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문 상사, 송지영, 최 대위와 같은 베테랑 현장 지휘관은 이제 여기 없다.
설상가상으로 대원들의 숫자조차 모자라서 일반적인 작전 또한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그런데 팀을 나눠야 한다니, 여기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어쩔 수 없어.”
척살을 맡을 경태 쪽에는 가은이와 박하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대원을 할당했다.
반대로 내 쪽에는 체구가 작고 달리기가 빠른 대원들로만 3명 정도 배치했다.
도망가기 유용한, 여차하면 사방으로 흩어져 군락 장치를 켜고 은폐할 목적이었다.
여러 사람을 데리고 가서 피해만 속출하느니 차라리 소수만 움직이는 게 편했다.
“얼마 안 남았어.”
우리와 반대 방향에서 출발했던 델타 팀과 정보사 또한 하나둘 소식이 전해졌다.
만약 그들이 진입하는 타이밍에 맞춰 함께 간다면 작전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우리는 작은 구덩이 안에 숨죽이고 앉아 잠시 서로가 내뱉는 숨결을 확인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손을 잡자, 눅눅하고 더러운 공기 속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치익!
그 순간 최소로 줄여둔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도착 신호라는 걸 눈치챈 나와 유인팀은 장비를 가지고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남은 대원들은 우리가 어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간절한 시선을 놓지 않았다.
후욱, 후욱.
적을 제대로 유인하려면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을 한 번 만져줘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가 처음 발견했던 감염체 둥지 허브로 달려갔다.
‘준비해.’
손가락을 까닥이자 대원 세 명이 수류탄 다발을 꺼내 사이좋게 핀을 뽑았다.
마찬가지로 확산탄을 꺼낸 나는 우글우글 모여있는 감염체 무리를 노려보았다.
핑!
지금이다. 타이밍을 맞춰 뛰쳐나온 우리는 모여있는 놈들에게 폭발물을 던졌다.
퍼어어어엉-!!
그 순간 맹렬한 폭음과 함께 수류탄과 확산탄이 동시에 폭발을 일으켰다.
우글우글 뭉쳐 있었던 만큼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가 휘말려 후두둑 쓰러졌다.
끼아아아아악!
적이다! 깜짝 놀란 놈들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침입자의 존재를 찾으려 했다.
나와 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총과 유탄을 꺼내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두두-!!!
인간이 쓰는 화약과 강철! 이보다 놈들을 자극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감염체는 총알과 유탄에 갈기갈기 찢기면서도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뛰어!”
순식간에 탄알집 하나를 전부 비운 나는 대원들에게 도망치라고 외쳤다.
때마침 허브에 모여 있던 감염체들은 마치 말벌 떼처럼 우르르 통로를 향해 몰려왔다.
끼이이이이익!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나는 먼저 도망친 대원들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렸다.
후욱, 후욱.
군락 교란 장치가 작동되는 와중에 뜬금없이 인간이 와서 자신들을 공격했다.
놈들에게 있어 감지할 수 있는 건 없는데 보이는 건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리가 노려야 하는 건 절묘한 줄타기와 그 부조화 속에 숨어들 수 있는 틈이다.
끼아아아아악!!
군락의 분노가 어찌나 맹렬한지 쫓아오는 감염체 숫자가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바닥, 벽, 심지어 천장까지 서로를 밟고 올라오는 회색 덩어리들로 가득했다.
이쯤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나는 숨어있던 척살팀을 향해 무전을 때렸다.
“시작해!”
앞서 달려간 대원 세 명을 순식간에 재치고 자연스럽게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개미굴 같은 미로가 반복되며 우리를 어딘가로 빨아들였다.
그 끝은 심연, 지옥, 아니 감히 어딘지도 가늠할 수 없는 아주 깊은 곳이다.
찌릿!
하지만 예민한 감각은 무형의 더듬이가 되어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
폭발하기 직전인 아드레날린과 그 반대로 차가운 이성이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사이 농축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용기라는 이름으로 몸에 스며들고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거리가 좁혀진다. 거리가 또 멀어진다.
100m 안쪽으로 릴레이가 이어졌다.
나와 대원들은 단 한 순간도 전력 질주를 멈추지 않으며 놈들을 유인했다.
겨우 5분조차 지나지 않았을 찰나의 시간이 우리에겐 억겁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찌릿!
그 순간 갑자기 감각과 말초신경들이 폭발하며 다가오는 위험을 알려주었다.
두 눈을 번쩍 뜬 나는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한 흐릿한 형체를 발견했다.
“엎드려!”
흔적을 쫓아온 일본 변이종 하나가 갈림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원 하나를 붙잡고 넘어지며 머리로 날아오던 공격을 가까스로 피했다.
투두두두두두두-!!
총구가 불을 뿜었다. 대원들은 침착하게 사격을 가하며 놈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하지만 공간이 협소한 탓인지 대원 하나가 허벅지를 찔려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넘어져서 사격을 가하던 나는 잽싸게 유탄을 꺼내 놈을 조준했다.
퍼엉!
좁은 공간에서 유탄을 쓰는 건 자살행위.
하지만 그게 특수탄이라면 다르다.
퍼엉!
퍼엉!
퍼엉!
방아쇠를 연발로 당기자 치료제 물질이 담긴 유탄이 놈의 머리에 명중했다.
끼아악!
사방은 흰색 분말과 연막으로 물들었고, 일본 변이종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나는 재빨리 총구를 돌려 놈의 얼굴을 정조준했다.
투두두두두두!
피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양쪽 눈을 노려 얼굴과 머리를 피떡으로 만들었다.
퍽!
동시에 개머리판으로 다리를 후리고 토마호크를 뽑아 놈을 향해 뛰어올랐다.
서걱!
미간 사이로 토마호크를 찍었다. 양쪽으로 비튼 도끼날 사이로 뇌수가 흘렀다.
순식간에 일본 변이종을 사살한 나는 허벅지를 다친 대원을 등에 업었다.
“두고 가십시오!”
“웃기지 말고 꽉 잡아.”
나는 그 어떠한 것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전우의 무게를 짊어지고 달려갔다.
우리가 떠난 빈자리는 몰려온 감염체 무리로 인해 금세 회색으로 물들었다.
* * *
상위 군락이 둥지 내에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박범석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임수일 뿐, 진짜는 구덩이에 숨어있는 타격팀이었다.
‘가자.’
박범석으로부터 무전을 받은 경태는 대원들을 이끌고 감염체 허브로 향했다.
예상대로 그곳은 텅텅 비어있었다. 그들은 즉각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와 통로를 지났다.
산란장으로 추정되는 방과 가까워지자 악취는 물론 오염 농도까지 더욱 심해졌다.
산란장이다.
방독면 유리를 닦은 경태는 잠시 멈추라고 지시한 뒤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끼익.
평소라면 산란장을 지키는 감염체나 변이종 몇 마리쯤은 두고 갔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건 상위 군락도 마찬가지인지 후방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찌릿!
순간 군락의 존재감을 읽은 박하나가 고통을 호소하며 비틀비틀 흔들렸다.
‘괜찮아?’
‘예, 괜찮아요.’
고통이 심해진다는 건 군락 본체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대원들은 박하나가 가리키는 기다란 통로를 따라 본체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지난 레드존 상위 군락과 마찬가지로 놈은 군체 전체를 집으로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하 깊숙한 곳에 만들어진 거대한 콘크리트 빌딩을 보는 것 같았다.
대원들은 군락 교란 장치 출력을 최대로 올린 뒤 군체를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퍽!
좁은 입구를 파고 공간을 넓혔다. 그 사이로 몸을 집어넣어 빠르게 내부로 들어갔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압박감. 언제 감염체가 몰려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드리웠다.
그들은 이 모든 걸 묵묵히 감내하며 한 발자국 군락 본체를 향해 접근했다.
그렇게 도달한 중심부, 저 멀리 번데기처럼 생긴 고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삐이이이이이이-!!!
놈은 예상치도 못했던 침입자의 등장 앞에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꿈틀거렸다.
이에 고치 주변을 호위하던 변이종들이 깜짝 놀라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본체 바로 앞까지 접근한 대원들을 막기에는 이미 늦은 지 오래였다.
투두두두두두두-!!!
묶어놓았던 고삐가 풀렸다.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던 대원들은 사격을 개시했다.
비록 많은 대원이 전사하고 은퇴했지만, 그 기세는 예전보다 더욱 맹렬했다.
포옹! 포옹!
포옹! 포옹!
치료제 물질이 담긴 유탄이 변이종에게 명중하며 사방을 하얀색 분말로 물들였다.
초마다 쏟아지는 압도적인 화력 앞에 변이종들은 몸이 묶였다.
퐁!
콰아아아앙-!!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다른 대원이 이번에는 일반 유탄을 발사해 사살했다.
옛날의 그들이 아니다. 놈들이 진화했듯 특임 대원들도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경태야!”
“나도 알아!”
주변을 호위하던 변이종 무리는 신무기 덕분에 별 무리 없이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상위 군락의 비명을 듣고 찾아올 수많은 감염체 무리였다.
경태와 화기 대원은 폭발물이 든 가방을 꺼내 군체 입구를 향해 집어 던졌다.
쿵!
콰르르르릉!
폭발물이 통로를 무너트리자 들어올 길도, 나갈 길도 모두 잔해로 막혀버렸다.
최후를 각오한 경태가 앞으로 뛰쳐나가자, 그 뒤를 대원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얼마 남지 않았다. 군락의 본체를 보호하는 고치가 80m밖에 남지 않았다.
아!
그런데 그 순간, 뒤따라오던 박하나가 갑자기 느껴지는 통증에 깜짝 놀라 외쳤다.
“놈, 놈이 도망쳐요!”
죽음의 공포 앞에 모든 걸 포기한 상위 군락이 고치를 버리고 떨어져 나온 것이다.
하필 그 꿈틀거리는 본체를 숨어있던 변이종들이 낚아채 후다닥 도망쳤다.
“쫓아가!”
“젠장, 놓치면 안 돼!”
설마 상위 군락이 군체와 본체를 포기하고 혼자 도망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악한 대원들은 천장을 기어 도망치는 변이종을 급히 따라가려고 했다.
끼이이이이익!
그런데 그 순간 군락의 비명을 듣고 몰려온 감염체들이 군체로 기어올랐다.
입구를 막은 덕에 시간은 벌었지만, 주변이 포위되는 건 어찌 막을 수가 없었다.
실패다.
놈을 놓치고 말았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대원들이 떠올린 것은 전멸이라는 참혹한 단어였다.
“다들 뭐해요!”
하지만 단 한 사람. 가장 먼저 무너질 줄 알았던 박하나가 총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군체로 들어오려는 감염체를 정확히 쏴 맞추며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서 포기할 거 아니잖아요!”
포기? 그래. 병아리라 부르던 박하나를 빼고 모두가 포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만큼 지쳤기에, 또 여기서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절망 때문에 말이다.
철컥!
1분이라는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 경태는 표정을 굳히며 총을 장전했다.
“…!”
이에 나머지 대원들도 총을 장전하고 몰려오는 감염체와 맞서 싸웠다.
하지만 늘 그들을 따라오던 불운은 오늘은 이상하게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
.
.
“응?”
성공적으로 감염체를 유인한 박범석은 숨어있던 구덩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찌릿!
분명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상위 군락의 존재감이 어째선지 가까워지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잠시만.”
이를 이상하다 느낀 박범석은 숨어있던 구덩이에서 나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째서?’
현재 위치는 분명 들어왔던 군락 둥지 입구와 정반대 방향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상위 군락의 존재감이 이쪽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박범석은 잠시 내려놓았던 장비와 무기를 챙겨 그 존재감을 향해 달려갔다.
늘 외면만 하던 행운의 여신이 오늘은 그에게만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