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흑막 시점 91화
아이리, 미유, 사일런스, 시엘.
나는 이 네 명이 나아가야 할 성장 방향을 얼추 설정해 두었다.
주인공이 없고, 스토리 해결도 내가 주도하는 등 여러 모로 뒤틀릴 대로 뒤틀린 상황이었기에 현실에 맞춰 다른 방식으로 성장시켜야겠지.
우선은 아이리.
원작 속 그녀는 파티의 행동대장 겸 전위 역할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없는 지금, 그녀는 주인공을 오빠의 대체제로 삼아 의존하던 모습을 탈피해 리더로서 팀원들을 이끌어야 한다.
둘째는 미유.
미유는 원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된다.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녀의 기술적 진보에 조언을 줄 수 없을 테니까.
낯가림을 고치거나 충분히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풍족한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겠지. 2부에서 그녀에게 다가올 ‘위기’를 최대한 문제 없이 해결해 줘야겠고.
셋째로 사일런스.
원작에서는 3학년 선배로서 든든한 조력자이자 조언자로서 활동하다가 팀에서 가장 빠르게 은퇴하는 캐릭터였다.
다른 동료들과 학년이 맞지 않기도 했거니와, 망가진 육체로 인해 생각보다 큰 벽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있으면 다르지.’
정크칩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한 돈?
그까짓 거 내면 그만이다.
스팅레이 가문이 패시브로 지닌 두툼한 지갑의 힘은 대단히 엄청나서, 원래라면 은퇴할 운명인 예정의 캐릭터를 뜯어고쳐서 자리에 끝까지 박아 놓을 수 있다.
부작용도 치료하고, 모듈도 그에게 맞는 최고급으로 박아주면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겠지. 나는 최대한 그를 내 곁에 오래 남겨 두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엘.
원래는 진짜 약방의 감초 캐릭터고, 1부 3막 이후에는 엑스트라 급의 비중을 보여 주는 비운의 서브히로인이었지만, 내가 있는 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 힘으로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도 했었고, 무엇보다 그녀가 지닌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엘을 위자드로서 키운다.’
주인공이 사라지면서 ‘위자드’ 포지션을 맡을 녀석이 사라졌다. 나는 그 역할을 시엘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원작과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는 역할이긴 하지만, 지난번에 보니 해킹 재능이 상당한 듯했다.
미유가 해킹에 일가견이 있다곤 해도 그녀는 어디까지나 ‘엔지니어’다.
듣자 하니 사이버 스페이스에 직접 뛰어들어 각종 해킹 모듈을 ‘위자드’와는 요구되는 능력에 다소 차이가 있다는 모양.
‘시엘이 위자드로서 능력을 만개한다면, 스스로를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다.’
마음의 빚…… 이라고까지는 말하기 뭐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마다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리, 사일런스는 일단 작업 끝났고.’
그러니 이젠 시엘의 차례였다.
* * *
스팅레이 특별반 소집 며칠 후.
간신히 여유시간을 마련한 나는, 미유와 시엘을 이끌고 아카데미 인근 안드로이드 파츠 전문 가게에 방문했다.
미유가 적응자용 모듈과 달리, 안드로이드를 전투용으로 개조하는 파츠를 만들기 위해선 참고할 만한 실물들이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직접 올 필요는 없긴 했지만, 솔직히 이때가 아니면 언제 외출을 하겠는가.
이런 핑계라도 대지 않으면 계속 일에 붙잡혀 살아야 한다. 흑흑.
‘그립구나, 동생아…….’
그냥 적당히 우리 애들 졸업할 때까지만 짬처리하면서 기다려 줬으면, 나도 경영권이고 뭐고 적당히 다 넘겨주고 뒷방 늙은이마냥 조용히 지냈을 텐데.
그러게 왜 욕심을 부렸니, 왜.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끼며 나는 안드로이드 가게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사무실에서 30분 이내로 왕복할 수 있는 곳 중에서는 가장 큰 가게였고, 지난번 백화점을 통째로 빌렸던 때처럼 이번에도 다른 손님들을 받지 않도록 해 두었다.
그저 언론의 이목을 끌어서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게 싫어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론 님, 아론 님! 이거 어때요~?”
해맑은 모습으로 나를 보며 웃는 시엘의 머리에는 고양이 귀가 달려 있었다. 엉덩이엔 고양이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참고로 그 귀와 꼬리는 별다른 기능이 없는, 그냥 주인의 취향에 맞추기 위한 안드로이드용 악세사리였다.
“네? 대답해 주세요~ 저 어때요~?”
“…….”
어떻기는 뭐 어때.
아주 좋…… 앗, 이게 아닌데.
내 개인적인 욕망은 일단 접어두고, 아론 스팅레이가 안드로이드에게 이런 파츠를 끼우면서 즐긴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했다간 감당할 수 없어진다.
아니, 그래도 고양이 귀와 꼬리까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예전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원래의 귀를 잘라 내고, 짐승귀와 꼬리를 붙이는 게 유행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가슴에 저건 좀 아니다.
“시엘. 하나만 물으마.”
“왜 그러시죠~?”
“그 흉악한 흉부 파츠는 어디서 달고 나타난 거냐.”
골이 아파진다.
맹세하건대, 내가 시킨 거 아니다.
저 혼자 멋대로 쫄래쫄래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갑자기 남성의 음습한 이상성욕을 한 500배쯤 농축한 듯한 물건을 덜렁덜렁 달고 나왔다.
하지만 시엘은 부끄럽다는 자각도 없는지 아주 활기찬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 성인 코너에 있던데요!”
활기찬 목소리.
어찌나 활기찬 목소리인지, 내가 버거집 사장이었으면 ‘좋아! 아주 활기차군! 저 자식에게 그 씹덕 하나 내줘!’하고 대답할 뻔했다.
“……당장 떼고 와라. 당장.”
“히잉.”
히잉은 지랄.
누구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일 있냐.
순간적으로 시엘 이 녀석이 나를 물리적으로는 어쩌지 못하니 사회적으로 타격을 입히려는 속셈이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했을 정도다.
그 모양새가 어찌나 남사스러웠는지 내 옆에 있던 미유는 귀까지 새빨개져서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근데 미유야, 네가 가진 만능툴도 만만찮단다.
어쨌건.
그런 사소한 해프닝을 거쳐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안드로이드용 파츠를 진지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우선은 우리 전문가의 조언.
“안드로이드가 전투 모듈을 사용하기 위해선, 나노머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파워팩’ 파츠가 필수예요오. 또 시엘 씨의 AI코어가 해킹모듈의 연산 능력을 감당하기 위한 냉각팩, 보조 처리장치를 비롯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만 꼽자면…….”
요컨대 본래 메이드 안드로이드에 불과했던 시엘이 본격적으로 테크 위자드로 거듭나기 위해선 필요한 게 많다는 거겠지.
하지만 이미 고려하고 있었던 부분이었기에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자금적인 부분이야 내게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윽……!”
그런 내 의사를 밝히자 어째서인가 미유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의 견해를 밝혔다.
“사, 사실 효율을 따지면 안드로이드를 위자드로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재능 있는 학생을 영입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인데요오…….”
“시엘 씨를 열심히 개조한다고 해도 아마 제 장로급 이상의 ‘귀여움’…… 아니, 성능을 갖추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게…….”
“그…… 10여 년 전에 유행했다던 전투용 안드로이드 기록을 살펴보시면 말이죠오…….”
계속되는 미유의 설명이 묘하게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핑계를 대듯 중얼거리는 태도까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확실했다.
“너는 반대인 건가.”
“네에?!”
“시엘을 테크 위자드로 만드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로군.”
“…….”
정곡을 찔린 듯 말을 잇지 못하는 미유. 그러다 그녀는 이내 우물쭈물 하면서도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네…… 저는…… 반대예요오…….”
미유는 시엘과 내 눈치를 번갈아 살폈다. 시엘은 미유의 발언에 “아하하.”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무래도 제가 뭔가 미유 님한테 잘못한 게 있었던 모양이네요? 아하하…….”
“아, 아뇨오! 그런 건 아닌데에!”
황급히 부정하는 미유.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금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사실 시엘 씨는 오류 개체잖아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란 말이죠오…….”
‘그래서 그런 거였군.’
곧바로 미유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시엘은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위험한 존재였다.
자아를 깨우친 로봇.
내가 있던 세계에서는 매체로만 접했던 존재이고, 때때로는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우리는 그 대상에게 공감하고, 그 불합리한 처지에 안타까움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사람에겐 어떨까.
이따금씩 나타나는 이레귤러.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를 일으켜서 주인의 명령에 거역하고, 때로는 그를 죽이고 도망쳐 폴른 구역에서 범죄로 연명하는 오류 개체들.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위험 요소란, 얼마나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무서운 존재일까.
‘특히나 미유에겐 더더욱 그렇겠지.’
미유는 이미 ‘혈랑’이라는 케이스를 통해, 자신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 원치 않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험을 겪었다.
그런 그녀에겐 시엘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고 두렵게 느껴질 테지.
하물며 시엘에게 해킹 모듈이라는 무기까지 쥐어 주려 하고 있으니, 내가 제정신인가 싶었을 것이고.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시엘이 어떤 존재인가.
자아를 깨우친 로봇.
그곳에 빙의한 인간의 영혼.
그리고 또다시 세계의 의지로 인해 다시금 변형되고 만 자아.
물론 뒤에 두 가지는 나만 아는 사실이지만, 어쨌든 내가 봐도 지금의 시엘이 꽤 불안정한 존재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미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어투로, 어르고 달래듯이 접근한다. 내 목소리가 한층 진중해지자 미유도 긴장한 듯 입술을 앙다문다. 긴 머리칼 틈으로 그녀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하나만 물어보마.”
“ㄴ, 네?”
“너는 정말로 저 녀석이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겨우 해킹용 모듈 몇 개 달아주었다고?”
“그, 그건…….”
미유의 눈동자가 나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쳤다. 그러다 우연히 시선이 시엘에게 닿으며 멈추었다.
시엘은 적의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은 듯 싱긋 웃었고, 그에 미유는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아…….”하고 작게 탄식했다.
“……제가 틀렸던 것 같아요오.”
“그래.”
“알겠어요…… 아론 씨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저도 열심히 해 볼게요오…….”
“와아! 고마워요, 미유 님~!”
미유의 대답에 시엘은 방방 뛸 듯이 좋아했다.
아마 시엘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진심이 담긴 미소가 미유의 닫혀 있던 마음을 녹여서 마침내 설득에 성공했다는, 그런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미유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시엘의 얼굴이 아니라, 그 머리 위에서 눈치 없이 요란스레 팔랑거리고 있는 고양이 귀 파츠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을 볼 때의 표정은, 일전 그녀가 처음 드워프를 만났을 때의 표정과도 닮아 있었다.
“……이딴 게 안드로이드?”
“네?”
“아, 아무것도 아녜요오……!”
시엘은 미유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는지 해맑은 미소를 띠며 방방 뛰었다.
결과적으로 잘 풀리기는 했지만, 오늘만 벌써 여러 개의 흑역사를 쌓아가는 시엘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러게, 내가 고양이 귀 빼고 오랬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