졌던 그 재앙의 불꽃이 다시 한 번 재현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