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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막 시점-92화 (92/117)

아카데미 흑막 시점 92화

시엘을 전투요원으로 개량하는 작업은 착실하게 진행되어 갔다.

안드로이드 파츠 가게에서 사 온 샘플 파츠들을 며칠 정도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던 미유는 몇 개의 테스트 제품을 만들어 냈다.

“저,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상관없다. 내가 책임지지.”

당연하지만 가정용 안드로이드인 시엘을 해킹능력을 지닌 전투용 안드로이드로 개조한다는 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뭐, 그딴 거 내가 알 바인가.

어차피 그냥 내가 시키면 법무부 팀이 어떻게든 이리저리 법의 빈틈을 찔러가면서 어떻게든 정부의 OK 사인을 받아 내겠지.

게다가 경우는 좀 다르지만 이번과 비슷한 사례도 있었다.

예전에 어떤 기업의 재벌 3세 한 명이 안드로이드에 꽂혔더랬다.

수천만 크레딧을 들여 오더메이드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자신의 이상형 캐릭터의 모습을 한 고성능 러브돌을 만들었는데, 어찌나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아예 결혼을 하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부모로선 속 터지는 소리였다.

그래서 아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화를 내 보기도 하고, 전문가에게 상담을 시켜 보기도 하고, 각종 선물로 회유도 해 봤지만 결국 자식의 고집을 꺾는 데엔 실패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며느리가 로봇인 건 견딜 수 없었는지 기업 법무부를 총동원하여 법의 빈틈을 찔러 그 러브돌에게 시민 딱지를 붙여 주었고, 어찌어찌해서 결혼까지 골인했다.

그렇게 결혼한 두 사람(?)은 비너스의 축복을 받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이면 좋을 테지만, 남자가 질려서 러브돌 아내를 버렸다는 게 그 촌극의 결말이었다.

뭐, 어쨌건.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돈과 권력을 가진 놈들이 힘을 쓴다면 법이란 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는 사실.

하물며 그냥 평범한 다이아 수저 물고 태어난 놈도 땡깡 부려서 어떻게든 법을 바꿨는데 나라고 못 할쏘냐. 메이드 안드로이드 한 기 정도 전투용으로 개조하는 문제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응? 안 쉽다고?

아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한텐 쉬워. 우리 직원들한테 안 쉬울 뿐.

뭐, 어쨌건.

그런 부분에선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걸 알려 주자 그제야 미유는 안심하고 작업에 돌입했다.

또한 어차피 자기의 손으로 시엘의 스펙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곤 조금 더 마음을 놓은 듯했다.

“그, 그럼 일단 파워팩부터……!”

미유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사실에 꽤 재미를 붙인 듯했다. 묘하게 신난 표정으로 작품들을 시엘 앞에 내밀었다.

그중 제일 먼저 장착해야 하는 건 파워팩.

나노머신이 없는 안드로이드가 모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본 장치였다.

“가게에서 봤던 것보다 크군.”

“그, 그건 민간용 제품이었던 거라…….”

시중에서 판매하는 파워팩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민간용’ 모듈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장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 시엘에게 필요한 것은 [통상]과 [신비],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적응자용 ‘전투 모듈’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만한 성능을 내려면 파워팩 역시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미유의 설명.

“그, 그나마 소켓 HUB와 파워팩을 제 나름대로 결합한 형태라서 더 작아진 거예요오…….”

“그렇군. 수고했다.”

“헤헤…….”

나야 그쪽은 잘 모르니까 그러려니.

미유가 시엘을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해도 이런 부분에서 장난질할 애도 아니고, 그냥 믿기로 했다.

세계관 최고의 천재가 만들었는데 성능도 당연히 좋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다만 그 순간 시엘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문제를 일으켰다.

“그렇게 ‘귀여운’ 모양새는 아니네요? 아하하, 어쩔 수 없는 거겠죠~”

반쯤 농담 삼아 입에 담은 대사.

내가 보기에도 미유가 만든 오리지널 파워팩은 외관상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긴 했다.

어디 자동차 본네트 안에 들어가 박혀 있으면 자연스러울 것 같은 디자인.

그러나 그 한마디가.

‘귀여움’의 정의가 남들과는 다른 미유에게는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힌 모양이었다.

“귀, 귀엽지 않다고요……? 이게……?”

흔들리는 눈동자.

당황한 듯 움찔거리는 입술.

미유에게 있어 귀여움이란 ‘성능’이었고,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빙의자로서의 지식이 남아 있는 시엘도 뒤늦게 자신이 미유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수습하려 했으나.

“미, 미유 님. 그냥 시엘이 농담한 거예요~.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아, 아닌데에…… 귀, 귀여운데…….”

이미 미유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아마 머릿속에서는 ‘안 귀여움!’이라는 말이 동굴 속처럼 계속 메아리치고 있겠지.

미유는 시제품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나서 아름아름 싸들고 온 물건들을 다시금 안아 들고는 문밖으로 향했다. 그 어깨가 의기소침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귀, 귀여운 거…….”

그렇게 중얼거린 미유는 기숙사 안쪽 작업실로 돌아가 버렸고, 그 자리에는 나와 시엘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몇 초간의 정적.

뒤늦게 시엘이 창백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어, 어떡하죠?! 시엘이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네가 알아서 해라.”

“미유 님이 다 때려치면 어떡해요! 지금 바로 가서 용서해 주실 때까지 빌어야…….”

“넌 아직도 저 녀석을 모르나 보군.”

“네?”

시엘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재차 말했다.

“네가 걱정해야 하는 건 미유가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지.”

“바, 반대라뇨?”

“미유가 만든 물건에 대고 ‘귀엽지 않다.’고 평했으니, 저 녀석은 분명 ‘더 귀여운 걸 만들어야 해!’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미유에게 있어서 그 ‘귀여움’이란…….”

“……성능.”

아마 미유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고자, 조금 전의 시제품들보다 한층 더 괴물 같은 물건들을 갖고 나오겠지.

그렇게 설명하자 시엘의 표정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어, 어떡하죠!? 시엘, 이러다 메이드형 전쟁 병기가 되어 버릴 거예요! 미유 님이 시엘의 몸을 형체도 없이 전부 개조해 버릴 거라고요!”

“자업자득이다.”

순간 떠오르는 건 건○ 같은 기갑 병기의 거대한 기체에 시엘의 머리만 똑 떼어 붙여 놓은 기괴한 디자인.

어쩌면 이 얄팍한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괴물이 탄생할 수도 있다.

“뭐, 잘된 일이지.”

“잘됐다뇨! 그렇게 남 일처럼……!”

“결과적으로 더 강해지는 것 아니겠나. 성능이 올라가면 기뻐할 일이지.”

“시엘이 괴물 전쟁병기가 되어 버려도요?! 시엘은 키가 10미터가 넘는 떡대와 미사일도 튕겨 내는 장갑을 갖고 싶진 않다구요! 시엘은 이 말랑말랑한 단백질 신체가 좋다구요!”

“난 모른다.”

그러게 입을 잘 놀렸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시엘의 개조과정을 살펴보려고 온 것이었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미유는 다시금 작업실에 처박혀서 다시 안 나올 듯했다. 수업에 안 빠지고 밥이나 잘 챙겨 먹으면 다행이련만.

“난 이만 가 보겠다.”

“으아아아! 가지 마세요, 제발!”

시엘은 날 열심히 붙잡았지만 ‘아직’ 메이드형 안드로이드에 불과한 그녀가 날 완력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조만간 미유의 손으로 기갑전사로 개조된 후라면 붙어 볼 만할지도 모르겠으나, 아직은 아니었다.

‘……나머지는 미유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사무실로 복귀하던 도중, 문득 알람이 울리며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발신인은 불명.

‘음?’

보통 내게 오는 공식적인 문서들은 비서실을 한 단계 거쳐서 오기 마련인데. 대체 무슨 연유로 내게 발신인 불명의 메일이 도착한 것일까?

강한 경계심이 들어 간단한 검사를 해 보고 조심스레 수취한 메일을 열람했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내용은 놀랍게도-

‘이, 이게 대체……!?’

지금까지 아론 스팅레이가 저질러 온 범죄의 증거들이 고스란히 그곳에 담겨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빙의자라는 증거들. 블라디미르를 끌어들여 벌였던 암살 자작극.

아시타교의 아라야를 잔혹하게 패서 죽였던 일.

베네딕트에게 가담한 스팅레이 병사들을 살해했던 순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리버레이터를 이용하여 앞으로 벌일 안드로이드 반란까지.

그 모든 정보가 담긴 파일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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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왜곡 감지.]

[멘탈 컨트롤러 모듈을 실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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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새롭게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씻겨 나갔다. 눈앞에 아른거리던 정체불명의 메일도 사라졌다.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메일함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환상?”

상황을 이해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범인은 알 수 없었으나,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내게 마법적인 공격을 시도한 게 아닐까.

“…….”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

원작에서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던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추스르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답은 NO였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

‘빙의자.’

또다시 적이 나타난 것이다.

* * *

사일런스는 치료.

미유는 작업.

시엘은 개조.

모두가 각자의 방향에서 나름대로 준비해 나가고 있을 때, 아이리와 레이나는…….

“아이리. 여기 철자가 틀렸습니다. 여기는 비문입니다. 그리고 수치를 다시 확인해 봐야 할 겁니다.”

“고, 고칠게요.”

“레이나 양. 이 문단의 내용은 대부분 쓸모없습니다. 논지가 흐려집니다.”

“죄, 죄송합니다…….”

스팅레이 사무실, 마리아의 옆자리에서 서류의 산에 둘러싸여 보고서 첨삭을 받고 있었다.

‘어, 어려워! 힘들어!’

아이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팀의 리더 역할을 떠안게 된 그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작전 계획 보고서 작성’이었다.

내심 ‘그냥 들어가서 어떻게든 열심히 싸우면 되는 거 아닌가? 문서 작업 같은 게 왜 필요하지?’라고 생각하며 투덜대는 그녀였으나 그런 생각을 입에 담자마자 마리아에게 크게 혼났다.

“리더는 문서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상부에 올리는 보고서는 물론, 밑에서 올라오는 것들도 전부 문서.

이런 작업에 익숙해져서 능력을 갖춰 놓지 않으면, 여러 사람을 다루는 조직의 리더로서 실격이라는 게 마리아의 설명.

“보고서는 최대한 간결하고 깔끔하게. 가급적 한 장 이내에 모든 내용이 담겨서 상사가 한눈에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야 좋은 보고서입니다.”

“하지만 아카데미에서는 종종 A4 10장 이상의 레포트를 적어 오라고 시키던데요…….”

“그건 학업 성취를 위한 레포트니까요. 그 긴 레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열심히 자료를 조사하고, 공부해야 하죠. 하지만 회사의 보고서는 다릅니다.”

“네…….”

풀이 죽은 채 대답한 아이리.

하지만 마리아의 잔소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팀원들과 합은 맞춰보고 계십니까?”

“합이요?”

“훈련 말입니다.”

“아, 아뇨…….”

이것만으로도 바쁜데 어떻게 훈련을 해 보겠는가. 당장 레이나도 아카데미 일과 끝나자마자 사무실에 붙잡혀서 아이리와 함께 문서만 만지고 있는데.

그런 생각으로 가볍게 대답했지만, 마리아는 엄격한 표정으로 그녀를 꾸중했다.

“틈이 날 때마다 팀원들을 모아서 훈련시키고 준비가 어떻게 되어 가나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현장 지도를 제공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시뮬레이션 훈련장을 빌려서 지도를 기반으로 현장을 재현해 놓고 가상의 적과 싸우는 방법이 가장 직관적입니다. 또한…….”

“……네.”

귀에서 피 나겠다!

아이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마리아 씨가 이런 사람이었나?

아니, 물론 바쁜 시간을 내서 도와주려는 건 고맙긴 한데!

원래 하던 일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아론이 내린 명령 때문에 숙제가 늘어난 상황이니 마냥 달가울 수는 없었다.

“후우…….”

“힘드십니까?”

“……아뇨.”

그래, 어쩔 수 없지.

마리아의 말마따나 이게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작업을 계속하던 그때.

“윽…….”

휘청.

맞은편에 앉아 있던 마리아가 갑자기 이마를 붙잡고는 잠시 몸을 비틀거렸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레이나 역시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며 얼굴을 감싸 쥐었고, 다른 자리의 스팅레이 직원들 역시 일제히 신호를 받은 것처럼 비틀거리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마, 마리아 씨? 괜찮아요?”

“네. 잠시 어지럼증 때문에…… 아이리는 괜찮습니까?”

“네, 저는 괜찮…….”

그녀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전화번호는…….

“……오빠?”

피터 존스.

죽은 오빠의 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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