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친절봉사 편돌이 (2)
택배 보내는 당사자 앞에서 하긴 곤란한 얘기 같아, 아예 정문 밖으로 나왔다.
이후 뭔 일이냐는 표정의 누나에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저 독두꺼비가 왜 저러고 있는지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설명을 다 들은 누나는 반쯤은 측은한, 반쯤은 웃기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다, 결국 피식 웃고는 금연초를 꺼내 입에 물며 되물어 왔다.
“그래서, 이찬 네가 김치도 다 포장해 준 거야?”
“어.”
“어이가 없네. 저런 진상들이 자주 와?”
“저렇지 않은 정상이 더 안 와, 보통.”
“어휴, 너도 참 고생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저 독두꺼비한테는 안 된단 말을 못 꺼내겠는 걸 어떻게 해. 생긴 게 부녀회 자리 만들어서는 ‘아니, 사거리 쪽 편의점 인간 총각이 글쎄~’ 이럴 것 같아.
“하여튼 누나, 주말에도 택배 배송해?”
이 편의점이 택배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그걸 좀 알아야 할 것 같다. 묻자, 누나는 금연초 한 모금을 더 빨아 뱉어내고는 말했다.
“…뭐. 너도 내 부탁 들어줬으니, 나도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아니, 부탁이 아니라 그냥 하냐고 물어본 건데.”
“그 말이 그 말이지, 뭐. 근데 저 김치 어디로 보내는 건데?”
모른다. 들어가서 독두꺼비한테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그드라실 2단지 쪽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총각.”
수돗물 하나는 참 맑을 것 같은 명칭이다. 전세도 비쌀 것 같고.
“일단 알겠슴다.”
“저 처자가 택배기사 하고 있는 거야? 아유, 참 고운 처자네. 주말에도 고생하고.”
보내준다곤 아직 말 안 했는데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말해주니, 누나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딱 집 가는 경로네. 이따가 해준다고 말씀드리….”
“참말루? 아유, 고마워 처자, 총각도 고맙구.”
뒤를 돌아보니, 고새를 못 참고 독두꺼비가 뛰쳐나와 누나 말을 들은 듯했다. 곧바로 누나의 손을 부여잡고는 흔들고 내 손도 흔들어 대고는, 잠깐 기다려 보라며 반대쪽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 안을 주섬거렸다.
그러다가 뭔가를 주욱 찢어 꺼냈는데, 이것도 김치였다.
이번 김치는 흐느적댄다기보다는 미쳐 날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당했다. 자신의 신체가 찢어진 데에 대해 적잖이 불만인 듯한 잎놀림이었다. 당분간 김치찌개는 쳐다도 못 볼 것 같아.
“이거 건강에 좋은 거야, 총각. 만드라고라로 담근 거거든. 사양 말고.”
“뭘로 담그셨다고요?”
“만드라고라. 왜, 총각. 혹시 알러지 있어?”
“어….”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어 누나를 바라보자, 만드라고라라는 말에 오? 하며 반응한 누나가 독두꺼비가 내밀어온 김치를 한 점 물어 우물대고는 말했다.
“괜찮네요, 아주머니. 좀 짜긴 한데.”
“김치는 짠 게 맛있어.”
“그렇긴 하죠. 그래도 원래 주말에는 택배 안 해드리는 게 원칙이니까, 다음부터는 주말엔 가져오지 마셔요.”
“알겠어. 고마워, 처자.”
진짜 넉살 좋은 누나다. 이 독두꺼비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술술 내뱉네.
“총각도 고맙구. 나중에 부녀회 친구들이랑 같이 또 올게.”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유, 마음씨도 곱네. 자, 받어. 얼른.”
이러고는 똥 씹은 표정의 내게 기어이 김치 두 줄기를 쥐여준 독두꺼비는, 팔을 크게 휘저으며 사거리 저편으로 걸어가 버렸다.
이리하여 내 손엔 김치가 들려있게 되었다. 분명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날씨인데, 이 김치 줄기들은 왜 이리도 미쳐 날뛰는 것인가….
“아줌마 말대로 건강에 좋은 거니까 먹어. 찬이 너 비리비리하잖아.”
“그럼 누나가 먹는 건 어때?”
“난 이거면 됐어. 끝맛이 좀 매워 갖고.”
언젠가 판타지스러운 무언가를 먹을 일이 생길 거라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이뤄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하필이면 김치, 그것도 만드라고라로 만든 살아있는 김치냐?
산낙지도 목구멍에 달라붙는 거 싫어서 못 먹는 놈한테 건강에 좋다고 얘기해 봐야….
“근데 이거 건강 어디에 좋은 건데?”
“허리.”
이럼 얘기가 달라지지.
안 그래도 새벽에 하도 앉아있다 보니 허리가 아프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심정으로 한 입 베어 물고, 입 안에서 꿈틀대는 걸 애써 무시하며 꼭꼭 씹어 삼키자 그제야 맛이 느껴졌다. 맛이 어땠냐면….
“누나, 이거 멸치젓 들어간 거 같지?”
“넌 맛보고 그걸 알아?”
맛이 그럴싸한 게 오히려 기분이 더 찝찝하다. 허나 삼킨 후 잠깐 사이에 입안이 점점 얼얼해지기 시작했는데, 왠지 달달한 요깃거리가 땡기는 끝맛이었다.
“윤하 누나, 뭔가 달달한 거 땡기지 않아?”
“아, 나도 마침 그 말 하려고 했는데. 남은 거 있어?”
“잠깐 기다려 봐. 찾아보게.”
폐기 바구니나 한번 뒤져봐야겠다.
폐기가 발생하는 음식은 대개 유통기한 짧은 도시락, 샌드위치, 삼각김밥 같은 거다. 외에는 우유 정도. 하지만 가아끔 마카롱이나 미니 케이크 같은 디저트도 폐기가 발생해서 당분이 모자란 편돌이의 훌륭한 양식이 되어주기도 한다.
유통기한 지난 걸 어떻게 먹음? 하는데, 유통기한은 말 그대로 유통을 허락하는 기한이고 실질적인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며칠이 더 길다고 한다. 식약처에선 그렇게 말하더라.
그러니까 안심하고 먹어도 되고, 까놓고 말해서 유통기한 몇 시간쯤 지난 거 먹으면 뭐 어때? 돈 쓰는 것도 아닌데. 허나 폐기 담아두는 바구니를 뒤져봐도 마땅한 디저트는 없었고, 대신 이런 게 있었다.
“…민트초코아몬드?”
민트초코면 민트초코고 초코아몬드면 초코아몬드지, 민트초코아몬드는 또 뭐야?
그래도 남은 게 이거 하나밖에 없었던지라 일단 가지고 나와 보여줬는데, 누나도 나와 반응이 비슷했다.
“야, 이 혼종은 뭐야?”
“나도 몰라. 이런 거 있는 줄도 처음 알아서.”
당장 아몬드만 해도 김 맛 나는 아몬드, 와사비 맛 나는 아몬드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근데 이것들도 손님들이 가져와서 ‘아, 이런 것도 있어?’ 하고 아는 거지, 보통은 팔기 전까지는 모른다. 이걸 팔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나는 민트초코 자체를 아예 먹어본 적이 없다. 주변 사람들이 하도 치약 맛 난다, 치약 맛 난다 하길래 ‘치약 먹고 싶으면 집에 치약을 짜다가 먹지, 왜 굳이 다른 걸 사서 먹어?’ 생각하며 일부러 멀리한 까닭이다.
누나는 먹어본 적 있냐, 물어봤더니 누나도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이것을 먹는 건 누나에게도, 나에게도 있어 미지의 모험인 셈이었다.
미지의 모험이긴 한데… 아무튼 아몬드라잖아. 난 아몬드 좋아한다.
그래도 혼자 먹기는 싫어서, 누나를 설득했다.
“누나. 그래도 이거 어절 세 개로 나누면 민트, 초코, 아몬드인데, 초코아몬드 맛이라 생각하고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 만하지 않겠어?”
“그건 뭔 논리야?”
“논리 그딴 거 없는데? 굳이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먹어봐서 손해 볼 건 없잖아. 공짜인데.”
공짜. 이 두 글자의 유혹은 A급 헌터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럼… 먹어보지, 뭐.”
내 모험에 누나가 파티원으로 가입했다. 포장지를 뜯어 누나에게 한 알을 건네고 나도 한 알을 집은 뒤, 동시에 입에 넣었다.
그 후 2초. 누나는 곧바로 입에 손을 넣어 꺼내고는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손해를 보잖아, 인마!”
내 의견도 일치했는데, 이게 왜 폐기가 됐는지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이름을 민트초코로 지어놨으니 민트 맛도 나고 초코 맛도 나야 정상일 텐데, 이건 그냥 민트잖아 시발. 초코 어디 갔어?
심지어 은은한 민트도 아니고 카카오 100%급 쌩 민트라, 입 안에 넣고 굴리면 굴릴수록 아몬드고 나발이고 계면활성제를 씹어먹고 있다는 느낌밖에 들질 않았다.
결국 나도 못 참고 뱉어냈고, 누나는 피운 지 5분도 안 된 금연초를 하나 더 꺼내 입에 물고는 빨아 내뱉었다. 기분이 몹시 좋지 않은 듯했다.
먼저 말을 꺼냈다간 한 대 쥐어박힐 것 같아 잠잠히 있었더니, 누나가 내게 물어왔다.
“야. 이런 걸 대체 왜 먹는 거야?”
“뭘 먹고는 싶은데, 먹고 나서 양치질하기는 귀찮은 사람들한테 수요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튼 난 못 먹겠다, 이거.”
나도 만드라고라 김치는 먹겠어도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민트초코라는 음식을 개발해 낸 작자가 대체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영국인일 게 분명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화제도 돌릴 겸 말을 꺼내 봤다.
“누나, 어제 마수 핵 줬을 때 작업장이랑 연을 끊는다던가, 뭐 그런 얘기 했잖아.”
“그랬지.”
“그거 어떻게 잘 풀렸어?”
묻자, 누나가 씨익 웃으며 대답해왔다.
“다 때려 부쉈는데?”
뭐요?
이게 중의적인 표현인지, 정말 빠따 들고 가서 다 때려 부쉈다는 건지 짐작이 안 가서 누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옆구리에 차고 있는 검의 검집이 살짝 닳아있는 게 눈에 보였다.
“진짜 때려 부순 거야?”
“사실 다는 아니고 절반밖에 못 때려 부수긴 했는데, 나중에 손해배상 청구하라고 했어. 계약 해지비에 덤으로 얹어주겠다고.”
대체 말을 어떤 식으로 했길래 누나의 검집이 춤을 추게 만든 것인가?
들어보니 대충 이랬단다. 그쪽에 맡겼던 물건에 문제가 생겼었으니 선수금했던 비용을 돌려달라 했더니 그쪽 왈, 자기들이 한 작업에는 문제가 없었다, 귀하 측 잘못 아니냐.
여기서 누나가 뻗친 열을 가라앉힌 후, 너희랑은 뭐 같아서 앞으로 거래를 못 하겠다는 내용을 최대한 정중하게 얘기하자 그쪽에서도 똑같이 정중하게 대답해왔는데, 내용이 대충 이러했다고 한다. 3천만 원 내놔.
“그럴 만했네.”
“보이는 건 두 발 달린 거 빼고는 다 박살 낸 것 같은데… 아, 몰라, 길드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여튼 속은 후련했으니까.”
길드가 뭔지는 몰라도, 다음에 또 민트초코 같은 걸 먹였다간 누나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단 건 아주 잘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만 더 물었다.
“그 작업장 종사자들 종족이 뭐였어?”
“고블린.”
아, 이 해로운 녹색 놈들이 또….
“아무튼 적당한 데 찾기도 머리 아프니까, 오늘은 아무 생각 안 하고 내일부터 새로 찾아보려고.”
“그렇게 해. 근데, 거기랑은 왜 계속 같이 일하고 있었던 거야?”
“걔네가 주말에도 일을 받았었거든. 처음에는―”
“쏴장님.”
이 와중에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에 왠지 반가움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바라보니, 전에 몰려왔었던 기계인형들 중 하나인 듯했다. 정확히는 작업복 보고 알았다.
“아, 안녕하십니까.”
“쑤얏.”
“누나, 잠깐 손님 좀 받고 옴.”
“어. 나도 이거 다 피고 들어갈게.”
안으로 들어가며 기계인형에게 물었다.
“네, 어떤 거 드릴까요.”
“담배 주세요.”
“네. 어떤 담배 드릴까요?”
“몰라요.”
술 냄새는 안 나는데 대체 뭐야?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서 재차 물었다.
“담배 어떤 거요?”
“몰라요. 몰라.”
“…손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담배를 드릴 수가….”
점장은 이 기계인형들이 자기들 말이 따로 있는 탓에 말을 잘 못 한다고 했었다. 그러니 담배 이름 모를 수야 있지.
근데 지금 상황은 그것과는 좀 다른 것 같은 게, 기계인형의 표정이 지나치게 평온했다. 오히려 자기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날 멀거니 바라보다, 재차 말해왔다.
“그…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