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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68화 (168/180)

<168화>

차량으로 이동하는 오사카 팀과는 달리 나고야 팀은 이동 경로가 꽤나 복잡하다.

일단 오사카~나고야 간 감염체 밀집 지역을 피하려면 비와호를 건너야 했다.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만큼 단순히 건넌다는 행위조차 힘이 들기 마련이다.

나고야 팀은 오직 고무보트에 의존한 채 드넓은 호수를 밤낮없이 나아가야 했고, 반나절이 넘게 흐르고 나서야 나고야로 향하는 5번 국도에 접어들 수 있었다.

시간은 지나 약속 시간을 12시간 앞둔 시점, 드디어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야.”

자신을 부르는 상냥한 목소리에 쪽잠을 자던 박하나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

주변을 둘러보니 험비 대신 노획한 고물 승합차가 길가 한가운데 멈춰있었다.

무슨 일 있나?

박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권총 손잡이 위로 오른손을 올려두었다.

“도착했어.”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않는 그 모습에 송지영은 대견하다는 듯 웃으며 속삭였다.

현재 위치는 나고야 시와 대략 10㎞가량 떨어진 한적한 외곽 도로 부근이었다.

지금부터는 차에서 내려 나고야가 내려다보이는 관측 지점까지 걸어가야 한다.

“죄송해요.”

“아니야. 준비됐으면 가자.”

서둘러 떠날 채비를 끝낸 박하나는 대원들 뒤를 따라가며 야간 투시경을 썼다.

주변은 마침 도로 경사가 높아져 나고야 시가 내려다보이는 관측 지점이 있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 대원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도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뭐 좀 보여?”

“선배가 짚어준 곳부터 찾아보려고요.”

박범석 말에 의하면 전파 방해를 퍼트리기 유리한 높은 고지가 군락 포인트다.

송지영은 주변 지형과 도시 구조를 일일이 비교하며 놈의 위치를 찾으려고 했다.

이럴 때 드론이 있으면 좋으련만, 강력한 전파 방해 탓에 그것도 쉽지 않은 상황.

송지영과 문 상사는 사뭇 심각한 얼굴로 최대한 빨리 관측을 진행하려 했다.

찌릿!

그런데 그 순간 가만히 옆을 지키고 있던 박하나가 불현듯 미간을 팍 찡그렸다.

이상하게 생채기가 생겼었던 왼쪽 볼에서 찌릿한 전기 신호가 왔기 때문이었다.

뭐지, 벌레한테 물렸나? 꼭 누군가 이쪽을 보라고 볼을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박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감각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하나야?”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해졌다는 걸 눈치챈 송지영도 덩달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거대한 구조물 하나가 무언가와 뒤엉킨 채 기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잠깐, 저기가 어디지?”

“미들랜드 스퀘어! 아마 거기 맞을 거야.”

나고야에서 제일 높은 빌딩임과 동시에 박범석이 짚어준 군락 포인트 중 하나였다.

후쿠오카에 있던 둥지를 꼭 닮은 것으로 보아 저기가 근원지일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 알았어?”

“우리 병아리가 감이 좋은데요.”

빠르게 목표를 특정한 문 상사와 송지영은 환한 웃음과 함께 박하나를 쓰다듬었다.

싸움 실력만 닮은 줄 알았더니 군락 찾는 솜씨도 아주 박범석을 빼다 닮았다.

“이동하자.”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걱정이었는데 박하나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순식간에 자리를 정리한 대원들은 무기와 장비를 챙겨 언덕에서 내려왔다.

이제 남은 건 감염체와 변이종이 득실거리는 저 도시로 들어가는 일뿐이다.

‘할 수 있어.’

아무리 상속자의 보정을 받았다고는 해도 첫 작전이라 마음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박하나는 대원들 몰래 심호흡을 하며 주체할 수 없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했다.

“이리 와봐.”

그 순간 가만히 걷고 있던 문 상사가 갑자기 팔을 끌고 자신을 앞으로 데려왔다.

졸지에 대열의 선두에서 걷게 된 박하나는 숨을 헉 들이켜며 뒤를 돌아봤다.

“어때?”

“네?”

“여기 선 기분 말이야.”

한때 세상을 밝혔던 야경은 도시를 떠나 밤하늘의 별이 되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그 아득함은 광활한 평원을 달리는 바람과 같았고, 또 끝없는 바다 위의 돛단배 같았다.

이 앞은 오로지 자신뿐이구나…….

또 그 뒤는 오로지 대원들만이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다.

누구의 자리였을까.

박범석이 짊어졌던 무게이자 또 상속자로서 걸어온 길은 너무나 외롭고 눈부셨다.

“언젠간 네가 서게 될 자리야.”

“예, 예!”

드디어 용기를 되찾은 박하나를 보며 문 상사와 송지영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싸우기 위해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에는 어째서인지 환한 웃음만이 맴돌고 있었다.

* * *

한참 골목을 가로지르던 나는 표지판을 확인하자마자 서둘러 정지 신호를 보냈다.

‘멈춰.’

그 순간 인간의 흔적을 추격하던 변이종 수십 마리가 교차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끼이이익!

놈들은 사냥감을 놓쳤다는 것에 분노하며 곧 다른 골목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에 뒤따라오던 대원들은 참고 있던 숨을 후우 내쉬며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렸다.

만약 1초 먼저 골목을 빠져나갔다면 저 변이종 무리에 모습을 발각당할 뻔했다.

‘일기가 이런 것도 알려줘요?’

‘아니. 왜 이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원래라면 내 감각과 교란 장치에만 의존한 채 감염체 지역을 가로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조용하던 일기 녀석이 오늘따라 열심히 서포터를 해주었다.

방금도 교차로를 조심하라는 조언을 보내줘 내가 미리 준비했던 것처럼 말이다.

너 갑자기 왜 그래?

이런 단기 예언은 박하나에게만 해주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그 친절함이 생소하면서도 동시에 만년필을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불편해졌다.

‘또 녹슬었어.’

일기 녀석이 미래를 예언하면 예언할수록 황금 만년필이 점차 녹슬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것 같아 제발 멈추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각!

하지만 미래 일기는 그럴 때마다 나를 독려하며 계속 나아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너도 최선을 다해.

말하고 싶은 게 그거였을까.

나는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예언을 모두 암기한 뒤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동.’

거의 4시간 가깝게 도시를 가로지른 결과, 목적지까지는 이제 1㎞ 남짓 남았다.

온몸이 땀으로 물든 우리는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좁고 눅눅한 골목을 가로질렀다.

후욱, 후욱.

스카이 빌딩과 가까워질수록 대기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공기가 탁해졌다.

생체 전기를 만들기 위해 발생시킨 열과 가스가 주변 환경을 완전히 바꾼 탓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익숙한 대원들은 수시로 방독면을 교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탁한 스모그 사이로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끼기긱, 끼익!

이미 둥지화가 된 스카이 빌딩에는 수많은 감염체가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지상은 산란장인가? 그렇다면 되도록 다른 길을 찾아 지하로 내려가는 게 맞다.

오물을 치덕치덕 바른 우리는 교란 장치에 의존한 채 둥지 외벽으로 접근했다.

‘이쪽.’

건물은 골격이 많이 무너진 탓에 몰래 들어갈 수 있는 개구멍이 제법 많았다.

적절한 진입로를 찾은 나는 대원들과 함께 그 아래를 엉금엉금 기어들어 갔다.

끼이이익! 끽!

실수 한 번이면 끝이다. 한 번 미끄러지면 나는 물론 대원들 모두가 죽는다.

점점 날카로워지는 감각 아래, 나는 기어코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출력 최대로.’

‘예!’

‘감지 장치 켜.’

‘작동 중입니다.’

교란 장치의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그 틈을 이용해 군락 감지기를 바닥에 꽂았다.

헤드셋을 쓴 기술 대원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패널 화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꿀꺽.

나는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느끼며 눅눅하고 어두운 둥지 내부를 살펴보았다.

상위 군락의 분노를 느낀 걸까, 놈들은 하나 같이 흥분하고 또 미쳐 있었다.

‘찾았습니다.’

하지만 감지기는 다행히 정상 작동하며 군락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냈다.

바로 이 아래다.

좌표를 딴 나는 미래 일기를 꺼내 나고야 팀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부탁한다.’

일기는 맡겨만 달라는 듯 미약한 빛을 한 번 머금더니 곧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 * *

그 시각 나고야 팀은 무사히 도시로 진입해 목적지인 미들랜드 스퀘어까지 도착했다.

군락은 스카이 빌딩과 마찬가지로 43층짜리 건물 전체를 둥지화 시켜두었다.

문 상사는 오랜 경험을 살려 위험한 지상이 아닌 지하로 접근하는 것을 선택했고, 미들랜드 스퀘어 옆에 있는 지하상가를 통해 내부 깊숙한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왔어요!’

때마침 오사카 팀에서 군락을 찾아냈다는 소식이 미래 일기를 통해 전해졌다.

문 상사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본격적인 군락 탐지 작업을 시작했다.

툭!

줄과 연결된 무게 추 하나를 지하 깊숙한 곳에 던져 감지기를 작동시켰다.

헤드셋을 쓴 송지영은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으며 패널을 살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걸려다오.

사방에서 들려오는 감염체 울음소리에 대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총구를 들었다.

삑, 삑, 삑. 감지기에서 발생하는 작은 기계음만이 흘러가는 시간을 체감하게 했다.

삑!

그 순간 한창 탐지기를 조작하던 송지영이 두 눈을 뜨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찾았어요!’

‘어디야?’

‘둥지를 대각선으로 길게 파고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600m 정도 떨어진 지점이요.’

수직으로 파고 내려간 오사카와는 달리 나고야 군락은 둥지를 서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전술핵 벙커 버스터를 제대로 유도하려면 정확한 지점까지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문 상사는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려고 했다.

“윽!”

그런데 그 순간,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박하나가 갑자기 통증을 호소했다.

뭐야, 왜 그래! 비틀거리는 모습에 깜짝 놀란 송지영과 대원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박하나는 고통을 느끼는 와중에도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설명하려 했다.

“도, 도망쳐야 해요!”

“뭐? 도망?”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미숙한 감각 제어는 도리어 희망만을 앗아갈 뿐이었다.

쿠르르르릉-!!

바닥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곧 벽과 천장으로 빠르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대지를 울리는 갑작스러운 지진에 한참 달려가던 대원들은 황급히 멈춰 섰다.

치직, 칙!

게다가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이던 군락 교란 장치가 갑자기 먹통이 되어버렸다.

깜짝 놀란 문 상사는 총기에 부착된 도트 사이트까지 먹통인 것을 확인했다.

“놈들이 옵니다!”

저 멀리 지하상가 입구에서 수많은 감염체와 변이종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왔다.

투두두두두두두!

그 광경에 깜짝 놀란 대원들은 황급히 대응 사격을 가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란 장치가 먹통이 된 이상, 어디를 간다고 한들 위험한 건 매한가지였다.

“뒤로 뛰어!”

이를 악문 문 상사는 어쩔 수 없이 지하상가 반대편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빨리! 빨리! 한참 대응 사격을 하던 대원들은 장비를 버리고 후퇴를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악-!!

증오와 분노, 광기와 사무치는 어둠이 감염체 무리를 거대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놈들은 서로를 밟고 뛰어넘으며 좁은 지하상가를 꾸역꾸역 밀고 들어왔다.

허억, 허억!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전속력으로 뛰고 있음에도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폭격 유도는커녕 자신을 포함한 대원들 모두 전멸하게 생겼다.

“C4!”

그 순간 기지를 발휘한 문 상사가 가지고 있던 폭발물을 지하상가 기둥에 부착했다.

이에 덩달아 가방을 연 대원들도 천장과 벽면에 폭발물을 하나씩 부착했다.

100m, 90m, 80m. 점점 좁혀져 가는 간격을 두고 문 상사는 앞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5초로 설정한 폭발물이 연달아 작동하며 지하 기둥을 무너트렸다.

동시에 천장 또한 우르르 무너져 내렸고, 몰려오던 감염체들은 그 아래 깔려버렸다.

쿠르르릉!

하지만 이 여파는 앞서 달려가던 대원들까지 덮치며 세상을 회색으로 물들였다.

쿵!

박하나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감싸 안는 송지영과 빛나는 모나미 볼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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