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오열하는 편돌이 (1)
편의점 불금 근무가 헬지옥 소릴 듣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다음 날이 주말이기 때문이다.
평일에야 다음 날 출근해야 하니 술 적당히 먹고 빌빌대다 들어가지만, 주말을 맞은 노동자들은 짱구 같은 놈들이라 말릴 방법이 도저히 없다.
공기 중 알코올 농도가 급상승하고, 술기운이 바이러스처럼 전염이라도 되는지 멀쩡하던 놈들도 ‘야, 치맥 땡기지 않냐?’ 하며 호프집으로 들어가 치맥 한사바리를 하고는 덜 멀쩡한 놈들로 퇴화해 버린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심적인 리미트가 완전히 풀려있는 탓에, 진상을 부리는 타입도 각각의 술버릇만큼이나 다채로워질 수밖에 없다. 당장 내가 출근하자마자 받은 첫 번째 손님부터가….
“자네는 정치색이 뭔가?”
“…네?”
“정치색 말일세. 보수? 진보?”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데.
팩소주 바코드를 찍다 정면을 바라보았다. 허름한 차림의 중년 엘프였는데, 전에 왔던 그 엘프 놈은 아니고. 표정은 멀쩡했으나 술 냄새가 풀풀 풍겨오고 있었다.
“그건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 그렇다네. 보수? 진보?”
수 초를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 해마다 어느 쪽이 더 꼴통인가에 따라 다릅니다.”
“그건 그렇지. 그럼 올해는 어느 쪽이 더 꼴통 같다고 생각하나. 보수? 진보?”
난 이 주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다.
편의점에서 팩소주 바코드 찍으며 할 얘기도 아니었을뿐더러, 애초에 정치 얘기가 말로 후드려 맞기 제일 쉬운 가불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저 보수예요 하면 수구꼴통이라 욕먹고, 진보예요 하면 좌빨이라 욕먹고, 중도예요 하면 신념도 없는 놈이라고 욕먹어. 뭔 소릴 해도 욕먹을 대화를 대체 왜 해야 되는데?
그것도 내 동네 정치라면 모를까, 여기 이세계잖아. 이세계 정치판이 어떤지에 대해선 난 아는 게 전혀 없었고, 용사당과 마왕당 중 어느 쪽이 보수인지도, 대통령 종족이 드래곤인지 뱀파이어인지도 난 모른다. 그러니 함구할 수밖에.
“손님, 죄송하지만… 이 자리에서 대화할 종류의 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짧게 대답만 해주면 되는데.”
“그래도요.”
대답하며 카드를 내밀었다. 중년 엘프는 못마땅한 얼굴로 날 바라보다, 고개를 홱 돌리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요새 젊은 놈들은 신념이 없어, 신념이.”
그러고는 나가버렸다. 문은 열어둔 채였다.
문을 닫고 돌아오자, 두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티슈 어디 있어요?”
“티슈는….”
대답이 잘 나오질 않았다. 찾아온 손놈이 아무리 봐도 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키가 2m는 될 법한 녹색 피부의 오크였는데, 오른쪽 눈두덩이는 반쯤 터져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으며,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피가 옷 앞섶을 죄다 적시고 있었고. 바로 대답했다간 말을 더듬을 것 같아서,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입을 열었다.
“티슈는 저쪽 반사경 밑쪽 코너 살펴보시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지혈제는 안 필요하십니까.”
이 양반 이러다 실혈사로 죽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출혈량이 심각해서 물어봤다. 허나 오크는 누런 이를 쓱 드러내며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이따 또 터질 텐데, 뭐.”
“네.”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알아서 좋을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오크는 가져온 티슈의 계산이 끝나자마자 포장을 뜯어서는, 십수 장을 뽑아 코에 대고는 험악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나가버렸다. 문은 열어둔 채였다.
문을 닫고 돌아오자, 세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엘프.
이 귀쟁이가 산 건 라면 하나였고,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야!!! 야이, 씨, 야!!!”
누구. 나?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는데, 라면을 사 갔던 중년 엘프가 라면 물 받는 온수기 앞에 서 있는 채였다. 날 바라보는 표정은 분노가 가득 담긴 표정이었….
“장난해?! 물이 너무 뜨겁잖아!!”
“…예?”
“물이 너무 뜨겁다고!!!”
아니, 그럼 라면 물을 뜨거운 물로 끓이지 뭘로 끓여?
정말 떠오르는 말이 하나도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이 귀쟁이가 더욱더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외쳐왔다.
“덜 뜨거운 물 달라고!!!!”
온수기에는 대부분 온도 조절 기능이 있다. 이게 한참 뒤에야 떠올라서 온수기에 이런 기능이 있다고 말해줬는데, 이 귀쟁이가 이걸 듣고는 쉰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진작에 말했어야 할 거 아냐!!!”
그래, 니 말이 옳다….
이거 라면값 물어달라고 하는 거 아니냐. 심란한 마음으로 귀쟁이의 동태를 살폈는데, 이 귀쟁이가 아까 사 간 라면과 똑같은 라면을 가져와서는 계산했다.
그러고는 그냥 가지고 나가버렸다. 문은 열어둔 채였, 저 귀쟁이는 라면 물 안 받을 거면 덜 뜨거운 물은 왜 달라고 한 거야?
문을 닫고 돌아온 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이역만리 이세계에서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어째 정상적인 놈이 하나도 없어….
푸념하는 사이 네 번째 손님이 찾아왔는데, 머리카락이 산발인 여성 손님이었다.
정확히는 산발인 수준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아닌 뱀들이 머리 언저리에 꼬불거리고 있었다. 메두사 말이다. 메두사.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는데, 짙게 해둔 화장이 눈물과 뒤섞여 엉망진창이었다. 하도 초현실적인 광경이라 입이 떨어지질 않았으나, 어떻게든 뻐끔거리며 인사를 건네봤다.
“어서 오십쇼, 손….”
말을 걸자마자 날 홱 노려보는데, 눈빛에 찔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말은 안 걸었다.
메두사는 식빵이 진열된 곳으로 가서는, 조용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찾아오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찾아온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요. 대체 뭔 소릴 하나 싶어 다시 쳐다봤는데,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통화 중이었나 보다.
이후로도 3분이 넘도록 진짜, 무슨 귀신 들린 마냥 계속해서 중얼거려 댔다.
“몇 번이나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왜 자꾸 집엘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쪽이랑 이제 다신 연락 안 한다 말씀드렸잖아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정말 신고할 거라고요, 제가…!”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어 간다. 물건 골라오기 전까지는 좀 앉아있으려고 했는데, 대화 내용이 하도 심상칠 않아서 도저히 앉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뭐 안 살 거면 나가서 좀 통화해라, 나가서 통화하라고….
“아, 돈 없다니까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시냐고요!!!”
빽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머리의 뱀들이 일제히 하늘로 치솟아 혀를 낼름거리기 시작했다. 귀먹는 줄 알았다.
반사적으로 정문을 바라보니, 밖에서 막 들어오려던 손님도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절레 젓고는 지나가 버렸다. 저거 내보내야 된다. 손님 못 오는 건 둘째 치고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 지금.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손님. 죄송한데, 통화를 좀 밖에서….”
말을 걸자, 아까처럼 사람 하나 죽이겠단 눈빛으로 다시 날 노려본다. 뱀들도 마찬가지였다. 혀를 낼름거리며 날 주시하는 걸 보고 있자니, 등에 식은땀이 흥건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해주십쇼.”
“지금 손님 없잖아요, 무슨 상관이에요?!”
“손님이 소리 지르는 것 때문에 다른 손님이 못 들어오고 계시는 겁니다.”
나도 뛰쳐나가고 싶을 지경인데 들어오려는 손님들은 오죽하겠는가. 이를 악문 채로 날 노려보는 메두사의 눈에서, 화장 섞인 검은 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다행히도, 여기까지였다. 메두사는 심경에 변화라도 왔는지, 큰 소리로 혀를 차고는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버렸다.
문은 열어둔 채였다. 내가 더러워서 안 닫고 만다.
열린 문을 내버려 둔 채로 카운터로 돌아와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큰 용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 어. 찬아. ]
“점장님, 살려주십쇼.”
[ 미안… 지금은 나도 좀 힘드네…. ]
짙은 한숨 섞인 대답.
아까 근무교대 할 때 점장 표정도 썩 좋진 않았었다. 해 저문 게 저녁 7, 8시 즈음이었을 테니 그 직후로 2시간 동안은 점장도 비슷한 손님들을 받았을 것이다.
나도 정말 살려달라 전화한 건 아니다. 푸념할 곳이 없어서 그렇지.
“저 멱살 잡히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은데, 멱살 잡혔을 때 저도 같이 멱살 잡아도 됩니까?”
[ 그…러지는 말고, 카운터 밑에 비상벨 있으니까 그거 눌러버려. ]
“비상벨이요?”
[ 어지간해선 안 누르는 건데, 누르면 이종족 손님들이 함부로 추태 부리지는 못할 거야. ]
신고 버튼도 따로 있는데 비상벨 누른다고 경찰이 오는 것도 아닐 거고. 무슨 효력이 있나 싶어 물어봤더니 이런 설명이 돌아왔다.
손놈이 부리는 진상이 극한까지 치달을 경우, 자기 마력까지 써가며 진상을 부려대는 경우가 아주 간혹이지만 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비상벨을 만들어 뒀는데, 누르면 큰 소리가 나는 대신 마력 파동을 흐트러뜨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 같은 게 발생한다고 한다. 카운터 안쪽에는 영향이 없고.
납득하고 싶진 않았지만, 납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내 세상에서도 세이프존이랍시고 버튼 누르면 철창이 내려오는 시스템을 따로 만들려고 했겠는가. 나도 옛날에 근무하며 멱살까지는 잡혀 봤던지라, 점장이 비상벨 같은 걸 만들어놓은 것도 이해가 되긴 했다.
도중에 떠오르는 게 있어 물어봤다.
“아까 메두사 손님 하나가 절 죽어라고 노려보긴 했는데요.”
[ 어…. ]
“사실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기도 하고요. 근데 저 혹시 석고상 될 뻔한 겁니까?”
[ …그 정도까지 가진 않았겠지만… 아마 신경이 잠깐 굳어서 못 움직이는 정도에서 끝나긴 했을 거야. 더 했으면 얄짤 없이 빨간 줄 그였을 테니까. ]
그럼 그 메두사가 날 30초 정도 조지려고 했다는 소리 아닌가. 빡친 손님이 마법 쓰는 것도 받아주고, 편돌이가 이렇게 극한직업이다.
“신경이 굳는 정도면 형을 어느 정도 받습니까?”
[ 집행유예, 벌금형. 지금 몸에 문제는 없어? ]
“없어요. 소름이야 좀 끼치기는 한데.”
[ 으…. ]
내 체질이 체질인지라 재수 좋게 별일이 없었던 셈이다. 점장이 한참 동안 말이 없길래,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일 안 그만둬요, 점장님.”
[ ……. ]
“저 사는 동네도 개진상들이 편돌이 패려면 작정하고 패고 그래요. 그리 생각해 보면 여기나 거기나 크게 다를 것도 없지 않나 싶고.”
좀 낙천적인 생각이긴 하다만, 진상들한테 주먹으로 처맞고 아픈 것보단 차라리 반마법 체질로 마법 쓰는 거 받아주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다 떠나서, 때려치운다 한들 갈 곳도 없다. 내 세상에 일이 있어야 뭘 하든 말든 하지.
조용하던 점장이 마침내 말을 꺼냈다.
[ 찬이가 쓸 수 있을 만한 도구를 한번 구해보든지 해야겠네. ]
“그런 게 있어요?”
[ 체질이 조절 가능하단 건 이제 알았으니까. 방금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나도 아직 한 번도 못 겪어봤고, 자주 일어날 일도 아니지만… 혹시 모르잖아. ]
“전 털 안 날리는 마대 자루나 있었으면 좋겠네요.”
[ 그건 내일 마련해 둘게. ]
얘기하고 있는 도중, 정문 쪽에서 뭔가가 우지끈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뒤로 젖혀진 유리문에 큰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게 보였다. 문 경첩의 쇠 부분은 반쯤 찌그러져 삐걱거리고 있었으며, 정문 바닥에는 소대가리를 한 손놈 하나가 바닥에 뒹굴며 신음해대고 있다.
[ 찬아, 방금 무슨 소리야? ]
차마 대답하진 못하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채로 정문 앞으로 다가가 문손잡이를 잡고 여닫아봤다. 경첩이 휘어버린 탓인지 작은 미동만 할 뿐 움직이질 않았다.
내려다보니, 소대가리의 뿔 부근에서 피가 한 줄 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같았고,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이제야 정황이 짐작됐다. 이놈이 술 처먹고 달리다 들이받은 거다. 순간 멀미가 확 밀려와, 내 눈가를 부여잡았다.
“이… 씹….”
신음하던 미노타우로스가 내게 물었다.
“내가… 뭘 들이받은 거여…?”
투명한 유리문, 이 새끼야. 깨끗하게 잘 닦아놓은 유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