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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막 시점-77화 (77/117)

아카데미 흑막 시점 78화

시야가 점멸한다.

과열된 뇌 일부가 녹아내린 탓이겠지.

원래 내 것도 아닌 모듈을, 미완성의 몸으로 사용한 탓이다. 아니면 아직 내가 미숙한 점이 많았거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상 5초 정도 되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별로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 보였다. 몸이 완전히 망가질 것을 각오하고서 [테크 블레이드]를 힘껏 휘둘렀으나, 효과는 미미해 보였다.

‘이럴 리가 없을 텐데.’

당혹감.

내 앞에는 여전히 아론이 서 있었다.

근처에 있던 건물이나 잡동사니 따위도 달라지지 않았고, 베네딕트의 병사들도 여전히 하늘을 날아다니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리석구나.”

아론이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실패했구나.

조급한 마음에 제대로 모듈이 지닌 힘을 이끌어 내지 못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조용하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마치 소리를 잘라 낸 것처럼, 조금 전까지도 전장을 가득 채우던 소음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차례대로 이변이 생긴다.

끼이이이이이익-!

아론의 왼쪽 뒤편에 있던 전신주가 기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기둥에서 파지직 불꽃이 튀기더니, 이내 느릿느릿 쓰러졌다.

그의 오른편에 있던 잔해도 마찬가지.

지난번 타이탄의 습격 때 건물이 무너지며 생긴 콘크리트 잔해였다. 그것은 맷돌을 가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상단부가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변은 계속된다.

Lv.4 파워드 아머의 힘을 빌려 공중기동을 하던 병사들이 일제히 작은 폭발을 일으키더니 바닥으로 추락한다.

버려진 자동차의 프레임이 갑자기 절반으로 잘리며 주저앉는다. 한창 복구공사를 진행하던 크레인이 부서진다. 전장으로부터 꽤 먼 곳에 떨어져 있던 건물의 유리창이 난데없이 와장창 깨진다.

스르륵. 스르륵.

마치 파문이 퍼지듯.

마치 잔잔한 호수 한가운데에 돌을 떨어뜨린 것처럼, 내가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무언가가 잘리고 부서진다.

적막했던 공간이 서서히 시끄러워진다.

주변 모든 사물이 마치 소리를 지르듯 이상한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갈아내는 듯한 소리, 부서지는 소리, 꺾이는 소리 등등.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연주 전에 악기를 조율하듯이, 사물들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론이 중얼거렸다.

“보고도 모르는 것이냐?”

그의 중얼거림에.

때가 왔다는 듯이.

모든 것들이 반으로 갈라지고.

부서져 내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 정면 시야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 반으로 갈라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쏟아지고, 깔리고, 망가지고, 폭발하며, 나뉜다.

그리고 그것은 아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쿨럭.”

그에게서 가장 먼저 생긴 이변은, 그가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는 것이었다. 입가로 붉은 선혈이 따라 흐른다.

툭.

그의 팔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힘없이 바닥에 내던져지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 탓에 순간 착각이 들 정도였다.

원래 그 ‘팔’은 억지로 붙어 있었던 것이고, 떨어져야 할 것이 떨어졌다고 말이다.

‘……그럴 리가 없지.’

나는 가만히 아론을 지켜본다.

이윽고 그가 입고 있던 셔츠가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액체가 번지는 속도는 서서히 빨라져서 몇 초가 지나자 아예 콸콸 흐르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아론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맹금류를 닮은 그 눈동자는 냉정하게 사냥감을 노리듯 나를 훑는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낮아진 중저음의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아직 더 할 수 있겠나?”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져 있다.

미친 새끼.

그런 생각부터 들었지만, 나는 그 목적이 단순히 싸움의 유열을 즐기려는 데에만 있지 않음을 곧 깨달았다.

물론 그게 가장 크긴 하겠지만.

지금의 그는 ‘아론 스팅레이’인 동시에 ‘나’였고, ‘나’인 동시에 ‘아론 스팅레이’였으니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보지.”

녹아내리다 굳은 몸 상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어차피 곧 사라질 몸이다. 만들어 준 사람의 계획에 따라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녀석도 참 제정신이 아닌 건 매한가지인 듯했다.

이미 오래전.

한 차례 각오했던 적이 있었던 탓일까.

스스로를 포기했던 적이 있던 탓일까.

죽음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물론 지금 내 안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복제된 것에 불과하지만,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론 스팅레이’가 되기 한참 전부터 진즉에 망가져 있었으며, 그 망가진 자의 기억을 받아 만들어진 나 역시 인간으로서는 결함제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도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인가?”

“헛되이 보내긴 아쉽잖은가.”

“그래. 아직 할 일도 남아 있고.”

“…….”

나는 조용히 검을 쥐었다.

[테크 블레이드]는 어느새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과부하 때문에 몸 상태가 안 좋으니 낼 수 있는 출력에도 한계가 있겠지.

절삭력은 조금 떨어질 것이다.

아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팔을 하나 잃은 상태로는 [구름거미]의 실을 완벽하게 다루기 어려울 테지.

결국 둘 다 약해진 상태였고.

나름 둘 다에게 공평한 조건이었다.

“…….”

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고.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 * *

마지막은 괴물들의 싸움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이들의 감상은 그러했다. 앞서 보았던 장면들은 전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듯이, 두 아론의 결투는 격하게 진행되었다.

둘 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들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한 힘을 쏟아냈다. 그 전투의 여파로 주변의 지형이 계속해서 바뀔 정도였다.

[제, 제기랄! 거기서 도망쳐!]

[휘말리면 죽는다!]

결국 주변의 병사들은 그 재해와도 같은 전투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참을 물러나야 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들 역시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하려 했다. 하지만 지급받은 탄약은 전부 떨어졌고, 체내 모듈을 통해 만들어 낸 무기 역시 그들의 싸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몇몇 용감한 병사 몇 명이 근접전투용 모듈들을 활성화한 채 두 괴물의 싸움에 끼어들었지만,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실패였다.

그때마다 아론 스팅레이에게 잡아먹혀 모듈을 뱉어 내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포기한 것이다.

함부로 두 사람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은 아이리나 사일런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소년 쪽 아론을 도우려고 했으나, 그들은 이미 앞선 전투에 의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청년 아론과 몇 합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장비가 파괴되고 이곳저곳 중상을 입었다.

그들은 스팅레이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부축하며 두 괴물이 일으키는 재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선배. 관절부가 갑자기 망가진 거 같아요. 어깨는 괜찮은데 안 움직여요.”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걸을 수 있으면 벗지는 않는 게 좋아. 까딱해서 저놈들 눈먼 공격에 맞았을 때, 그 갑옷조차도 없으면 100% 죽을 테니까.]”

이내 그들은 현장에서 상당히 벗어나 먼발치에서 두 아론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채앵! 채앵! 채앵! 채앵!

전투의 격한 소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사일런스는 돌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하하……!]”

“가, 갑자기 왜 웃는 거예요?”

“[멍청해서.]”

“네?”

“[내가 너무 멍청하게 느껴져서. 지금까지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넌 모를 테지.]”

그렇게 말한 사일런스는 이내 혀끝을 맴도는 씁쓸함을 속으로 삼키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이리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으나, 그에게는 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어찌 말하겠는가.

원래는 배신할 생각이었다고.

아론 스팅레이고, 복제품이고, 아이리고, 미유고, 뭐고 전부.

저 아론 스팅레이와 관련된 모두를 전투가 끝난 뒤에, 모조리 죽여 버리고, 스스로도 죽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복수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다.

자신이 좋아했으나, 좋아한다고 말 한 번 전하지 못했던 그녀가 그리도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심지어 그녀의 죽음은 칩으로 만들어져 누군가의 유흥거리가 된 채 아직까지도 계속 복제되고 퍼지며 모욕당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범인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증거를 찾기 위해 스스로 정크칩에 손을 댔고, 결국 뇌가 녹아내릴 지경이 되어 이제는 이런 병신 같은 가면 없이는 말도 제대로 못한다.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든 범인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사실 내가 범인이었어. 미안해. 근데 그거 사실 내 탓 아니야? 좀 용서해 줄래?”라고 한다 한들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죽이려 했다.

잠시 그에게 협력하는 척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모조리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 실패의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무력함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실력에 자신이 있었으나, 아론 스팅레이라는 괴물에게는 칼끝조차 닿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한 실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저걸 보고서 어떻게 그러겠어.’

아론 스팅레이는 스스로를 진심으로 죽이려 하고 있었다.

수많은 죄를 저질러 온 자신을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 이 모든 상황을 준비했다.

자신이 이끌어야 할 스팅레이의 병사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게 만들고, 자신이 후원하는 학생들이 자신을 배신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자신의 복제품마저 그 칼끝을 자신에게 향하도록 만들었다.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는 거야.’

경험해 본 적이 있기에 안다.

자신도 사이비 종교가 만든 수상한 정크칩에 조종당해 아이리를 죽이려 했었지 않은가?

그리고 그 후에는 어떻게 됐던가?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게 되더라.

내 잘못도 아닌데 그 죄를 자신에게 묻는 건 아니지 않냐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 남자는 달라.’

그에겐 능력이 있었다.

자신을 향한 단죄를 없던 일로 해 버릴 수 있는 충분한 재력과, 무력과, 권력이.

그럼에도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죄를 밝히고, 처형대로 올리기 위해 지금도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저 남자를 죽일 수 없다고.

저토록 스스로의 죄를 미워하는 남자가, 속죄할 기회를 빼앗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하지 않은가.

* * *

전투는 서서히 끝을 맞이했다.

팔과 내장을 다친 아론의 안색은 서서히 창백해져 갔다. 과다출혈 때문이었다. 물론 몸 이곳저곳이 녹아내린 나 역시 상태는 좋지 않았다.

한참을 이어 가던 공방은.

털썩.

어느 순간 아론이 견디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는 것으로 승패가 갈렸다. 나는 칼을 들이민 채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의 목에 칼을 대고 묻는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래.”

아론은 대답했다.

“드디어 깨달았나 보군.”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겠지. 사일런스는 너를 용서할 것이고, 베네딕트를 끌어내릴 명분이 생겼다. 동시에 마리아까지 확실한 아군으로 영입할 수 있겠지.”

“내가 아니다.”

내 말에 본체가 답했다.

“나나 네가 아닌, 다른 누군가겠지.”

“그래, 그렇지.”

앞으로 아론 스팅레이의 육체를 사용할 것은, 원본의 복제품인 내 자아를, 다시 복제해서 태어난 다른 자아일 테니까.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원본 자아파일 A가 있었다.

A는 바이러스에 영향을 받았다.

컴퓨터의 주인은 A가 못 써먹게 될 상황을 대비하여 A(1) 파일을 다른 컴퓨터에 백업해 두었다.

모든 상황이 끝난 후엔 바이러스에 감염된 A파일을 삭제하고, A(1)에서 복제해 만들어 낸 A(2) 파일이 컴퓨터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처음의 A도, A(1)도, A(2)도 전부 A이지만 자세히 따지고 보면 전부 다 다른 파일이다.

“이걸로 괜찮은 거겠지?”

“모른다.”

“네가 모른다면 나도 모른다.”

“다음 놈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다음으로 무대로 향하는 것 역시, 이곳에 있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일 테니까.

아마 시엘에게 말하면 즉시 반박해 올 테지만, ‘나’에겐 ‘나’만의 믿음이 있는 것이다.

나는 쓰러진 본체의 머리에 손을 뻗는다. 손목에서 뻗어 나온 케이블을 그의 소켓HUB에 연결하고 전송을 시작한다.

이로써 아론 스팅레이라는 바이러스는 사라지고, 순수한 ‘나’만의 자아가 이 육체를 조종하게 되겠지.

……뭐,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원본이니, 복제품이니, 뭐니.

중요한 사실은.

가장 위험했던 적이 쓰러졌다는 거겠지. 새롭게 눈을 뜬 내가 누구일지는, 그때의 나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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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을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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