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폭격기가 살포시 내려놓고 간 B61 Mod 12는 유도기가 설치된 지상으로 떨어졌다.
벙커버스터는 그 이름이 아깝지 않게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둥지까지 도달했다.
쿠우우우웅 - -!!
겨우 0.3kt짜리.
핵무기 중에는 초소형 취급받는 전술핵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핵은 역시나 핵.
군락은 둥지 채 소멸했고 인근 지역에 깔려있던 전파 방해 현상은 완벽히 사라졌다.
그 말인즉슨 오사카와 나고야, 두 팀이 모두 작전을 성공시켰다는 걸 의미했다.
‘호프 투, 들리십니까?’
하지만 나고야시로 향했던 폭격기는 임무를 끝낸 대원들과 접촉하지 못했다.
이에 놀란 연합군은 서둘러 구조팀을 파견했고 하루 뒤,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삑, 삑.
중환자실에는 송지영과 박하나를 포함한 대원들이 마치 죽은 듯이 누워있다.
그들 모두 살아있는 게 다행이라고 여길 만큼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있었다.
고작 3분의 1이다.
나고야시로 떠났던 대원 중 살아서 돌아온 인원은 채 10명조차 되지 않았다.
“형님!”
중환자실 유리창에 손을 올리고 있던 나는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깜짝 놀란 경태와 가은이가 달려와 한 쪽씩 팔을 부축하며 의자에 앉혀주었다.
어지러움이 가라앉지 않는다. 눈앞이 핑핑 돌고 입안이 마르다 못해 따끔거린다.
탁!
가까스로 구역질을 참은 나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벽을 짚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같이 가드릴까요?”
“아니야. 괜찮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다리에 힘을 주고 복도 끝 화장실까지 힘겹게 걸어갔다.
철컥! 들어와서 문을 잠근 나는 세면대를 붙잡고 일그러진 얼굴을 씻으려고 했다.
우웩!
하지만 참고 참았던 욕지기가 터져 나오며 목구멍으로 신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마지막 감정마저 모래알처럼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결국 물조차 틀지 못한 나는 세면대 앞에 털썩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보내는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래 일기를 거역하는 한이 있더라도 안전하게 갔어야 했다.
왜 성급했을까. 왜 그 둘에게는 도망쳐도 된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못했을까.
상속자라고 밝혔던 그날 밤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나는 고함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입을 억지로 쑤셔 막으며 고개를 떨궜다.
잘그락.
문 상사가 마지막까지 차고 있던 군번줄이 까맣게 그을린 채 흔들리고 있다.
나는 흐려지는 두 눈을 감으며 흔들리는 군번줄 아래 조용히 고개를 처박았다.
‘중위님!’
녀석을 처음 만났던 그날의 기억, 함께했던 행복한 나날, 또 떠나는 마지막 뒷모습까지.
꼭 내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모든 과거가 주마등이 되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늘 일어나서 걸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일어날 수 없다.
나는 한동안 세면대 아래 앉아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군번줄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 * *
작전이 성공했다는 기쁨과 특임대 피해가 컸다는 슬픔이 연합군 내에 공존한다.
병사들은 묵묵히 할 일을 하면서도 죽은 대원들을 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건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잠시 주춤거리는 와중에도 전선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이번 작전으로 승기를 잡은 연합군은 전선이 고착되어있던 시모노세키를 돌파했다.
또 오사카와 나고야를 빠르게 가로지른 뒤 하마마쓰시까지 도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연히 연합군의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고 제프리는 직접 일본 전선까지 방문했다.
그는 사령관들 앞에서 추가 증원을 약속하며 승리하는 그날을 기약했다.
‘곧이다.’
이제 이 전투는 단순히 연합군을 떠나 인류의 존망을 거는 전쟁으로 변했다.
전선으로 자원한 이들 모두, 격정과 용기를 품고 마지막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전쟁의 영웅들은 상실이라는 아픔 아래 고통 받고 있었다.
“박하나! 정신 차려!”
드디어 의식이 돌아온 박하나가 안정제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발작을 일으켰다.
이에 깜짝 놀란 의료진은 빠르게 달려와 버둥거리는 그녀를 부여잡았다.
“꺄아아아아악!”
“진정제! 진정제부터 투여해!”
밤하늘 별보다 밝게 빛나던 눈동자가 흔들리다 못해 뿌옇게 흐려져 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그 모습에 대원들까지 소란을 듣고 달려왔다.
지난 새벽에 이어 벌써 세 번째 발작이지만, 그 누구 하나 그녀를 탓할 수 없었다.
“문, 문 상사님이! 아아악!”
“진정해. 응? 제발!”
이제 고작 20살이 된 신병이 첫 작전에서 상관은 물론 전우 대부분을 잃었다.
대원들까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 광경을 직접 본 박하나가 멀쩡할 리 없었다.
이를 말리던 가은이는 결국 눈물을 터트렸고 다른 대원들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하나야.”
그런데 그 순간 대원들 뒤에서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하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발작을 멈추고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
그곳에는 어느새 의식이 돌아온 송지영이 자신을 바라보며 힘겹게 웃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피부로 느껴지는 따뜻한 품이 천천히 자신을 어루만졌다.
“네 잘못 아니야.”
그 말에 울음이 터진다. 박하나는 송지영을 끌어안고 마치 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에 함께 있던 대원들은 하나둘 고개를 돌려 축축한 눈가를 감추어야 했다.
얼룩진 피와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오직 영혼이 흘리는 아린 눈물뿐이었다.
“범석아.”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김태하 소장이 다가와 어깨를 잡았다.
검은 제복을 차려입은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찰칵!
우리는 입 안 가득 쓴 내를 머금으며 어젯밤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상황은요?”
“전세는 반쯤 넘어왔어. 후지산 군락도 슬슬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는 모양이야.”
하위 개체 중 친자식이라고 볼 수 있는 오사카, 나고야 군락이 소멸하며 감염체에 대한 통제권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에 본대는 이미 포위망을 구성 중이며 항공모함 또한 도쿄 앞바다로 진출하여 공중 폭격을 가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제 후지산이 코앞이다.
본격적인 총공세가 시작되면 전술핵 더미가 놈의 둥지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이에 무언가를 망설이던 김태하 소장은 결국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슬슬 전쟁도 막바지야. 마이클한테는 내가 말해둘 테니까, 대원들 데리고 복귀해.”
먼저 복귀하라는 말에 마저 털지 못한 회색 담뱃재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다 타고 남은 담뱃재는 마치 타오르고 남은 나와 대원들을 보는 것 같았다.
“자네 마음 모르는 거 아니야. 하지만 이제 다른 대원들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연이은 작전 피해로 강릉 특임대는 사실상 전력을 모두 소실했다고 봐도 좋았다.
이제 전파 방해도 사라진 마당에 특수전을 무리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상징적인 의미가 사라질 걸 우려한 지휘관들은 더 이상의 작전은 막고 싶어 했다.
아마 여름이 끝나갈 때쯤이면 우리 특임대는 강릉으로 복귀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손이 계속 떨리네요.”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려고 해도 내 심장은 이상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점점 쌓여가는 대원들의 군번줄이 이상하리만큼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저 멀리 병실에서 들려오는 박하나의 울음소리는 아무리 지나도 잊히지 않았다.
* * *
김태하 소장과 구 단장의 거듭된 설득으로 강릉 특임대 복귀 날짜가 결정되었다.
우리는 그 즉시 주둔지를 후방인 후쿠오카로 옮겨 치료와 복귀 준비에 집중했다.
아마 대원들의 상태가 괜찮아지면 준비된 직항기를 타고 강릉으로 복귀할 것이다.
오랜만에 받은 휴가다.
어둠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늦은 밤, 경태와 가은이를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
“옛날 생각나네요.”
“그러게.”
특별한 날이면 아파트 옥상에 모여 닭백숙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때가 있었다.
오늘따라 그리운 그 추억을 되새기며 우리는 술잔 위에 씁쓸한 웃음을 걸었다.
하지만 마냥 웃고 있기에는 가슴 속 걸려있는 응어리가 아직 다 풀리지 않았다.
“형님, 우리 진짜 돌아가요?”
“그럴 거 같아.”
“정말 이렇게 두고 가는 거라고요?”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술기운이 오른 경태는 반쯤 울먹이며 억울함을 표했다.
그러자 가은이는 술잔을 기울이다 말고 녀석을 나무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너까지 왜 그래? 오빠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 나는……!”
“알아! 우리도 안다고!”
워낙 사람이 좋았던 문 상사라 두 녀석이 특히 잘 따라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그 누구보다 슬퍼했으며 복수해야 한다는 의지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후지산으로 쳐들어가 군락 머리통에 칼을 꽂아 넣고 싶은 심정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경태는 애써 분을 삼켰고,
한참 화를 내던 가은이 또한 입을 꾹 다물며 남몰래 흘린 눈물을 닦았다.
“마지막 잔 하자.”
아마 내일이면 본거지 철수와 함께 부상자를 호송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이다.
이제 이 지겨운 일본도 마지막이었기에 적당히 술잔을 비우고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건배를 끝낸 경태와 가은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숙소로 돌아갔다.
달칵.
모두가 돌아간 자리, 나는 석유등을 켜고 앉아 한숨과 함께 술기운을 뱉었다.
슬퍼하고 분노했던 두 사람처럼 아직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답답하다.
버릇처럼 미래 일기와 만년필을 꺼내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늘 황금색으로 빛나던 녀석들은 어느새 많이 낡고 또 녹슬어 있었다.
“너희도 가냐?”
밉고, 고맙고, 어떨 때는 원망스러우면서도 또 어떨 때는 의지하게 된다.
그런 존재가 점점 녹슬어가고 있는 걸 보니 나도 꼭 녹슬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몰려오는 술기운을 참지 못하고 간이침대 위에 그대로 누워버리고 말았다.
오늘 나에게는 내일 아침을 맞이할 여력도 강릉으로 돌아갈 자신도 없다.
지금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잠들고 싶다 그래, 아무 걱정 없이 아무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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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사각, 사각.
[수많이 하위 개체와 감염체 웨이브가 소멸함에 따라 후지산 상위 군락은 점차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가 만들어낸 벙커버스터와 전술핵이 자기 머리 위에 꽂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검열거부!>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생명이면 가지는 생존 본능이 상위 군락을 자극했다. 그 결과 이성이라는 것이 점차 사라졌고 곧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살덩이로 변모했다. 이는 인류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검열거부!>
[화산 활동이 감지됐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상위 군락이 유발하고 있는 치명적인 재난이었다. 이대로 놈을 방치하거나 벙커버스터를 발사한다면 일본 열도는 물론이고 한반도까지 그 영향이 미칠 것이다.]
<검열거부!>
[상속자의 의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선 상황이 더욱 파국으로 치닫기 전, 둥지 깊은 곳으로 침투해 이성을 잃은 상위 군락의 심장을 도려내자. 그것만이 이 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게 마지막 집필을 끝낸 만년필은 미래 일기 위로 힘없이 쓰러진다.
영원히 빛을 잃은 그 모습은 일기의 마지막과 또 다른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