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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64화 (164/180)

<164화>

AC-130의 접근을 확인한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조명탄을 하늘 높이 쏴 올렸다.

동시에 근접항공지원(CAS)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며 목표물을 임시로 지정해주었다.

[아군 위치가 너무 가깝다. 괜찮은가?]

“상관없다!”

어차피 3층 건물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수많은 감염체 무리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굳이 사격 조정을 해줄 필요도 없이 이 부근 어디를 쏴도 모두 명중일 것이다.

[Copy that.]

잠시 고민하던 조종사는 곧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항공기를 선회시켰다.

나는 급히 무전을 끊은 뒤 한창 싸우고 있던 대원들에게 엎드리라 외쳤다.

“모두 엎드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내 지시를 들은 대원들은 떨고 있던 피난민을 감싸 안았다.

그 순간 AC-130이 선회했던 어두운 하늘에서 선명한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투두두두두!!

쾅! 콰앙! 쿠르르르릉-!!

미니건, 기관포, 심지어 105㎜ 견인 곡사포까지 통째로 들고 다니는 녀석이다.

1개 대대는 혼자 갈아먹는 압도적인 화력이 조그마한 항구 마을에 쏟아졌다.

끼아아아아악!

죽음의 천사가 쏟아내는 강철과 화약 앞에 대지가 흔들리고 공간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수많은 감염체를 이끄는 상위 군락이라 해도 하늘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놈은 무력하게 죽어 나가는 자기 새끼들을 보며 어김없이 분노를 표출했다.

“으아아아! 죽는다!”

“방, 방금 건 너무 가까웠잖아!”

물론 항공 지원을 받는 중인 우리라고 해서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조종사가 아군 위치를 확인했다고는 하지만 작전 범위가 너무 좁아진 탓이다.

진짜 여차하면 머리 바로 위로 105㎜ 포탄이 떨어질 각오 정도는 해야 했다.

제발 이쪽은 피해 가라! 우리는 한 마음 한뜻으로 기도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놈들이 물러나요!”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평화롭던 항구 마을은 온통 쑥대밭이 되었다.

끼긱, 기기긱!

동시에 궤멸적 피해를 본 감염체 무리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이상 당하면 둥지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건가? 현재로선 저것이 최선이었다.

“따라와! 추격한다!”

하지만 그걸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던 나는 경태와 가은이를 데리고 뛰쳐나갔다.

동시에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험비에 탑승해 폭격을 멈춘 항공기와 교신했다.

“목표 위치를 재설정하겠다!”

AC-130이 먼저 날아왔으니 다른 공중 지원도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을 것이다.

이 기회에 아직 여물지 못한 상위 군락을 죽이고 규슈 지방을 수복할 생각이었다.

“꽉 잡아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운전대를 잡은 경태가 험비의 시동을 걸고 도로를 가로질렀다.

곳곳에 생긴 크레이터로 차량이 미친 듯이 흔들렸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 멀리 도망치는 감염체 무리! 저놈들을 쫓아야만 상위 군락을 죽일 수 있었다.

“조명탄 남은 거 없어?”

“저한테 2발 정도 있어요!”

정말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 쓴 탓에 유도용 조명탄이 2발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아쉬운 대로 그 2발만을 챙겨 점점 가까워져 가는 감염체 무리를 바라보았다.

“가은아!”

“알고 있어요!”

추격자의 존재를 눈치챈 변이종들이 급히 방향을 돌려 험비를 향해 달려왔다.

이에 가은이는 기다렸다는 듯 총구를 돌려 묘기에 가까운 조준사격을 가했다.

물론 나 또한 총기 아래 부착된 유탄 발사기를 조준한 뒤 냅다 방아쇠를 당겼다.

퐁! 콰아앙!

거대한 불꽃이 일며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던 흑색종들이 도로 밖으로 떨어졌다.

부아아아아앙!

기회를 놓치지 않은 험비는 냅다 속도를 올려 변이종들을 뿌리치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허둥지둥 도망치고 있는 감염체 무리와 상위 군락의 둥지뿐이다.

찌릿!

아니나 다를까, 아파오는 왼쪽 눈 흉터에 나는 재빨리 조명탄을 하늘로 발사했다.

번쩍!

그 순간 세상이 한순간 환해지더니 어둠 속으로 도망치던 감염체의 모습이 드러났다.

놈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있는 곳, 그동안 숨겨져 있던 둥지 입구가 드디어 노출되었다.

펑!

나는 그 위로 마지막 조명탄을 발사하며 AC-130의 폭격 지원을 유도했다.

바쁜 교신이 오가는 것도 잠시, 감염체 무리를 향한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었다.

콰앙! 쾅!

쿠르르르릉!

폭격을 피하기 위해선 그나마 깊은 땅속에 있는 군락 둥지로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입구를 워낙 좁게 만든 탓에 감염체끼리 몸이 끼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빠른 공격을 위해 급조했던 둥지가 도리어 놈들의 발목을 붙잡고 만 것이다.

감염체 놈들은 그대로 폭격에 노출되어 하나둘 포화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끼익!

타이어 한쪽이 터진 험비는 연료를 다했는지 그만 도로 한가운데에 멈춰버렸다.

우리는 그대로 차에서 내려 불타고 있는 야산과 둥지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이제 뭐 하죠?”

“뭐하긴 그냥 팝콘이나 먹는 거지.”

AC-130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사이, 연합군 본대가 이쪽으로 접근 중이다.

그중엔 벙커 버스터도 있을 테니 저 군락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고 봐도 좋았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우리는 험비 위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 드러누웠다.

“……시원한 맥주 먹고 싶다.”

가은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나도 경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 순간 가장 간절히 생각나는 건 살얼음이 살짝 낀 시원한 맥주 한 잔이었다.

* * *

두 번째 벙커 버스터 투하와 함께 둥지 속 상위 군락은 화려한 최후를 맞이했다.

물론 태어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놈이라 완벽한 개체라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어찌 됐건 군락을 죽였다는 소식은 한미 연합군 전체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 반응은 이 규슈뿐만이 아닌 저 태평양 건너 미국 본토도 마찬가지였다.

“지원 규모를 두 배로 늘리겠다더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이번에 방영된 선전 영상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야. 그쪽 반응이 꽤나 뜨거워 보여.”

우리가 감염체와 미친 듯이 싸우는 사이, 카산드라 중위가 이끄는 촬영팀은 이번 여정에 대한 모든 걸 영상으로 담았다.

프로젝트 자체가 연기될 줄 알았던 그 영상은 곧 전문가들의 편집을 거쳐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미국에 특집 방영이 되었다.

사람들을 구하고 상위 군락을 처리하는 모든 과정이 담겨있는 40분짜리 다큐멘터리.

이를 생방송으로 시청한 미국 전역은 전쟁에 대한 열기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미합중국 대통령 제프리는 마이클 소장이 요청한 지원에 두 배를 약속했다.

“훈장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겠나?”

“귀찮게 그런 걸 또 언제 챙기고 있어요.”

일각에선 작전을 성공한 1팀 대원들에게 훈장을 줘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성가신 걸 싫어하는 대원들은 단칼에 거절하며 맥주를 마시기 위해 떠났다.

하여간 별종들!

김태하 소장은 그 훈장이 아직도 아까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뭐,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이제 슬슬 밀려있는 업무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일단 교두보부터 마련해볼 생각이야.”

한미연합군은 첫 번째 관문이었던 후쿠오카와 규슈를 성공적으로 탈환해냈다.

이제 다음 과제는 본토로 진출해 도쿄 침공을 위한 전진 거점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슬슬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는 전쟁에 김태하 소장은 진지한 얼굴로 읊조렸다.

“문제는 이동 경로지.”

알다시피 일본이라는 나라는 가로 방향으로 섬들이 길게 이어지는 하나의 열도다.

그중 서쪽 규슈에 상륙한 우리는 가장 큰 섬인 혼슈 지방을 쭉 가로질러야 했다.

그 사이 산과 도시만 몇 개이고 또 얼마나 많은 감염체가 득실거리고 있을까.

자칫하면 연합군 전원이 고립될 수도 있기에 경로 선정은 무척이나 신중해야 했다.

“결정은 맡기겠습니다.”

“상의가 끝나면 알려주겠네.”

이는 현장 지휘관이 아닌 김태하 소장 같은 전략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일이다.

나는 이번 일은 맡기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서류를 챙겨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잠깐.”

“예?”

“담배 한 대 피우지.”

그런데 그 순간, 김태하 소장이 나를 따라 나오며 슬쩍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연초를 사이좋게 입에 문 우리는 막사 뒤쪽으로 걸어가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그 여자 도대체 누군가?”

“박하나 말입니까?”

“그래, 일본에서 만났다는 그 박하나 말이야. 혹시 가족이나 먼 친척이라도 되나?”

성이 같아서 궁금하긴 했는데 그녀의 본적을 물어보니 완전히 다른 박 씨였다.

나는 혹시 같은 식구냐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학교 후배입니다.”

“학교?”

“예.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요.”

같은 상속자라는 말은 할 수 없으니 그냥 같은 학교 출신의 후배라고 거짓말을 했다.

뭐, 내가 어디 학교였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진짜 후배인지는 어떻게 알겠는가.

김태하 소장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왜요?”

“다들 궁금해해서 말이야. 혹시 숨겨둔 동생이 아니냐는 소문이 슬슬 돌고 있더군.”

상위 군락을 처리했던 작전 이후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넘게 흘러가 버렸다.

그사이 박하나 또한 목발을 짚으며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혹시…….”

“예. 소장님이 생각하는 그거 맞습니다.”

보통 병아리가 입대하면 베테랑 대원이나 조교들이 직접 교육하는 편이다.

하지만 박하나는 일반적인 훈련 과정을 건너뛰고 내가 1:1로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

경력이 가장 긴 문 상사와 직속 부하인 송지영조차 받아보지 못한 1:1 전담마크.

이는 박하나를 후계로 인정하고 훗날 특임 대원으로 임명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살다 보니 참 별일이 다 있군.”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래, 나도 갓 20살 된 애송이를 직접 가르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지.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슬슬 잔주름이 보이기 시작하는 눈가를 긁적이며 담배를 마저 비벼 껐다.

이제 슬슬 사격장에서 죽치고 있을 박하나와 나머지 저녁 훈련을 할 차례였다.

“가볼게요.”

“그래. 또 연락하지.”

김태하 소장과 헤어진 나는 지휘부를 빠져나와 사격장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갔다.

슬슬 여름이 찾아오고 있는지 날이 길어진 석양이 저 수평선 너머 걸려있었다.

오늘따라 강릉과 사람들 그리고 평화로운 희망 아파트의 일상이 너무나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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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사각, 사각.

[‘그’는 상위 군락의 규슈 진출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또 죄 없이 갇혀 있던 수많은 사람을 구해냈다. 이는 단순히 한 번뿐인 승전을 넘어 우리가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인류 모두에게 알려주는 일이었다.]

[힘들게 숙주를 보냈다가 소멸당한 후지산 군락은 ‘그’를 자신들의 천적으로 규정했다. 이는 현존하는 모든 군락에 알려졌고 이젠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군체 의식이 놈들을 더욱 빠르게 진화시키고 있었다.]

[전쟁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는다. 본토로 넘어갈 교두보를 확보하고 새로운 상속자인 ‘그녀’를 가르치자. 이것이 인류가 가진 최후의 여력이며 동시에 ‘그’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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