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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막 시점-71화 (71/117)

아카데미 흑막 시점 71화

나는 주기적으로 시엘을 만나 상태를 확인했다.

한동안 도시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방 안에 틀어박혔다.

아카데미 인근에 마련된 아파트.

원래는 아카데미 내에 정크칩을 유통하기 위한 장소였으나, 계획이 백지화된 후에는 시엘의 집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난번의 만남에서, 시엘은 내게 자신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발언을 들은 직후, 나는 그녀의 몸에 심어 두었던 폭탄을 비롯한 자질구레한 것들을 전부 없애 주었다.

그리고 용돈도 두둑하게 쥐여 주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좋다’고 허락했건만, 어째서인가 시엘은 방 안에 틀어박혀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아이리의 시험이 다 끝나려면 이틀 정도 남은 시점에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진지한 표정으로 날 맞이한 그녀는 대뜸 “얘기 좀 해요.”라고 하더니 날 자리에 앉히고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저는 철학과를 나왔었어요.”

자신의 이야기였다.

‘시엘’이 되기 이전의 이야기.

예전 같았으면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됐다고 손을 내저었을 테지만, 그날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순순히 자리에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철학이라는 게 사실 쓸모는 없잖아요. 그렇죠? 수학이랑 과학은 세상이 발전하는 데에 필요하고, 언어는 우리가 매일 달고 사는 거고, 경제학은 돈을 벌고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하고.”

“그런데 왜 간 거지?”

“점수에 맞추어서 적당한 대학과 과를 선택한 거였죠. 우리나라 정서상 대학을 안 나오면 취업을 할 수도 없고, 주변에선 어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그래 봤자 취업이 잘 되는 건 아닐 텐데.”

“그렇죠, 뭐. ‘문사철’이라고 하니까요.”

시엘은 후훗, 하고 웃었다.

“전 수업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소크라테스니 플라톤이니 모르는 아저씨들이고, 실존주의니…… 회의주의니…… 뭐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들을 시험기간에만 바짝 머릿속에 넣었다가 이틀만 지나도 잊어버리고.”

시엘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특출난 것도 없고, 딱히 미래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면서 삶과 투쟁해 오지도 않았고. 그냥 막연한 미래를 그리고 그날그날 필요한 것들을 채워 가며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저는 철학과인데, 철학 같은 걸 잘 몰랐어요.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왜 이런 학문이 남아 있는지. 근데 이렇게 되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지금처럼…….”

“시엘.”

“죽음이 다가왔을 때.”

시엘의 에메랄드색 기계안구가 불안감에 떨렸다. 나는 입 안에서 맴도는 말들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억지로 삼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할 걸 그랬어요, 그렇죠? 옛날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 같은 걸 했으니 그런 과목이 생겨난 걸 텐데.”

“너는 안 죽는다.”

그 순간 나는 단언했다.

내 말에 시엘이 잠시 놀라 입을 다문 틈을 이용해, 나는 챙겨 왔던 물건을 품에서 꺼냈다.

“이건……?”

“리버레이터와 전뇌화용 인격저장장치다. 어떤 물건인지는 알겠지.”

“안드로이드의 영혼을 깨우는 기계와, 제 영혼을 복제해 두는 기계죠. 이런 게 있다니, 이 세상은 참 신기하다니까요.”

묘하게 시큰둥한 반응.

나는 그녀가 이 물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어 말했다.

“이걸로 현재의 네 인격을 복제하는 거다. 1부 3막을 마무리 지은 다음, 이 장치들을 이용해서 원래대로…….”

“확실하게 돌릴 수는 있고요?”

시엘이 내 말을 끊었다.

꽤 날이 선 목소리였다.

평소 나를 무서워하던 그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는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이대로 있어 봤자 너는 잡아먹힐 뿐이다.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하지 않겠나?”

“잡아먹힌다고요? 아뇨.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변할 뿐이죠. 오히려 이대로 내버려두는 게 나아요.”

“어째서지?”

“생각해 보세요. 제 인격을 복제하고 해도, 제 의식은 ‘이곳’에 있어요. 모든 사건이 끝난 후 복제된 인격을 덮어씌우는 순간, ‘이곳’에 있는 저는 사라지고 말겠죠. 이해하실 수 있겠어요?”

“그래…….”

그녀의 말도 이해는 간다.

가령, ‘인격’이라는 이름의 파일이 있다.

파일이 바이러스에 걸리는 바람에 다른 내용이 되어 버릴 상황이다. 그때, 주인은 백업해 둔 같은 파일로 원래의 파일을 덮어쓰기 해 버렸다.

그렇다면 주인은 문제없이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덮어쓰기 당하기 전의 파일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지만 네가 틀렸을 수도 있다.”

전뇌화 기술이 있는 이 세계에서도 ‘자아’라는 것의 원리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아라는 것을 뇌에서 흐르는 ‘특정 시냅스 패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뿐이었다.

그러니 기존의 육체에 자리 잡은 ‘영혼’을 없애고 새로운 ‘영혼’을 집어넣는 게 아니라, 망가진 영혼을 본래의 모양대로 되돌린다는 인식에 가까웠다.

진짜 정답은 모르겠다.

나는 전뇌 기술자가 아니다.

하물며 철학가도 아니다.

그러니 그 원리가 정확히 어떤 식인지는 알 수 없으나, 후자 쪽을 믿고 실행할 뿐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너는 ‘시엘’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될 거다. ‘시엘이란 몸에 들어간 빙의자’가 아니라, ‘빙의자의 기억을 지닌 시엘’이 되어 버리는 거다. 그래도 상관없겠나?”

“상관없어요.”

시엘은 즉답했다.

“저도 고민을 깊게 해 봤지만, 역시 영혼을 덮어씌우는 것보단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묻겠다.”

나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정말로 이대로 괜찮나?”

잠시의 적막이 흐르고.

이내 시엘은 답을 내놓았다.

“네, 상관없어요.”

“…….”

본인의 선택이었다.

내가 옆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봤자 방해일 뿐이다. 그녀에겐 그녀만의 믿음이 있었고,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그래.”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선언했다.

“시엘, 약속하마.”

“약속이요?”

“너는 내가 보호하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모든 걸 써서라도 널 지켜 주마. 처음엔 너를 적으로 간주했지만, 이제는 확실한 아군으로 생각하겠다.”

“뭐예요, 그게.”

나름 진지하게 말했건만, 시엘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 * *

그날 이후로.

나와 시엘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일런스가 치료를 마치고 병상에서 깨어나는 순간을 말이다.

그리고 끝내 이날이 오고야 말았다.

모든 준비를 마쳐 두었기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아이리와 미유를 이끌고 사일런스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병원 입구에서부터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비서들에게 맡기고 사일런스를 만나러 갔다.

“[다, 당신은……?]”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사일런스는 나를 알아보았다. 정신을 차린 그는 이미 얼굴에 LED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내 뒤에서 아이리와 미유가 차례대로 등장하자, 사일런스의 마스크에 [??]표시가 떠올랐다. 이들이 만나는 것은 두 번째지만 사일런스는 아마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아이리와 미유 역시 갑작스레 쇼핑을 끝내고 이곳으로 온 이유를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 사일런스는 어디까지나 ‘남’에 불과했으니까.

아마도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다.

칼칼한 목을 축이며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설명해 주마.”

나는 사일런스가 아라야에게 조종당하던 순간부터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에 짤막하게 말해 주었고, 부족한 부분들은 아이리와 미유가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이게 대체…….]”

사일런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야 할 이야기는 많이 남아 있었다.

“이제부터 본론이다. 내가 어째서 너희를 오늘 이 한자리에 모았는가.”

세 명 다 그 부분이 궁금했는지 내 입에 주목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운을 떼었다.

“사일런스.”

“[예?]”

“네 연인을 죽인 자를 찾고 있다 들었다. 그 범인을 알려 주마.”

“[자, 잠깐만요. 지금 무슨 말씀을-.]”

“범인은 나다.”

“[……예?]”

순간적으로 병실을 가득 채운 침묵.

무언가 터지기 직전 같은 분위기였다.

“자, 잠까-!”

감이 좋은 아이리가 한 발 앞서 나와 사일런스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사일런스는 그녀를 무시한 채 나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왼팔로 내 멱살을 잡고, 오른팔을 뒤로 향해 뻗는다.

철컥.

그의 손목이 열리며 10cm 정도 길이의 칼날이 순식간에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내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만! 일단 진정하란 말이에요! 진정!”

아이리가 사일런스의 팔을 도중에 낚아챘다. 힘겨루기를 하며 어떻게든 그를 막아세우려고 했으나, 이미 분노에 가득찬 사일런스를 제압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비켜.]”

싸늘하게 뇌까린 사일런스는 아이리를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그녀는 다급하게 몸을 뒤로 젖혔지만 얼굴을 약간 베이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리가 잠시 떨어진 틈을 이용하여 사일런스는 내 목덜미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나연. 네 연인을 죽인 범인은 나다.”

“[……잠깐.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내가 당당하게 대답하자, 오히려 사일런스가 떨리는 눈으로 절규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칼날을 더욱 내 목에 가까이 대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지는 알아? 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 특별장학생으로 영입하겠다면서 찾아오지 않았나?]”

“그랬지.”

“[그럼 무슨 생각으로 ‘범인을 찾는 걸 도와주겠다.’ 같은 소리를 지껄였던 거지? 뭐가 목적이야? 정말로 당신이 죽인 건 맞아? 그게 사실이라면 걔를 왜 죽인 거고, 왜 이제 와서 자백을 하는 건데! 왜!]”

“그만둬! 제발 진정하라고!”

“[닥쳐! 제 3자는 입 다물고 있어!]”

“죄,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오……!”

나를 죽이려 드는 사일런스.

그를 말리려는 아이리.

잔뜩 겁을 먹고 구석에서 우는 미유.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죽일 기회라면 얼마든지 주지.”

“[뭐, 뭐라……?!]”

그 순간.

나는 사일런스의 손목을 잡았다. 사일런스는 내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나는 녀석의 손목을 더욱 세게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칼날이 내 목을 찌르도록 유도했다.

“[뭐, 뭐 이게……!?]”

당황하는 사일런스.

그가 보기엔 칼날이 내 목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실제로는 그의 칼날이 내 피하장갑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구부러지다가 이내 부러지고 말았다.

딸그락거리는 소음.

부러진 칼날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었고, 그 모습을 세 사람은 경악하며 바라보았다.

그제야 병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말했다.

“나를 죽이고 싶나? 그렇다면…….”

나지막이 제안한다.

“일단 내 말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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