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35화 (36/201)

35화. 2.1점 편돌이 (1)

“술 많이 잡수셔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죠? 하여튼, 그래서 저만 혼자 남아버렸는데, 여기저기에서 말은 걸어오고… 그래서 도망쳐 나왔고… 그리고….”

말하다 말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억울하다는 표정 가득했던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겋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이해가 되기는 한다. 요약하면 ‘저 클럽 가서 그냥 앉아만 있다 왔어요―’라는 말을 풀어 말한 셈인데, 충분히 부끄러워할 만한 상황이긴 하지….

…물론, 듣는 대상이 클럽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 놈일 경우의 얘기지만 말이다. 나라면 앉아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화장실이든 모텔이든 잠긴 문 두들기면서 ‘선배님들, 바쁘신 건 알겠는데 저 좀 집에 보내줘요!’ 하며 울고불고 매달리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이 서큐버스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주말에 직장 선배들한테 끌려다니게 된 것인가. 묻자, 내 얘기부터 해왔다.

“그게… 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사랑에 대해 알려면, 일단 연애를 해보는 게 맞지 않겠냐고.”

“그러긴 했죠.”

“그래서 해보려고 했거든요? 연애. 그런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도저히 모르겠어서….”

세상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고, 연애도 예외는 아니라 생각한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그리고 이 서큐버스는 발단에서부터 막혀버린 듯했다. 나와의 짧은 상담 이후 며칠을 내리 고민하다,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고른 방법이 직장 선배들한테 묻는 것이었는데….

“그랬더니, 절 보고 오늘 주말에 시간 비워두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비워두고 저녁에 선배들 따라갔더니… 이렇게….”

말하는 중간에는 아예 몸서리까지 쳐댄다. 그 경험이 어지간히도 질색이었던 모양이다.

“좀, 그… 클럽 끌고 가는 것 말고, 견실한 조언 들으신 건 없습니까?”

“일단 모텔을 가래요. 그러면 자연스레 사랑이 생길 거라나 뭐라나.”

“허어.”

연애가 전쟁이라 치면, 이 직장 선배라는 작자들은 전투력이 건담쯤 되는 것 같다. 이 서큐버스는 자쿠 정도 되는 것 같고.

“그런데, 저는 그렇게는 차마 못 하겠어서….”

나도 하라고 하면 절대 그렇겐 못 한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대답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긴 한데,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억지로 하는 게 사랑은 아니잖아요. 고문이지.”

“그렇죠…?”

자기한테 공감해 준 것이 기쁜지, 서큐버스가 들뜬 목소리로 수줍게 맞장구를 쳐왔다. 클럽 얘기를 더 해봐야 아픈 기억만 긁어대는 것 같고. 아예 말을 돌렸다.

“정말 다른 거 들으신 건 없어요?”

“어… 아. 선배 중 한 분이 이걸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던데.”

말하며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잠깐 조작한 뒤 내게 화면을 내밀어왔다. 바라보자, 날개 달린 꼬맹이가 활을 쏘고 있는 자세를 한 로고가 떠올라 있었다.

잠깐 기다리자 밑의 로딩 바가 꽉 채워지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으나, 계속 보고 있자니 뭔가가 떠올랐다.

“손님, 이거 혹시 소개팅 어플이에요?”

“네.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별로였다.

이게 그거다. 자기 얼굴이랑 사는 주소 같은 거 올려두고, 점수 매긴 후에 비슷한 점수끼리 매칭시켜 주는 거.

내 세상에도 비슷한 어플이 몇 개 있어서 잘 알고 있고, 가입하려 시도해 본 적도 있다. 친구 놈들 모여서 했던 술자리 게임에서 졌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공은 못 했다. 내 외모 점수 2.1점이라고 가입도 안 시켜주더라고. 이게 대학 학점이었으면 재수강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점수였는데, 재수강을 하려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잼 아저씨 찾아가서 얼굴 갈아 끼워 달라고 하면 되냐?

이런 이유로 난 소개팅 어플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나, 막상 거르자니 이것도 애매하다. 이 어플을 제외하면 연애 관련해 할 얘기가 아예 떠오르질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 서큐버스 얼굴이 학고와는 3만 광년쯤 동떨어진 얼굴이기도 했고….

“제 생각은 그닥…이긴 한데, 까짓거 밑져야 본전이지. 한번 해보셔요.”

“네, 해볼게요. 그럼 우선, 사진부터….”

말하며, 서큐버스가 다시 스마트폰을 내밀어왔다.

“사장님. 혹시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냥 셀카 찍으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게 사진빨은 더 잘 나올 것 같은데.”

“그, 제가 셀카를 잘 못 찍어서요….”

난 아예 못 찍는데 말이다. 내 사진 찍어본 게 증명사진 빼고 있긴 했나 싶어. 그래도 이 서큐버스는 어떻게 찍어도 그림이 제법 나올 것 같으니….

모르겠다. 그냥 손 가는 대로 찍으면 되겠지. 스마트폰을 조작한 후 카메라를 겨눴는데, 화면 속 서큐버스가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뭘 그리 긴장하십니까. 이게 면접 사진 찍는 것도 아닌데.”

“그게, 제가 오늘 화장을 거의 안 하고 나와서요… 지금 괜찮나요?”

괜찮냐 묻길래, 의식의 흐름대로 말했다.

“예쁘세요.”

“네, 예쁘… 네?”

접두사를 서너 개쯤 덧붙일까 하다가 뺐다.

이 서큐버스가 오바이트 하면서 턱에 부침개 반죽 좀 묻히기도 했고 술에 꼴아 눈도 풀린 채로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 두 번 다 외모가 어딜 가진 않았었다. 객관적인 감상이다.

그리고 세 번째인 지금이 그 두 번보다 배는 더 낫다. 재차 말해줬다.

“예쁘시다고요. 객관적으로. 그러니까 긴장 말고 좀 웃어요.”

“…에이, 농담도 참….”

“전 얼굴 갖고 농담 안 합니다. 자세 잡으시고, 치즈.”

“…진짜루요?”

“아니 글쎄, 웃으시라니까요?”

“치, 치즈.”

카메라 초점을 맞춘 채로 기다리자, 한참을 쑥스러워하던 서큐버스가 엉거주춤 자세를 잡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지 얼굴이 벌게진 채였지만, 어플 제작자가 저런 것까지 감산 요소로 집어넣진 않았을 터다.

찰칵.

사진을 찍고 상태를 확인해 보니, 증명사진스럽게 찍히긴 했어도 제법 잘 나왔다. 스마트폰 배경 사진으로 해놓으면 ‘이거 애니 프사 아니냐?’ 하며 놀림받을 것 같아.

건네주자, 서큐버스가 내게 물어왔다.

“저, 사장님.”

“왜요.”

“사장님께서 보시기엔 제가, 그… 진짜로 예쁜가요?”

딴 세상 인간인 내 눈엔 그런데, 객관적으로도 예쁜 건가 묻는다면 확신은 없다. 서큐버스 사회에서는 이 서큐버스의 외모가 평균일 수도 있는 거잖아.

“전 얼굴 갖고 거짓말 안 한다니까요, 손님.”

“그… 네. 믿을게요.”

“그렇다고 너무 제 말만 믿지 마시고. 결과 한 번 보면 더 정확해지겠죠, 뭐.”

세 번 확답을 해줬음에도 여전히 자신 없다는 표정이었으나, 내 얼굴을 힐끗 바라보고는 느릿느릿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자, 결과는?

5점 만점에 4.9점.

“어… 이거 노래방 점수 같은 건가?”

“노래방 점수고 자시고, 왜 느닷없이 기만질이에요?”

편의점 단골 중 하나가 알고 보니 도내 최상위 미소녀였댄다. 참.

반면 내 기분이 썩 좋진 않았는데, 내가 예전에 비슷한 어플에서 2.1점을 받은 놈이었기 때문이다. 지구 작가 이놈 이거, 하차 못 한다고 고구마 멕이는 것 좀 보소?

더해서 이 서큐버스가 자기 외모에 자신이 없다는 것도 잘 알겠고. 연애를 못 해봐서 그런 건가.

그래도 이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든 연애를 시작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겠는가. 연애할 대상이 옆에서 예쁘다, 예쁘다― 하면 그땐 싫어도 자신감이 생기겠지.

“기만이라뇨….”

“얘기하면 더 우울해지니 진행이나 마저 합시다. 다음엔 뭐 하래요?”

“으음… 우선, 태그를 고르라고 하네요.”

서큐버스가 내밀어온 화면을 같이 바라보니, 수십 개는 되는 태그가 주룩 늘어서 있었다.

이게 이세계 어플이라 그런지 내가 생각한 것과는 태그들 내용도 좀 요상했는데, #뿔, #악마 같은 외모, #키 2m 이상… 2m는 무슨, 농구팀 유망주를 왜 여기서 찾는 거야.

“이거 정상적인 어플 맞아요?”

“선배는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이거 한번 눌러보세요. 이거 자동 검색 버튼 같은데.”

태그 검색 버튼 우측에 뭔가가 따로 있다. 고개를 끄덕인 서큐버스가 버튼을 누르자 사진 한 장이 떠올랐는데, 보고 나서는 무척 어이가 없어졌다.

“아, 떴어요. 사장님, 이 인큐버스분은 어떻게 보이세요?”

“…….”

“사장님?”

“어….”

인큐버스? 이 금발 태닝 양아치 놈이 인큐버스란 말인가?

이놈 생긴 게 이러했다. 찢어진 눈꼬리, 누가 봐도 염색한 듯한 금발에 윤기가 흐르다 못해 윤활유를 들이부었나 싶은 구릿빛 피부, 마사지 샵 VIP 고객이라도 되냐? 응?

더해서 입 쪽에 덧니가 뾰족 튀어나온 게 생태계 파괴종이라 부를 수 있을 수준의 외모였는데, 보고도 믿기질 않아서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좀 더 떠오르는 게 있었다.

구도가 해변에서 내친김에 찍은 듯한 셀카. 가려진 부분의 팔이 굽어있다. 다른 누군가랑 팔짱을 낀 채로 찍은 사진이란 소리다.

“사장님?”

“그, 이 인큐버스가 어떻냐고요? 손님?”

“네.”

어떻냐면, 내가 아는 지인이 이렇게 생긴 놈이랑 연애한다 하면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틀어막았을 것 같다.

“어… 왜요?”

인터넷에서는 그러던데? 허나 이게 적절한 대답은 아닐 것 같아, 한참 동안 고민하다 겨우 그럴싸한 대답을 떠올려냈다.

“손님, 제가, 그… 어. 관상학에 좀 소양이 있는데 말입니다.”

“와, 정말요?”

“조금은요. 그리고 관상학적으로 이 금태… 인큐버스를 보면, 손님과 어울릴 관상은 절대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이랑 한 오만 광년은 떨어진 관상이에요.”

허나 서큐버스는 영 긴가민가하다는 눈치였다.

“그래도 외모만으로 평가하는 건 좀….”

그렇게 따지면 나도 2.1점짜리 인간은 아니다.

허나 윤리주의적으로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 화면을 좀 더 밑으로 내려보라고 했다. 이놈이 의외로 순애파일 수도 있는 거잖아. 비록 금발에 태닝을 하긴 했지만….

서큐버스가 화면을 약간 밑으로 내리자, 이번엔 이놈의 이름이 나왔다.

[ 엔 티아르 ]

“아니, 사람 이름이 어떻게….”

“사람이요?”

“아뇨. 사람이 아니라 그… 씨, 하여튼 제 말 들으십쇼. 제가 사주팔자에도 소양이 좀 있는데, 이름점 측면으로 봐도 이 양반은 진짜 아니에요. 농담 아니고.”

“그런가요? 저는 이름이 멋져서 괜찮은 것 같은데.”

“이게요?”

“네. 고대어로 ‘순수한 사랑’이라는 뜻이거든요. 저 제2외국어로 고대어 전공했었어요.”

고대어인지 연대어인지는 모르겠고 하여튼 이놈은 안 된다니까?

답답한 마음에 화면을 다시 바라보니, 슬라이드가 좀 더 밑으로 내려가 소개문이 나타난 상태였다.

[ 우효~~옷!! 이런 어플이 있었다니ww 오레사마 쵸―럭키★ 어떤 이종족이든 쵸♡꿀렁꿀렁해줄 테니, 맡겨만 주라구ww ]

스마트폰을 뺏어 화면을 조작한 뒤, 돌려줬다.

“앗. 아직 다 못 봤는데. 소개문에 뭐라고 적혀있었어요?”

“보증 대신 서주는 이종족이 취향이랍니다.”

“엇, 그건 좀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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