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며 박하나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일단 기본적인 베이스가 되는 체력은 배구선수 출신답게 매우 준수한 편이었다.
또 완력도 같은 나이대 여자들과 비교하면 나쁘지 않은 축에 속했다.
뭐, 이 정도면 특임대 기준은 못 미쳐도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박하나의 진가는 피지컬이 아닌 여타 테크니컬한 부분에서 발휘되었다.
탕! 탕! 탕탕!
사격 자세는 엉성하고 호흡도 불안정하다. 딱 경험 없는 병아리 신병 그 자체다.
그런데 이상하게 권총을 발사하는 족족 표적지 중앙과 머리에 정확히 꽂혔다.
박하나는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명중률을 자랑하는 중이었다.
“괜찮게 쐈나요?”
탄알집 두 개를 순식간에 비운 박하나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권총을 뺏고 장전된 AR-15 자동소총을 넘겨 견착하게 했다.
철컥! 이번에도 어정쩡한 자세로 총구를 옮긴 그녀는 더 먼 표적지를 노렸다.
탕! 탕! 타앙!
3발 모두 제대로 된 탄착군을 형성했다. 이제 놀라기도 지친 나는 반쯤 포기했다.
그러자 박하나는 내가 알려준 파지법을 금세 터득하더니 자유롭게 총을 쐈다.
드르륵! 드르륵!
3점사, 연사, 철컥! 안전 걸고 또 한 번 단발 넘겨서 표적을 연달아 맞췄다.
하지만 연사 부분에선 아직 적응되지 않는지 총구를 내리며 히잉 울상을 지었다.
“어깨가 너무 아파요.”
원래 그게 정상이거든? 다 너처럼 냅다 연사부터 갈기고 히히 웃고 있지 않아.
나는 묘하게 느껴지는 광기 앞에 일단 들고 있던 자동소총부터 내려놓게 했다.
“혹시 어디서 쏴본 적 있어?”
“아뇨. 처음이에요.”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일기 녀석이 박하나한테 집착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정도면 단순히 준수하다는 평가를 넘어 날로 먹는 재능충이라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도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처음치곤 잘했어.”
“감사합니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오만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일기가 또 언제 과제를 줄지 모르는 상황에 나는 그 기반부터 천천히 쌓고자 했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박하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동소총을 잡으려고 했다.
“그럼 한 번 더…….”
“아니.”
하지만 나는 자동소총을 뺏으며 물웅덩이가 고여 있는 연병장을 가리켰다.
“연병장부터 뛰어.”
“예?”
“뛰어간다! 실시!”
갑작스러운 윽박질에 깜짝 놀란 박하나는 허둥지둥 연병장을 향해 뛰어갔다.
“굼벵이도 그것보단 잘 뛰겠다!”
“열, 열심히 할게요!”
“다리 보이지? 오리걸음으로 뛸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나도 그 뒤를 바짝 따라가며 본격적으로 노란 병아리를 갈구기 시작했다.
* * *
폐허뿐인 불모지를 후방 거점으로 만든다는 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일단 연합군이 주둔하는 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중요 시설을 복구해야 하는 건 물론.
혹여나 두 번째 공격을 준비 중일 수 있는 군락에 대비해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
거기다 부가적으로 피난민 수용, 물자 호송 등 생각하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하지만 모두의 노력 덕분에 규슈 지방은 안전한 후방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또 미국이 보낸 추가 지원군도 무사히 도착하며 병력 보충도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어느덧 장마와 함께 여름도 무르익어갔다.
일본 열도의 여름은 불쾌 지수를 자극할 만큼 습할뿐더러 또 엄청나게 더웠다.
탁! 타악!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 모래사장에서 송지영과 박하나가 대련을 이어갔다.
당연히 경험이 적은 박하나 쪽이 밀리고 있었지만,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었다.
한참 공격을 주고받던 송지영은 희미한 웃음과 함께 그대로 다리를 걸어버렸다.
“앗!”
한참 타격 기술에만 집중하고 있던 박하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목에 겨눠진 훈련용 나이프는 대련이 패배로 끝났다는 걸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박하나는 도리어 환하게 웃으며 송지영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난번에는 2분 30초. 오늘은 무려 30초 더 많은 3분이나 버티게 되었으니까.
“진짜 잘하네요.”
처음에는 웬 낙하산인가 싶어 싫어하던 경태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재능과는 별개로 박하나는 24시간 훈련 생각밖에 없는 노력가였다.
열심히 하고 또 예의까지 바른 병아리를 싫어할 사람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지나가던 대원들 모두 그녀를 응원하고 또 가르쳐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중위님 처음 만났을 때가 딱 저랬어.”
“예? 진짜요?”
가만히 자리를 지키던 문 상사가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쑥덕거렸다.
이에 내 과거를 잘 모르던 경태와 가은이가 관심을 보이며 귀를 쫑긋거렸다.
“그때는 뭐 미친놈 하나 들어왔다고 했었으니까. 박하나 정도면 귀여운 편이지.”
“저게 귀여운 편이라고요?”
“말도 마 진짜. 중위님 별명이…… 악!”
나는 좋다고 웃고 있는 문 상사의 머리를 세차게 때려 그 입을 다물게 해주었다.
“요즘 심심해? 옛날 생각나게 해줘?”
“저희는 아무것도 몰라요!”
헉! 문 상사는 깜짝 놀라 도망쳤고 경태와 가은이는 눈치껏 막사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에 혀를 쯧 차다가도 대원들과 함께 있는 박하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잘 어울리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녹아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 속도면 늦가을이나 초겨울쯤 첫 실전을 나가봐도 되지 않을까.
제발 그전까지 미래 일기가 입 닥치고 성장을 기다려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삐리리리리!
그 순간 주머니 속 위성 전화기가 울리며 김태하 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장님.”
-혹시 지금 시간 괜찮나?
“이제 막 훈련 끝났습니다.”
-그럼 나 좀 잠시 보지.
“금방 가겠습니다.”
지난 두 달간 얼굴 한번 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업무에만 매진하던 김태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의 목소리에서 피곤함보단 강한 심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드디어 경로가 정해졌나.
나는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서둘러 연병장을 빠져나갔다.
맴맴, 평화롭게 울리는 매미 소리가 성큼 다가온 여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 * *
본부 막사 안에는 이미 지휘관과 부관들이 모여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에 눈치껏 분위기를 파악한 나는 김태하 소장 옆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랍니까?”
“전파 방해를 발생시키는 군락을 찾아냈다더군. 미연방 측에서 직접 알려준 정보야.”
“그게 가능한 일이었군요.”
“몰라. 외계인이라도 고문했나 보지.”
현존하는 모든 감염체 장비는 사실상 미연방 측이 대부분 개발했다고 봐도 좋다.
그 뛰어난 기술력에 매번 놀라고는 하는데 설마 전파 방해까지 추적할 줄이야.
김태하 소장 말대로 연구소 지하에 외계인을 가두고 사육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위치가 어디랍니까.”
“오사카랑 나고야로 추정 중이야.”
“딱 도쿄로 가는 길목이네요.”
“미국도 이때다 싶은 모양이지.”
우리가 도쿄까지 가려면 오사카와 나고야는 필수적으로 지나가는 대도시다.
그런데 그곳에 전파 방해를 일으키는 군락이 있다고 하니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그 군락들만 처리하면 도쿄까지는 쭉 나아갈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늦어서 미안하오.”
김태하 소장과 한창 쑥덕거리고 있는데 잠시 나가 있던 마이클 소장이 돌아왔다.
그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한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모두 소식은 들었을 테니 바로 본론만 이야기하겠소. 현재 미연방이 파악한 전파 방해 근원지는 총 두 곳, 아무래도 이곳이 연합군의 최우선 타격 목표가 될 것 같소.”
“놈들도 미리 대비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다만, 우세를 점하겠다는 대통령 각하의 뜻이 확고한 바, 이번에도 한반도 연합과 힘을 합치고 싶소.”
마이클 소장이 손짓하자 부관 중 한 명이 브리핑을 위한 화면을 허공에 띄웠다.
그곳에는 위성사진과 함께 군락 위치로 추정되는 반투명한 원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 전파 방해로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저 10㎞ 반경의 원형이 한계인 모양이다.
“동시 타격을 생각 중이요.”
“실패할 확률이 높지 않습니까?”
“전술핵을 허가받았소.”
전술핵이라는 말에 의문을 표하던 지휘관들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술핵. 전술핵 정도라면 불리한 상황을 뒤집고도 남을 힘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결국 지하 둥지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됐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마이클 소장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특임대를 이끄는 내게로 쏠렸다.
“일단 가능은 합니다. 추정 위치가 10㎞ 반경으로 줄었으니 시간도 짧을 거고요.”
만약 도시 전체를 뒤져야 한다면 일주일이 넘게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연방 덕분에 정찰 범위가 10㎞로 줄었으니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다.
“문제는 동시 타격입니다.”
“한쪽이 실패할 상황을 우려하는군.”
“예. 제가 두 명은 아니니까요.”
이번 타격 작전의 성공 여부는 동시 소멸이 가능했을 때를 전제로 하고 있다.
만약 한쪽이라도 실패하면 다른 팀은 물론 연합군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내가 아닌 현장 지휘관에게 우리 특임대를 맡길 수는 없었다.
“서로 연락이라도 된다면 좋을 텐데…….”
“사실상 현장 지휘관 재량입니다.”
이는 마이클 소장도 같은 생각인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동시 타격은 포기하고 본대가 직접 진출해야 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저희입니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오사카로 넘어갑시다.”
김태하 소장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지휘관들은 하나둘 막사 밖으로 떠났다.
나 또한 그들과 마지막으로 인사한 뒤 다들 훈련 중인 연병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사각.
“……?”
그런데 그 순간, 몹시 익숙한 소음 하나가 내 귓가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깜짝 놀란 나는 혹시 그 ‘새끼’를 들고 왔나 싶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하지만 개인 막사에 두고 온 미래 일기가 몰래 따라왔을 리는 없고…… 설마?
“아!”
나는 환청처럼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막사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시발!
당장 멈춰!
.
.
.
.
사각, 사각, 사각!
[현재 상위 군락은 규슈와 가장 가까운 군락 군체인 오사카에 감염체를 집결시키는 중이다. 이는 인류의 진출을 막기 위한 방어 병력이며 동시에 언제든 규슈를 공격할 수 있다는 놈의 호전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상위 군락이라도 오사카와 나고야를 동시에 공격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는 찌르기 좋은 허점이며 동시에 진화하고 있는 상위 군락의 팔다리를 잘라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슬슬 상속자로서의 능력을 갖춰간 ‘그녀’는 다음 과제를 위해 여정을 떠날 차례가 왔다. 나고야 시에 도달해 전파 방해 군락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와 합을 맞춰 놈에게 전술핵을 유도하자.]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