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적응하는 편돌이 (3)
치와와의 성격이 개판인 데에 대해 이런 오해가 하나 있다. 치와와의 두개골에 ‘천문’이라는 명칭의 구멍이 하나 나 있고, 이 구멍이 끊임없이 두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성격이 꼬였다는 것.
이 천문이 존재하는 이유는, 출산 과정에서 두개골이 멀쩡한 채로 나왔다간 산모가 죽어나기 때문에 그걸 좀 완화하기 위해 생물이 진화한 결과라고 한다. 원래는 성장하면서 이 구멍이 아물어야 하는데, 치와와 견종은 그러질 못해서 두개골에 여전히 구멍이 뚫려있다― 이거지.
결론만 말하면, 오해가 맞다.
치와와의 성격이 개차반인 이유는, 두통 때문이 아니라 원래 성격이 개차반인 견종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난 치와와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귀엽고 자시고 눈 마주치기만 해도 꼬리 밟힌 것처럼 짖어대는 놈들을 뭔 수로 좋아한단 말인가?
심지어 지금 들어온 놈은 귀엽지도 않았다.
이놈이 머리통은 치와와인데, 키는 아무리 못해도 190cm가 족히 넘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눈이 심각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칫솔 어딨냐고!”
소형견 전용 칫솔이라면 손가락에 끼워서 견주가 직접 닦아주는 종류를 말하는 걸 텐데, 이놈이 그걸 바라는 것 같진 않고. 오전에 봐둔 게 떠올라 말했다.
“네 번째 코너 뒤편 한번 찾아보시겠어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코너가 한두 개야?”
네 번째 코너라니까?
표정을 보건대 말로 설명하고 있다간 내 손가락을 물어뜯을 기세였던 지라, 직접 칫솔 있는 곳까지 같이 가줬다. 입은 양복에선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말이다. 취했으면 곱게 집 가서 잠을 자야지, 칫솔은 왜 찾는지 모르겠네.
“더 좋은 건 없어?”
“칫솔은 이게 다라서요.”
“창고에 있을 거 아냐.”
“창고에는 주류랑 라면류가 다예요. 칫솔 같은 기성품은 팔린 다음 날이나 다다음 날 들어오는 편이고요. 잘 안 팔리니까.”
덧붙여서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 도시락 같은 것들도 창고에 따로 안 쟁여두니까, 도시락 이거 말고 딴 건 없냐고 물어봤을 때 없다고 대답하면 진짜 없는 줄로 좀 알아줘라. 유통기한 3, 4일도 안 되는 걸 창고에 짱박을 이유가 대체 어디 있겠냐?
칫솔을 가져온 치와와는 만 원짜리 하나를 내밀고는, 나가려 했다.
“간다.”
“손님, 잔돈 가져가셔야죠.”
“내가 알 바야, 씹새야? 자꾸 귀찮게 할래?”
그래, 그냥 가라….
치와와는 정말로 나가버렸고, 칫솔값이 2,100원이라 잔돈 7,900원이 붕 떠버렸다. 꽁돈이 생긴 건 좋은데, 감정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해 보니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잔돈을 뒷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정문을 바라보다 궁금한 게 생겨 물어봤다.
“점장님, 아직 전화 안 끊으셨나요?”
[ 응. 블루투스 이어폰 끼고 있으니까, 그냥 하고 싶은 말 하면 돼. ]
“이 편의점이 여기저기 막 이동하면서 장사한다 하셨잖아요. 그럼 지금 위치가 어디예요?”
[ 도심지 사거리야. 한 달 대부분은 여기서 장사하거든. ]
왜 배달라이더 켄타우로스나 회식 막 끝난 치와와가 오나 했다. 겨우 여유가 좀 생겼기에, 멍하니 편의점 바깥 광경을 바라보았다.
생긴 건 그럭저럭 도심지가 맞았다.
네온사인이나 조명으로 휘황찬란한 거리, 걸어 다니는 것들이 입고 있는 복장이나 다른 건물들 생긴 것도 나 살던 곳이랑 그리 다르진 않았다.
물론 아주 같은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자전거 도로 비슷하게 난 길에 켄타우로스가 걸어 다니거나, 하늘에 팔 대신 날개 달린 여편네들이 반나체 상태로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 정도? 저게 이름이 뭐더라. 하피?
하여튼 이세계이긴 이세계여도 내가 기존에 살던 곳이랑 시대적으로 크게 다르진 않은 듯했다. 당장 플러스니 세븐이니 달라고 할 때부터 짐작했어야 할 부분이긴 했지만….
“점장님, 저 집은 어떻게 갑니까…?”
[ 퇴근하기 전에 미리 나가서 좌표 설정해 줄게. 찬이 네가 좀 도와줘야겠지만. ]
“제가요?”
[ 응. 난 네가 있던 세계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
“점장님은 종족이 어떻게 되시길래.”
[ 사람이지, 아님 뭐겠니. ]
이 동네도 사람이 있긴 한가 보다.
[ 많지는 않아. 몇십 년 전에 전쟁 나서 엄청 죽고 그랬거든. ]
“전쟁이요?”
[ 응. 그러다가 ‘우리 더 싸웠다간 진짜 다 죽겠다’ 싶어서 화해하긴 했는데, 그땐 좀 늦은 후였고. 찬이 네 세상은 어땠는데? ]
“비슷한 일이 있긴 했죠. 세계 대전이라고.”
[ 세계 대전? 이름이 좀… 멋진데? ]
정작 결말은 일본 명치랑 사타구니에 빅 퍼킹 봄버가 하나씩 처박히면서 끝이 났지만 말이다. 내 세상은 그 난리를 두 번을 겪고도 지성체가 사람밖에 없어서 사람이 바글바글해졌지만, 여긴 이세계라 그렇게 흐르지가 않은 것 같고.
그리고 이 동네 지성체들도 사람이랑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18등신 이족보행 치와와든 코가 대단한 고블린이든, 진상을 부릴 놈들은 진상을 부린다는 점이 특히나 그랬다.
“제가 받은 손님 네 팀 중에 두 팀이 진상을 부렸는데, 원래 빈도가 이쯤 됩니까?”
[ 그 정도까진 아닌데… 비슷하긴 해. ]
“아니, 이걸 어떻게 버티셨대요.”
[ 나야 오래 살았으니까, 그냥 귀엽네― 하고 마는데? ]
“대체 몇 살이시길래 그러세요?”
[ 여자 나이는 함부로 묻는 거 아니야. ]
그렇다고 하니 나도 그런갑다 할란다. 말할 생각 없다는데 뭐.
쨌든 점장이 진상을 잘 상대하는 듯하니, 왠지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포스기에 적힌 시간을 보니 오후 10시 40분. 이제 40분밖에 안 지났단다. 시계 고장 난 거 아니냐?
생각하고 있자니 다음 손님이 왔다.
수염이 양 갈래로 땋여 있고 머리는 겁나게 덥수룩한 땅딸보, 그러니까 드워프였는데, 바로 계산대로 와서는 무뚝뚝하게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담배 줘.”
“…어떤 담배 드릴까요. 담배가 많아서.”
“얇은 거.”
“얇은 것도 종류가 워낙 많아서요.”
“노란 거.”
지금 스무고개 하냐?
“얇고 노란 것도 종류가 여러 개라서요… 슈퍼슬림 드리면 되나요?”
“아니.”
“그럼… 스페셜 골드?”
“글쎄.”
“직접 피우시는 건 아닌가 보네요.”
“내 껀데?”
니가 피우는 담배 이름을 니가 왜 모르는데 도대체….
하도 답답해서 담배 진열대에 있는 얇고 노란 담배란 담배는 다 꺼내서 보여줬다. 여섯 개쯤 쌓인 담배 더미를 가만히 바라보던 드워프가 집어 든 건, 스페셜 골드가 맞았다. 아이고 참.
“근데 그림이 좀 그런데, 다른 거 없어?”
담배를 내밀며 내게 물어온다. 담뱃갑에 새겨진 건 목이 괴사한 채로 구멍이 뻥 뚫린 고어한 그림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좀 그렇긴 했다.
근데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그림 대체 왜 있는 거야?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이딴 그림 신경 전혀 신경 안 쓰거나, 지금처럼 다른 그림 달라 하고 말던데 말이다.
게다가 편의점이 혐짤 면역인 사람들만 오는 것도 아니고 애들도 오는 곳인데 말야. 계산대에 커피 우유 들고 온 꼬맹이들이 그림 보고 얼굴 찌푸린다니까?
흡연자의 금연을 목적으로 한 정책 중 이만한 탁상공론, 거지 같은 정책도 또 없을 거다. 이런 생각이었던지라, 나도 별 무리 없이 요구를 받아줬다.
“한번 찾아볼게요.”
헌데 아무리 찾아봐도 목구멍이 뚫렸거나, 입술이 갈라졌거나, 심장이 보라돌이가 된 그림밖에 없었다. 서랍에서 한 보루 뜯어다 찾아봐도 마찬가지였고.
“지금… 어, 마땅한 게 없네요. 이 중에 그나마 멀쩡한 게 장례식장 사진 정도.”
“딴 건 없어?”
“이거 말곤 죄다 장기자랑 하는 것밖에 없어요.”
“그럼 안 사. 딴 데 갈래.”
돌겠네, 진짜.
차라리 이렇게 떠났으면 몰라. 드워프가 나가기 직전에 다른 손님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이 손님도 드워프였다. 서로 아는 사이인 듯했다.
“뭐 해.”
“담배 사러.”
“어떤 거?”
“파란 거.”
마지막 세 글자를 듣는 순간 불길함이 등을 스쳐 지나갔고, 현실이 되었다. 막 들어온 드워프가 다가와서는 말했다.
“담배 줘.”
“…어떤 거 드릴까요.”
“파란 거.”
이 드워프들은 말 길게 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보다.
게다가 이 드워프도 자기 담배 이름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여서, 파란 담배를 죄다 꺼내 보여줬다. 참고로 노란색 얇은 담배보다 파란색 담배가 압도적으로 많다. 네 배 정도.
그중에서도 기어코 자기 담배를 찾아낸 드워프는, 마찬가지로 그림이 징그럽다며 바꿔 달라고 요구해 왔다. 그래도 이번에 찾아보니 그나마 멀쩡한 그림이 있긴 했다. 애가 담배 냄새 맡으면서 오만상을 찌푸린 그림.
담배를 받아 든 드워프가 물었다.
“왁스 있어?”
“있죠. 그것도 종류가 여러 개긴 한데.”
“수염용.”
“…점장님. 드워프 손님이 수염에 바르는 왁스를 찾으시는데요.”
[ 세 번째 코너 가운뎃줄. ]
“세 번째 코너 가운뎃줄이요.”
“어디?”
“직접 알려드릴게요.”
이거 꼭 대형마트 가이드가 된 기분이다.
드워프를 데리고 세 번째 코너로 와서 가운뎃줄을 가리키자, 드워프는 몇 종류는 되는 왁스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나도 따라서 쳐다봤는데, 왁스마다 효과가 괴랄하기 짝이 없었다.
고농축 슬라임 용액이 첨가된 왁스는 모발에 촉촉이 스며드는 효과가 있다 하고, 세계수 껍질을 벗겨 나온 진액이 첨가된 왁스는 상쾌함이 네 배라고 한다. 대체 이것들은 누가, 어떤 과정으로 만드는 것인가?
더해서 내가 오전에 왔을 때만 해도 여기에 이런 게 진열된 건 못 봤었는데 말이다. 이 자리에 이게 아니라 감자칩이 있었던 것 같은데.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카운터 쪽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니이임….”
늘어지는 게 딱 만취한 여자 목소리였다. 카운터로 가보니, 핑크빛 머리 색에 슈트 차림을 한 여자 손님 하나가 계산대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어… 부르셨나요?”
물어봤으나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숙인 고개를 살짝 비틀어 날 쳐다보는데, 동공이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이건 아까 뱀파이어와 똑같다지만, 피부색이 새하얀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
“…구에에에엑.”
비틀거리던 여자는 참지 못하고 계산대에 토악질을 해버렸고, 동시에 슈트의 어깻죽지 부근을 날개 한 쌍이 찢고 나와서는 파들거렸다.
날개를 보고 든 생각이, 아무래도 서큐버스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보다. 왜 하필이면 계산대에 토악질을 하고 있는지는 쥐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