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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82화 (82/167)

#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 82화

23장 예방접종 확인 증명서(2)

KH 캐논즈 소속 선수로서는 22년 만에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투수, 지미 모리스.

표면적으로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슈우우우- 파앙!

슈우우우- 파앙!

슈우우우- 파아앙!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펜에서는 훌륭한 피칭을 선보이는 모습.

“헤이, 미스터 코! 오늘도 고생 많았어! 덕분에 다음 경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오는데?!”

전력분석팀과의 미팅에도 꼬박꼬박 출석 도장을 찍고 있는 듯했다.

“아아, 사인을 해달라고요? 어렵지 않은 일이죠.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여기에 충실한 팬서비스까지 장착했으니, 누가 봐도 100점짜리 외국인 투수.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지섭의 시야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이고, 저 자식 저거…….’

지미 모리스가 불펜에서 성실하게 공을 던지고 있다는 건 팩트.

그러나 그 목적은 다음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가만있자, 오늘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가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쯤 어디서 나를 보고 있으려나?]

공을 던질 때도, 던지고 나서 코칭 스태프의 지도를 받을 때도, 녀석의 관심은 오로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뿐.

전력분석팀과의 미팅을 마치고 나올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데이터에 친숙한 선수를 우대한다지? 지금 미스터 코에게 잘 배워두면, 나중에 아는 척을 좀 할 수 있을 테니까…….]

고창덕이 만들어준 자료를 꼼꼼히 파악하기보다는, 그런 자료를 잘 챙기는 ‘이미지’ 만들기에 열중하는 모습.

이보다 더 황당한 것은 역시 팬 서비스를 해줄 때였다.

[잠깐만, 이 사인볼……. 내가 메이저리그에 가고 나면, 인터넷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거 아냐?]

자신의 사인볼로 누군가가 이득을 본다는 게 조금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안 되겠군. 사인볼에 이름을 같이 써줘야지. 이러면 경매 사이트에 올리기도 애매해질 테니까…….]

그런 꿍꿍이를 뱃속에 숨긴 채, 세상 친절한 표정으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물어보는 그 모습이라니.

‘흐흐, 아주 그냥 김칫국을 1L짜리 피처로 벌컥벌컥 들이마시는구만.’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섭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뭐, 약간의 자신감 과잉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지미 모리스였다.

그것도 단단히 술병이 나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상태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

그가 진지하게 메이저리그를 노리는 것도 캐논즈로서는 크게 손해가 아니지 싶었다.

‘메이저리그 복귀라는 목표가 생긴다면, 앞으로의 등판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할 테니까…….’

그러니 일단은 ‘중립 기어’, 지미 모리스를 지켜보기로 한 지섭.

그러나 투수의 ‘자신감 과잉’이 딱 팀에게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만 작용하길 바랐던 것은 애초에 너무 큰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음?’

그로부터 며칠 뒤,

“…….”

“…….”

야구장에 출근한 지섭은 캐논즈 라커룸에 흐르는 싸늘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 * *

트러블이 발생한 것은 지미 모리스가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지 정확히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이날은 화요일,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날.

새로운 한 주를 새로운 분위기로 시작하기 위해, 1군과 2군 사이의 엔트리 교환이 자주 이루어지는 날이기도 했다.

KH 캐논즈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날 2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던 선수 하나를 1군으로 올려보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들!!!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인사 올립니다!!!”

이름은 이수빈. 나이는 만 19세.

지난해 지명을 받고 캐논즈에 입단한 우투우타의 내야수로, 1군에 올라온 것은 이번이 난생처음이라고 했다.

“아아, 네가 이수빈이구나? 이야기 많이 들었다. 요즘 2군에서 홈런을 뻥뻥 때리고 있었다며? 미래의 4번 타자 감이라고 난리던데?”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눈 딱 감고 휘둘렀을 뿐인데……. 고, 공이 와서 그냥 맞은 겁니다!!!”

“뭐야, 2군 투수의 공은 눈 감고도 칠 수 있었다……. 뭐 그런 거야? 허허, 이 자식 보게?!”

“아,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고……. 죄송합니다아악!”

“응, 그래, 죄송하면 노래 한 곡 해보자.”

“……예?”

“노래 한 곡 뽑아보라고.”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신인 선수를 맞이하는 분위기는 비슷비슷.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신인이 귀여워서 그런지, 아니면 예전에 자기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캐논즈의 고참 선수들은 이제 막 1군으로 올라온 햇병아리를 둘러싸고 시답지 않은 농담 삼매경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지 싶다.

“헤이, 팍! 컴 온 히어!”

라커룸으로 들어서던 지미 모리스가 1군 매니저를 소리쳐 불렀던 것이다.

“응, 지미! 무슨 일이야?”

이때까지만 해도 밝은 표정으로 다가오던 1군 매니저 박용환 씨.

그러나 통역으로부터 지미 모리스의 질문을 전해 듣던 순간, 그의 얼굴에는 살짝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그러니까…… 네 옆자리에 물건을 갖다둔 사람이 누구냔 말이지?”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지미 모리스.

“내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었나? 나는 복잡한 걸 싫어해서……. 라커를 적어도 두 개는 써야 한다고.”

“그, 그랬었나?”

머리를 긁적이는 1군 매니저.

“내 옆자리를 쓰던 그 친구……. 오늘부로 2군에 내려갔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러면 이 자리, 당연히 내가 쓰게 될 줄 알았는데?”

도대체 누구야?

여기다 물건을 넣어둔 녀석.

싸늘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지미 모리스.

“지, 지미. 그, 그게 말이야…….”

1군 매니저는 난처한 표정만 지을 뿐, 그게 누군지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모습.

그러나 이때 캐논즈 선수들은 지미 모리스의 옆자리로 배정된 이가 누구인지 다들 눈치채고 있었다.

“어, 어엇…….”

신인 3루수 이수빈 선수.

이날 처음으로 1군을 밟은 햇병아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지미 모리스와 1군 매니저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이, 이봐, 지미!”

“그 라커 말인데, 사실은…….”

급격히 싸늘해지는 분위기를 눈치챈 캐논즈의 고참 선수들이 중재를 위해 앞으로 나섰으나,

“헤이, 미스터 팍.”

그들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지미 모리스는 1군 매니저에게 ‘최후 통첩’을 날리고 있었다.

“나 길게 말하지 않을게.”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는 지미 모리스.

“이 자리, 비워줘.”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이 팀에서…… 그 정도 대우는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해.”

* * *

이날, 트러블 자체는 별 무리 없이 해결되었다.

-신입, 여기 써라.

혼자서 세 개의 사물함을 쓰고 있던 천진우 선수가 신입에게 한 자리를 내어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원하던 대로 두 개의 사물함을 쓸 수 있게 된 지미 모리스.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나와서는 천진우에게 배팅볼을 던져주겠다며 난리를 피우는 모습이었다.

“헤이, 진우! 사물함을 양보해 준 보답으로……. 오늘은 진짜 제대로 된 공을 보여주지! 나랑 세 타석 승부를 하는 거야, 어때?!”

“……나쁘지 않군.”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훈련을 시작하는 선수들의 모습.

물론 그런 선수들을 바라보는 1군 매니저의 표정이야 쓴웃음 그 자체였다.

“내가 요즘 반성을 많이 합니다. 나도 현역 때 저렇게 유치한 짓을 많이 했었나…… 하고.”

다 큰 어른들이 사물함 하나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힌다.

연봉을 억대로 받아가는 양반들이 사물함 하나 때문에 저렇게 희희낙락하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1군 매니저도 자신의 현역 시절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매니저님은 저 정도까지 가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옆에 서 있던 지섭의 반응이었다.

“사물함 개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외국인 선수들의 특징이지 않습니까.”

“에이, 사람 마음 다 똑같지 뭐. 한국 선수들이라고 사물함 넓게 쓰는 거 안 좋아하겠어요?”

사용하는 사물함의 개수는 그 선수의 영향력에 비례한다.

이제는 한국 선수들 사이에도 이런 생각이 꽤 많이 퍼져 있다는 것이 매니저의 설명이었다.

“그래도 천진우 선배가 한 자리를 양보해 준 덕분에……. 사태를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었네요.”

1군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이제 지미도 사물함 두 개를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따로 불만을 가지지는 않을 테고요.”

휴우.

그렇게 1군 매니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으나, 지섭은 그리 편한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 확실히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마무리한 건 다행이긴 한데…….’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불안함.

‘지미 모리스라는 선수가…… 언제부터 저렇게 적극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린 거지?’

사물함 하나 정도 더 요구하는 건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친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이 너무 급격하게 바뀌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지미 모리스는 무척이나 소심한 캐릭터였는데 말이지.’

스프링 캠프 때만 해도 그랬다.

친한 친구가 곁을 떠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훈련에 집중하지 못한 채 흔들리던 게 지미 모리스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물함 하나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1군 매니저에게 눈을 부라리는 지경.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노히트 노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투수의 밸런스란 원래 양팔 저울과도 같은 것.

아주 작은 추가 하나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전체 밸런스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지섭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 자신감도 지나치면 문제가 되지.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예전에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외국인 투수들처럼 될 수도 있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기록을 달성했다는 성취감에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올라가는 녀석의 콧대를 어떻게 ‘꾹꾹’ 눌러줄 수 있을 것인가.

‘제일 좋은 건 역시 마운드 위에서 홈런 몇 방 얻어맞는 건데…….’

실전에서 얻어맞는 건 충격이 너무 클 테니, 이왕이면 훈련 단계에서 얻어맞는 게 좋을 듯했다.

‘마침 지금 라이브 배팅을 하고 있으니, 이때 얻어맞는 게 베스트인데…….’

지섭은 눈을 가늘게 뜨고 캐논즈 선수들의 면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천진우 선수의 라이브 배팅은 어느새 끝나고, 이제는 다른 선수들이 배팅 케이지 앞에서 지미 모리스를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류장호 같은 검증된 녀석에게 얻어맞아봤자 별 타격도 없을 테고, 여기서는 의외의 얼굴이 나와주는 게 좋은데 말이지.’

의외의 얼굴, 의외의 얼굴, 의외의 얼굴.

턱을 매만지면서 적당한 선수를 찾아 나가던 지섭.

그의 머릿속에 ‘반짝’하고 한 줄기 빛이 스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아아, 그래, 저 친구라면?!’

지섭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우투우타의 3루수 이수빈 선수.

이날 처음으로 1군 무대를 밟은 고졸 신인이자, ‘사물함 트러블’의 당사자였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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