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18화 (19/201)

18화. 상담하는 편돌이 (2)

내게 사랑이 뭐냐 물어봐도 난 해줄 말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지구 작가 이 망할 놈이 지 소설에 내 얼굴 묘사하는 걸 생략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 얼굴은 랜덤으로 커스터마이징되어, 결코 사랑을 알 수 없을 관상으로 생성되고 말았다. 또….

의지의 문제도 있었고. 내 사랑에 대한 의지는 현실에 이리저리 치이고 밟힌 끝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원에 가깝게 마모되고 말았다.

이 탓에 이젠 그 나이 먹을 때까지도 모쏠이냐는 말 들어도 별생각도 안 들어. 옛날엔 다 뚝배기 깨버리고 싶었는데.

이런 내 말에 설득력에 있을 리가 없다. 사랑을 위키로 배운 놈이 사랑은 뭐다― 이러는 걸 누가 귀담아듣겠는가? ‘어유, 모쏠이라 그런지 하는 소리도 모쏠스럽네’ 하며 무시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이 점을 설명했으나, 서큐버스는 베실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저도 모쏠인데요, 뭐.”

어떻게든 대답을 듣고 싶은 모양이길래,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개소리다 싶으면 알아서 걸러 듣겠지.

“일단… 해선 안 될 사랑이 뭔지는 압니다.”

“어떤 거요?”

당장 떠오르는 건 두 가지다.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좋다― 는 사랑, ‘야,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냐?’라며 강요하고 보는 사랑.

전자의 경우는, 처음에야 그러는 게 좋을 거다. 지켜보기만 해도 좋던 사랑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랑이 된 뒤가 문제지.

그때면 아, 왜 말 한마디 못 해봤을까… 하며 후회하게 되고, 지금이라도 말을 걸면 받아줄까… 하며 집착하게 되고, 나란 놈은… 하며 피폐해질 것이다. 장르가 후회 집착 피폐물이 되어버린다니까?

스스로가 상처를 입는단 얘기다. 어느 누구도 언제 아물지 정답을 모르는 상처다. 후자의 경우엔, 음….

사실 이건 사랑이라 부르지도 못한다. ‘당신은 저를 사랑할지 몰라도 저는 아니에요’라고 몇 번을 말해도 듣지를 않는, 사랑을 빙자해 벼려진 칼날일 뿐. 플라스틱 같은 무기질적인 사랑이기에 쉽게 썩지도 않고, 상처도 쉽게 아물지 않는다.

둘 다 일방적인 사랑이다. 누가 상처를 입는지만 다를 뿐.

다만 두 사랑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사랑에는 반드시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 대상이 사랑을 건네야 하고, 받는 대상이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성립이 된다.

“당연한 소릴 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말하는 도중에 자신이 없어 중얼거렸으나, 서큐버스는 경건한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진짜 내 말을 듣고 있긴 한가 보다.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사랑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마음에 담아두고 부풀리기만 해봐야 언젠가 터질 뿐이고, 닫힌 마음에 대고 문 열라고 두드려봐야 열리지도 않습니다. 말을 해야 뭐라도 결과가 나오는 거죠. 손님께서 고민하시는 것도 비슷한 듯싶고.”

“어, 저도요?”

“누구한테 사랑한단 말은 안 해보셨을 거 아녜요.”

이 서큐버스는 사랑이 뭔지 몰라서 사랑을 못 하겠다 하는데, 순서가 틀렸다. 사랑을 못 해봤으니 사랑이 뭔지 알 수가 없는 거다. 나처럼.

“물론 사랑한다 말하면 겁나게 부담스럽죠. 입에 담기 쉬운 말은 아니니까. 사랑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하는 편이긴 한데….”

“사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세요?”

“연애해 보면 좋다고들 하는데, 전 집에서 누워만 있어도 충분히 좋아서요.”

주변 지인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주말에 여자친구랑 여의도 놀러 가서 벚꽃 길 아래를 나란히 걷기만 해도 세상 즐겁기만 하다고. 근데 난 집에서 스마트폰 보면서 빈둥거리기만 해도 세상 즐거운데 말이다.

스마트폰은 전원만 켜도 내 친구가 되어주는 반면, 연애는 여의도에 놀러 가 벚꽃 길 아래를 걷게 되는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가 무척 복잡하잖은가. 나같이 단순한 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서큐버스 손님께서는 사랑이 선택이 아닌 필수잖습니까.”

“네….”

“그럼 말은 해보셔야죠. 마음에 드는 사람 붙잡고, 그쪽이 제 이상형이어서 그러는데 혹시 연락처 좀 받을 수 있겠냐. 뭐 그런 거.”

“그게, 해보려고는 했는데… 무서워서….”

“무섭다구요?”

서큐버스는 중얼대듯 말해왔다. 고개는 푹 숙인 채고, 목소리는 자신 없다는 투가 역력하다.

“행여나 제가 그렇게 사랑을 하게 됐는데, 나중에… 그게 제가 바라던 거랑 다르면요…?”

그럴 수도 있지. 허나, 이건 단언할 수 있다.

“그땐 그만하시면 돼요.”

“네?”

“하는 게 고통스럽기만 하면 그게 사랑입니까.”

난 어렵게 생각 안 한다.

사랑은 장미꽃 같은 거고, 멀리서 보는 꽃잎은 이뻐도 만져보려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가시에 찔릴 수밖에 없다. 손끝에 핏방울 맺혀도 계속 뽑아보려 할 만큼의 가치가 있으면 계속 가는 거고, 아니면 그만두면 된다.

“사랑이란 게, 서로 안 맞물려서 오는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이어갈 만큼 위대한 감정까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위대한 건 안 변하잖아요. 그렇죠?”

“어… 그렇죠.”

“하지만 사랑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고, 그러잖아요.”

“그런가…?”

“제 주변 사람들은 그렇더라고요. 처음에 만날 땐 좋았는데, 자기 주관이랑 조금만 안 맞는 얘기가 나와도 ‘어…?’ 이러면서 의아해하고. 그런 게 한두 번은 괜찮은데, 계속 안 맞으면 서로 지친대요. 힘들고. 그러다 식어서 서로 멀어지고.”

서로 재수가 좋아서 천생연분을 만난 경우라면 모르겠다만, 운에 대한 부분은 배제하기로 했다. 슬슬 마무리 짓고 싶기도 했고.

“그러니 일단 해보시면 조금이라도 답이 나오실 겁니다. 사회초년생이면 아직 나이도 젊으실 텐데, 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스물넷이에요, 사장님.”

“한창이시네.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면 말 걸어보시고, 차근차근 해보십쇼. 얼굴이나 스펙만 봐도 상대방이 함부로 거절은 못 할… 입 아프니 이제 그만 말하겠습니다.”

진짜 입 아파서 더는 말 못 하겠다. 이후 서큐버스의 얼굴을 바라보니, 서큐버스 역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마주 보고 있는 참이었다. 얼른 덧붙였다.

“제가 상담 공부한 게 아니라, 횡설수설한 건 이해해 주세요.”

“아녜요. 도움 많이 됐어요, 사장님.”

“어떤 게요?”

“일단 해봐야 알겠다는 거…요.”

말하면서도 여전히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술기운에 눈이 풀려있는 게 부담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시선을 피하며 스마트폰으로 한번 시간을 확인해봤다. 딱 첫차 시간이었다. 이제야 집에 좀 보낼 수 있겠네.

“손님, 슬슬 첫차 올 시간인데.”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들어가십쇼. 내일 출근하셔야지.”

“네, 감사합니다.”

일어나서는 주섬주섬 몸을 추스른 뒤, 내게 고개를 꾸벅 끄덕이고는 나가려다 내게 물어온다.

“혹시 나중에 또 와도 될까요?”

이미 두 번 온 마당에 그걸 왜 물어보나. 피곤해서 적당히 대답했다.

“다음에 오실 땐 오렌지 주스라도 사세요. 그래야 손님이지.”

“네. 그럴게요.”

베실 웃고는, 마침내 문을 열고 나갔다.

* * *

서큐버스가 나간 직후가 새벽 5시.

이후 아침까지는 손님이 거의 없었고, 8시 반 접어들 무렵 직장인들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받으면서 어제만큼 피곤하지는 않았는데, 서큐버스 상담해 준다고 머리 굴렸던 게 도움이 된 듯하다.

이후 9시가 됐고, 다시 한산해졌다.

의자에 앉아 늘어진 동안 정문 밖을 몇 번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어제 왔던 그 드래곤 꼬맹이는… 피아노 학원 간다고 못 온다 했었지.

이외에 사소한 사건 하나.

기계인형 손님 한 명이 자전거 타고 가다가 편의점 앞 전봇대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쭈그려 앉아 한참을 움직이질 않길래, 슬쩍 나가봤다.

기계인형이 날 보고는 얼굴에 화색을 띠어온다.

“싸장님. 쑤얏.”

“안녕하심까.”

어제 내가 맞았던 양반들 중 하나인가 보다. 자전거를 내려다보니 체인이 빠져있었다. 뒷부분 기어 손가락으로 당기고, 늘어진 체인을 앞의 기어에 걸친 뒤 페달을 잡아 돌려봤다. 잘 돌아갔다.

“싸장님, 천재.”

“이런 거 갖고 뭘. 오늘 비번이세요?”

“네?”

“쉬는 날?”

“아. 쑤얏.”

기계인형이 집단생활을 한다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손님만 나왔으니 비번인 거겠지. 기계인형은 고개를 몇 번 더 꾸벅이고는 가버렸고….

저 멀리서 점장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와 있었네? 날씨 좋지. 찬아.”

“그러게요. 바람 솔솔 불고.”

“근데, 손에 묻은 검댕은 뭐야?”

“어제 온 손님분이 여기서 자전거 체인이 빠져갖고. 잠깐 고쳐줬어요.”

“와, 찬이 손재주 좋구나.”

잡담하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 인수인계 사항은 특별한 건 없다.

“금고가 꽉 찼습니다, 점장님. 어제 보셨겠지만요.”

“그건 내가 할게.”

“그리고… 저 첫날에 계산대에 오바이트 한 서큐버스 손님 있잖아요. 그분 또 오셨었어요.”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래도 이번엔 그냥 보냈지?”

“아뇨? 사랑 상담 또 해줬는데요?”

처음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시작한 점장은, 내 얘기를 들으면서는 표정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그냥 보내라니깐 그러네….”

“막차가 끊겼는데 돈이 없어서 택시를 못 탄다 하더라고요. 밖에 추운데 내보내기는 좀 그렇고.”

“찬이 네가 감당 못 할까 봐 그래. 그래도 그 서큐버스 손님은 엄청 순한 것 같긴 한데.”

“에이, 손님 받는 데 감당하고 못 하고가 있습니까.”

여차하면 경찰 부르면 되지. 나쁜 성격도 아닌 것 같길래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점장은 여전히 걱정이 되는 듯했다.

“그건 찬이가 이 세상을 잘 몰라서 그렇지….”

“몰라서 그런 거면, 혹시 문제가 생길까요?”

문제 생기면 안 하는 게 맞다. 이 생각이었으나, 이 말을 듣고는 한창 고민하던 점장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중얼거렸다.

“…뭐, 어떻게 보면 이것도 경험이긴 하니까….”

처음 해보는 경험이긴 해. 사랑 어쩌고저쩌고.

잡담하는 와중 10시가 되었고, 이번 퇴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어제 공간이동한 방식대로 점장이 좌표를 입력해뒀고, 난 누르기만 하면 끝.

문 잠그고, 블라인드 닫고 버튼을 누른 뒤, 내 집 사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퇴근하겠습니다, 점장님.”

“응. 고생했고, 푹 쉬어둬. 내일 힘들 텐데.”

“내일요? 단체 손님이라도 오나?”

이 질문에 대한 점장 대답이 참 심플했다.

“내일 불금이잖아. 손님들 때문에 오래 있지도 못할걸?”

“…아.”

이런 씨,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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