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항상 아려오던 왼쪽 눈 흉터에서 오늘은 이상하게 아무런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금 저 앞을 지나간 것이 변이종이 아니라는 건 절대 아니다.
피부를 핥고 지나가는 이 서늘함은 내게 연신 도망치라 외치고 있었다.
“퇴로 막아.”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지시에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며 대열을 이뤘다.
어두운 건물 내부다. 괜히 다수가 달려들었다가는 사선이 겹쳐 오발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여기서 죽인다는 생각으로 퇴로를 막고 소수가 진입해 변이종을 소거한다.
“형님.”
경태가 등에 메고 있던 자동 산탄총과 탄알집 꾸러미를 이쪽으로 던져주었다.
철컥!
나는 허공에서 이를 낚아챈 뒤 노리쇠를 당겨 약실 속 슬러그 탄을 확인했다.
침착하게 개머리판을 견착하고, 조금 전 변이종이 지나갔던 복도 끝으로 총을 겨누었다.
뚝.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주변 풀벌레 소음이 멈추더니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 거기 누구 있어요?”
익숙하다. 분명 무전기를 통해 구조신호를 보냈던 여성의 목소리가 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에는 생기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흠칫 놀라는 대원들을 안심시킨 나는 개수작을 부려오는 놈에게 경고했다.
“……나와. 다 알고 왔으니까.”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낼 줄 알고 심지어 무전이라는 수단으로 우리를 유인해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매끄러웠던 것으로 보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닐 터.
이젠 그 실체를 드러내고 그동안 쌓아온 피의 업보를 청산 받을 시간이 왔다.
“거기 누구 있어요? 예? 거기 누구 있어요? 거기 누구 있어요? 예? 거기 누구 있어요? 거기 누구 있어요? 거, 거기! 거기!”
그 순간 제발 살려달라고 흐느끼던 목소리가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되다 끊겼다.
뚝.
놈은 이젠 정체를 숨길 생각조차 없는지 복도 끝으로 머리를 빠끔히 내밀었다.
동공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눈동자가 옆으로 또르르 굴러가며 히죽 웃는다.
스으윽 복도로 삐져나오는 기다란 팔과 다리, 변이종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끼아아아아아악-!!
놈은 아가리를 쩍 벌리며 변이종 특유의 기괴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에 대원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좌우로 비틀거렸고 한순간 틈이 생겼다.
덜컹! 덜컹!
덜컹! 덜컹!
놈은 길쭉한 팔과 다리를 이용해 좁은 복도와 천장을 꾸역꾸역 비집고 기어 왔다.
정신적 영향을 받지 않은 나는 황급히 그 앞을 가로막으며 산탄총을 발사했다.
철컥, 펑!
철컥, 펑!
하지만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애꿎은 천장만을 때릴 뿐 유효타가 없었다.
이 미친놈! 내가 겨누는 총구 방향만 보고 총알이 어디로 날아올지 예측한 것이다.
“……!!”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찰나, 변이종이 가속하더니 한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두근두근!
마치 기찻길 옆에 누워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심장이 두쿵두쿵 큰소리로 뛰었다.
위험을 감지한 몸이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고 찰나의 순간을 길게 늘였다.
끼긱!
사라진 줄 알았던 놈은 어느새 어둠 속에서 뛰쳐나와 무방비인 가은이를 노렸다.
‘젠장!’
나는 소리 없는 고함을 지르며 물리 법칙을 따라가는 근육을 억지로 움직였다.
탁!
흐름을 역류한다. 불과 0.2초라는 짧은 순간, 가은이의 멱살을 잡고 내 쪽으로 당겼다.
끼익?
졸지에 총구를 대신 마주하게 된 놈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떴다.
퍼엉!
방아쇠를 당기자 숨 막히는 공간이 무너지며 시간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슬러그 탄에 가슴 한가운데가 꿰뚫린 놈은 매달려 있던 천장에서 떨어졌다.
“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대원들이 재빨리 총구를 돌려 풀 오토로 힘껏 갈겨댔다.
투두두두두두두-!!
총알이 쇄도했다. 총구에서 번쩍이는 불꽃에 눈이 모두 멀어 버릴 지경이었다.
끽, 끼기긱!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된 변이종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복도로 도망쳤다.
치명상이다!
순식간에 산탄총을 장전한 나는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를 따라 놈을 추격했다.
“형님!”
“엠버 하사부터 찾아!”
피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아직 첫 번째 사냥감을 죽이지 못했다.
나는 대원들에게 실종된 엠버 하사를 맡긴 뒤 어두운 복도를 재빨리 가로질렀다.
철컥, 펑!
철컥, 펑!
어둠과 안개 사이로 숨어드는 흐릿한 형체를 끝까지 쫓아 방아쇠를 당겼다.
끼아아악!
놈은 온몸을 파고드는 납 구슬에 끔찍한 고통과 분노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 분노는 마지막 이성마저 끊기게 했고, 곧 극에 달한 공격성으로 변모해버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를 원하고 있었던 나는 동체시력으로 놈의 움직임을 쫓았다.
후웅, 콰직!
날아오는 공격을 예상해서 피하고 좁은 복도를 최대한 이용하는 일련의 과정.
놈의 움직임이 변칙적이고 지능적인 만큼 이에 맞춰 내 대응도 넓게 다각화했다.
끼이이이이익!
얼마나 많은 감염체와 변이종, 또 얼마나 많은 군락을 이 손으로 죽여 왔던가.
이제 이 정도 변수쯤이야 여유롭게 산책하면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철컥!
철컥!
그사이 탄약이 모두 소모됐는지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이에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변이종은 조급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아가리를 벌렸다.
핑!
하지만 나는 이미 치료제 물질이 든 확산형 폭탄을 뽑아 손에 들고 있은 지 오래였다.
허공으로 떠오르는 핀! 허리를 돌려 공격을 피하고 폭탄을 허공에서 터트렸다.
퍼엉!
몸을 밀어내는 폭발과 함께 하얀색 치료 물질이 좁디좁은 복도를 집어삼켰다.
어때, 맵지?
나는 산탄총을 장전하는 대신, 허리춤에 매달아둔 토마호크를 뽑아 들었다.
스릉!
날카롭게 갈아둔 도끼날을 료칸 밖으로 도망치려는 놈을 향해 휘둘렀다.
서걱!
졸지에 발목이 반쯤 잘려 나간 변이종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올려다봤다.
나는 눈동자 한가운데 보이는 이마를 조준한 뒤 힘껏 토마호크를 내려찍었다.
콰직!
수많은 사람을 함정으로 유인해 죽였던 목소리 변이종은 그렇게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 * *
날이 밝자마자 료칸으로 다시 들어가 변이종 둥지였던 내부를 깨끗이 수색했고, 놈이 오물 속에 모아두었던 여러 희생자의 유품과 시신 일부를 수습해 정리했다.
물론 내가 처치한 놈의 시체는 연구소로 보내기 위해 건물 밖으로 끌고 나왔다.
“어우, 토할 것 같아.”
죽은 변이종을 수습하던 문 상사와 대원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만큼 이번 변이종의 모습은 끔찍했고, 또 참을 수 없는 역한 악취를 풍겼다.
“선배, 이쪽이에요.”
하지만 송지영은 그 시체를 진지한 얼굴로 관찰하며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보시면, 인간 시절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사라지지 않은 머리카락과 눈썹,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징인 이 성대도요.”
“이런 사례가 있었나?”
“아뇨, 만약 있었으면 제가 먼저 알았을 거예요. 아무래도 우리가 첫 발견 같네요.”
보통 감염체가 되면 인간 시절 가지고 있던 신체적 특징을 모두 잃어버린다.
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변이종은 특이하게도 옛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특징이 두드러졌다.
인간 목소리를 따라 낼 수 있는 성대, 무전기가 뭔지를 이해하는 고도의 지능.
이런 놈이 만약 어디 깊은 산에라도 처박히면 그 일대는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연구소로 보내.”
육지와 떨어진 섬이라서 그런지 한반도에선 볼 수 없었던 변이종들이 출현한다.
졸지에 새로운 개체를 발견하게 된 나는 썩 유쾌하지 않은 얼굴로 담배를 물었다.
“Sir.”
그 순간 의무병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카산드라 중위가 경례를 붙이며 다가왔다.
간이 침상에 누워있던 엠버 하사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모양이다.
“좀 어떻습니까?”
“가벼운 뇌진탕입니다. 의식이 돌아와서 횡설수설하는 것 빼고는 별문제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우리가 당시 엠버 하사를 발견했던 곳은 지붕과 연결되어있던 좁은 공간이었다.
아마 습격당하자마자 정신을 잃고 놈에게 붙잡혀 어딘가로 끌려갔던 것 같았다.
정신이 멀쩡해야 할 텐데.
나는 유난히 유약해 보이던 그녀를 떠올리며 먼저 복귀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꺅!”
그런데 그 순간 얌전히 누워있던 엠버 하사가 비명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깜짝 놀란 카산드라는 혹시 엠버 하사가 트라우마 발작이라도 일으키나 싶어 급히 달려갔다.
“왜 그래, 하사!”
“싸, 싸우는 장면을 못 찍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서진 카메라를 끌어안는 엠버 하사를 보며 허탈해했다.
죽을 뻔 했다는 것보다 촬영을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억울하고 슬펐던 거야?
내가 피식 웃자 카산드라 중위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좀 꼴통입니다.”
“마음에 드는데요, 뭘.”
비록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첫 정찰 성과치고는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나는 이미 이동 준비를 끝낸 험비에 탑승하려고 했다.
삐리리리리!
그런데 그 순간, 위성 전화기가 울리며 김태하 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장님?”
[통화 가능한가.]
“예. 말씀하십시오.”
[혹시 정찰대 위치가 어디지?]
“히타시 부근입니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나는 재빨리 지도를 꺼내 현재 위치와 좌표를 불러주었다.
이를 확인한 김태하 소장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곧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오사카 부근에서 대규모 움직임이 확인됐다. 현재 이곳 규슈로 몰려오는 중이야.]
상위 군락이 웬일로 조용하다 했더니 감염체 웨이브를 모으기 위한 침묵이었나.
아니나 다를까 공세를 취해오는 후지산 군락을 욕하며 나는 작게 혀를 찼다.
“북쪽 진입로부터 끊으시죠.”
[간몬교는 진즉에 끊겼어. 사실상 규슈로 건너오는 통로는 없다고 봐도 좋아.]
“그럼 뭐가 걱정입니까?”
우리 진출 방향이 그렇듯 보통 규슈로 넘어오려면 북쪽을 통해 오는 게 정상이다.
특히 바다를 건너올 수 없는 감염체 특성상 그 경로가 뻔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놈들이 시코쿠 섬으로 경로를 틀었다는 거야. 완전 반대 방향으로 말이야.]
하지만 상위 군락은 그 예상을 가뿐하게 무시하고 감염체를 남쪽으로 이끌었다.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상위 군락이 홋카이도를 어떻게 뚫었냐는 것이다.
“……이거 혹시?”
[우리 쪽에서 먼저 알아내야 해.]
상위 군락이 멍청이도 아니고 괜한 헛짓거리를 위해 감염체를 동원할 리는 없다.
꿍꿍이가 뭔지를 먼저 알아내야 규슈 지방에 진출하려는 놈들을 막을 수 있다.
“제가 가보죠.”
나는 그 즉시 전화를 끊고 원래 가려고 했던 목적지까지 최단 경로를 설정했다.
그렇게 국도로 진입한 험비 행렬은 규슈 동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 * *
사각, 사각, 사각.
[무사히 함정에서 도망친 ‘그녀’는 밤새 도로를 달려 히타시를 벗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전거 체인은 망가져 있었고 컨디션 또한 말이 아니었다. 이미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그녀’는 하염없이 도로를 걸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서 낡은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깜짝 놀란 ‘그녀’는 도망칠 타이밍을 놓친 나머지 황급히 리볼버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트럭을 타고 등장한 생존자는 몹시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었다.]
[운명의 장난일까? 운전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그녀’와 같은 여고를 다녔던 동창생 키리코였다. 초등학생 동생과 단둘이 살아남았던 키리코는 때마침 은신처를 탈출해 규슈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너를 차에 태워줄 테니 총으로 자신들을 보호해달라는 현실적인 제안이 오갔다. 마침 지쳐있던 ‘그녀’는 고민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도망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는 사가노세키 항구로 향하기로 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