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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막 시점-22화 (22/117)

아카데미 흑막 시점 22화

쾅! 콰앙! 콰앙!

아이리가 바닥에 쓰러진 도노반을 발로 연신 내리찍고 있었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퍽퍽!’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쾅쾅!’ 소리가 날 정도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블라디미르가 역정을 냈다.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분명 저 도노반 녀석이 아이리에게 시비를 걸었고, 아이리가 결국 참지 못하고 빡돌아서 참교육을 시전한 거겠지.

“아론 스팅레이……!”

블라디미르가 악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날 노려보았다. 마치 내가 저러라고 시킨 거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물론 난 억울하다.

내가 그러라고 부추긴 적은 없으니 말이다. 뻔히 벌어질 일이란 걸 알면서도 막지 않았을 뿐.

말하자면 사람을 향해 컹컹 짖고 있는 개의 목줄을 일부러 손에서 놓아 버렸다고 할까. 본인이 들으면 노발대발할 비유겠지만.

“이런 식으로 나옵니까?!”

“무슨 소릴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내가 그럴 이유가 있겠는가?”

사실 이유야 있었다.

다른 기업 스폰서들이 몰래 나누는 대화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놀랍군요. 어떻게 저렇게 작은 몸에서 저런 힘이?

-저 아이. 성격은 다소 불같은 듯하지만, 그런 편이 병사로서는 딱 좋죠.

-아직 가르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소재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 잘만 길들이면 상당히 쓸 만해질 것 같습니다.

-황태자가 맘에 들어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네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노반에게 쏠려 있던 관심이 순식간에 아이리에게 집중되었다.

그녀가 폭력을 행사하긴 했어도 그들은 도리어 그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달리 메가코프 후원자라는 작자들은 학생들을 일종의 투자 자산, 인간병기, 혹은 장기말 따위로밖에 생각하지 않으니.

조금 난폭하긴 해도 능력이 뛰어나다면 오히려 환영이라는 거겠지. 덩달아 그녀의 능력을 한눈에 알아보고 일찌감치 영입한 나에 대한 평가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슬슬 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다.

나는 표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

“일단은 저들을 말리는 게 우선이 아닌가? 저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정말로 큰일이 날 것 같은데.”

“……제길!”

블라디미르는 나를 노려보더니,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등을 돌렸다. 다급히 이동하는 그의 뒤를 경호 인력들이 뒤따랐다.

나는 그와 달리 느긋하게 마리아와 함께 훈련장 쪽으로 향했다.

“도련님.”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리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마리아는 진즉부터 내 의도를 눈치챈 듯 보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 의지에 따르겠다는 듯이 고개만 까딱 숙일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러지 말았어야지, 블라디미르.’

네가 감히 나를 향해 어쭙잖은 신경전만 벌이지 않았어도. 또 하필이면 그 대상이 아이리 앨리스벨만 아니었더라도 내가 이러진 않았을 거다.

아이리 녀석의 목줄을 똑바로 잡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막았겠지.

허나 너는 실수를 저질렀고.

내 신경을 거스르는 짓을 했다.

그러니.

이제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 * *

“말해 봐! 뭐? 뭐? 또 지껄여 보라고!”

콰앙! 콰앙! 콰앙!

아이리는 연신 도노반의 등에 다리를 내려찍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녀가 발길질을 할 때마다 도노반의 몸이 조금씩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노반 역시 그리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은 듯했다. 그 역시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씨발! 이년이 어따 대고-!”

“닥쳐.”

콰앙!

아이리가 몸을 일으키려던 도노반의 머리를 다시 한번 짓밟았다.

하지만 도노반의 얼굴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성질을 더욱 돋울 뿐이었다.

“개 같은 년이! 봐주니까 끝까지 기어오르고 있어!”

도노반은 아이리의 발길질을 그대로 받아 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이리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고, 도노반은 그 타이밍을 노려 아이리의 멱살을 잡았다.

부웅-!

도노반의 팔이 힘차게 머리 위로 솟구쳤다. 아이리의 얼굴을 후려칠 심산이었다.

그러나 아이리는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하! 때릴 테면 때려 보든가!”

아이리는 도노반의 주먹이 날아오는 즉시 반격할 준비를 했다. 어느 쪽이든 죽을 장을 봐야 끝낼 생각이었다.

그때 들려온 목소리.

“거기까지다.”

“이게 뭣들 하는 짓이냐! 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두 사람이 싸우는 곳으로 몰려왔다.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둘은 그제야 싸움을 멈추고 물러났다.

“아론 스팅레이…….”

“블라디미르 이사장님……!”

아론 스팅레이와 블라디미르 하리토노프. 뉴 발할라 시티를 지배하는 황족과 대귀족의 행차였다.

일반인들은 평생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인물들의 등장에 주변 학생들은 이번 사태가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웅성웅성.

심상찮은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열었던 것은 황태자, 아론 스팅레이었다.

“담당교관은 어디에 있지?”

“책임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론의 곁을 보좌하던 마리아가 그 대신 큰 목소리로 교관을 불렀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던 니시야마 교관은 그제야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선 멀리서부터 달려왔다.

“이, 이게 무슨 일…… 헉!”

니시야마 교관은 아론과 블라디미르의 얼굴을 확인하고선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곧장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눈을 뗀 사이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줄은……!”

“네가 책임자로군.”

“그, 그렇습니다만…….”

가늘게 뜬 황금색 눈동자가 니시야마 교관을 경멸하듯 위아래로 훑었다. 옆에 있던 마리아가 아론의 뜻을 대신하여 전했다.

“이번 일에 대한 관리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니시야마 교관님.”

“하, 하지만 저는……!”

“학생들을 데리고 가 주시죠. 교무부를 통해 조만간 이번 건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할 테니까요.”

“그, 그럴 수가……!”

“어서 가 주시죠. 저희 쪽 학생들은 나중에 따로 테스트를 받게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채근했다.

그에 니시야마 교관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나머지 학생들을 이끌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렇게 해서.

자리에 남은 것은 아이리와 도노반, 그리고 양측 학생들의 후원자들뿐.

먼저 입을 연 것은 블라디미르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도노반 폰 딜레이!”

“죄,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도노반은 조금 전과 달리 굉장히 겁을 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고작 자신들의 싸움에 갑자기 도시의 실세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했다.

“소란을 일으켜서 면목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공격한 건……!”

“그딴 게 문제가 아니다!”

블라디미르는 버럭 소리쳤다.

“어째서 저딴 여자애한테 손도 못 쓰고 당하고 있던 게냐! 어?! 네놈의 사이버웨어와 전투모듈에 얼마가 들어갔는지 아느냐! 내가 어찌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블라디미르에겐 도노반이 문제를 일으킨 것보다, 혹은 맞아서 다친 것보다도 ‘손도 못 쓰고 당했다’라는 사실이 더욱 화나는 일인 듯했다.

‘하! 쌤통이다, 망할 새끼.’

도노반이 꾸중을 듣는 모습에 아이리는 통쾌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마냥 속 시원해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뚜벅.

검은 그림자가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황금색 예리한 시선이 그녀의 전신을 훑는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위압감이 있었다.

말 그대로 황족의 눈빛.

오랫동안 위에서 군림해 온 특권계층 특유의 카리스마, 바로 그것이었다.

“…….”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눈빛만으로 겁을 먹고 용서를 구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아이리 역시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론은 분명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개인메일을 보내면서까지 당부했었고, 아이리에게 ‘거래’라는 당근까지 내보이면서 그녀를 어떻게든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리는 그 뜻을 거슬렀다.

아론은 틀림없이 분노했을 테고, 어떤 식으로든 명을 어긴 것에 대해 무거운 처벌을 내릴 것이다.

부자 놈들의 사고방식이야 뻔한 법이니까.

그럼에도.

아이리는 아론의 눈을 마주 보았다.

당당하게, 두려워도 결코 피하지 않고.

“난 잘못 없어요.”

그래.

어차피 이딴 취급은 숱하게 당해 봤다.

폴른 구역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굴욕을 겪어 왔던가. 얼마나 많은 차별을 당해 왔던가.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해묵은 상처들이 그녀의 가슴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결국 다 똑같은 놈들이야.’

댁도 다를 바 없겠지, 아론 스팅레이.

어차피 여기에 있는 놈들은 다 한통속이다. 이곳에 내 편은 없다. 아무리 용을 써 봤자 불합리한 판결을 받겠지.

‘그러니 적어도 당당하자.’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불합리한 일을 당할지언정, 절대 울며 고통스러워하진 않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목적을 이루지 못할지언정 비굴해지지는 않겠다.

적어도 가슴을 당당히 펴고 엿을 날려 주는 거다. 특히나 저런 빌어먹을 양복쟁이들, 특히나 스팅레이의 인간에겐 말이다.

“……할 말 있으면 하든가!”

아이리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 남자가 어떤 식으로 나오든, 그 어떤 모멸적인 말을 던지든. 거기에 철저하게 응전해 주기로 말이다.

벌을 주라면 주라지.

그렇다고 꺾이진 않는다.

어떻게든 너희에게 갚아 줄 거다.

한평생이 걸리더라도 말이야.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던 그때.

“아이리 앨리스밸.”

마침내 아론이 입을 열었고.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다친 곳은 없느냐.”

무심하고도 상냥한 한마디였다.

꿈에도 예상치 못한 대사였다.

그것이 석벽처럼 단단하게 굳어졌던 아이리의 마음에, 빗물 한 방울처럼 틈새 깊은 곳에 스며들었다.

순간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에? 아? 네, 저기……?”

“다친 곳은 없느냐 물었다.”

“아, 그…… 네, 안 다쳤는데……요. 사, 사실 제가 일방적으로 때렸다고나 할까…… 그, 그래서…….”

“그렇다면 되었다.”

짤막하게 대답한 아론은 곧장 고개를 돌려 도노반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노려보는 것에 가까웠다.

“답해라. 이게 무슨 일이지?”

“그래, 도노반! 어서 대답해 보거라!”

블라디미르 역시 도노반에게 채근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커지리라 예상치 못한 도노반은 상당히 주눅이 든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저는 단순히 말을 걸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저 여자애가 먼저…….”

“뭐어?! 야! 어디서 또 구라를 치고-!”

“조용히 해라.”

혼란 상태에서 벗어나 또다시 흥분해서 달려들려는 아이리. 아론은 그녀를 제지하려 했으나 그걸 들을 그녀가 아니었다.

“순 개뻥이에요! 저 새끼가 먼저 나더러 뭐라고 했는지 들으면-!”

“그럴 리가요! 설마 저 폴른 출신의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도노반의 하소연에 일순 주변의 공기가 바뀌는 것을, 아이리는 민감하게 감지했다. 이윽고 한껏 차가워진 시선들이 그녀를 향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뭐야, 범죄자였나?

-그런 녀석이 어떻게 아카데미에?

-더러운 피.

‘제기랄……!’

아이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또 이렇다.

폴른. 그 이름이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아론이라고 한들, 분위기가 이렇게 되면 감싸주기 어려울 터였다.

분명 그럴 터였는데…….

“도노반 폰 딜레이.”

그 순간.

아론이 가볍게 내뱉은 한마디가.

“죽고 싶나?”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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