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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막 시점-107화 (106/117)

아카데미 흑막 시점 107화

망했다.

망했다. 이건 틀림없이 망했다.

사내는 욕설 섞인 한탄을 쏟아 내었다.

틀림없이 완벽했을 터인 계획은 또다시 볼품없이 어그러졌다. 그 남자, ‘아론 스팅레이’의 존재에 의해.

이건 사기다.

불공평하다.

말도 안 된다.

불평불만을 아무리 쏟아 내도 만족할 수가 없다. 이 빌어먹을 세상은 어찌 이리도 불공평하단 말인가.

‘이럴 수는 없다……!’

‘인형’들을 통해 그에 대한 정보는 꾸준히 수집하고 있었을 터이다.

스팅레이 그룹의 기밀인 그의 모듈 정보는 물론, 그의 전투 방식이나 본래의 성격, 인간관계 등등 조금이라도 그를 무너뜨리는 데에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악착처럼 모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소용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예측보다도 더 강했기 때문에.

‘이럴 수는 없단 말이다!!’

다시금 치솟는 분노.

포악스럽게 괴성을 내질러 이 불편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털어 내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려는 순간 무언가에 간섭을 받은 듯이 냉정과 평온을 되찾고 만다.

‘아아…….’

어째서 자신은 이런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것인가. 아직도 수행이 부족한 탓이리라.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은 채 차분한 마음으로 정진하다 보면 비로소 부처의 길로…….

‘아니야! 이게 아니야!’

이딴 건 자신이 아니다.

이 빌어먹을 몸뚱어리가 자꾸 의식을 앗아 간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자신’이 아닌 ‘아라야’의 기억만을 품은 채 다시 깨어나곤 했다.

그는 에반젤린에게서 빼앗은 마법의 힘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저항해 보려고 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성과는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그 효과는 떨어지고 있었고, 갈수록 ‘아라야’로서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으으으으윽-!”

이게 전부 다 그놈 때문이다.

모든 것을 혼자서 탐욕스럽게 차지해 버린 아론 스팅레이만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전개하는 순간 다시금 속에서 미친 듯한 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다시 찬물을 끼얹은 듯 ‘아라야’로서의 인격이 가소롭다는 듯이 주도권을 채간다.

그렇게 그는 제자리에서 분노했다가 냉정을 되찾기를 한없이 반복했다.

마치 스위치를 켰다 끄는 것처럼, 혹은 자동차의 액셀을 밟은 채 브레이크를 밟았다 푸는 것처럼.

그의 생각 역시 나아가다가 멈추기를 되풀이했고, 두 명의 주자가 쉴 새 없이 바톤 터치를 이어 나갔다.

얼마나 그 무의미한 교대를 계속했을까. 그는 서서히 자신이 ‘아라야’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말단의 신경 가닥 하나하나가, 두 인격이 서서히 합일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발작처럼 지속되던 ‘교체’가 얼추 진정된 후에야, 그는 굉장히 차분해진 마음으로 자신의 계획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어디까지 했었지요? 음. 그래요.’

아론 스팅레이.

제일 방해되는 빙의자, 경쟁자, 적대자.

재력과 권력, 무력.

어느 한 부분에서조차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기껏 끌어모은 신도들은 기업들이 주도하는 ‘사냥’ 탓에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가장 큰 희망이었던 정크칩마저 생산이 중지되고 말았다.

기업 사냥꾼들의 눈길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도 갈고닦았던 마법은, 아론이 지닌 예측 이상의 강력한 힘 앞에 한낱 재롱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 사내를 이길 방법은 없을까요?’

한참을 고민해 보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는 1부 1막부터 4막까지, 모든 시나리오의 보상을 독식했다.

게다가 주요 캐릭터 대부분과의 관계 기반까지 단단히 다져 놓았으니, 앞으로 그에게서 선두 자리를 빼앗을 방법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나마 그에게 빙의한 영혼이 어리석은 자였더라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겠지만, 그조차 아니었다.

그는 자신 이상으로 이 세계와 구성원들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다른 빙의자들이 열심히 잔꾀를 부려 본다고 한들, 그는 금방 눈치채고선 그것을 저지하려고 들 것이다.

아론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경쟁자를 치워 내고 탐욕스럽게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차지해 나갈 것이다. 최악의 악역 역할에 만족하고 그쳤어야 할 그가, 사실상 주인공 자리까지 차지해 버렸듯이.

‘……저는 주인공이 아니었던 거겠지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문제처럼 느껴졌다.

아마 이것으로 끝날 것이다.

아론 스팅레이는 이번 사건이 끝나는 대로 자신을 확실하게 처단하겠지. 용서를 구할 여지조차 없을 것이다.

‘……죽음이라.’

그에 대해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온다.

이런 몸뚱이를 지닌 자신이, 온전한 자아를 유지한 채 자신으로 죽을 수나 있을까. 뭐, 아무래도 좋을 문제겠지.

다만.

마지막으로 이 몸에 남은 게 있다면.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불씨 한 조각이 있다면.

그것은 ‘복수심’일 것이다.

‘당신 혼자 좋은 결말을 맞이하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 아론 스팅레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감정.

가지지 못한 것은 부수어 버리겠다는, 그런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발상만이 진짜 ‘자신’으로서 내리는 마지막 선택이 될 테지.

그래, 좋다.

바로 이거다.

“……마지막 싸움입니다, 아론 스팅레이.”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 그 대사를 내뱉은 순간만큼은, 자신이 정말로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 * *

내가 에반젤린의 정체가 ‘마녀’라는 것을 밝혔음에도, 특별반 아이들은 물론 마리아 역시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어쩌면 오류 개체인 시엘을 데려온 시점부터, 내 인재 픽업 기준에 의문을 품지 않는 게 편하다는 걸 깨달은 걸지도. 잘은 몰라도 이 녀석들 머릿속에선 내가 ‘괴짜 수집가’ 같은 칭호를 달고 있겠지.

‘……조금 억울하네.’

거기서 또 추가적인 이유를 꼽자면 인간이란 외견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 생물인지라, 에반젤린의 외모도 그녀를 받아들이는 데에 크게 한몫했을 거다.

이 꼬맹이는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귀엽게 생겼으니까.

어쨌건 그렇게 하여.

에반젤린의 존재는 모두의 마음에 쉽게 받아들여졌다. 굳이 문제를 하나 꼽자면, 너무 깊게 받아들여졌다는 부분이겠지.

다름 아닌 레이나에게 말이다.

“에반젤린, 어서 와서 이것 좀 먹어 볼래요? 이거 무척 맛있답니다.”

“에반젤린, 심심하지 않나요?”

“에반젤린, 혹시~.”

에반젤린, 에반젤린, 에반젤린.

비행이 이어지는 동안 계속되는 레이나의 호출에, 에반젤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괴성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악! 그만하거라! 저리 가!”

“어머나…….”

크싸레이나의 지나친 관심을 견디지 못한 에반젤린은, 결국 그녀에게 배정한 자리에서 도망치듯 내 자리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그녀는 등받이를 30도 정도 눕혀 기대고 있던 나의 배 위에 뛰어들듯 올라탔다. 그러고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혀 나를 바라보았다.

“아론! 저 녀석 내리라고 해라!”

“헉! 저더러 죽으라는 건가요!?”

“[결국 꼬마 마녀한테 미움 받았네. 내 그럴 줄 알았지, 크흐흐.]”

“뭐라고요, 선배?”

“[크흠.]”

에반젤린의 공중낙하 지시를 받은 레이나는 충격받은 얼굴을 했고, 옆에서 자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깬 사일런스는 그 모습에 재미있어했다.

그러다 레이나가 흘겨보자 무안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다시 눈을 감는 사일런스.

뒷좌석에서 그런 촌극이 오가는 동안, 나는 배 위에 올라탄 에반젤린을 그대로 들어 복도 쪽에 내려놓았다.

“자리로 돌아가도록.”

“그, 그치만……!”

“얌전히 있지 못하겠나.”

슬쩍 미간을 좁히자 에반젤린은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제 맘을 알아주지 않는 게 어지간히도 속상한 모양이었다.

그 표정에 순간 나도 마음이 약해질 뻔했으나 어떻게든 참았다. 이런 어리광을 일일이 다 받아주었다간 지금보다 더 제멋대로인 녀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던 그때, 내 바로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마리아가 에반젤린을 불렀다.

“괜찮으면 제 쪽으로 오시겠습니까?”

“그, 그래도 되겠느냐!”

“물론입니다. 여기 와서 같이 영화를 보죠.”

“영화? 영화가 뭐냐?”

호기심이 동했는지 마리아 쪽으로 통통 튀듯 향하는 에반젤린. 나는 한숨을 쉬며 내 비서의 이름을 불렀다.

“……마리아.”

“아무래도 도련님 근처에 있고 싶은 모양입니다. 도착할 때까지는 제가 도련님 대신 돌보겠습니다.”

“너무 어리광 받아주지 마라.”

“이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마리아의 목소리에서 보기 드물게 강한 의지가 느껴왔다.

왠지 마리아의 무표정이 게○버거 비법을 마침내 훔쳐낸 플○크톤 사장의 표정과 비슷해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하하, 드디어 에반젤린을 손에 넣었다!

“……알아서 해라.”

나는 아까 아라야한테 [테크블레이드 진(眞)]을 사용했던 반동으로 상당히 피곤했다.

복제품과 달리 이 육체는 상당히 튼튼해서 몸이 녹아내리거나 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지만 상당히 부담이 가는 기술임은 여전했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아이리와 시엘, 미유는 피곤함에 못 이겨 뻗은 상태였다. 아까 잠시 깼던 사일런스도 지금은 다시 잠든 상태였고, 레이나는……

……아니, 왜 쟤는 잘 생각을 안 하냐. 에반젤린 옆에서 정기라도 빨아먹은 것인지 전혀 피곤해 보이질 않았다. 무서운 녀석.

어쨌건 아카데미에 도착하는 대로 곧장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했기에, 우리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휴식을 취했다.

‘부디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아라야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아이리를 영웅으로 내세워 학생회장으로 만든다.

그런 계획 하에 움직이고는 있지만, 아라야가 정확히 어떤 헛짓거리들을 벌여놨는지 파악할 수 없는 이상, 일단은 조심하는 게 옳으리라.

‘아카데미 방어시스템을 무력화시킨 다음에는 애들을 아카데미에 진입시키고…… 이후에는 최대한 빠르게 아라야를 찾아내서 제압하는 게 핵심이겠지.’

에반젤린의 말대로라면 아라야의 본체는 도시 쪽에 숨어 있다.

놈을 찾아내서 제압하고 나면, 앞으로는 다른 빙의자의 존재 따위 걱정하지 않고 오롯이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 싸움이 되겠군.’

그렇게 내 목표를 재확인하고 나니, 어째서인가 기분이 불쾌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해 보다가 이내 답을 떠올렸다.

‘난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아라야라는 인간은, 어쩌면 셰이드 웰즈가 죽어 버린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으로 볼 수 있을 ‘네크로맨서’일 것이다.

놈이 만약 에반젤린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혹은 자신이 가진 힘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려 들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쩌면 시엘처럼 그를 동료로…….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로군.’

애초부터 성립이 안 되는 이야기.

놈이 에반젤린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마법적인 능력을 얻지 못했을 터. ‘네크로맨싱’이라는 기술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이 아쉬워서 나도 모르게 헛생각을 하고 말았다.

나와 놈은 공존할 수 없다.

놈은 살아 있는 한, 날 계속 방해할 테고.

나는 놈을 죽이지 않고선 불안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그냥 받아들이자.’

이제 와서 감성적이 될 필요가 없지.

그렇게 마음을 굳게 다잡았고, 얼마 가지 않아 기내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5분 후, 뉴 발할라 시티 B섹터 상공으로 진입합니다.]

그 신호에 따라 특별반 멤버들은 잠에서 깼다.

휴식은 끝이었다.

이제 곧…….

“도련님.”

그때, 마리아가 다소 당황한 기색으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그녀가 말했다.

“안티레인이 오고 있습니다.”

“……?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아직 중요한 걸 결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중요한 것?”

그렇게 되묻자.

마리아는 무척이나 진지하게 말했다.

“에반젤린의 우비는 무슨 색으로 하실 겁니까?”

“…….”

[신비]의 마나가 사람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해 보였다.

……마리아까지 이상해진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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