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막 시점-68화 (68/117)

아카데미 흑막 시점 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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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이 도착했습니다.

From. 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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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왔다.”

아이리는 오늘도 제시간에 도착한 마리아의 메일에 기뻐하며 열어 보았다. 메일에는 마리아가 직접 만든 간단한 문제집이 첨부되어 있었다.

‘고마워요, 마리아 씨.’

아이리는 그녀가 있을 사무실 쪽을 보며 속으로 감사인사를 하곤 첨부파일을 다운받았다.

아시타 교 사건 이후의 일이었다.

마리아는 아이리를 울렸던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그녀에게 뭐든지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에 아이리는 별생각 없이 ‘시험 준비가 너무 어려운데 어떻게 안 될까요?’라고 물었고, 마리아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로 마리아는 매일 아이리에게 직접 만든 필기시험 예상 문제집을, 간단한 해설까지 덧붙여 메일로 보내 주기 시작했다.

‘진짜 뭐 하는 사람이지, 마리아 씨…….’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처음 그것을 받았을 때 아이리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스팅레이 재단 비서실장으로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만 해도 상당할 터이고, 거기다 아론이 최근에 시킨 일 때문에 더더욱 바빠졌다고 들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틈틈이 시간을 할애하여 개인과외용 문제집을 만들어 준다니, 어지간한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업무량이 아닌가?

심지어 그것들이 대충 만든 문제들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문제 하나하나가 아이리의 수준에 딱 부합하는 난이도였고, 거기에 덧붙여진 해설도 읽으면 머리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쉽게 되어 있었다.

심지어 서술형 문제의 경우, 자신의 답에 대한 첨삭까지 상세하게 되어 다음 메일에 함께 올 정도였다.

이 정도는 되어야 그런 젊은 나이에 황태자라 불리는 남자의 오른팔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일까. 정말 생각할 때마다 존경스러울 정도다.

‘근데 사실 스팅레이 재단의 힘으로 시험 자체를 패스시켜 달라는 의미로 말한 거였는데…….’

허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트리니티 아카데미가 기업들의 사병육성소로 전락해 버리긴 했어도, 기업들조차 ‘정규시험’의 결과 자체는 절대 건드리지 못한다.

정확히는 못 한다기보다는 안 한다.

가령 메가코프 중 하나가 자신들이 보유한 장학생들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시험 결과에 조작을 했다고 해 보자.

그럼 그 순간부터 다른 기업들이 너도나도 시험 결과에 손을 대기 시작할 것이고, 아카데미 정규시험의 신뢰성은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규시험 외에 인재를 엄격히 선별하기 위한 방법을 따로 마련해야 될 테고, 그것은 쓸데없는 지출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결국 시험 결과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기업들 입장에서도 손해밖에 없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나 뭐라나.

-그러니 내가 어떻게 해 주리라 기대하지 말도록. 만약 네가 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낸다면…… 기대해도 좋다.

삼시세끼 합성 단백질 수프.

그 끔찍하고 역겨운 맛을 상상만 해도 토가 쏠리는 것 같았다.

폴른에서 지내던 때야 그것도 없어서 못 먹기 일쑤였지만, 입이 고급화된 지금은 그걸 먹느니 차라리 죽고 말 것이다.

‘게다가 마리아 씨가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공부를 안 하는 것도 미안하지…….’

그런 생각으로, 아이리는 최선을 다해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오늘도 공부를 위해 마리아가 만든 문제집 파일을 열었다.

하지만.

“어라?”

깨진 문서였다.

원래라면 아이리의 수준에 딱 맞는 문제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야 할 문서가 어째서인가 전부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열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파일 오류인가?’

다운 중에 뭔가 잘못됐나 싶어서 다시금 확인해 봤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마리아가 실수로 파일을 잘못 보낸 걸까?

잠시 그런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당장 내일이 자신의 첫 필기시험인 만큼,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럴 때에 이런 실수를 저지를 만큼 마리아가 허술한 사람은 아닐 텐데.

조금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그렇다고 아이리가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이니 이것 때문에 전화를 걸기도 미안했고.

‘뭐, 지금까지 배운 게 있으니 혼자 해 보면 되겠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긴 아이리는 밤늦게까지 공부를 이어 나갔다.

* * *

그리고 다음 날.

트리니티 아카데미 중간고사.

첫 시험 날짜가 되자, 교실 내의 분위기는 한층 더 살벌해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생들끼리도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시험이 시작되기도 전에 부정행위로 적발된 학생이 나올 정도였다.

학생들은 다들 먹을 것과 입을 것 하나하나를 각별하게 신경 썼고, 괜한 이목과 질투를 사지 않기 위해 행동거지 역시 유난스러울 정도로 조심했다.

“후우…….”

답답한 분위기였다.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텁텁한 공기 속에서, 아이리는 한숨을 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이제 실전이다.

시험에서 믿을 건 자신뿐.

아무리 자신의 후원자가 학생들을 아끼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녀석에게까지 투자를 계속 해 주진 않을 테니까.

‘절대 삼시세끼 단백질 죽만 먹을 순 없어…….’

마지막으로 짬을 내어 마리아의 수제 문제집으로 복습하는 아이리.

이제는 하도 많이 봐서 도리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까만 것은 글이오, 하얀 것은 배경이라.

아마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읽은 글자가, 그녀가 20년 동안 살아오면서 읽은 글자의 수보다 많을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긴 했는데, 워낙에 수많은 정보를 단시간에 뇌 속에 때려 넣은 탓인지 멍한 기분이 들었다. 검은 글씨들이 머릿속에서 서로 뒤엉켜 날아다니는 기분이다.

이래서야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인생 최고로 열심히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곧 첫 번째 시험 시간이 되었다.

[트리니티 아카데시 전술교전부, 신비학개론 중간고사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각자 자리에 있는 시험용 태블릿 케이블과 접속해 주세요.]

각자의 책상에는 상자 같은 형태의 기계장치가 고정되어 있었고, 그 상단부에 소켓HUB에 끼울 수 있는 전선이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아이리는 그것을 잡아당겨 목덜미 쪽 소켓에 끼웠고, 이내 그녀의 시야 앞에 새로운 창이 팝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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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학개론 중간고사]

곧 시험이 시작됩니다. 1:58

*시험 시 주의사항

*시험 중 케이블을 해제하지 마십시오. 접속이 해제될 경우, 부정행위로 처리될 수 있습니다.

*제출된 문제에 오류가 있을 경우, 우측하단의 신고 버튼을 눌러 주십시오.

*시험용 AR 박스 사용방법

1. 정답을 적으려는 문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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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런 식인가.

아이리는 시험의 타이머가 다 되기 전까지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읽어 보았고, 시험방법에 대한 내용도 숙지 완료했다.

-곧 시험이 시작됩니다. 0:05

카운트다운.

아이리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고 해 보자.’

이윽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 * *

“결과는 어떻지?”

“저희 쪽 스카우터가 사전에 받아온 가채점 성적을 살펴본 바, 아이리 앨리스밸 학생은 전술교전부 전체 학생 368명 중, 55위를 기록했습니다.”

“……!?”

“이사장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순간적으로 놀라서 얼굴이 굳고 말았다. 상상 이상으로 등수가 높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기대 안 했는데……!’

원작에서 아이리의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결과는 평균 수준에서 약간 밑돌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기시험은 사격술은 제외하고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필기시험이 전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죄다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였다.

아직 필기시험 결과만 미리 빼 와서 확인했을 뿐인데 상위 55위라니. 필수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했으니 다른 학생들에게 밀리는 게 당연할 텐데도, 어째서인가 평균을 월등히 상회하는 성적을 냈다.

‘어떻게 된 거지?’

아이리가 의외로 똑똑한 녀석이라고 해도, 단시간에 이런 결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딱히 개인과외를 시켰던 것도 아니고, 시험결과를 조작한 것도 아니다. 대체 어쩌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원작하고 뭐가 달라졌지?’

잠시 고민해 보다가 이내 답을 냈다.

‘아, 미유 때문인가.’

원작에 비해 아이리가 미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예전에는 두 사람의 관계 사이에 ‘셰이드 웰즈’라는 주인공의 존재가 징검다리 역할을 했었지만, 지금은 직접 교류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내 추측이지만 지식 쪽에 스탯이 몰빵된 미유와 함께 지내면서 아이리도 적잖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그것이 이번 시험 결과로 나타난 것이겠지.

“……나쁘지 않군.”

반응은 이렇게 했으나 속은 뛸 것 같이 기뻤다. 내 새끼가 잘나간다는데 싫어할 부모(아님)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아직 가채점에 불과한 데다가 치러야 할 시험은 많이 남아 있으니 마냥 좋아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기쁜 건 기쁜 거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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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학생들이 높은 성적을 얻도록 도와주세요. 공헌도와 인물들의 성적에 따라 다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공헌도]

아이리 앨리스밸(??위): 98%

미유(??위): 95%

사일런스(??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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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이벤트.

당연하지만 내가 메인 캐릭터 두 사람의 후원자이니만큼 가장 공헌도가 높았다. 아마 두 사람이 훌륭한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만큼, 내게도 더 큰 보상이 돌아오겠지.

‘아이리는 이미 기대 이상이고, 미유는 어차피 상위권일 테고…… 사일런스는 좀 아쉽게 되었군.’

3학년인 사일런스는 아직 정크칩의 영향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원래라면 아무리 사정이 있더라도 시험을 치르지 못한 시점에서 아웃이 되어야겠지만, 스팅레이 재단의 힘으로 어떻게든 무마시켰다.

뭐, 사일런스가 깨어난 시점부터 다시금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기 시작할 테니,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가만히 잠들어 있는 편이 내게도 좋다.

‘가급적이면 중간고사 이후가 되면 좋겠군.’

내가 빌런이 되기 전에는 포인트를 받아서 전부 사용할 생각이다. 완전히 ‘아론 스팅레이’가 되어 버린 내가 빙의자 특전까지 마음대로 사용해 버리면 꽤나 상대하기 힘들어질 테니까 말이다.

‘상을 준비해 놓는 게 좋겠군.’

어떤 걸 주는 게 좋을까.

스토리에 그다지 영향이 안 가면서도 두 사람이 기뻐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가급적이면 이 선물을 계기로 앞으로도 빠르게 성장했으면 좋겠는데.

‘……뭐, 아직은 시기상조이려나.’

고민을 이내 그만두었다.

시험 결과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설레발을 치는 건 좋지 않겠지. 보상을 주는 건 중간고사가 완전히 끝난 후에도 늦지 않다.

‘어쩌면 아이리가 다른 시험을 망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 * *

……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전술교전부 33위라는 건가? 그 녀석이?”

“네, 그렇습니다.”

“허…….”

마지막 시험 한 과목을 앞둔 지금 너무나도 예측을 빗나간 전개에 나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이렇게 당황하는 경우는 잘 없는데, 진짜로 놀랐다.

‘이 녀석, 왜 이렇게 성장이 빠르지?’

아이리가 본격적으로 철이 들어서 공부까지 섭렵하기 시작하는 건 못해도 2학년부터였을 텐데?

단순히 생각하면 ‘내가 개입해서 성장이 빨라졌구나’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건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공부와 연이 없던 녀석이 어떻게 이렇게……?’

공부라는 것도 관성이 있어서, 기초지식이 없는 초기 단계에서는 더더욱 성과를 보기 어렵다. 실기시험이 포함된 등수라고 해도 현재의 아이리의 성적치곤 지나치게 좋다는 느낌이다.

‘설마 다른 빙의자가 개입했나?’

허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여전히 아이리에 대한 내 공헌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1%가량 더 올랐을 정도.

‘이건 확인해 봐야겠다.’

마지막 시험인 종합전술 테스트 전까지는 잠깐 여유가 있었다. 잠시 짬을 낸다면 그녀가 어떤 식으로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터.

나는 곧장 시간을 내서 아이리가 현재 있다는 종합훈련장 쪽으로 향했다.

스팅레이 소속 스카우터들의 안내에 따라 훈련 중인 아이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먼 발치에서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훈련장 구석에서 마지막 시험에 대비하여 함께 시험을 치를 팀원들과 합을 맞춰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탄식했다.

‘아아, 내가 착각했구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시험은 그녀 스스로의 힘으로 준비한 게 틀림없었다. 아이리가 저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을 때는 자기 자신에게 믿음이 있을 때뿐이니까.

“돌아가도록 하지.”

“사무실로 가시겠습니까?”

“그러…… 잠깐.”

몸을 돌리려다 멈칫했다.

묘한 예감이 들었다.

하나만 더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생겼다.

“기숙사로 간다.”

부하 직원들을 이끌고 아이리의 방을 찾았다. 여자 직원들을 시켜 민감할 수도 있는 것들을 미리 치워 놓도록 지시했고, 정리가 끝난 후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방에 남아 있는 흔적을 보니 아이리는 시험 기간에 빡세게 공부를 한 듯했다. 여기저기 부단히 노력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직원 하나가 아이리의 방에 설치된 컴퓨터를 확인하고는 나를 불렀다.

“이사장님.”

그가 화면을 가리켰다.

보아하니 마리아가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아이리의 공부를 봐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컴퓨터로 아이리와 문제집을 주고받은 메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직원을 시켜 아이리와 주고받은 메일의 내용을 전부 확인해 보도록 했고, 이내 마지막 메일의 첨부파일이 ‘깨진 문서’였다는 것을 알아냈다.

‘내가 오늘 받은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아아, 그런 거였나.’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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