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리조트에서 버스를 탈취한 우리는 열심히 국도를 달려 후쿠오카 시로 달려갔다.
물론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도로 상황.
거의 10분에 한 번꼴로 달려드는 감염체로 인해 주행 속도는 30㎞를 채 넘지 못했다.
“처리 완료!”
하지만 대원들은 그런 위기 상황 때마다 침착하게 대처하며 감염체들을 떨쳐냈고, 덕분에 고물 버스는 중간에 퍼지는 일 없이 무사히 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끼익.
한참 버스를 운전하던 경태가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왼쪽으로 선회했다.
정면을 바라보니 후쿠오카 시와 연결되는 진입로가 용접한 철책으로 막혀있었다.
나는 재빨리 버스에서 내려 잔뜩 녹이 슨 철책 너머로 조용히 손전등을 비췄다.
‘끔찍하군.’
도로 바닥과 콘크리트 벽에는 피로 물든 손자국 수천 개가 덕지덕지 눌어붙어 있었다.
피난민이 일시에 쏟아져 나오다 몰려오는 감염체에 뜯겨 떼 몰살을 당한 것이다.
그날의 참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광경에 대원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굳혔다.
‘준비해.’
하지만 어쨌거나 저 지옥 같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나는 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고 서둘러 가지고 온 장비들을 챙기게 했다.
‘배터리 연결해.’
지난 레드존 전쟁 당시 정말 혁혁한 성과를 보여주었던 군락 교란 장치다.
특히 실전 데이터가 연구소로 전달되면서 더 개량된 프로토 타입이 만들어졌다.
얼핏 듣기로는 무게가 줄고 배터리 수명 또한 획기적으로 늘어났다고 하는데, 부디 이번 작전에도 제 역할을 잘 해줘 ‘성공’이라는 실전 데이터를 쌓길 바랐다.
삑!
사이좋게 교란 가방을 등엔 멘 경태와 문 상사는 스위치를 눌러 기기를 작동시켰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준비를 끝낸 나와 대원들은 천천히 도시 내부로 진입했다.
후욱.
한 차례 봄비가 내렸는지 바닥과 천장에서는 눅눅한 공기와 비릿한 물 냄새가 풍겨왔다.
또, 빛 한 점 들지 않는 진입로 너머에서는 감염체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인구가 밀집된 후쿠오카 시답게 엄청난 규모의 감염체가 바글거리고 있는 모양이다.
‘우회.’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경로를 우회해 안전한 길로 대원들을 이끌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수백 번, 수천 번씩 보며 암기한 후쿠오카 지도가 펼쳐진 지 오래.
그동안의 경험과 예민한 감각은 우리를 목적지로 이끄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탁!
건물 옥상과 지붕 사이 혹은 외진 골목으로 숨어들어 어두운 도시를 가로질렀다.
소리 한 점 나지 않는 그 은밀한 기동에 놈들은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촉박하게 흐르는 시간, 나도 모르는 사이 흘러내린 식은땀이 이마를 적실 즈음이었다.
‘정지.’
저 멀리 도시 한가운데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는 거대한 빌딩이 보였다.
사진을 통해 몇 번이고 확인했던 나는 저곳이 후쿠오카 타워라는 걸 눈치 챘다.
이 커다란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한때 마이니치 방송 본사가 있었던 거대한 전파 탑.
군락이 자리 잡은 지금은 오물과 더러운 살점으로 둘러싸인 흉물로 변해있었다.
‘착각하기 쉽지.’
하지만 저곳이 본체가 숨겨져 있는 군락 중심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놈은 이미 지하 깊숙한 곳에 따로 뿌리를 내린 지 오래였다.
찌릿!
나는 슬슬 아파져 오는 왼쪽 눈 흉터를 어루만지며 다시 한 번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진형을 꾸리며 뒤를 따라왔다.
이제부터는 누가 먼저 서로를 발견하고 공격하느냐에 모든 것이 걸려있다.
교란 장치 출력을 최대로 올린 우리는 후쿠오카 타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후우우우우웅-!!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타워의 높이와 위엄이 장난이 아니었다.
한차례 하늘을 올려다본 우리는 미리 약속한 신호를 주고받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작전 시작.’
이 자리에 없는 최 대위를 대신해 미국 델타 팀과 정보사가 퇴로를 맡아줄 것이다.
자연스럽게 진입을 담당하게 된 나와 특임 대원들은 타워 내부로 천천히 진입했다.
후욱.
둥지 내부는 늘 그렇듯 악취를 풍기는 더러운 오물과 유독 가스로 가득 차 있었다.
재빨리 신형 방독면을 착용하고 사방으로 총구를 겨눈 채 앞으로 나아갔다.
‘쉿!’
끼기긱, 끼익!
어둠이 짙게 깔린 둥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울음소리.
나와 대원들은 발자국조차 신중하게 남기며 천천히 타워 중심부와 가까워졌다.
꿀꺽.
무선 통신이 먹통이 된 지금부터는 오직 감에 의존한 채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숨 막히는 긴장감에 눈가를 파르르 떤 우리는 한쪽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꺼내.’
일주일간 힘들게 교육받은 기술 담당 대원이 가방에서 묵직한 기계 장치를 꺼냈다.
그리고 바닥 타일을 드러낸 뒤 그 위에 미연방에서 제공한 탐사 장치를 설치했다.
치지직.
군락이 발생시키는 전파 방해를 감지해 군락의 정밀한 위치를 알려주는 추적 장치다.
헤드셋을 쓴 대원은 신중하게 주파수를 조절하며 군락 본체의 위치를 탐사했다.
‘신호가 너무 약합니다.’
하지만 군락은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 둥지를 틀었는지 추적이 쉽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지상이 아닌 더욱 깊은 지하로 내려가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
잠시 방독면 유리를 닦으며 고민하던 나는 결국 가까운 비상구 계단을 가리켰다.
‘갑시다.’
교란 장치 배터리도 아직 넉넉하고 군락도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걸 알기에 대원들은 군소리 없이 장비를 챙겨 따라왔다.
후욱, 후욱.
계단을 한 층 한 층 내려가 군락 본체가 잠들어있는 둥지와 조금씩 가까워졌다.
지하 5층까지 있다고 했던가. 여기서 더 내려가면 이제 마지막 층이 보여야…….
“……!”
그 순간 뒤따라오던 경태가 갑자기 내 팔을 붙잡고 황급히 뒤쪽으로 물러나게 했다.
깜짝 놀라 손전등을 비춰보니 계단 아래로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멍이 발견됐다.
여길 뚫고 올라왔구나.
졸지에 아래로 떨어질 뻔한 나는 구덩이 깊이를 가늠해보며 입맛을 다셨다.
마침 잘 됐다. 이 직선 통로가 지하 둥지로 이어진다면 탐사 장치를 쓰기 딱 좋다.
가방에서 로프를 꺼낸 나는 대원들을 대신해 구덩이 아래로 몸을 던졌다.
휙!
한 10m쯤 내려오자 아래서 뜨겁고 비릿한 유독 가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에 미간을 찡그린 나는 길게 연결된 탐사 장치를 연결하고 위를 올려다봤다.
치지직, 칙!
패널을 손에 쥔 기술 대원은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파수 신호를 분석했다.
그리고 아! 하는 외마디 탄성과 함께 구덩이 아래로 엄지를 척 들어 올려주었다.
치이이익!
로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나는 서둘러 위로 올라와 수신호를 보냈다.
정확한 좌표를 알아냈으니 이제 화끈한 벙커버스터만 요청하면 작전은 끝이다.
탐지 장치를 수거한 우리는 다른 대원들이 기다리는 1층 로비로 뛰어가려고 했다.
찌릿!
하지만 안타깝게도 얄궂은 운명의 여신은 일이 뜻대로 흘러가는 걸 원치 않았다.
왼쪽 눈 흉터를 자극하는 고통에 나는 잠자던 군락이 눈을 떴다는 걸 직감했다.
‘들켰다!’
우리가 타워 밖으로 빠져나갔다면 모를까, 군락이 눈을 뜬 시점이 무척 공교롭다.
내가 다급히 손짓하자 깜짝 놀란 대원들이 총을 견착하고 우르르 뒤따라왔다.
끼이이익! 끼긱!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 챈 감염체들이 타워 안으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엄호팀은 일사불란하게 뒤로 물러나며 몰려오는 놈들과 교전했다.
따다다다닥! 따다닥!
총구가 불을 뿜자 타워 안으로 우르르 몰려오던 감염체들은 픽픽 쓰러졌다.
하지만 그 뒤에는 더 많은 놈들이 바글바글 몰려오며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위층으로!”
1층 로비로 황급히 달려온 나는 교전 중인 엄호팀에게 후퇴 지시를 내렸다.
명령에 즉각 반응한 대원들이 계단으로 달려가 퇴로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핑!
시간을 끌어야 한다. 나는 가지고 있던 확산 수류탄을 전부 뽑아 아래로 던졌다.
퍼어엉!
볼링공처럼 굴러간 확산 수류탄은 놈들이 몰려오는 입구 한복판에서 폭발했다.
덕분에 시간을 벌게 된 나머지 대원들은 엄호팀이 올라갔던 계단으로 뛰어갔다.
“이쪽입니다!”
동시에 치료제 물질이 막아주고 있던 입구가 뚫리며 마지막 저지선이 뚫렸다.
“엄호해! 놈들이 쫓아온다!”
먼저 올라가 있던 엄호팀이 일제 사격을 가하며 계단으로 몰려오는 놈들을 막았다.
머리 위로 빗발치는 총알, 정신없이 움직이는 시야, 사방이 고성으로 가득해졌다.
투두두두두두-!!
한 팀이 올라가면 한 팀이 엄호하고 또 한 팀이 엄호하면 다른 한 팀이 올라간다.
선발대는 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위로, 계속해서 타워 위로 올라갔다.
끼아아아아악-!!
하지만 하위 군락이 눈을 뜬 이상, 계속해서 도망치는 것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
둥지 깊은 곳에서 눈을 뜬 각종 변이종이 감염체 사이를 헤치며 뛰어오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대로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면 놈들에게 포위당해 죽고 말 것이다.
정신없이 총을 쏘던 대원들은 이제 슬슬 판단을 내려야 하는 내게 시선을 던졌다.
“가은아!”
그 순간 미친 듯이 계단을 오르던 나는 그대로 경로를 바꿔 전망대로 뛰어갔다.
그제야 내 뜻을 알아챈 가은이는 가방에서 레이저 표적지시기를 꺼내 던졌다.
“여기요!”
나는 허공을 날아온 지시기를 낚아챈 뒤 들고 있던 총구를 정면으로 겨누었다.
드르륵!
쨍그랑!
두꺼운 전망대 유리를 깨트린 뒤 허리에 차고 있던 붉은색 조명탄을 꺼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망대 밖으로 냅다 조명탄을 발사했다.
삐이이이이이- 펑!
어둠이 짙게 깔린 타워 위로 새빨간 조명탄 하나가 높게 떠올라 하늘을 밝힌다.
동시에 전망대 밖으로 몸을 내밀어 레이저 표적지시기로 한 좌표를 가리켰다.
‘제발 봐라!’
타워에서 대략 400m쯤 떨어진 부근에 깊은 땅굴을 판 군락이 본체를 숨겨놓았다.
저곳을 정확히 타격해야만 하위 군락은 물론이고 우리가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표적을 지시하며 폭격기가 제때 와주기를 기도했다.
“문 막아!”
“재장전! 놈들이 몰려온다!”
그사이 전망대로 올라온 대원들이 온몸으로 입구를 틀어막으며 분투하고 있었다.
쾅! 쾅! 쾅!
하지만 선두에 선 흑색종으로 인해 강철로 만든 문 경첩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를 초조한 얼굴로 바라보던 대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마지막 교전을 준비했다.
젠장, 생각보다 너무 늦다.
나는 반대편 손으로 권총을 뽑아 들고 뚫리기 직전인 입구로 총구를 겨누었다.
쾅! 쾅! 일그러지기 시작한 문틈으로 감염체와 변이종들이 온몸을 욱여넣었다.
우우우우웅!
그런데 그 순간 어둠이 짙게 깔린 밤하늘에서 이질적인 소음 하나가 들려왔다.
방아쇠를 당기려던 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표적을 확인한 전술폭격기 두 대가 거대한 소닉붐을 일으키며 급강하한다.
삐이이이이-!!
폭격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포탄 두 개가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벙커버스터!
순수 무게만 14톤짜리인 괴물이 땅속 깊숙이 숨은 군락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콘크리트와 암반을 뚫고 들어간 벙커버스터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폭발했다.
쿠르르릉!
세상을 뒤흔드는 거대한 폭음에 우리는 황급히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감쌌다.
시발, 이거지!
하지만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거친 욕설과 환호성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끼이이이익!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던 변이종은 끔찍한 비명과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파도처럼 일렁거리던 감염체 또 한 통제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치지직, 칙!
후쿠오카로 들어올 때만 해도 먹통이었던 무전기가 갑자기 잡음을 토해냈다.
[Hey, are you okay?]
나는 폭격기에서 보낸 무전에 답하고자 전망대 밖으로 엄지를 추켜들었다.
이 집 배달 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