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흑막 시점 42화
치이이이익~!
쓰러진 시엘의 몸에서 거뭇한 연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너무 놀란 충격으로 내부 회로에서 합선이 일어난 것 같았다.
‘사람으로 따지면 거품 물고 쓰러진 거려나.’
원래부터 시엘이 워낙 남다른 개체이다보니, 이런 현상이 일반적인 안드로이드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빙의자라 그런 건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뭐, 이렇게 내버려 둘 순 없겠지.’
아직 중요한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녀석이 쓸 만하다고 판단한 이상, 고쳐는 줘야겠지.
나는 마리아에게 연락해서 망가진 안드로이드가 있으니 회수해가라고 했다. 연락이 닿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단 말단 직원 몇 명이 시엘의 몸을 카트에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사실 트리니티 아카데미 소유 물품인 시엘은 아카데미 시설관리반 측에서 처리하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무작정 요구를 밀어붙였고, 결국 시엘의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을, 마리아는 내게 구두로 보고한 후 조심스레 물었다.
“도련님. 이 안드로이드는 무엇입니까?”
“우연히 만났다. 아무래도 에러가 생긴 놈인 것 같은데, 조금 흥미가 동하더군.”
“에러 말입니까?”
단순히 ‘에러’라고 했으나, 마리아도 곧장 알아들은 눈치였다. 옛날부터 안드로이드들이 ‘자아’를 깨우치고 반항하는 케이스가 드문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직까진 비교적 소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그닥 큰 화제는 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일단은 수리기사를 불러라. 이 녀석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
“……알겠습니다.”
마리아는 ‘이용’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이는 듯했지만 더는 깊게 묻지 않았다. 물어봤자 대답해주지 않으리라는 걸 안 것이다.
마리아는 어딘가로 연락을 넣었고, 안드로이드 수리기사의 일정을 곧장 잡아냈다. 다만 최근에 안드로이드 고장이 워낙 자주 발생하는 탓에 예약은 아무리 빨라야 내일이 한계라고 했다.
‘안드로이드 반란 에피소드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탓이겠지.’
스팅레이의 이름까지 들먹여도 그보다 빨리는 안 된다고 울먹이는 걸 어쩌겠는가.
하는 수 없이 수리기사가 도착할 때까지, 시엘의 몸뚱아리를 안 쓰는 사무실 창고에 보관해 두기로 했다.
……근데 이게 실수였다.
* * *
다음날.
다음 에피소드 준비와 기타 재단 관련 잡무를 이것저것 처리하고 아카데미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마리아가 내게 보고했다.
“도련님.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지?”
“도련님이 가져오신 안드로이드가 수리 도중에 깨어나더니 폭주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시엘 녀석이 내가 없는 도중 도착한 수리기사를, 작업 도중 깨어나선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현재는 창고 문을 걸어 잠그고 인질극을 벌이는 중이라나 뭐라나.
“당장 가지.”
“알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는 상태였다.
평소에 빠릿빠릿하기 그지없는 그들이 허둥지둥하는 게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하기야 화이트칼라들이 이런 트러블에 휘말릴 일이 얼마나 있겠나.
“도련님, 오셨습니까?”
“상황은?”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수리기사가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요구하는 건…….”
그 순간 마리아의 말을 끊고, 창고 문 너머에서 시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날 여기서 도망치게 해줘요! 안 그러면 이 사람 목 분질러 버릴 테니까!]
“……라는군요.”
“쯧.”
하여간.
아무래도 시엘 녀석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안에서 해킹으로 문을 잠근 것 같습니다. 마스터키가 있는데 듣질 않는군요.”
“해킹?”
이 자식, 해킹은 또 언제 배운 거야.
시엘에 빙의한 이후 나름대로 비장의 수를 만들어 두고 싶었던 걸까. 안쪽에서 개폐시스템에 뭔가 조작을 가한 듯하다는 게 마리아의 설명이었다.
고장 난 안드로이드가 일으킨 인질극.
덕분에 스팅레이 사무실도 난리가 나서 업무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별로 달갑잖은 상황이었다.
-저 안에 있는 거 이사장님이 가져오신 안드로이드 맞지? 또 무슨 일을 저지르신 거야?
-겨, 경찰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서둘러야겠다. 경찰이 개입했다간 대화할 여지도 없이 시엘은 틀림없이 사살당할 거다.
‘멍청한 녀석.’
패닉에 빠져서 스스로 목을 조르는 줄도 모르다니.
“다들 업무로 돌아가도록. 여긴 내가 직접 책임지고 해결하겠다.”
“하, 하지만 이사장님……!”
“두 번 말하게 할 생각인가? 쓸데없이 호들갑 떠는 놈은 다음 달 인사발령을 기대해도 좋다.”
싸악.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직원들의 얼굴이 한순간에 새파래졌다. 다들 스팅레이 그룹 내에는 ‘절대로 배치받아선 안 되는 부서’가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소란을 잠재운 후, 나는 다시금 굳게 잠긴 창고와 마주했다.
옆에서 마리아가 내게 물었다.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도련님?”
“걱정할 것 없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런 상황에 아주 유용한 마법 주문을 알고 있었다. 어떤 자물쇠도 멋지게 풀어내는 마법(물리)의 주문.
‘알로호모라.’
콰아앙-!
나는 창고 문을 그대로 걷어찼다.
나름 튼튼한 자재로 만들어진 문이었지만, Lv.3짜리 군용 근력강화 모듈, [스트렝스] 앞에서는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뜯겨나간 문짝은 정확하게 시엘의 몸에 적중했다. 이미 밖에서 [트라우마 생체스캐너]로 인질과 시엘의 위치를 확인해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엑!?”
시엘은 난데없이 날아온 문짝에 얻어맞고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나는 빠르게 달려들어 녀석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몸체를 발로 짓누르며, 옆에서 벌벌 떨던 수리기사에게 물었다.
“입은 무거운 편인가?”
“무, 물론입니다! 어디 가서 함부로 떠들지 않겠습니다.”
“그렇길 바라지. 마리아?”
“적절히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른 녀석이다.
언젠가 진짜로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인물이지만…… 뭐, 지금은 할 일부터 하자.
“내 시간을 이 이상 뺏지 않았으면 좋겠군, CL-00245.”
“히이익!?”
나와 눈을 마주친 그녀는 어찌나 겁을 먹었는지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뭐든 다 할 테니까…….”
그렇게 시엘이 벌인 인질극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종료되었다.
* * *
인질극 직후, 나는 시엘의 머리 파츠만 분해해서 들고 왔다. 다음에 또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 못하게 막기 위함이었다.
사람이었으면 머리만 떼서 들고 다니지는 못하니, 참으로 편리한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시엘의 동그란 머리를 장식처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누가 보면… 아니, 내가 보기에도 좀 그림이 상당히 이상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시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해라.”
“혹시 지금까지 제가 만난 ‘베네딕트 스팅레이’는 전부…….”
“그래. 나였다.”
내 대답에 ‘허어’하고 한숨을 쉬는 시엘. 목 아래가 없어서 그런지 목소리에 조금 이상한 기계음이 섞여 있었다.
“그럼 아이리를 괴롭히라고 지시했던 것도…….”
“아니, 그건 거짓말이었다. ‘진짜’ 베네딕트 쪽이 벌인 일이었지. 그 외에 내가 주인공을 죽였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왜 그런 거짓말을……?”
“…….”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사실들을 말해 주었다. 협력을 바란다면 어느 정도의 정보공유는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주인공이 죽어 버린 진짜 이유와 그 이후 내가 진행해 온 시나리오 수정 작업들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시엘은 상황이 이해된 듯 표정이 풀어졌다.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역시 원작을 제대로 읽기는 했던 모양이다.
“저는 틀림없이 당신이 주인공을 죽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럴 리가. 궁금한 건 더 있나?”
“아뇨, 당장은 없는데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마, 말씀하셔요…….”
나는 본론을 바로 꺼냈다.
“네가 SS칩을 유통해 줬으면 좋겠다.”
내 말에 시엘의 눈이 커졌다.
“SS칩이요?”
“무슨 물건인지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통칭 SS칩.
시냅스 서핑(Synapse Surfing) 칩의 약자로, 타인의 기억을 완벽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이었다.
설명하자면 4DX 영화보다 몇 단계나 발전한 형태라고 할까. SS칩 기술을 이용하면 시청자는 원본 배우의 감정이나 일시적인 플래시백 현상까지도 완벽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SS칩은 1부 2막에서 다뤄지는 중요한 소재이기도 했다. 시엘 역시 곧장 내 의도를 이해한 듯했다.
“1부 2막을 수정할 생각인가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묵은 체증이 조금 내려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태껏 이런 ‘빙의자로서의’ 대화를 터놓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던 탓이었다.
어쨌건.
1부 2막에서는 SS칩 중에서도 불법적인 SS칩…… 일명 ‘정크칩(Junk Chip)’이 메인으로 다뤄진다.
일반적인 SS칩이 전문 배우의 메소드 연기와, 뛰어난 편집자의 편집 실력이 합쳐져서 제작되는 하나의 예술 장르라고 한다면.
허나 정크칩은 오직 체험자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만들어지는 일종의 사이버 마약으로 취급되었다.
실제로 이런 불법적인 정크칩을 즐기다가 뇌가 타 버리거나, 진짜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폐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너도 알다시피 2막에서는 이 정크칩이 아카데미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신비]에 홀려 죽은 사람의 기억 따위를 담은 칩이 유통된 거지.”
“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정크칩을 유통하는 범인이…….”
“‘사일런스’였지.”
그의 본명은 박태준. 한국계였다.
정면에서 화끈하게 돌진하는 스타일의 아이리와는 달리, 은신과 저격에 특화된 전투 스타일을 지닌 캐릭터였다.
현재는 전술교전부 3학년으로, 소속된 기업은 없다. 아카데미 1학년 때부터 정크칩을 유통하기 시작했는데, 본인도 몇 번 거기에 손을 댄 부작용으로 뇌가 조금 녹아서 말을 못 한다.
동시에 얼굴근육도 일그러져서 항상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걸 감추기 위해 이모티콘이 출력되는 LED 패널이 달린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녀석이다.
“1부 2막은 사일런스와 정크칩이 핵심 소재다. 녀석이 유통하는 정크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 일행이 싸우는 게 주된 내용이었지.”
1부 2막에서 사일런스는 처음에 악당으로 등장하여 주인공과 대립한다. 그렇게 은신과 저격의 전문가인 사일런스와 테크노 위자드인 주인공의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한 것은 주인공.
그리고 밝혀진 사실.
사일런스 역시 금전적인 목적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정크칩을 유통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그런 사일런스를 조종하던 배후에 심상찮은 모종의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세계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된다……라는 게 1부 2막의 내용이었지.
그렇게 1부 2막의 내용을 다시금 되짚어보고 있자니, 시엘이 물었다.
“그…… 아론 님께서는 사일런스를 영입하고 싶으신 거죠?”
아론 님이라.
어지간히 나한테 겁먹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호칭이었으나,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그래. 스팅레이 특별 장학생으로 만들 생각이다.”
“거기까지는 이해했는데, 어째서 제가 SS칩을 유통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는데요……. 그냥 사일런스한테 가서 원작 지식을 활용해서 설득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실패했다.”
“…….”
잠시간의 정적.
그러다 시엘이 되물었다.
“……네?”
“실패했다.”
나는 같은 말은 반복했다.
실은 아까, 시엘이 수리받고 있는 오전시간을 이용하여 사일런스를 만나고 온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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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달성]
복수자(復讎者) ‘사일런스’를 만났다.
업적 포인트: +500
[업적달성]
메인스토리 1부 2막을 시작했다.
업적 포인트: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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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얼굴까지 대면하고, 포인트까지 낭낭하게 벌어 왔지만, 결과 자체는 바꾸지 못한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사일런스 영입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