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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편돌이-4화 (5/201)

4화. 적응하는 편돌이 (4)

날 계산대로 불러놓고는 보란 듯이 부침개를 부쳐대기 시작한 이 서큐버스의 의도가 대체 뭔지, 도저히 짐작이 되질 않았다. 저녁밥 뭐 먹었는지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적어도 서큐버스는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정확히는, 대답이고 나발이고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새 부침개 한 판을 더 부쳤기 때문이다.

“구어어어얽거걹….”

“손님. 계산대에서 좀 나와주시겠어요?”

계산대 밑으로 뚝뚝 흘러내리는 토사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 목소리는 나 스스로 느끼기에도 놀라울 만큼 침착했는데, 너무 얼탱이가 없어서 그랬다. 화가 난다기보단 그냥 헛웃음만 나오더라.

겨우 진정한 서큐버스는 헥헥대며 날개를 파들거리며, 날 돌아보고는 손등으로 입가를 스윽 닦아냈다.

베실베실 웃고 있는 얼굴과 파들대는 날갯짓이 어우러진 게 어찌 보면 요염하게 보일 광경이긴 했다. 이 서큐버스가 토악질만 안 했어도 정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헤헤… 사장님….”

나 그만 부르고 비켜, 제발. 니가 토한 거 치워야 된단 말이야.

어느새 왁스를 골라 온 드워프가 내 옆에 서서는, 서큐버스와 계산대를 번갈아 보다가 내게 물었다.

“계산 돼?”

“지금 계산대에선 안 될 것 같고, 카드세요 현금이세요?”

“카드.”

카드를 받아 들어 계산대로 와 계산을 마쳤다. 이렇게 드워프는 일단 보냈고, 이젠 이 망할 부침개를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우선 부침개보단 서큐버스부터 치우기로 했다.

“손님, 일단… 저기 가서 앉아계십쇼.”

창가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으나, 서큐버스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답해왔다.

“시른대여?”

나도 싫다. 저따가 또 토하면 그것도 내가 치워야 되잖아.

근데 이 서큐버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걷기도 힘들어 뵈는데, 편의점 밖으로 내보냈다가 정문 앞에 나자빠져 잠들기라도 하면 손님이 들어올 리가 없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손잡고, 등 옷깃 붙잡아 테이블로 인도해 앉혀놨다. 앉혀놓자마자 테이블에 옆머리를 처박고는, 동공 풀린 눈으로 날 지긋이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라고 냅두고 계산대로 왔다.

계속 번지고 있던 토사물은 이제 단말기 언저리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세면대의 손걸레를 집어 슬쩍 밀어낸 뒤, 잠깐 생각을 해봤다.

손걸레로 이걸 일일이 다 닦아낼 바에, 차라리 바닥으로 다 떨군 다음에 대걸레로 치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치운다면 치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 짓거리를 하면서도 손님을 받아야 했다는 게 문제였다. 지금도 반도 못 치웠는데 손님이 왔다.

“사장님, 아이스크림 어디 있… 억, 뭐야 이거.”

“저기 정면에 있거든요. 죄송하지만, 좀 골라보고 계시겠어요?”

이번 손님은 머리가 비늘로 덮인 도마뱀 인간. 그러니까 샐러맨더 비슷한 것이었는데, 공장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야간 공장일 하다 잠깐 아이스크림 사러 나온 듯했다. 하긴, 파충류는 체온 조절이 힘드니 아이스크림이 효과적이긴 하겠네.

그리고 말귀가 통했다. 혀를 축 늘어뜨린 채로 테이블의 서큐버스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해한 듯 아이스크림을 찾아 고르기 시작했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그사이에 토사물을 계산대 밑으로 다 내려보내고, 손걸레 빨아서 계산대 위도 깔끔하게 닦았다. 이제 대걸레 어디 있냐.

“점장님, 매장에 대걸레 어디 있어요?”

[ 왜? 청소 교대 전에 내가 다 해놨는데…. ]

“계산대에 손님이 토해놨어요.”

[ 아…. ]

점장은 짧게 탄식하고는 답했다.

[ 참… 근데 대걸레가 있을지 모르겠네…. ]

“대걸레 없으면 청소는 뭘로 하십니까?”

[ 마법으로 하지. 아, 아예 찬이 너도 약식으로 쓸 수 있는 마법 하나 알려줄게. 마력은 있지? ]

“없는데요?”

[ …으음, 옛날에 사역 마법 훈련할 때 쓰던 게 있긴 할 텐데, 사무실 안쪽 한번 뒤져볼래? ]

사무실 안쪽으로 달려가 보니, 대걸레는커녕 태어나 처음 보는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굴러다니는 책들은 아무리 봐도 장부는 아닌 듯했고, 구석에 놓인 저건 뭔지도 모르겠다. 해시계인가?

다 필요 없고 대걸레 대체 어디 있냐.

수정구슬이나 정체불명의 약병 같은 것들을 죄다 헤집고 나서야 구석에 놓인 푸석한 대걸레를 찾을 수 있었다. 집어 들고 뛰쳐나와 보니, 샐러맨더가 아이스크림을 다 고른 뒤였다.

계산대에 놓인 아이스크림의 개수는, 아니 대체 몇 개를 갖고 온 거야.

“좀 많죠. 직장 동료들 것도 사 가야 돼서.”

좀 많은 게 아니라 몹시 많았다. 다 찍어봤더니 40개가 넘어갔으니까.

계산을 해보려 했는데, 2+1 아이스크림 하나를 안 갖고 왔는데 정말 결제할 거냐는 문구가 떴다.

“손님, 투 플러스 원 아이스크림 하나 안 가져오셨는데.”

“아, 진짜요? 어떤 거요?”

글쎄. 이 사십몇 개 중에 대체 어떤 게 2+1에 해당되는 아이스크림일까?

포스기 문구에 그게 뭔지까지 떠오르지는 않았고, 똑같은 아이스크림 두 개짜리를 찾아 하나를 더 가져오라 할 수도 없었다. 아이스크림은 묶음 상품이라, 같은 가격의 다른 아이스크림도 2+1에 포함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처음 하나를 찍어보면 묶음 상품 중 이런 것들이 2+1입니다― 라며 작은 글씨로 목록이 주륵 뜨긴 하는데,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잘 보일까 싶을 만큼 글씨가 작을뿐더러 종류가 정말 더럽게 많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면, 처음부터 아예 말을 안 해주면 된다.

낱개로 사는 거면 모를까, 수십 개씩 사는 손님은 아이스크림 한두 개 더해지는 건 신경도 안 쓰니까. 신경을 쓰는 손님은 보통 자기가 직접 개수 맞춰서 가져온다.

근데 난 하나를 안 가져왔다고 말을 해버렸네? 그렇다고 꺼낸 말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이러했다.

“처음부터 다시 한번 찍어봐도 될까요?”

다 찍은 상태에서 종류별로 하나씩 더 찍다 보면 +1 상품은 일반 가격이 아니라 할인된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그걸로 구별이 가능하다. 근데 그걸 언제 하고 있냐고.

포스기는 터치스크린 민감도며 자판 조작성이며 죄다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작은 항목은 누르는 게 무척 번거롭다. 그리고 상품 항목은 항목 중에서도 겁나게 작은 편이었고.

게다가 낱개로 된 걸 일일이 등록하고 취소하려면 버튼을 몇십 번은 더 눌러야 하는데, 그럴 바에 아예 처음부터 하고 말겠단 생각이었다.

사실 다른 의도도 있었고.

“에이, 오래 걸릴 거 같은데 그냥 갈게요.”

“아, 괜찮으시겠어요?”

“네. 동료들 더위 먹어서, 빨리 안 가면 아예 일이 안 돌아가요.”

“어우, 고생하시네.”

“어쩔 수 없죠. 샐러맨더니까. 아, 영수증 끊어주시구요.”

말하며 샐러맨더가 내민 건 법인카드였다. 공장 복지 참 대단하다 싶었다. 법인카드로 아이스크림도 사 먹게 해주네.

계산 끝내고 봉투 다섯 개에 담아서 보냈다. 봉툿값이 개당 20원이라 100원이긴 한데, 2+1 안 가져간다는 손님한테 봉툿값 받기는 좀 그렇지.

그 뒤엔 토사물을 치웠다. 얼음컵 쏟아진 거면 밖으로 쓸려 보내고 말 텐데, 이건 그럴 수도 없어서 쓰레받기를 발로 고정해 담았다. 그 후에 대걸레 빨고, 다시 담고, 또 가서 빨아오고….

천만 다행히도 다 치울 때까지 더 손님이 오진 않았다. 하긴, 토사물 뚝뚝 흐르는 계산대에서 어느 누가 물건을 사고 싶어 하겠는가.

서큐버스도 더 토악질을 하진 않았고 말이다. 입가 언저리에서 흐른 침 때문에 테이블이 흥건해지긴 했는데, 저 정도야 뭐.

“점장님, 토한 거 다 치우긴 했는데, 쓰레받기에 있는 거 걸레 빠는 곳 하수구에 흘려보내도 됩니까?”

옛날에 알바할 때 비슷한 짓 했다가 하수구가 막혔던 경험이 있어서 물어봤다.

[ 괜찮아. 버릴 데도 없을 거 아냐. ]

“그리고… 토악질한 서큐버스 손님 아직 안 갔는데요.”

[ 그럼 아직 매장에 있는 거야? ]

“네. 나갈 생각이 없어 뵙니다.”

[ 어… 그러면… 그 서큐버스 연락처랑 주소 명부에 적어야 하는데…. ]

“왜요? 이 세상도 코로나가 퍼졌나?”

이건 또 예상 못 한 내용이었다.

나 사는 세상 편의점에도 손님들 거주지나 연락처를 적는 명부, QR코드가 따로 있긴 하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근데 여긴 대체 뭐가 문제야?

물론 점장은 코로나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 코로나가 뭐야? ]

“바이러스 같은 건데요. 설명하긴 좀 그렇고, 그거 때문에 대충 1억 4천만 명쯤 감염됐고, 300만 명쯤 죽어 나가고 있고 그래요.”

[ 세상에. 대륙 규모로 마법실험이라도 했나? ]

“그건 아니고, 뭘 잘못 먹어서….”

점장은 잘못된 식습관 하나가 세상을 박살 내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렇잖은가. 때론 현실이 판타지보다 더한다는 거.

근데 들어보니, 점장이 명부를 적으라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 듯했다.

[ 가끔이지만… 저주나, 반마법 같은 게 걸린 채로 오는 손님들이 있어. ]

“그것들도 옮아요?”

[ 응. 그리고 문제가, 본인도 자기가 저주나 반마법이 걸린 걸 모르거든. 그래서 마법청에서 부탁한 거야. 이런 걸 적어두면 발원지를 찾기가 수월해지니까. ]

마법청은 또 뭔가 싶다. 이 세상 구청 같은 건가.

어쨌든 적으라니 적긴 적겠는데, 서큐버스는 멀리서 봐도 인사불성을 넘어 의식불명 단계로 접어든 상태였다. 팔이 흐느적거리는 게 꼭 시체 같다. 날 보고 저걸 상대로 전화번호를 따내라는 거야?

명부는 옆 계산대 근처에 놓여있었다. 집어 들고 서큐버스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봤다.

“손님. 실례지만, 매장에 계시려면 이걸 적어주셔야 하는데요.”

“…….”

“손님?”

“헤헤….”

난 도저히 못 하겠고, 점장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나 싶어서 물어봤다.

“점장님, 이 손님 웃는데요.”

[ …에이, 냅둬. 좋은 꿈이라도 꾸나 보… 아니지. 혹시, 아까부터 계속 웃어? ]

그렇다고 답했더니, 점장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 카운터 밑에 저주 검진기 있을 텐데, 한번 꺼내 볼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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