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1화 (12/201)

11화. 공작하는 편돌이 (2)

유치원 다니는 꼬마가 어머니 선물 만드는 걸 도와주는 게 편돌이의 업무냐 묻는다면, 아니다. 그냥 돈 없으면 가라고 말한 뒤에 스마트폰 마저 하면 돼.

사실 손님한테 가급적이면 뭘 해주지 않는 게 오히려 좋다. 받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당연한 줄 알기 때문이다. 컵라면 사가는 단골한테 꼬박꼬박 젓가락 챙겨주다가, 어느 날 안 챙겨주면 왜 젓가락을 안 챙겨주지? 하며 내 얼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고 그래. 호이가 지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

근데 난 지금, 씨….

“그런대, 엄마가 어떤 꽃을 좋아할까여?”

“잠깐만 있어 봐. 일단 꽃이 뭐뭐 있나 좀 보고….”

유치원생 드래곤 여자아이가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려는 걸 도와주고 있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지금으로부터 딱 5분 전에, 난 가위만 빌려주고 말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처 생각을 못 했던 게, 물건을 빌려주면 반납을 받아야 한단 말이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마당에 집에서 종이 다 오리고 가져오라 할 수도 없고.

이걸 떠올렸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아조씨, 여기서 잠깐 쓰고 드려두 되나여…?”

이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어쨌든 색종이 사긴 샀잖아. 손님인데, 손님이 있겠다는 걸 내가 뭘 어쩔 수 있겠는가.

“엄청 빨리 할깨여….”

“안 서둘러도 돼. 대신 여기에 어디 사는지랑 전화번호 좀 적어주련?”

“내.”

“그리고 나 아조씨 아냐, 꼬마야. 아직 20대라고.”

“그럼 오빠애여…?”

코맹맹이 소리로 오빠라 말하는 걸 듣는 순간, 귀가 달다 못해 썩어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귀 호강해서 좋기는 한데, 내가 일찍 결혼했으면 이만한 애가 있었을 거 아냐…?

이런 씨, 내가 늙긴 늙었네….

“그냥 아저씨라고 해라.”

“내, 아조씨.”

이후에 명찰 같은 걸 꺼내서는 번갈아 바라보며 명부에 서투르게 글씨를 적는다. 쥐뿔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줬다는 데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러고는 내게 다시 한번 꾸벅 인사.

“감사해여.”

이후 아이가 테이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앉은 의자의 등받이 밑으로 큼지막한 꼬리가 불쑥 튀어나와서는 까딱거린다. 의자에는 어떻게 앉나 했는데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어쨌든 내 할 일은 다 끝났다.

퇴근까지 50분. 그동안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려 했는데, 뭘 보려 하든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왜 집중이 안 될까, 아이를 바라보며 논리정연하게 생각을 해봤다.

저 색종이는 15장짜리다. 즉, 15번밖에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그 15번의 기회를 아이가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당장 밑그림도 안 그리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시간도 오래 걸릴 거고. 50분 뒤에 점장과 교대해야 하는데, 저 애가 있으면 점장님이 근무하면서도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지 않겠는가.

다 떠나서, 유치원 애가 종이를 오려봐야 얼마나 잘 오리겠어? 다 찢어먹고 울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우는 애를 달래는 것보단, 차라리 내가 지금 도와주고 끝내는 게 훨씬 편하지 않을까?

논리정연하게 생각을 마친 뒤, 30cm 자와 연필을 꺼내 들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꼬마야.”

“아. 내, 아조씨.”

“그런데 너, 잘 만들 자신 있냐?”

내 물음에 이 꼬마 용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이려는 듯하다, 다시 들고는 대답했다.

“저, 저 잘해여. 유치원에서, 도장 많이 받았어여.”

“그렇다기엔 밑그림도 안 그리고 있잖어.”

“밑그림이 뭐애여…?”

“종이 오리는 선을 미리 그리는 거야. 그거 보고 오리면 더 잘 되거든.”

말하며 슬쩍 옆에 앉았다. 될 대로 돼라. 내가 앉혀놨으니 내가 보내고 만다.

“저, 괜찮아여. 안 도와주셔도 대여. 혼자 할 수 있어여.”

“그냥 그림 그리고 싶어서 그런 건데? 내가 그림 그리면, 네가 오리면 되잖아. 이것도 도와주는 건가?”

“글…쌔여….”

“네가 오리는 건데도?”

“그른가…?”

유치원생 애 다루는 거야 쉽지, 내가 나이가 몇인데. 내가 네 나이 때에는 말이야, 어? IMF가 터지고, 다리가 무너지고 그랬어. 알어?

아이가 긴가민가하며 끙끙대는 사이, 난 나대로 그려야 할 꽃이 뭘까를 생각해 봤다. 어버이날 드리려고 만드는 거니 빨간색 색종이로 카네이션 만들면 될 것 같고, 나머지는 뭔 꽃을 만들어야 되나….

“너는 어떤 꽃이 좋냐.”

“카네이션 만들려구 그랬는대여…?”

“카네이션이 녹색, 파란색이면 좀 이상하잖아.”

“어… 아, 그렇내여.”

“그러니까 녹색으로는 이파리랑 줄기 만들고, 파란색으로는… 음, 물망초?”

“물망초두 꽃이애여?”

“사실 나도 잘 몰라. 이름에 물 들어가니까 파란색 아니겠냐?”

“음… 그런대, 엄마가 좋아할진 잘 모르겠서여….”

물망초를 넘어, 엄마가 무슨 꽃을 좋아하시는지를 잘 모르겠단다. 자기는 벚꽃이 좋지만, 엄마 드리는 거니 엄마가 좋아할 꽃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그런 이유로 뭘 그려야 될지를 검색하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물론 더 쉬운 답이야 있다. 5만 원짜리를 잔뜩 접어 꽃다발을 만들어 드리는 거지. 분명 입이 귀에 걸리실걸?

근데 재료비가 모자라서 그건 못 만들 것 같고. 인터넷으로 종이 색깔별 꽃들을 찾아보자, 온갖 해괴한 이름의 꽃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그중 적당히 이뻐 보이는 걸 하나씩 골라, 색종이에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물망초는 파란색이 맞았다. 색종이 색이랑은 좀 다르긴 했지만….

대략 3분쯤 걸려 적당히 데포르메한 그림을 건네자, 아이는 바라보며 똘망똘망 눈을 빛냈다. 어두운 배경에 그린 탓에 난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드래곤은 시력이 좋은가보다.

“마음에 들어?”

“내에. 저기, 그. 잠깐만여.”

갑자기 뭐가 떠올랐는지, 벌떡 일어나서는 쪼르르 과자 코너로 달려간다. 그림 두어 장을 더 그리는 사이 아이가 가져온 건 제법 큰 초콜릿이었다.

“이거 얼마애여?”

“그거 2천 원인데. 사게?”

“내.”

“돈 주면 바로 계산하고 올게.”

2천 원을 받아 계산한 뒤 다시 건네자, 아이는 주섬주섬 초콜릿을 뜯어서는 반을 뚝 나누려 했다. 허나 힘 조절이 잘못된 탓에 초콜릿이 대각선으로 뿍 부러져 버렸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둘 중 큰 조각을 내게 내밀었다.

“저이, 먹으면서 해여.”

허어… 싶었다.

“네가 큰 부분 먹어. 네가 산 거잖냐.”

“아조씨 키가 더 큰대, 아저씨가 큰 부분 먹어여.”

“한창 클 나이인데 네가 먹는 게 낫지 않겠어?”

“아녜여, 이거 많이 먹으면 이빨 썩는대여.”

그럼 내 이빨은 괜찮고?

난 도저히, 차마 이걸 넙죽 받을 수가 없었다. 7살 꼬마의 전 재산의 2/3를 털어 산 초콜릿의 2/3을, 대체 어떤 맛으로 먹어야 하냐. 자본주의의 참맛?

그래도 이 꼬마는 내가 꼭 초콜릿을 먹어줬으면 하는 듯했다. 거절할 방법이야 산더미처럼 떠오른다만, 결과가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받았고, 내친김에 한입 베어 문 뒤에 말해줬다.

“달달하네.”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달달하져?”

그래, 꼬마야. 달아 죽겠다.

* * *

이후로 이렇다 할 대화는 없었다. 나는 금방 밑그림을 다 그려 여유로웠으나, 아이가 가위질에 워낙 집중한 탓에 말을 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봤다. 해가 더 떠올랐다 싶었을 즈음 블라인드 쳐주고, 간간이 새 지저귀는 소리들도 좀 들어주고.

그러다 마침내 점장이 왔다.

“찬아, 나 왔어.”

교대 시간인 10시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오긴 했는데, 얼굴을 보고는 잠깐 저게 대체 누구지…? 하며 얼을 탔다. 목소리 듣고 나서야 겨우 점장인 줄 알았고. 한 오만 년 만에 보는 것 같아.

“오셨습니까.”

“어유,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됐네.”

“진상들이 제 얼굴을 반으로 쪼갰습니다….”

“다른 세계 온 것도 서러운 일이었을 텐데, 진짜 고생했어. 얼른 집에 들어… 응?”

사각사각 종이 잘려 나가는 소리에 점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테이블을 바라본 점장은, 소녀의 형상을 한 흰색 덩어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내게 물어왔다.

“저 애는 누구야? 손님?”

“인수인계하면서 말씀드릴게요.”

편의점 인수인계는 특별한 건 없다. 포스기 잔고 확인한 후에 영수증 뽑아놓고, 담배 개수 세고.

외에는 후번 근무자가 알아둬야 할 내용들을 적당히 말해주면 된다. 뭘 반품해야 한다든지, 누가 외상하고 튀었으며 언제쯤 온다 했으니 오면 외상값 받으라든지, 뭐 이런 거.

지금은 카드 분실 외엔 별것 없어서 편했다. 손님 한 명이 카드를 찾으러 올 수도 있다는 걸 일러준 뒤, 드래곤 요조숙녀가 왜 저기서 공작 숙제를 하고 있으며, 그걸 내가 왜 도와주고 있었는가를 설명했다.

이에 대한 점장의 반응은 심플했다.

“?”

“그, 저도 이상하단 건 아는데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

“아냐, 그건 이해가 돼. 이해가 되긴 하는데… 저 애, 낯 엄청 가리지 않았니?”

아예 확신하듯 내게 물어온다. 확실히 낯을 가리긴 했는데, 저 나이대 애들은 보통 어른한테 말 거는 걸 무서워하잖아. 난 그런 건 줄 알았다.

“저 아이, 내가 보기에는 순혈 드래곤인 것 같아서.”

“그게 딱 보면 보이는 건가 봅니다.”

“보통은. 혼혈일 경우에는, 음… 저렇게 머리카락이나 피부가 뚜렷하진 않거든. 다른 색이 섞여 있고 그렇지.”

“전 처음 봐서 잘 모르겠긴 한데… 그게 왜요?”

“순혈 드래곤,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면… 낯을 진짜, 엄청 가릴 텐데….”

이후에 점장이 설명하길, 드래곤은 알에서 태어난단다.

알 안에서 거치는 성장기가 3년. 그 3년간을 깜깜한 어둠 속에서 보내며 신체의 여러 부위 외에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기관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마력을 감지하는 기관이다.

“그게 어딘데요?”

“뿔. 엄청 예민한 부위라, 건드리면 브레스 뿜고 그래.”

“저도 딱히 건들 생각은 안 드네요. 그런데 그게 낯을 가리는 거랑 상관이 있나요?”

“어린 드래곤은 그게 제어가 잘 안돼서, 다른 종족의 마력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게 되는 거야. 주로 색의 형태로 말이야.”

마력에도 여러 종류가 있나 본데, 이건 당장 물어볼 건 아닌 것 같고.

“그 색이 어떤 색이길래.”

“감지한 마력의 주인의, 어… 마음이 보인다고 보면 돼. 짙은 회색 마력을 가진 고블린은 말 그대로 속이 시커먼 거고, 분홍색 마력을 가진 서큐버스는… 좀… 개방적인 마인드인 거고.”

좀 이해가 될 듯하다. 쉽게 말하면, 저 애는 길 가다 행인을 마주치면 그 행인의 성격이 보인단 거잖아. 인사과 취직하기는 쉽겠네.

“그런데 문제가, 어린애는 그걸 봐도 잘 모른단 말이야. 색이 보이긴 해도, 그걸로 성격을 판단하는 건 인생 경험 문제거든.”

“그러니까, 색이 밝다고 ‘저 사람은 마음씨가 착할 거야’ 하는 게 아니라, 색 밝은 사람이랑 지내다 보면 ‘아, 색 밝은 사람은 마음씨가 착하구나’라고 알아서 깨닫게 된다, 이런 얘기시죠?”

“그거지. 이해가 빠르네.”

칭찬받으니 기분이가 참 좋다. 잠깐 아이를 바라보던 점장이 말을 이었다.

“밝은색 마력을 지녔다 해서 다 착한 게 아니기도 하고.”

“그래요?”

“예를 들면,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그게 범죄라는 걸 모르고 자기가 정당하다 생각하는 이종족이 있다고 치면, 그 이종족이 하는 짓은 몰라도 마력색은 밝을 거야. 성격이 잘못된 게 아니라 사고관이 잘못된 거니까.”

들어도 잘 모르겠어서 나름대로 생각해 봤다.

한 조폭이 피 흘리는 동료를 끌어안은 채로 다른 조직 조폭의 머리를 도끼로 후려쳐 반 토막 내는 상황이라면, 그 조폭은 성격이 착한 걸까 나쁜 걸까? 동료를 아끼니 착한 건가,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나쁜 건가.

적어도 하나는 짐작이 됐다. 마력 감지로 마음을 보는 게 판별에 도움은 줄 수 있어도, 절대적인 기준까지는 못 된다는 것.

“혼혈 드래곤은 발달이 좀 덜해서 괜찮은데, 순혈은 뿔이 진짜 엄청, 엄청 민감해.”

“그건 좀 피곤하겠습니다.”

“그래서 가정교육도 엄청 엄격하게 하고. ‘어떤 색의 마력을 보든 간에 함부로 따라가지 말고, 말도 쉬이 걸지 마라.’ 이걸 태어나서부터 계속 듣고 살았을 테니, 당연히 낯을 가리게 될 수밖에.”

“분별력이 생기기 전까지는 계속 듣고 사는 거고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아조씨, 다 오렸어여―”

막 색종이를 다 오린 듯한 아이가 계산대로 다가왔다. 나풀대는 종이꽃을 양손으로 쥐며 헤헤 웃다가, 점장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으… 아, 안녕하새여.”

“안녕?”

점장이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으나, 아이는 불안한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숨을 곳을 찾으려는 듯했다. 그러다 마침내 찾아낸 곳이, 하필이면 내 등 뒤였다.

내 바지를 꽉 붙들고는 고개만 빼꼼 내밀어 점장을 바라본다. 숨는 건 좋은데 발톱 때문에 다리가 따갑다.

아이를 바라보던 점장은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찬이 너는 마력이 없잖아?”

“제 생각에는요.”

“그리고 이 아이 엄마는 색이 없는 이종족을 따라가지 말라고 교육하진 않았을 테니, 그게 낯을 덜 가린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어. 이 세상에 마력 없는 사람들 중 건강한 건 찬이 너 하나뿐일 테니까.”

그게 그렇게 연결이 되나? 궁금해서 물어봤다.

“꼬마야. 네 눈엔 내가 어떻게 보이냐?”

“어… 깨끗? 음….”

저 두 글자 말고는 도움 되는 말은 못 들었다. 더해서 묻지는 않았으나, 아이는 좀 더 나아가 점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어휘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여. 아주머니는, 으음… 어…?”

“꼬마야.”

점장이 중간에 말을 가로막았다. 내 앞으로 와서는 몸을 숙이고 앉아,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일단 난 아주머니가 아냐.”

목소리엔 뼈가 실려있었고. 이젠 농담으로라도 나이는 못 물어보겠다.

“그럼 언니애여…?”

“응. 언니. 그리구 이 오빠가, 잠을 한숨도 못 잤어.”

“그럼 안대는대. 키 안 큰다구 햇는대….”

“괜찮아, 이제 집에 가서 잘 거거든.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올래?”

점장 말에 꼬마가 날 올려다보았는데, 표정이 어째 죽을병 걸린 사람이라도 보는 듯했다. 손에 들려있는 색종이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오린 건 이제 도화지에 붙이면 될 것 같다, 꼬마야.”

“내.”

“근데 들고 다니면 상하니까, 나한테 맡기고 일단 집에 가. 아침에 올 수 있을 때 오고.”

“그래두 대여…?”

점장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괜찮다는 얼굴이었다. 상사가 괜찮다니까 괜찮겠지, 뭐.

고개를 끄덕이자, 꼬마가 테이블로 달려가 주섬주섬 종이를 모아서는 내게 내밀었다. 대부분 삐뚤빼뚤하긴 했지만, 내가 부모라면 이 점에 더 감동할 것 같다. 수제인 거잖아.

“저어가여, 내일은 피아노 학원 가야대서 못 와여. 죄송해여.”

“죄송할 거 있냐.”

“그 대신여, 다음에 오면 과자 살깨여.”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

“마음만…? 어뜨캐여…?”

“관용적인 표현이야, 꼬마야.”

“과뇽적…?”

아이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하다, 점장의 얼굴을 슥 바라보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나한테도 꾸벅 인사를 하고는.

“안녕히 주무새여.”

말하고 나가버렸다. 그래, 드디어 퇴근한다. 퇴근한다고! 안녕히 주무시러 간다!

싶었으나 점장은 곧바로 블라인드를 하나씩 치기 시작했고, 이어서 편의점 문까지 잠가 버렸다.

“점장님, 문은 갑자기 왜 잠그십니까?”

“지금부터….”

이어서 계산대로 들어간 점장이 내게 손짓해 온다. 다가가니, 밑의 서랍장을 열어둔 채였다. 안에는 버튼이 가득했고 말이다.

“공간이동 할 거거든. 좀 도와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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