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27화 (28/201)

27화. 견습 법사 편돌이

와이파이를 연결한 후에도 할 게 많았다.

“다음에는 설정에 보안 들어가서, 패턴이랑 지문인식.”

“네.”

“그리구… 아, 절전모드. 이게 좀 옛날 기계라 배터리가 빨리 나가거든?”

“네….”

일단 시키는 대로 하고는 있는데, 이게 대체 뭐 하는 거냐?

마법 쓰려고 준비하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 약정 바꾸러 온 것 같단 기분만 자꾸 든다. 조작법이 내 맛폰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고. 검정색에 그립감이 좋다, 딱 그 정도 인상이다.

그나마 차이점이라면 뒷면에 브랜드 로고 대신 작은 마법진이 새겨져 있단 점 정도였는데, 이거 새겼다고 다 마도구가 되면 내 세상 완구점들은 다 마경이 됐게?

“절전모드 했는데, 다음에는요?”

“끝인데?”

스마트폰 설정 끝내고 나니 마법사가 되어버린 건에 관하여….

“레알요?”

“응. 혹시 따로 궁금한 거 있어?”

산더미처럼 있다. 그중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부터 물어봤다.

“마법 쓰는 데에 와이파이가 왜 필요한 겁니까?”

“그거는, 음… 찬이 네 세상에 마법 관련 서적 같은 건 없을 거 아냐. 읽어본 적도 없을 거구.”

“비슷한 게 있긴 합니다. 네크로노미콘이라든가, 지옥의 묵시록이라든가….”

“진짜?”

“음모론자들 말로는 그렇다던데요?”

“에이, 그럼 없는 거네, 뭐.”

살짝 실망한 어투로 덧붙이길, 마법을 쓰는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는 당연히 마력이고, 다른 하나가 마법에 대한 연산식.

이 연산식에 대해 내가 아는 게 없으니, 아예 데이터로 그때그때 다운받아서 써야 한다는 게 점장의 설명이었다.

지식이 있으면 상관없는 부분이긴 하나, 간단한 화염 마법을 배우는 데에도 최소 6년 이상이 걸린다고. 그러니까, 이 세상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말이다.

“집에 참고용 마도서 있는 거 몇 권 빌려줄 수 있긴 한데.”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사양할게요.”

“그럼 그렇게 해.”

6년 공들여 라이터 불붙이는 재주를 배우거나 이 세상 검정고시를 치르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애초에 다른 조건도 충족 못 한다.

“책 볼 필요 없어서 좋기는 한데, 마력은 어떻게 합니까?”

“이 스마트폰 안에 마석이 들어있어. 정확히는 배터리 안에, 조그만 거 하나.”

“원래 이 세상 스마트폰엔 다 마석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건 아니구, 그 폰 모델만. 그래서 A/S 받기도 엄청 힘드니까, 떨어뜨리거나 그러면 안 돼, 알았지?”

어차피 어디 가지고 다닐 생각도 없다. 매장 와이파이 연결 안 하면 쓰지도 못하는 거잖아. 것보다는 점장이 왜 이런 걸 갖고 있는지가 궁금했는데….

“아는 사람이 줬어. 몇 년 전에.”

이러고는 슬쩍 시선을 피하길래, 점장 인맥이 빵빵한가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받는 입장에서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우스운 일 같고.

“외에 다른 건 없구?”

“음… 와이파이 말고, 무제한 요금제 쓰면 안 되는 거예요?”

“글쎄. 연산 한 번에 데이터 엄청 잡아먹어서, 금방 기본 데이터로 넘어가 버릴걸?”

“그럼 와이파이로도 감당 안 되는 거 아닌가?”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돼. 우리 5G라 신호 엄청 빵빵하거든.”

잘 모르겠고, 문짝 고치고 퇴근이나 할란다.

“이제 한번 써볼게요. 마법은 어플 실행시키면 되는 거예요?”

“응. 페이지 넘겨보면 어플 세 개 보이지?”

점장 말대로 화면을 넘겨보니, 기본 어플과는 쌩판 다르게 생긴 어플 셋이 보였다. 첫 번째가 별 모양, 두 번째가 방패, 세 번째가 망치.

“첫 번째 꺼는 인증받았다는 마크 같은 거라 신경 안 써도 되고. 방패 모양 어플은 방어 마법이고… 그것도 알아서 작동할 거니까 따로 누를 필요는 없을 거야. 그리고 세 번째가 복원 마법.”

“어떻게 쓰는 건데요?”

“어플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될걸? …아마도.”

점장도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어플을 누르자, 카메라 화면으로 전환되고는 가운데에 반투명한 사각형이 나타났다.

밑에는 이런 문구가 떠오르고는 사라졌고. 복원할 사물 전체에 초점을 맞춘 뒤, 뚜렷해질 때까지 유지해 주세요.

일단 복원할 사물은 박살 난 정문이고. 화면 전체에 들어오도록 거리를 잡아 초점을 조절하자, 찰칵 사진 찍는 소리에 뒤이어 밑에 슬라이드가 떠올랐다. 이걸 움직여 보라는 것 같은데.

오른쪽 구석의 바를 왼쪽으로 끌어오자, 그에 맞춰 화면도 이리저리 뒤바뀌기 시작했다. 근무 중에 방문했던 손님들이 나타나서는 뒷걸음질 치며 사라지는가 하면, 정문 뒤에 찍힌 거리가 점점 어두워지기도 했고….

이거 혹시… 그건가? 그거야?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한참을 되감기던 화면에는 널브러진 미노타우로스와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내 모습마저 나타났다 사라졌고, 약간 더 뒤로 돌리자 드디어 멀쩡한 정문이 나타났다.

슬라이드 밑에는 동그란 버튼 하나가 놓여있다. 영 불안해서 점장을 바라봤으나 점장은 아무 문제 없을 거란 표정이었다.

그래서 눌렀다. 누르자 화면이 곧바로 암전되고는, 화면 속에서 일어났던 일이 박살 난 정문에 똑같이 재현되기 시작했다. 부르르 떨리기도, 까딱이기도 했으며, 오갔던 손님들의 모습은 두리뭉실한 안개의 형태로 나타나고는 사라지길 반복하다가….

짜잔. 부서지기 전으로 되돌아갔다. 정문으로 다가간 점장은 문을 슬쩍 여닫아보고는 말했다.

“잘됐네.”

“어… 점장님.”

“응.”

“방금 그, 시간이 되돌아간 겁니까?”

“응.”

물리학 전공한 사람이면 여기서 한 번 기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난 가방끈이 짧아서 잘 모르겠지만, 걱정은 들었다.

“이거 문제는 없는 거예요?”

“어떤 문제?”

“예를 들어서, 이걸 미노타우로스한테 쓴다 치면 송아지가 되어버릴 거 아닙니까.”

“살아있는 생명체한테 쓰면 그렇게 되겠지.”

“진짜로?”

“응. 할 줄 알면.”

그리고 그걸 할 줄 아는 이종족은 현재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한다. 온 세상의 마법 전공자들이 수십 년째 예산 받아가며 연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놈들 완전 세금도둑 아니야?

그러니 화면에 뭐가 찍혀있든 생명체에게 피해가 갈 일도 없을 거라 하고.

점장 말을 들은 후 나도 편의점 정문 손잡이를 잡고 여닫아 봤다. 잘 열고 잘 닫혔다. 점장이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쓰고 싶은 다른 마법 있어?”

“제가 고를 수 있는 겁니까?”

“두세 개 정도는. 어떤 마법이냐에 따라 다르긴 한데….”

“돈 복사 마법이요.”

“그건 불법인데?”

주식 선물거래도 합법인데 이건 왜 불법이야. 외에 다른 게 또 뭐가 있나 떠올려 보려 했으나….

마법이고 나발이고 그냥 잠이나 자고픈 마음뿐이었다. 어차피 편의점 와이파이 없으면 쓰지도 못하잖아.

“내일 출근하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겠슴다.”

“응.”

이후 블라인드를 치고, 정문 잠그고 공간이동 버튼도 누르고. 퇴근하려는 찰나, 점장이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내게 말해왔다.

“아. 출근할 때 우산 챙겨오구.”

“우산요?”

“응. 밤에 비 올 거래.”

* * *

편의점은 실내 근무인데 비가 뭔 상관이냐?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편돌이들도 비가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야간 편돌이의 경우엔 더더욱 그런데, 근무 중 반드시 한 번은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종량제 쓰레기 버려야 되거든.

외에 자잘하게 해야 할 일이 몇 개 생긴다. 발 좀 닦고 들어오라고 깔개도 깔아야 하고, 우산 진열대도 끌고 와야 하고, 우산꽂이도 둬야 하고.

특히 짜증 나는 건 손님들이 발이 젖은 채로 매장에 들어와서는 온갖 곳을 쏘다니게 된다는 건데, 귀찮다고 내버려 두면 한두 시간도 안 되어 공사판 현장 비슷한 꼴이 나버린다.

그런 탓에 바닥을 주기적으로 계속 닦아줘야 하는데, 출근길에 역산을 한번 해보니 근무 끝날 때까지 비가 안 그치면 바닥 청소만 여덟 번을 해야겠더라. 참으로 큰 인력 낭비, 시간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데, 청소 대신 해주는 마법 어플 하나만 설치해 주시면 안 됩니까?”

“음….”

이거 물어보려고 10분 일찍 출근했다. 카운터 안에 우산을 기대둔 뒤 점장에게 묻자, 점장은 팔짱을 끼고는 한참 동안 고민하는 소리를 냈다. 예상 못 했던 반응이었다.

“안 돼요?”

“안 될 건 없는데… 매장 전체를 청소할 거라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 어렵거든.”

“시간 되돌리는 것보다요?”

“응.”

왜 시간 되돌리는 것보다 청소 마법이 더 어려운 거냐?

묻자 점장이 덧붙인 게, 점장은 매장 청소를 하더라도 ‘청소 마법’을 쓰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예 부유 마법으로 진열대들을 죄다 들어 올린 뒤, 물 마법으로 바닥을 통째로 세척한다고.

이유는 마법을 사용할 때, 시전자의 의지가 적지 않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쉬운 예시를 들자면, 청소 마법이 발동하는 도중에 쓰레기 같은 손님이 온다면 그 손님도 같이 청소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럼 오히려 좋은 거 아니냐?

싶었으나, 점장이 영업정지 얘기를 꺼내길래 더 묻지는 않았다. 털 안 날리는 마대 자루만 있으면 청소는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점장님께서는 어플은 직접 못 만드시는 거죠?”

“응. 내가 코딩을 못 해서….”

“저도 못 하니까 심란해하지 마십쇼. 그럼 이것도 지인분께서 만들어 주신 건가?”

“응.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매장 놀러 오라구 할게.”

누구든 간에 진상만 안 부리면 좋겠… 아니다. 지인이라 했으니까 최소한 진상은 안 부리겠지.

대화하고 있자니, 밖에서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장에게 물었다.

“오늘 비 많이 온답니까.”

“10시 좀 지나서 확 많이 온다던데?”

“그럼 얼른 들어가셔야겠습니다.”

“응. 수고하구.”

이후 우산을 펼치고는 나가는 점장. 점장 체구가 작은 덕인지, 우산도 자그마한 걸 들고 왔다. 유리창 좌측으로 사라지는 점장을 보다가 막연히 생각했다.

언제 밥을 한 끼 사고 싶은데 말이다.

점장한테 금일봉도 받고 마법지팡이 대용 스마트폰도 받았겠다, 자꾸 받기만 하는 것 같으니 고맙다고 사례를 하긴 해야겠는데, 막상 밥 한 끼 먹자고 말을 꺼내려 해도 현실적인 여건 탓에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하루 12시간을 내가, 다른 12시간을 점장이 근무하지 않는가. 근무 교대할 때 빼면 얼굴 보기도 힘든 사이다. 주말 알바를 구하면 해결될 문제긴 한데, 점장이 알바생을 안 구하려고 하는 것도 아닐 거고….

“씨발, 야!!”

익숙한 그 외침이다. 슬쩍 일어나서 정문을 보니, 막 들어온 치와와 대가리가 막 장우산을 접고는 내게 물었다.

“우산꽂이 어디 있어?!”

“방금 근무교대 해서 아직 안 가져왔는데, 그냥 편한데 세워두셔도 됩니다.”

빗물 떨어진 거 닦을 게 번거롭긴 하지만, 저 치와와 분노조절장애를 감당하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허나, 오산이었다.

“그럼 빗물 떨어지잖아, 새끼야. 니가 닦을 거야?”

“네.”

“헛소리 말고 우산꽂이 가져와. 갖고 올 때까지 나 안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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