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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73화 (73/167)

#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 73화

21장 딱 보면 안다니까(2)

캐논즈의 스카우트 차종민 대리.

그가 생각하는 이번 시즌 충청권역 최고의 유망주는 바로 이 사람.

‘명주 천남고 심성준 선수.’

지섭은 내심 깜짝 놀라고 있었다.

선수들의 자동차를 얻어 타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물론 그래서 더 궁금한 것도 있다.

“심성준 선수라고 하셨습니까?”

지섭은 차 대리에게 물었다.

“그 선수의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제가 언뜻 듣기로는 스카우트들 사이에서의 평가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던데…….”

“이야, 지섭 씨도 야구 어지간히 좋아하시는 모양이네요? 충청권역 유망주들의 이름까지 싹 꿰고 있는 사람은 진짜 흔치 않은데.”

씨익 웃는 차종민 대리.

지섭이 ‘아, 예’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자, 그는 이제 막 끓기 시작한 감자탕 국물을 한 숟가락 뜨면서 입을 열었다.

“흐음, 글쎄요.”

후루룩.

국물을 맛보는 차종민 대리.

그리고 이어지는 답변은 다분히 ‘자동차 덕후’스러운 것이었다.

“저는 야구 유망주랑 자동차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거든요.”

“그, 그게 무슨…….”

“딱 보면 느낌이 온다는 거죠.”

예를 들어보자고요.

차종민 대리는 숟가락을 지휘봉처럼 ‘휘휘’ 돌리며 말을 이었다.

“지섭 씨가 주차장에 갔어요. 그런데 저기 앞에 차 두 대가 놓여 있는 거야.”

한 대는 독일의 명차 벤츠.

다른 한 대는 사회 초년생들의 다정한 친구 아반떼.

차종민 대리가 지섭을 보았다.

“제가 지섭 씨한테 ‘둘 중에 어느 차가 더 좋아 보이세요?’라고 묻는다면, 그 답변을 하는 게 어려울까요?”

“뭐……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요.”

지섭이 대답하자, 차 대리는 ‘그렇죠?’ 하면서 한쪽 눈을 찡긋했다.

“개중엔 브랜드 때문 아니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앞에 달린 로고를 떼고 보아도 답은 똑같이 나올 겁니다.”

“…….”

“자동차 전체의 균형감이라든가, 앞태며 뒤태,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만약에 여기서 자동차 시동까지 걸어볼 수 있다면, 게임은 거기서 끝나버리는 거거든?”

차 대리는 자신만만한 표정.

“제가 보기엔 천남고 심성준 선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었다.

“넓은 주차장 안에 최소 20만 킬로 이상 달린 낡은 경차들만 득시글거리는 상황에서, 그 안에 웬 반짝반짝 새삥 아우디가 한 대 딱! 하고 놓여 있는……. 그런 느낌?”

그게 무슨 느낌이냐고 묻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아내는 지섭이었다.

“타격, 수비, 주루, 어깨, 여기에 야구에 대한 진지한 태도까지……. 아휴, 심성준이 걔는 우리 충청권역의 벤츠고 BMW예요.”

“그 정도의 선수입니까?”

“예, 일각에서는 코치들 말을 잘 안 듣는다는 둥, 1루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리지 않는다는 둥, 이런 헛소리를 해대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은데…….”

차종민 대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명차(名車)란, 살짝 까탈스러운 부분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 * *

이날의 모임은 짧게 끝났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여름 밤.

고창덕은 소주라도 한잔 기울이고 싶은 듯한 눈치였으나, 이날의 주인공 격인 인물이 술은 입에도 안 대는 스타일이었던 터라.

“아휴, 죄송하네요. 제가 오늘은 안영찬 선배의 차를 빌려와서…….”

물론 그 ‘주인공’은 차종민 대리였다.

“그럼 다음 휴식일에 뵙도록 하지요. 제가 중고차 시장에 같이 가서, 진짜 좋은 차로 하나 골라드릴게요! 아휴, 걱정 마시라니까? 하하하.”

그 말 한마디를 남겨둔 채, ‘휭-’하고 사라지는 KH 캐논즈의 자동차 덕후.

그의 자동차가 멀리 사거리 너머로 자취를 감추자, 감자탕집 앞에 덩그러니 남은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휴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 빨린다. 어우, 기 빨려.”

하얗게 질린 얼굴로 ‘푸르륵’ 고개를 흔드는 것은 고창덕이었다.

“장호야, 저 차종민이라는 사람, 우리 팀 스카우트 맞지? 저기 인천이나 부천 쪽에 무슨 자동차 딜러……. 뭐 그런 사람은 아니지?”

이때 지섭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사람들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구나 싶어서.

무슨 주제가 나와도 거의 100% 자동차 이야기로 끌고 가는 차종민 대리.

솔직히 지섭은 그가 심성준 선수를 제대로 보고 ‘픽’을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

그러나 KH 캐논즈의 최고 타자님께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겉보기에는 사람이 좀 허술한 것 같지만……. 사실 저희 선수들 사이에서는 되게 인정받는 선배입니다.”

류장호의 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선수를 보는 ‘감’ 하나만큼은 끝내주거든요. 오죽하면 별명이 감종민이겠어요.”

“감종민이라고?”

“예.”

류장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기로는 차 선배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엄청 대단한 분이셨다네요.”

“대단하다고? 얼마나?”

“서울 강남에서 외과병원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뭐라더라? 88 올림픽 때부터 야구 국대 팀닥터를 하셨다던가?”

“국가대표팀 팀닥터?”

고창덕은 혀를 내두르면서 지섭을 바라보았다.

지섭도 내심 깜짝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유명하신 분이다 보니, 평소에도 선수들이 많이 찾아왔을 것 아닙니까? 그게 프로 선수가 되었든, 아마추어 선수가 되었든…….”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곁에서 온갖 유형의 야구 선수를 만나왔다는 차종민 대리.

그 경험 덕분에 그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선수를 보는 ‘눈’이 확고하게 만들어졌다는 것 같았다.

어떤 선수가 성공하는가.

또 어떤 선수는 실패하는가.

“그래서인지 선수들 사이에선 약간 상식처럼 통하고 있어요. 차 선배가 찍은 선수는 무조건 성공한다……. 실제로 성공한 선수도 한둘이 아니고.”

“예를 들면?”

“작년부터 미래 킹스 에이스로 뛰고 있는 찬엽이라든가, 동진에 있는 경민이 형이라든가……. 또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류장호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학교까지 찾아와 준 프로팀 스카우트는 차종민 선배가 유일했습니다.”

“…….”

“그때는 제가 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서…….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차종민은 그런 류장호를 과감하게 선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캐논즈의 선택을 받은 류장호는 어느덧 메이저리그 진출을 바라보는 선수로 성장했고.

“허허, 이것 참.”

류장호의 이야기를 들은 고창덕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사람은 겉보기로 판단하는 거 아니라더니……. 차종민 대리 그 친구, 타고난 스카우트구만? 안 그래?”

이런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지 싶었다.

그러나 그와 거의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의문도 있다.

“아니, 그건 그런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고창덕.

“그렇게 잘난 스카우트를 벌써 몇 년째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우리 캐논즈의 신인 선발은 계속 폭망이었던 거냐?”

류장호의 등장 이후로는 이렇다 할 신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KH 캐논즈였다.

좋은 신인이 나오지 않으니 외부 영입에 목을 맬 수밖에 없고, 그러다가 돈은 돈 대로 쓰고 성적은 성적대로 꼬라박는 게 지난 몇 년간의 상황.

고창덕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이때 지섭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한 편이었다.

“그거야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지섭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 구단에서 차종민 대리의 말발이 좀처럼 먹히지 않고 있다……. 뭐 대충 그런 상황이지 싶은데.”

“그, 그런가?”

내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고창덕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섭이 너…… 언젠가부터 척하면 척, 뭐 그런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그렇습니까?”

이걸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쁜 일이라고 해야 할지.

* * *

사실 어려운 추측은 아니었다.

차종민 대리가 현재 어느 파트를 맡고 있는지를 생각하니 결론은 쉽게 나왔다.

‘충청권역이라고 했었지.’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 야구판에서 가장 ‘황량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 충청권역이었다.

이 지역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팀이 오랫동안 하위권을 전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오죽하면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선수를 선발하는 ‘1차 지명 제도’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겠는가.

‘물론 좋은 연고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몇 년째 바닥을 기는 팀도 없지는 않다만…….’

어쨌든 충청권역은 그런 곳이었다.

학교의 숫자도 적고, 학생의 숫자도 적고, 때문에 좋은 유망주가 나올 확률도 낮은 곳.

‘차종민 대리가 본인 능력만큼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면……. 절대 담당할 수 없는 지역이지.’

그래서 만들어진 추측이었다.

‘차종민 대리는 스카우트 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지 정확히 사흘째 되던 날 오전이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고교야구 전반기 주말리그에 대한 보고 및 지명 후보 선수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KH 캐논즈 필드 3층에서 열린 전력 강화 회의.

아서 프리먼 감독의 통역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지섭은 본인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시즌 우리 KH 캐논즈는 8위를 차지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드래프트 최고 유망주로 손꼽히는 정성욱 선수는 지명이 불가능하고, 그다음 티어 선수를 봐야 하는데…….”

1라운드에서 지명 예정인 선수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유망주들의 이름을 읊어나가는 스카우트 팀장.

그러나 지섭의 귓가에는 좀처럼 ‘천남고등학교 심성준’의 이름이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으로 저희 스카우트팀의 브리핑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섭은 마지막까지 기다려보았으나, 이날 스카우트 팀장은 심성준 선수의 이름을 끝내 거론하지 않았다.

스카우트팀 직원들이 나눠준 배포용 자료 속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질 지경.

어쨌든 현재 KH 캐논즈 스카우트팀은 심성준 선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해 보였다.

“고생 많았습니다, 장 팀장.”

“감사합니다, 단장님.”

지섭이 배포용 자료를 뒤적이고 있는 사이, 어느새 회의는 마무리되는 분위기.

이때 지섭은 살짝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명백한 월권이라고 봐야 했다.

감독의 통역에 불과한 자신이 스카우트 팀장에게 차종민 대리에 대해, 혹은 심성준 선수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은.

‘뭐, 그렇기는 한데…….’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KH 캐논즈는 또 한 명의 유망주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재능 있는 스카우트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그런 스카우트가 똘똘한 선수를 찾아왔음에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

‘그래, 또 그런 일을 만들 이유는 없지.’

언제는 내가 영어를 잘해서 프리먼 감독의 통역이 되었던가.

이런 일이 생기면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끼어들어야 한다.

그러라고 이 빌어먹을 야구단에 들어온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래, 까짓거……. 욕 한 번 더 먹고 마는 거지 뭐.’

그렇게 마음을 굳힌 지섭은 조용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제 막 회의실을 빠져나가고 있던 스카우트 팀장을 향해 말을 걸었던 것이다.

“팀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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