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체감하는 편돌이
이 백발의 중년 손님을 계속 보며 든 생각은, 자기소개에 대리 두 글자를 빼도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외형이나 분위기만은 내 상상 속의 기사와 크게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펜을 쥔 손을 보니, 손등에 다 아문 흉터 하나가 큼지막하게 나 있었다. 호기심에 물어봤다.
“대리기사 일 전에는 무슨 일 하셨나요?”
“뭐, 이것저것 하다가… 은퇴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온화한 말투였으나, ‘대답하기 좀 곤란하다’라는 뉘앙스만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날붙이 쓰는 공장일 같은 걸 하시다 다친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 적었습니다, 사장님.”
막 명부에 거주지와 연락처를 다 적은 손님은 명부를 두 손으로 잡아 내게 내밀어 왔는데, 받아 들어 확인해 보니 ‘기타’ 항목에 따로 뭔가가 적혀있었다. 그러니까, 울프?
“손님, 이 기타란에 ‘울프’라고 적으신 건 뭔가요?”
“제 명의입니다만….”
“이름까지는 따로 안 적어주셔도 돼요. 용도가 특별한 게 아니라서.”
“허어, 그렇습니까?”
“예. 이 편의점이 세상 여러 지역에 공간이동을 하면서 영업을 하거든요. 그만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저주에 걸려오시는 분들이 많으셔 갖고, 그런 것들 예방 차원으로.”
아직 내가 겪어본 거라곤 서큐버스 상사병 잡아낸 게 전부이긴 하지만 말야. 나중에 딴 데서 근무하거든 몰디브나 와이키키 해변가 이런 데서 근무해 봤으면 좋겠다. 마왕성 말고.
“호오.”
이 손님. 그러니까, 울프 어르신은 내 말에 제법 흥미를 느낀 듯했다.
“공간이동을 하는 편의점이라면… 사장님께서도 이곳저곳 가보셨겠습니다. 여기서 근무를 해오셨을 테니.”
“저는 아직 못 겪어본 일이긴 해요. 여기서 근무한 지 3일밖에 안 됐거든요.”
“얼마 안 되셨군요. 어디, 일은 좀 할 만하십니까?”
“방금까지는 할 만했는데요….”
말하며 슬쩍 바깥 정문을 바라보았다. 금이 잔뜩 간 유리문이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게 처량하게만 보였다. 문 상태를 확인한 어르신께서 너털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으셨다.
“왜 문이 저렇게 됐나 궁금하긴 했는데, 여쭤보면 불편해하실 것 같아서 참고 있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 한 분이 들이받으셨어요. 오늘은 저러고 근무해야죠, 뭐.”
“어휴, 고생 많으십니다.”
“저, 손님. 실례지만 다른 거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전에 뭐 하셨는지는 아니고.”
“물론입니다.”
궁금한 건 이거다. 아니, 어떻게 사람 이름이 울프?
내 세상서도 해외에서 울프라는 이름이 쓰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이 두 글자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울프. 늑대.
“혹시… 종족이 어떻게 되십니까.”
“늑대인간입니다.”
수염이나 머리카락 덥수룩한 게 이런 이유에서였구만.
말하며 어르신은 모자를 슬쩍 벗어 보였는데, 덥수룩한 순백색 머리 위로 뾰족한 귀가 돋아나 있는 게 보였다. 한쪽 귀의 끄트머리는 잘려 나간 채였고.
모자를 다시 쓰고는 웃으며 덧붙여 온다.
“헷갈리시는 것 이해합니다. 만월이 아직 한참 멀었으니까요.”
더해서, 내가 이 세상에 대한 기본상식이 바닥 수준이라는 것도 헷갈리는 데에 한몫한다. 말 잘못 꺼냈다가 내 출신이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할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씨, 궁금한 걸 어떻게 해. 대화는 안 멈추되, 가능한 이 세상 인간인 척을 해보기로 했다.
“만월에는 좀 불편하시겠네요.”
“아무래도 밤에 밖에 나가질 못한다는 게 제일 큽니다. 최근엔 복지가 잘되어 있어 크게 불편하진 않습니다만.”
“복지, 음… 제가 요새 뉴스 볼 시간이 거의 없었어서….”
“늦가을 즈음부터 초봄까지는 해가 일찍 저무는 시기라 직장생활이 불가능하니 매달 지원금을 준다, 이런 식입니다. 외에도 보름달을 보지 못하도록 안대를 보급해 준다든가, 품위유지 지원금이라든가.”
상상력을 동원해 생각해 봤다. 만월이 되면 늑대인간들이 인간늑대로 변해 몸에 털이 잔뜩 자라니 그걸 깎으라고 정부에서 돈을 준다, 뭐 그런 건가?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면 그만큼 일하는 시간도 줄어들 테니 복지정책이 만들어진 걸 테고, 아주 효과가 있진 않겠지만 보름달 못 보게도 도와준다고 하고….
흘러가는 걸 듣고 있자니, 이 세상은 이 세상 나름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 싶었다.
“사장님께선 호기심이 많으신 편인가 봅니다.”
어르신이 대뜸 이렇게 말을 해왔는데, 뜨끔해서 곧바로 사과했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뇨, 신기해서 드린 말입니다. 다른 이종족에 관해 관심을 갖는 분들이 요새는 거의 없으니까요.”
나 사는 세상도 다른 나라 사람 보면 잠깐 신기해하고 말지, 그 나라 문화에 대해서 물어보지는 않으니까. 그런 건 여기도 비슷한가 보다.
도중, 어르신이 쥐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슬쩍 화면을 바라보고는 어르신이 내게 물어 오셨다.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 잠깐 이걸 좀 보고 있어야 될 듯해서….”
“죄송하실 거 없죠. 저야말로 일하시는데 붙잡아서 죄송합니다.”
예의 바른 손님을 만나면 편돌이도 한없이 예의 발라진다. 꾸벅 고개를 숙이자, 어르신도 따라 고개를 꾸벅이고는 창가 자리의 테이블로 가 앉아서는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가해졌다. 이게 웬일이래?
앉은 채로 멍하니 3분가량을 있었는데, 손님이 오지를 않았다. 평일이라면 이 시간대에 손님 잘 안 오는 게 정상이긴 한데, 저 어르신을 받기 직전까지도 불지옥에서 속죄하듯 근무를 했던지라 편하기는커녕 위화감만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장 대화하는 동안에도 손님이 안 들어왔고. 의아한 마음에 편의점 밖을 바라보니, 자동차 몇 대가 파란 불인데도 움직이질 않고 사거리에 멈춰 있었다.
행인들도 제자리에 서서 웅성거리기만 할 뿐이고. 나가서 슬쩍 바라보자마자 답이 나왔다.
접촉사고가 난 것이다. 그것도 3중으로.
추론해 보니 이런 상황이었다.
좌회전용 1차선으로 잘못 들어간 자동차가 신호 바뀌기 직전에 급하게 차선 변경을 시도했는데, 3차선에서도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차선을 변경하려다 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서로 들이받힌 상태.
이해가 잘 안 된다면, 가로막힌 벽을 사이에 두고 달리던 두 사람이 벽을 지나쳐 나오는 와중에 서로 머리를 꽁 하고 부딪치는 광경을 상상해보면 된다. 차선 변경할 때면 바로 옆 차선 차는 보여도, 두 차선 옆 자동차는 안 보이니까.
서로 헤드라이트를 들이받은 두 차는 그대로 멈춰버리고, 가운뎃길에서 달리던 애먼 자동차가 그 사이를 끼어들듯 들이받아 멈춰버린 게 현 상황이다.
“~~ ~~!! ~~, ~~~~!!”
“~~~~ ~~!! ~~”
3중 추돌 사고 현장의 한 가운데에서는 오크 둘과 골든 리트리버 코볼트 하나가 뭐라 뭐라 말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리트리버 귀가 축 늘어진 걸 보니 저 양반이 최후미에서 들이받은 듯했다. 뒤에서 들이받으면 100% 자기 과실이라 답이 없거든.
반면 오크 둘은 서로 고함을 질러대며 싸우고 있었다. 편의점 밖으로 좀 더 나가자, 말들이 또렷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씨발 새끼야, 깜빡이를 켰으면 처봐야 될 거 아니야!!”
“염병, 지랄하네! 니가 처들이받고는 왜 씹소리야, 뒈지고 싶어?!”
이런 대화였는데… 팝콘, 팝콘 어디 있냐.
사고 난 양반들한텐 미안한 소리지만, 자동차 사고 난 현장 바라보는 것만큼 꿀잼인 게 없다.
한쪽 과실이 명확하면 대충 보험처리 하고 끝나고 마는데, 이런 경우에는 누가 먼저 잘못한 건지 쉽사리 판단이 안 날 상황이라, 서로 말싸움으로 기선제압부터 하려고 든다. 언어의 UFC가 펼쳐진단 소리다. 이걸 어떻게 참음?
매정한 거 아니냐고? 어차피 서로 보험처리 될 거고, 지들도 저러다 말 텐데 뭔 상관인가. 진짜 매장에 팝콘 있는데 그냥 내 돈으로 살까?
“사장님, 밖이 좀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어르신도 내가 밖에 나와 있는 게 의아했는지 따라 나왔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저기서 사고가 난 것 같네요.”
“저런.”
“저거 구경하느라 손님도 안 오시는 것 같….”
대답하는 도중, 벽돌 같은 게 박살 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홱 바라보니 한 오크가 막 주먹을 휘두른 채였고, 얻어맞은 오크는 그 반동으로 자동차 옆문에 머리를 처박은 상황이었다. 문짝은 안으로 움푹 들어가 찌그러져 버렸고.
아…니, 뭐냐 저거? 왜 보험사 안 부르고 쌈박질을 해?
“이 씹새끼, 해보자는 거지!!”
찌그러진 문짝에서 머리를 뽑아낸 오크가 터프하게 외쳤다. 얼굴 반쪽이 함몰된 채였으나, 전혀 고통을 못 느끼는 듯했다. 그대로 찌그러진 문짝을 뽑아내서는, 자신을 후려친 오크의 옆에 대고 있는 힘껏 후려쳐 버렸다.
일격을 맞은 오크는 3m를 족히 붕 떠서는 바닥에 처박혔으나, 곧바로 벌떡 일어났다. 비틀린 어깨를 붙잡아 끼우고는, 노기 가득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상대에게 걸어가 얼굴을 후려갈겨 버렸다.
“아니….”
서로 후려치는 족족 어딘가가,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오고, 몸과 머리가 처박힌 위치마다 균열이 일거나, 찌그러지거나 하고 있었다.
바라보며, 잊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여기, 이세계가 맞긴 맞다.
손님들이 죄다 괴랄하게 생기긴 했어도 하는 짓은 사람과 다를 게 없어서, 나도 할로윈 코스프레 한 사람들이라 고 애써 합리화하고 있었다. 근데… 아니네?
영화 속에서나 존재해 왔던 우락부락한 떡대 오크 둘이 작정하고 서로 싸워대는 게, 내 세상에선 영화 아니면 결코 볼 수 없을 광경이었다.
이걸 4D로 감상하면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다른 행인들의 감상이 나만큼 심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뭐라 수군거리기는 하고 있는데, ‘저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니냐’ 혹은 ‘경찰 불러야겠네’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 동네 오크들이 저렇게 싸우는 게 고작 경찰 부르고 끝날 일인 건가?
내게 묻는 어르신의 목소리도 무척 침착했고 말이다.
“사장님, 곤란하시진 않습니까?”
내 상태를 물어본 것 같지는 않았다. 이만한 기술력의 4D 영화가 처음이라 혼란스럽기는 한데, 슬슬 진정되고 있기는 했다. 그래도 3일 동안 근무한 짬이 있지.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어떤 거 말씀이세요?”
“저 오크 둘이 계속 싸우는 동안, 손님은 못 받으실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러게요. 솔직히 이 거리에 가까이 오고 싶지도 않을 것 같고.”
적어도 나라면 안 온다. 지금도 우지끈, 빠악 이런 소리와 함께 강냉이인지 안와골절 파편인지 모를 것들이 날아다니고 있었으니까. 물끄러미 싸움을 바라보던 어르신께서, 모자를 슬쩍 벗어 내게 내밀고는 말씀하셨다.
“잠깐 맡아주시겠습니까.”
“네, 주십쇼. 근데 뭐 하시려고요?”
“젊은 친구들이 너무 혈기왕성한 것 같아서, 주의를 좀 주고 오려고 합니다.”
그랬다가 저 강냉이 꼴이 나면 어쩌려고?
헌데 표정이 워낙 평온하셔서, 뭔가 수가 있으시겠거니 하고 모자를 받아줬다. 멈춰 선 차들 사이를 비집듯이 걸어 싸움 자리에 간 어르신이 멈춰서서는 말했다.
“~~, ~~ ~~~….”
작아서 잘 들리지는 않았고. 허나 오크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뭐야, 씨팔 틀딱 새끼야! 싸우는 데 끼어들지 말고―”
직후, 어르신께서 살짝 오른쪽 발을 내디디셨다.
이어서 바람 가르는 소리. 소리가 미처 멎기도 전에 오크의 몸뚱어리가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이어서 씨익대는 다른 오크에게 다가간 뒤에 또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오크도 똑같이 쓰러져 버렸고….
둘이 쓰러지는 데 3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쓰러진 두 오크의 한 가운데에 선 어르신은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던 리트리버 코볼트에게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었다.
리트리버가 손을 붙잡자, 일으켜 세워서는 느릿느릿 부축해 가며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청년,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 네. 네, 괜찮아요. 가, 감사합니다.”
코볼트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고개를 연신 꾸벅이고는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꾹꾹 눌러대기 시작했다. 보험사 뭐 그런 곳이겠지.
어르신은 붉게 달아오른 주먹을 슬며시 쓰다듬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기 시작했다. 모자를 건네며 물었다.
“뭐 하신 거예요?”
어르신은 인자하게 웃으시고는 대답하셨다.
“말씀드린 대로, 잠깐 주의를 주고 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