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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막 시점-25화 (25/117)

아카데미 흑막 시점 25화

“돈도 없는데 그런 걸 어떻게 사?”

“뭐……?”

아이리의 말에 다시 한번 주변이 술렁거렸다.

결투 상대인 도노반은 말할 것도 없고, 관람석 쪽의 기업 관계자들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저, 저 말이 사실인가? 지금 아무런 모듈도 장착하고 있지 않다고?

-관측되는 에너지 출력이 이상할 정도로 낮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아니, 하지만…….

-제기랄, 지금 눈으론 확인이 안 된다! 더 좋은 스캐너 모듈을 가져와! 적어도 Lv.4 급으로!

누군가는 다급하게 새로운 스캐너 모듈을 찾으러 달려 나갔고, 누군가는 다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댔다.

또 누군가는 나와 블라디미르를 번갈아 보며 어느 쪽에 줄을 대야 할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댔다.

‘이것이 [쇼케이스]의 힘이지.’

쇼케이스는 인간병기 시연회다.

[신비]라는 도시 바깥쪽 괴물들로 인해, 이 세계에서는 사업을 확장하려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무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도시 바깥의 생산 콜로니를 유지하든, 확장하든 할 수 있으니까.

뿐만 아니라 도시 내에서만 운영하는 서비스 사업자라고 해도, 경쟁사의 테러나 반기업 갱단과 테크위자드들의 깽판질을 막기 위해서라도 뛰어난 적응자 사병은 필수다.

‘그런 곳에서는 더더욱 천재적인 적응자의 존재가 빛나는 법이지.’

그러니 다들 아이리를 보고 저렇게 소란을 피우는 것이다.

스팅레이 대표로 나온 인간병기가 모듈을 장착하지 않은 퓨어 스펙 상태라니. 게다가 그 상태에서 밀레테크 쪽을 완전히 밀어붙이고 있다니.

‘머리가 꽤 복잡할 테지.’

기업 관계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꼴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들이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퓨어스펙? 어째서 스팅레이는 저 애에게 아무런 모듈을 주지 않고 쇼케이스에 참가시킨 거지?

-스팅레이 계열사 주식을 사야 해! 스팅레이 전자랑 스팅레이 시큐리티 쪽부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상에 누워 있던 인간이 어디서 저런 녀석을 구해 온 거야?

-밀레테크 쪽과의 모듈 거래량을 재조정해야겠어. 저 아이가 졸업할 때쯤에는 완전히 손을 털 수 있도록.

-정말로 퓨어스펙이 맞긴 해? 의심스러워. 함부로 속단하지 말고 기다려야겠어. 양측이 짜고 치는 걸 수도 있어.

그야말로 혼돈이다.

단 한 명의 천재가 등장함으로 인해, 날고 긴다고 하는 뉴 발할라 시티 메가코프들이 털을 바짝 세우는 꼴이라니.

내게는 그 모습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허나 남몰래 미소를 짓고 있는 나와는 달리, 내 옆에 있던 마리아는 믿기지가 않는다는 눈이다.

“도, 도련님…… 이건…….”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천재라고.”

결국 참지 못한 나는 입꼬리가 조금 위로 올라가고 말았다.

“아이리 앨리스밸. 너도 확인했다시피 퓨어스펙에 가까운 상태다.”

“‘가까운’이라고 하심은 역시…….”

“그래, 너도 봤겠지. 저 녀석은 현재 망가진 모듈 하나를 끼고 있지.”

“네. 에러 때문에 이름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모듈이 하나 있었습니다만.”

마리아가 뭔가 떠오른 듯, 경악하며 말했다.

“서, 설마 그 모듈이…….”

“저 녀석의 능력의 비밀이냐고? 아니, 전혀 반대지. 그 망가진 모듈은 녀석의 오라비가 남긴 유품일 뿐이다.”

아이리의 전투에 방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절대 플러스가 될 요소는 아니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 아이리는 모래주머니 하나 달고서 싸우는데도 저 정도라는 의미.

“어디까지나 타고난 것이다. 원래부터 뛰어났던 소재가 적응자가 되면서 한층 더 강해졌을 뿐이지.”

“하지만 아무리 퓨어 스펙이 강하다 해도 동체 시력만으로 총알을 피하는 것이 가능한 겁니까?”

“보면 알잖느냐.”

다른 이는 몰라도, 아이리는 된다.

왜냐고?

메인 히로인이니까.

대놓고 이 세계 자체가 편애해서 태어난 누구보다도 특별한 존재니까. 작가의 애정이 듬뿍 들어간 캐릭터니까.

“저 녀석은 직감의 괴물이다. 상대방의 시선, 근육의 움직임, 호흡…… 다양한 요소를 읽고 언제 어디로 총을 쏠지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린다.”

“생각을 읽는다는 말씀입니까?”

“상대의 생각까지는 읽지 못한다. 그리고 100%도 아니고. 그러니 직감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지.”

“……!”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리아 역시 충분히 이해할 터였다.

‘동물로서의 감각.’

그것이 폴른의 들개라 불리던 아이리가 지니고 있던 재능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투 모듈만으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직감, 그리고 재능.

만약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기업들이 뛰어난 인재들에 목말라할 필요도 없었겠지.

저기 폴른 구역에서 고아들 잔뜩 데려다가 컴퓨터에 뇌 연결해 놓고, 인격을 지우고 전투기술만 잔뜩 인스톨한 뒤, 신체강화 모듈만 이것저것 맞춰 주면 될 테니까.

“그럼 도련님께서 모듈을 맞춰 주지 말라고 하신 것도…….”

“저 녀석은 남들보다 몇 배는 뛰어난 감각에 의지해서 싸우는 스타일이다. 섣불리 모듈을 장착시켜 봤자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지.”

뛰어난 재능이 발목을 잡는 경우다.

선천적으로 감각이 워낙 예민하기에 달라진 신체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무 모듈이나 호환성 맞는다고 끼웠다간 신발 신겨 놓은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할 게 분명했다.

때문에 아이리에겐, 맞춤 제작된 모듈이 필수다. 아니면 적어도 그녀에게 맞게 정밀한 사양 조정이 필요하겠지.

거기까지 설명한 나는 확신을 담아 이야기했다.

“이 [쇼케이스]는 틀림없이 이기겠지.”

“[결과에 따른 기업 및 주식시장 동향과 대응 전략 수립 보고서]…… 당장 준비시키겠습니다.”

마리아는 곧장 내 의도를 눈치채고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역시나 유능한 녀석이다.

여러 가지로 놀라기도 했을 테고,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도. 계속해서 완벽한 비서의 모습을 유지한다.

과연 이 모습이 언제까지 갈까.

나는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번 건도 결재권을 일임할 테니 오늘 내로 작성해서 베네딕트에게 넘겨라.”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다.”

소란 수습한다고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맡겨도 될 것이다. 권력 좋아하는 녀석이니 기꺼이 앞장서서 일하겠지.

사실 내가 일하기 싫다는 생각이 가장 크기는 했으나, 마리아와 그 녀석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려는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재단 이사장직에 복귀하면서 당장은 명분도 권한도 부족하니 얌전하게 지내지만.

만약 충분한 권한이 주어진다면 베네딕트는 어떻게 나올까? 또 마리아는 어떤 식으로 행동할까?

둘이 손을 잡고 내 뒤통수를 칠 가능성도 적지는 않아 보였다.

‘물론 그렇게 되면 두 사람 다 가만두지 않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마리아를 완전히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원작에선 주인공이 아카데미 학생이었던 만큼, 등장하는 캐릭터 역시 대부분 학생이었다.

물론 그들은 세계와 인류의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중요한 인물들이긴 했지만…….

‘내가 아론 스팅레이인 이상 아직 학생들인 주조연들한테만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지.’

원작의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데에는 그들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아직 학생에 불과한 그들에겐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다.

가령 대표적으로 스팅레이 내부의 정치문제라든가, 원작엔 등장하지 않은 정계·재계 쪽 거물과의 관계 문제 등등.

‘주인공만 안 죽었으면 그냥 쥐 죽은 듯이 지내면서 덕질이나 하는 건데…….’

스팅레이 재단 책임자로서 제대로 활동하기로 한 이상, 내 활동범위는 아카데미 내부의 일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원작 지식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과도 마주해야만 할 터.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그룹 내의 아군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녀의 강직함과 충성심은 이미 충분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방향을 가문에서 나 개인에게로 돌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를 위한 첫걸음으로…….

“이제 슬슬 끝나 가는군.”

나는 훈련장 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쇼케이스]의 끝이 어떻게 될지, 슬슬 윤곽이 잡혀가는 중이었다.

‘자, 어서 끝내 버리도록 해라.’

아이리 엘리스밸.

네 승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너는 틀림없이 이기겠지.

중요한 건 이곳에서 네가 뭘 얻느냐다.

여기서 너의 승리와 성장이.

내 성공과 목표와 직결된다.

어서 모든 것을 마무리 짓고.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거라.

여기서 내가 도와줄 테니까.

* * *

도노반 폰 딜레이.

녀석은 거너(Gunner) 스타일의 전투에 익숙했다. 거리를 두고 강력한 화력을 쏟아부어 상대를 일격에 처리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으니 이길 수 있을 턱이 없다. 자신의 체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탄창이 다 비어 버릴 것이다.

“제기라아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필사적으로 총을 갈겨댔지만 아이리는 그마저도 가볍게 피해 버리고 놈과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타이밍이 완벽했다.

철컥, 철컥.

도노반의 SMG 탄창이 전부 비어 버리는 것과 동시에 아이리는 그의 눈앞에 도달했다. 그녀는 덥석, 상대의 멱살을 쥐어짜듯 잡았다.

“끝이야.”

아이리는 상대의 몸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김과 동시에 총구를 배에 찔러 넣었다.

탕탕탕탕탕탕!

여섯 번의 격발.

충격에 도노반의 몸이 기역 자로 굽혀진다. 아이리는 놈의 고통으로 경직되어 있는 틈을 타 있는 힘껏 위에서 아래로 발차기를 먹인다.

쿠웅!

도노반의 우람한 몸이 앞으로 쓰러졌고, 아이리는 그 등을 밟고 놈의 팔을 뒤로 꺾어 제압했다.

도노반이 힘으로 밀쳐 내려 하자, 아이리는 놈의 기계 팔을 연결 짓는 어깨 관절부에 제로거리 사격으로 총알을 사정없이 때려 박았다.

어찌나 피하장갑이 두꺼운지 총알은 이번에도 관통하지 못했다. 하지만 충격으로 내부 부품을 조금 망가뜨리는 데에는 성공한 듯했다.

끼이이이, 이익-!

도노반의 왼팔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렸다. 아이리는 상대의 몸을 짓밟은 채 여유롭게 탄창을 갈아 끼운다.

“나가 뒈져!”

서슬 퍼런 욕설을 내뱉은 후.

아이리는 도노반의 뒤통수에 총구를 갖다대곤 남은 총알을 전부 쏴 버렸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있는 힘껏 발길질로 놈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쿠웅, 쿠웅, 쿠웅!

수십 차례의 발길질이 이어졌고, 마치 망치로 못을 박듯이 도노반의 머리가 점점 바닥을 파고들어 갔다.

결국 바닥이 도노반의 면상을 집어삼키고 나서야 속이 후련해진 듯 이마의 땀을 훔쳤다.

“하아…… 하아…….”

천천히 숨을 가다듬던 중.

아이리는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람석 쪽을 올려다보자 수많은 시선이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기업 관계자들.

바꿔 말해 상류층들.

“…….”

고요하다.

모두가 침묵했고, 오롯이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화약의 씁쓸한 향기가 코를 찔러 댔다. 그 잔향처럼 묘한 분위기가 전투훈련장을 맴돌고 있었다.

“……뭐야.”

다들 왜 날 그딴 눈빛으로 보는 거야?

똑바로 봐.

내가 이겼잖아.

네놈들이 자랑하던 놈을 내가 철저하게 짓밟아 줬잖아. 뭐가 불만인 건데? 아, 당신네가 원하던 승자가 아니어서?

뿌득. 이를 갈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토해내고 싶은 감정을 짓누른 채, 가만히 양손을 들어 가운뎃손가락을 당당히 펴 보였다.

웅성웅성.

아이리의 돌발행동에 다시 한번 관람석이 술렁인다. 높으신 분들의 심기가 다소 불편해진 듯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알 바는 아니었다.

‘다 엿 먹으라지.’

너희들이 얼마나 잘났냐고.

거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내 싸움은 즐거웠느냐고.

그래, 내가 이겼다.

너희들이 그토록 괄시하던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내가 보란 듯이 승리했다.

두고 보도록 해.

‘더 위로 올라가겠어.’

이것은 첫걸음에 불과하다.

지금은 겨우 모형 정원 속의 인형에 불과한 신세지만, 언젠가 너희들을 짓밟고 올라서겠다.

똑똑히 보여 주겠다.

아니, 딱히 전해지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든 말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대로 저들 멋대로 평가하라지.

아이리는 가볍게 콧방귀를 뀐 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훈련장과 어안이 벙벙해진 관람객들을 뒤로하고서.

그러던 그때였다.

-짝짝짝짝.

누군가의 박수 소리.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청년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황태자, 아론 스팅레이.

그의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아이리는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에 휩싸였다.

참으로 이상하기도 하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다고 하던가?

그 많은 사람 중 한 사람만이, 오직 아론만이 그녀의 외침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것처럼 느껴졌다.

‘뭐야……!’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런 눈을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모든 것의 원흉인 인간이.

그렇게 따지고 싶어진 것도 잠시.

아론으로부터 마치 전염되듯이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네 명.

이윽고 불규칙한 소음은 거대한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되어 아이리를 둘러쌌다.

물론 그녀 역시 그것이 진심이 담긴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저 황태자의 눈치를 보는 것뿐이겠지.

그런데 왜일까.

울컥하고.

가슴속의 무언가가 올라오려 했다.

‘……머, 멍청이들!’

그 감정을 욕지거리로 간신히 억누르고 삭이며, 아이리는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도망치듯 훈련장에서 빠져나오기 직전, 그녀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관람석 쪽을 향했다.

정확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론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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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도 알림]

‘아이리 앨리스밸’과의 관계 변화,

1부 1막 진행도: 0%→48%

현재 공헌도: 98%

*중간보상이 지급됩니다.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중간보상】

업적 포인트: +2000

‘자색 사냥터 입장권’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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