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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63화 (163/180)

<163화>

삐이이이- 펑!

숨겨둔 부비트랩이 작동함과 동시에 수십 개의 조명탄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어둡던 세상은 한낮처럼 환하게 변했고, 이는 피난민들이 모인 3층도 마찬가지였다.

“엄, 엄마.”

“쉿. 조금만 참자, 응?”

전투가 시작됐는지 마을 곳곳에선 기괴한 비명과 함께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에 몸을 부르르 떨던 피난민들은 옆 사람을 꼭 끌어안으며 불안한 눈동자를 굴렸다.

겨우 수십 명도 되지 않는 인원으로 몰려오는 감염체 무리를 물리칠 수 있을까?

지금은 그저 밖으로 나간 모든 이들이 죽지 않고 무사하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박하나만큼은 진지한 얼굴로 교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작했어?”

“응. 한창 싸우는 중이야.”

옆자리에 앉은 키리코는 싸우고 있다는 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 궁금증을 참지 못했는지 결국 엉금엉금 창문 앞으로 기어가 밖을 살폈다.

“누가 이기고 있는 거야?”

“아직은 우리가 유리한 것 같아.”

“뭐가 보이긴 해?”

“다들 반대편으로 뛰어가시잖아.”

키리코의 눈에는 그냥 검은 형체가 휙휙 움직이고 불꽃 몇 개만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박하나는 모든 전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듯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마 허벅지만 멀쩡했다면, 들고 있던 총을 장전하고 저쪽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얘가 원래 이런 애였나?

학창 시절 때는 조용하기 그지없는 친구였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키리코는 갑자기 변해버린 친구가 생소하면서도 동시에 가슴 한편이 든든했다.

뭐니 뭐니 해도 동생을 보호해주고 자신을 구해준 것은 바로 박하나였으니까.

놈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총을 발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뇌리 깊숙한 곳에 남아있었다.

“저기!”

그 순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박하나가 탄식과 함께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이에 키리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조명탄이 떨어지는 골목을 바라봤다.

키긱, 키킥! 키아아악!

그곳에는 기괴하게 생긴 생물체가 좁은 틈새를 거미처럼 기어 오고 있었다.

“히익!”

저게 말로만 듣던 변이종? 순간 오금이 풀려 참고 있던 오줌을 찔끔 쌀 뻔했다.

이는 다른 피난민들도 마찬가지인지 하나 같이 귀를 틀어막고 부들부들 떨었다.

“……!”

하지만 박하나는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무언가를 눈으로 좇았다.

그곳에는 집라인을 탄 박범석이 몰려오는 변이종 한가운데 낙하하고 있었다.

펑!

산탄총이 불을 뿜자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던 변이종 하나가 바닥에 나자빠졌다.

나머지 놈들은 크게 분노하며 갑자기 등장한 천적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퍼엉!

하지만 그는 능숙하게 공격을 피했고 또 사방으로 치료제 확산탄을 터트렸다.

좁은 골목은 순식간에 하얀 분말과 거품으로 범벅이 되며 변이종을 집어삼켰다.

철컥, 펑!

철컥, 펑!

가히 감염체 사냥꾼. 아니, 군락의 천적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실력이었다.

순식간에 변이종 두 마리를 도륙 내버린 박범석은 토마호크에서 피를 털어냈다.

분명 멀리 보이는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흉흉한 눈빛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꾸욱.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박하나는 정신없이 그의 움직임을 좇아갔다.

박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며 콩콩 뛰는 심장 박동을 진정시켰다.

나도 언젠가는 저 남자와 같은 위치에 서서 같은 싸움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 모습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열망이 마음 한구석에 싹텄다.

박범석이 타고난 상속자였듯 박하나 또한 그 씨앗부터가 묘한 광기를 품고 있었다.

[놈들이 3층 건물로 가요!]

하지만 마냥 감탄만 하고 있기에는 감염체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상위 군락은 그들의 약한 부분을 노리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 * *

거품 사이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변이종을 짓밟고 토마호크로 힘껏 내리찍었다.

서걱!

그대로 목이 잘려 나간 놈은 언제 미쳐 날뛰었냐는 듯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변이종만 벌써 세 놈째 처리 중인 나는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후욱!

대원들이 감염체 무리를 맡아주는 사이, 나는 변이종만을 찾아 전담마크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마을로 진입하던 감염체 무리를 꽤나 수월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이 정도 탄약이랑 사기를 생각하면 앞으로 2~3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나는 제발 폭우와 강풍이 그치기를 빌며 다른 변이종을 찾기 위해 나서려했다.

치익!

그런데 그 순간 대원들 전원이 듣고 있던 공용 채널에서 다급한 음성이 전해졌다.

[놈들이 3층 건물로 가요!]

목소리의 주인은 항만 창고 지붕에서 감염체를 저격하고 있던 가은이었다.

전장이 모두 내려다보이는 만큼 감염체의 움직임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뭐? 거길 어떻게 알고!”

[저도 모르겠어요! 곧장 직진하는 걸로 봐선 그쪽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해요!]

대원들은 마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십자 화망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상위 군락은 그런 화망을 무리하게 뚫으며 방어선 중심지로 달려갔다.

우리가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는 걸 알고서 제일 민감한 곳을 노리려는 것이었다.

치직!

나는 곧장 걸음을 멈춘 뒤 반대편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전원 후퇴! 후방으로 집결한다!”

이대로 3층 건물이 공격당한다면 피난민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잘 싸우고 있던 대원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놈, 놈들이 와요! 으아아악!]

[쏴! 쏘라고! 우리가 도망치면 끝이야!]

그 사이 화망을 뚫고 달려온 흑색종 몇몇이 지붕을 기어올라 건물로 몸을 날렸다.

입구와 옥상을 지키고 있던 피난민들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연신 도움을 청했다.

총알이 통하지 않는 흑색종의 존재는 그들을 패닉상태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젠장, 이 순간을 위해 아껴두고 있었나. 영리하다 못해 소름이 돋는 지능이다.

“형님!”

그 순간 헤드라이트를 켠 험비 한 대가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외치는 경태를 발견하자마자 뒷좌석으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부아아아앙!

험비는 순식간에 빗길을 달려 피난민들이 모여 있던 건물 앞에 도달했다.

하지만 입구는 이미 뚫렸는지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이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

“들이박아!”

경태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몰려오는 감염체 무리를 냅다 들이박았다.

콰아아아앙!

육중한 무게와 속력을 이기지 못한 놈들은 다진 고기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쿵!

험비는 부서진 입구를 틀어막는 활약을 끝으로 마지막 쓰임새를 다했다.

“여긴 제가 맡을게요!”

“조금만 버텨! 곧 다들 올 거야!”

경태는 가지고 온 기관총을 험비 위에 거치하며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사이 차에서 내린 나는 피난민들이 모여 있던 건물 안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끼기긱! 끼긱!

입가에 핏물이 질질 흐르는 흑색종 하나가 눈알이 돌아간 채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콰직!

나는 녀석을 개머리판으로 후려 넘어트린 뒤, 놈의 아가리에 총구를 까가각 욱여넣었다.

펑!

냅다 방아쇠를 당겨 대가리는 물론 식도와 그 밑에 내장까지 전부 짓이겼다.

순식간에 흑색종 한 마리를 처치한 나는 조명이 깜빡거리는 건물 내부를 살폈다.

“아무도 없어? 대답해!”

피난민을 담당하던 대원 한 명이 1층 로비를 지키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어디 갔는지 가방만을 로비에 남긴 채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먹통이 된 무전기를 보다 못한 나는 재빨리 장전을 끝내고 2층으로 올라갔다.

“쿨럭! 쿨럭!”

2층 복도에 피난민 담당 대원이 다리 한쪽이 날아간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빠르게 달려가 압박 붕대로 허벅지를 묶고 강한 진통제를 꽂아 넣었다.

“놈, 놈이 위쪽으로…….”

“말하지 마!”

아무리 베테랑 대원들이라고 해도 흑색종 여러 마리를 혼자 당해낼 수는 없다.

나는 일단 대원을 안전한 곳까지 옮겨준 뒤 핏물이 자욱한 계단을 올라갔다.

탁! 탁! 탁!

분명 가장 안전한 3층에 박하나를 포함한 피난민 모두를 모아두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3층 그 어디에도 사람은커녕 놈들에게 당한 시체 한 구 보이지 않았다.

탕!

그 순간 너무도 익숙한 총성 하나가 머리 바로 위 옥상에서 들려왔다.

콜트파이슨? 박하나다! 나는 즉각 계단으로 걸음을 옮겨 옥상 입구로 향했다.

끼기긱! 끽! 키이익!

옥상 입구에는 무려 흑생종 3마리가 문을 뚫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있었다.

“뚫리면 안 돼요!”

“다들 막아! 죽기 싫으면 막으라고!”

이에 옥상으로 대피한 피난민들은 처절하게 입구를 막으며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단을 뛰어올라 감염체 전용 확산탄을 뽑아 던졌다.

퍼엉!

이에 흑색종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온몸이 하얗게 발화되며 하나둘 스러져갔다.

탕! 착실하게 확인 사살까지 끝낸 나는 뚫리기 직전이던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

갑작스러운 등장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 있던 박하나가 뒤뚱뒤뚱 걸어왔다.

그 뒤에는 무사히 살아남은 피난민 전원이 놀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네가 데려왔어?”

“예? 일단 그 방법밖에 없어서…….”

담당 대원이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박하나가 피난민을 옥상으로 대피시켜주었다.

거기다 흑색종을 상대로 버티기까지 했으니 예행연습치고는 화려한 성과다.

“잘했어. 네가 다 살린 거야.”

나는 기가 죽은 박하나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서둘러 옥상 난간을 향해 달려갔다.

투두두두두두-!!

타앙! 탕! 타다다다다!

건물 근처에는 이미 험비를 타고 후퇴한 대원들이 연신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선배! 얼마 못 버텨요!]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무리’ 수준인 줄 알았던 감염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아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방어선 사수고 나발이고 사이좋게 향냄새 맡으러 가게 생겼다.

“건물로 올라와!”

이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나마 넉넉한 탄약을 이용해 버티기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2층에 두고 온 대원을 옥상까지 옮긴 뒤 부서진 바리케이드를 힘껏 밀었다.

쿵!

겁에 질려있던 피난민들도 허둥지둥 바리케이드를 옮겨 계단 입구를 막았다.

그 사이 1층을 지키던 대원들은 우리가 내려준 밧줄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허억, 허억!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하나 같이 땀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도 경험 많은 베테랑 대원들답게 모두 자잘한 상처를 빼면 다친 곳은 없었다.

“형님! 이제 어떡할까요!”

“뭘 어쩌긴 어째! 탄약이나 가져와!”

죽는 게 무서웠다면 진즉에 전역해 강릉에서 노후 준비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원들은 몸이 녹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불태우며 총알을 장전했다.

철컥!

그 모습에 똑같이 장전을 끝낸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난민을 한곳에 모았다.

잠시 숨을 고른 대원들은 옥상 난간과 문으로 우르르 몰려가 포지션을 취했다.

끼이이이이이이-!!

잠시 숨을 고른 상위 군락은 남은 감염체 전력을 모조리 이쪽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살점을 물어뜯으려고 모이는 피라냐 떼를 보는 것 같았다.

“온다!”

“남은 거 다 쏟아 부어!”

이제부터는 대원들의 마지막 여력을 끌어 모아 퍼붓는 최후의 결전이다.

마찬가지로 총구를 거치한 나는 슬슬 공격을 가해오는 감염체를 쏘려고 했다.

치익, 칙!

“……?”

그런데 그 순간, 공용 채널이 아닌 다른 주파수에서 시끄러운 잡음이 울려왔다.

한참 집중하려고 각을 잡던 우리는 눈치 없는 아군이 누군지 확인하려 했다.

[여기는 SPOOKY 1, 아군 위치 파악 완료. 목표 위치 및 지정 가능한지 확인 바람.]

SPOOKY? 생소한 콜사인에 기억을 더듬던 나는 깜짝 놀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폭우는 어느덧 그쳤고, 매서웠던 강풍 또한 거짓말처럼 잦아들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저 멀리 먹구름 사이로 AC-130 공격 지원기, 통칭 죽음의 천사가 날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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