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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84화 (84/167)

#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 84화

23장 예방접종 확인 증명서(4)

그로부터 며칠 뒤.

KH 캐논즈 필드.

빠밤! 빠밤! 빰빠바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려 퍼질 무렵.

원정팀 더그아웃의 박장수 감독은 작전 코치를 불러내고 있었다.

“어이, 정 코치!”

“예, 감독님!”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코치.

박장수 감독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면서 물었다.

“전달은 했나?”

“예, 틀림없이 전달했습니다.”

작전 코치의 시선은 더그아웃 앞에서 몸을 풀고 있는 1번 타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완전히 빠지는 공이라면 모르겠지만,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에는 번트를 대라고 지시해 두었습니다.”

선두 타자의 기습 번트 작전.

박장수 감독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작전 코치의 얼굴에는 약간의 머뭇거림이 묻어나고 있었다.

“……괜찮을까요, 감독님?”

“뭐가?”

고개를 돌리는 박장수 감독.

작전 코치는 감독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자들이 그러더군요. 오늘 캐논즈 선발 지미 모리스……. 그 친구의 불펜 피칭이 정말 어마어마했다고.”

“흐음, 그래?”

“예, 설렁설렁 던졌는데도 시속 150㎞를 우습게 넘겼답니다. 컨트롤이야 원래 좋은 투수였고요.”

컨디션이 굉장히 좋다는 이야기.

작전 코치는 본론을 꺼냈다.

“이럴 때 기습 번트를 시도한다는 게 좀……. 차라리 정공법으로 접근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흐흐, 정 코치. 자네쯤 되는 사람이 무슨 그런 소리를 하나.”

박 감독이 코웃음을 쳤다.

“한번 생각해 보게. 지미 모리스의 오늘 컨디션이 왜 좋을까? 어째서 150이 넘는 공을 뻥뻥 던질 수 있을까?”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한 차례 등판을 걸렀으니까요.

작전 코치의 대답을 들은 박 감독은 ‘그것도 맞지’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냐.”

“그, 그럼?”

“뽕이지, 뽕!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는 데에서 오는 뽕 말이야!”

박 감독이 말을 이었다.

“한 경기 내내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어. 22년 만의 대기록이라고 언론에서도 난리법석……. 그러니 지금쯤 저 친구의 기분이 어떻겠나?”

“조, 좋겠지요.”

“그냥 좋기만 할까? 완전 최고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투수라고! 가만있어도 어깨가 들썩들썩하고, 콧대는 자기가 알아서 막막 높아진단 말이야.”

그러니까 과감해진다.

과감해지면 구속도 오르고.

“이럴 때는 초반부터 투수의 혼을 쏘옥 빼놓는 작업이 필수적이지.”

마침 타석에 들어선 1번 타자.

박 감독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투수의 혼을 빼놓는 데에는……. 기습 번트가 최고거든.”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1번 타자가 지미 모리스의 초구를 상대로 기습 번트를 감행했다.

토옹!

배트에 맞고 떨어지는 공.

사실 이때만 해도 작전 코치는 속으로 ‘아이쿠, 이런’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투수의 공이 너무 빨랐던 탓인지, 아니면 컨트롤이 너무 기가 막히게 되었던 탓인지.

번트 타구가 거의 투수 정면을 향해 구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피처! 피처! 피처!”

“아이 갓 잇, 아이 갓 잇!”

포수의 지시에 따라, 서둘러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투수 지미 모리스.

번트 타구는 이미 힘을 잃고 그 자리에 거의 멈춰선 상태.

투수는 그냥 그 공을 주워들어 1루로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이지 플레이.

거저먹는 아웃 카운트 하나.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어, 어엇?!”

“어어어어?!”

캐논즈 내야수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투수 지미 모리스가 가만히 멈춰 있는 공을 한 번에 움켜쥐지 못했던 것이다.

“!!!”

깜짝 놀란 지미 모리스는 공을 쥐기 위해 손을 허우적허우적.

그러나 너무 당황했던 탓인지, 지미 모리스는 끝내 공을 집어 들지 못했다.

“나, 나한테 맡겨!”

결국 보다 못한 천진우가 앞으로 달려가 공을 집어 들었으나-

“세이프, 세이이이프!”

이미 타자 주자는 1루 베이스를 밟고 지나가 버린 상황.

KH 캐논즈 필드에는 홈팀 팬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진짜! 뭐 하는 거야! 가만히 있는 공도 못 주우면 어떡해!”

“지난 경기에서 잘한 건 플루크였냐? 오늘부터는 또 삽질을 시작할 생각이야?! 응!!!”

홈팀 팬들의 아우성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마는 캐논즈 선수들.

그 모습을 본 박장수 감독은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됐다, 됐어!’

주먹을 불끈 쥐는 박 감독.

‘번트 안타가 나와주었다면 베스트였겠지만……. 투수의 에러가 나와주는 것도 그에 못지않지!’

야구 하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예민하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것이 투수들이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와 수비만 해도 감이 흔들린다는데, 가만히 있는 공 하나를 제대로 줍지 못해서 출루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이제 투수는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지! 자신의 실수로 주자가 나가 버렸는데…….’

이제 어떻게 공략해 볼까.

번트를 한 번 더 지시해서 투수의 심기를 좀 더 건드려 볼까.

아니면 웨이팅 사인을 내서 볼질로 자멸하는 걸 기다려 볼까.

가능한 옵션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가만히 턱을 쓸어보는 박장수 감독.

그런데 바로 그 찰나, 마운드로 돌아간 지미 모리스가 동료들에게 뭐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통역!”

박 감독의 팀에도 외국인 선수가 있다.

외국인 선수의 통역을 담당하는 직원을 손짓해서 부르는 박장수 감독.

“캐논즈의 투수 말이야. 지금 뭐라고 떠들어 대고 있는 거지?”

“아아, 저 친구 말입니까?”

잠시 귀를 기울이는 듯하던 통역이 박 감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들 집중하자. 또 에러가 나오면 감독님이 되게 싫어할 거다……. 뭐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집중을 하자고?”

옆에 서 있던 작전코치가 피식 웃었다.

“거참, 뻔뻔한 친구일세? 에러는 자기가 해놓고 집중은 동료들더러 하라는 건 무슨 경우야?”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작전 코치와 통역 직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지만, 박장수 감독만은 그 분위기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그래, 뻔뻔한 이야기로군. 참으로 뻔뻔한 이야기이긴 한데…….’

혓바닥으로 마른 입술을 훑는 박장수 감독.

‘멘탈이 흔들린 투수가…… 저런 말에 입밖에 낼 수가 있나? 그것도 저렇게 큰 목소리로?’

이때 박 감독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KH 캐논즈의 선발 투수 지미 모리스는 이미 ‘예방 주사’를 맞고 나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예방 주사의 효과가-

아주,

굉장했다는 사실을.

* * *

KH 캐논즈의 자타공인 에이스 지미 모리스.

이날 그는 빼어난 피칭을 선보였다.

슈우우우- 파앙!

슈우우우- 파앙!

슈우우우- 파아앙!

1회 초, 상대 팀의 선두 타자에게 허용한 실책 출루가 뼈아팠던 건 사실이었다.

뒤이은 2사 2루의 상황에서, 적시타를 내주면서 1-0의 리드를 안겨주고 말았으니까.

그러나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위기 상황도 없이, 야금야금 이닝을 먹어나간 캐논즈의 에이스.

-지미 모리스 선수, 오늘 정말 대단한 피칭입니다! 삼진을 9개 잡아내는 동안, 피안타는 고작 2개! 상대 타선을 완전히 제압하는 모습인데요?

-그렇습니다. 보통 대기록을 달성한 투수들이 그다음 경기에서는 부진한 경우가 많은데……. 허허, 지미 모리스 선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높이 뜨는 타구! 2루수 안영찬 선수가 거의 제자리에서 잡아내는군요! 이렇게 7회를 마무리하는 지미 모리스 선수입니다!

7회까지 101개의 공을 던지면서 2피안타에 1실점, 9개의 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외국인 투수는 그해를 넘기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런 징크스 따위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듯, 상반기 마지막 등판을 최고의 피칭으로 마무리하는 지미 모리스였다.

“고생했다, 지미!”

“오늘도 최고였어!”

그렇게 등판을 마친 지미 모리스가 지섭의 옆자리에 ‘스윽’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것은 7회 말 공격이 한창이었을 때.

“헤이, 지섭.”

“음?”

지섭은 그라운드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대답하고 있었다.

지미 모리스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스코어는 아직 1-0.

조금 전 오랜만에 주자가 출루했던 터라, 지미 모리스에게 고개를 돌릴 여유가 없었던 것.

하지만 지미 모리스는 상대가 어떤 상황이든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고맙다.”

“뭐가?”

지섭은 경기에 집중하느라 대충 대답했던 것인데, 지미 모리스는 그가 부끄러워서 괜히 그러는 것이라 판단한 듯했다.

“나 이야기 들었다? 그 루키 내야수한테.”

“루키? 아아…… 이수빈 선수?”

“그래, 그 친구가 그러던데? 네가 내 구종과 코스를 다 일러줬다고. 그래서 홈런을 뻥뻥 때릴 수 있었던 거라고.”

“그, 그래?”

지섭은 입맛을 쩝 다셨다.

이수빈 선수에겐 입단속을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영원한 비밀은 없었던 모양이다.

“사, 사실 그게 말이지…….”

“알아, 알아! 내가 노히터 때문에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니까…… 적당한 시점에 기를 꺾어주려고 한 것 아니겠어?”

그래서 고맙다고 했잖아.

지미 모리스가 씨익 웃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궁금한 건……. 네가 어떻게 내 구종과 코스를 눈치챘는가 하는 부분인데.”

지섭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

“이봐, 어떻게 한 거야?”

“음?”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 구종과 코스를 파악하는 사람이 어딨어.”

“…….”

“데이터에 나와 있었던 거야? 아니면 나한테 무슨 버릇이라도 있어? 뭐 글러브 모양을 보면 던질 구종을 파악할 수 있다던가…….”

지미 모리스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본 지섭은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이 결코 그냥은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구종과 코스가 노출된다는 건 투수에겐 무척 예민한 사항이니, 그가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나는 네 속마음을 읽을 수 있어’라고 말할 수야 있나.

“그거야 뭐…….”

잠깐 고민하던 지섭은 대충 이렇게 둘러대기로 했다.

“이수빈 선수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알려준 건 그저 네가 자주 던지는 구종과 코스였어.”

“공을 던질 때마다 알려줬다고 하던데?”

“아니라니까. 내가 무슨 초능력자냐.”

지섭은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수빈 선수가 너한테 홈런을 뻥뻥 때려낸 건……. 전적으로 그 녀석의 재능 때문이었어. 내가 무슨 대단한 정보를 준 게 아니라고.”

“그, 그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좀처럼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지미 모리스.

이제 슬슬 이 녀석의 집요함이 귀찮게 느껴지려고 하던 찰나, 지섭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하나 내려왔다.

따아아아악!

그라운드에서 들려오는 한 차례 호쾌한 타격음.

2사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 있던 이수빈이 힘껏 공을 때려냈던 것이다.

“어엇! 이거 크다! 이거 커!!”

“어디야, 어디야!”

새까만 밤하늘을 정확히 둘로 갈라놓는 새하얀 궤적이 하나.

그 궤적이 야구장 좌측 담장 너머로 훌쩍 사라지자, KH 캐논즈 필드에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홈런입니다! 역전 투런 홈런! KH 캐논즈의 루키 이수빈 선수가 본인의 커리어 첫 홈런을 여기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20타석 가까이 침묵하고 있던 이수빈 선수인데요!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었던 아서 프리먼 감독에게 이렇게 보답해주는군요!

와아아아!!!

와아아아!!!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을 온몸으로 받으며, 주먹을 불끈 쥔 채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는 이수빈 선수.

“헐, 무슨 공을 저렇게 멀리…….”

깜짝 놀라 입을 쩌억 벌리는 지미 모리스.

지섭은 그런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입을 열었다.

“봤지? 저 친구 재능은 진짜라니까?”

“이야, 정말이네…….”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지미 모리스의 모습.

이 집요한 친구가 의심을 거두어들였다는 데에 안도하던 지섭이었으나.

‘휴우.’

그래서 그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조금 전에 커리어 최초 홈런을 때려낸 캐논즈의 루키 이수빈 선수.

그가 자신을 향해 멋들어진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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