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직업상담 편돌이 (2)
바깥 생활을 며칠 하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단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이에 관한 속담을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바로 대답하자, 축 처졌던 꼬리를 곧바로 곧추세우고는 기쁜 듯이 흔들어 댔다.
“사장님의 관심법은 참 대단하구려. 어찌 그리 본견의 생각을 잘 읽는 것이오?”
“난 그것보다 니가 그런 말을 아는 게 더 신기하다. 너 글 읽을 줄 알아?”
“그건 아니고… 까막눈이긴 하오만, 식객 시절에 여주인이 주인한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서 말이오.”
바가지 긁는 걸 봤나 보다. 아무튼, 하며 흠흠 헛기침을 한 멍멍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들 일을 하고 다니는 것 같으니, 본견도 구직활동을 해야 하겠다 싶어서.”
“그 일이 싫어서 밖으로 뛰쳐나온 거 아니었냐? 집 지키는 거.”
“그건 일이 아니라 속박이었소, 사장님. 행여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한들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오. 진심이오.”
그야 땅콩 따일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나도 이해한다.
“헌데 본견이 아는 누군가라 해봐야 사장님 한 분밖에 없어서 말이오. 그래서….”
사정은 딱했으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뿐이었다.
“우린 민짜는 안 받아. 너 두 살이잖냐.”
“…으음. 애석하구려.”
사람 나이로 환산해도 14살이라 법에 걸려서 안 되고, 법을 우회해서 이 녀석한테 유니폼을 입힌다 한들 이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이 진상들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다 떠나서, 아무리 그래도 포메라니안은 좀 아니지 않냐?
점장도 알바생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2살 먹은 포메라니안을 채용할 것 같지는 않다. 거기서 다시 한번 시무룩해하는 걸 보느니 아예 말을 안 꺼내는 게 낫지.
“법이 그렇게 되어있어서 우린 안 돼, 인마. 미안하다.”
그래도 직설적으로 말하면 상처받을 것 같아서 돌려 말했는데, 이해한 눈치이기는 했어도 축 늘어진 꼬리를 세우질 못했다. 하도 안쓰러워서 폐기 바구니에서 삼각김밥 몇 개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일단 밥이나 좀 먹고 얘기하자.”
카운터 위에 굴러다니는 전표 용지 몇 장을 뜯어 바닥에 펼치고 삼각김밥을 올려놨다. 바라보던 멍멍이의 입에서 침이 주륵 흘러나왔다.
“정말… 먹어도 되겠소…?”
“마늘 안 들어가 있어서 괜찮아. 근데 좀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물론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게 눈 감추듯 허겁지겁 삼각김밥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생수 하나를 꺼내 가져와 계산하고 컵에 따라서 옆에다 뒀다.
이후, 잠깐 생각을 해봤다. 두 살짜리 멍멍이가 할 만한 일이 대체 뭐가 있나….
“…후우, 잘 먹었소. 이 은혜는 본견이 꼬리털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니 꼬리털은 필요 없고, 네가 일할 만한 곳이 몇 군데 떠오르긴 하는데 말이다.”
“오. 어떤 곳이오?”
당장 떠오르는 걸로, 애견 카페가 있다.
이 경우, 이 멍멍이는 찾아오는 손님들의 보호 본능이나 모성애를 자극하고, 그 대가로 고용주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재수 좋으면 개껌도 몇 개 받을 수 있을 거고.
“그건… 마음에 드는구려.”
근데 씨, 솔직히 이게 말이 취직이지 그냥 애견 카페 가서 나 좀 살려달라고 하는 거다. 이 녀석이 귀엽긴 하니, 굳이 말하는 재주까지 안 보이더라도 어지간한 애견 카페면 다 받아줄 거 아냐?
당장은 이 녀석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듣자 하니 참 괜찮은 직장 같소. 숙식이 기본제공이라는 점이 특히. 헌데….”
“헌데 뭐.”
“그곳, 출퇴근은 가능하오?”
“글쎄다. 가끔 산책은 시켜주겠지만… 보통은 카페 안에서 계속 지내게 되겠지.”
내 대답에, 멍멍이는 느릿느릿 꼬리를 흔들다 물었다.
“그렇다면… 전에 살던 삶과 크게 다를 게 없겠구려.”
“그게 싫으면 다른 것도 있다. 펫 푸드 테이스터라는 건데.”
“펫 푸… 무어라고 하셨소?”
“사료 먹고 뭔 맛인지 평가해 주는 일이라고.”
반려동물 기르는 곳이 하도 많아지다 보니 그런 직업까지 생겼다고들 하더라.
다만 이것도 문제가 있는 게, 이 녀석이 말을 해야 한다. 이종족들 앞에서.
“말을 하라고 하면 할 수는 있소. 하오만….”
“갇혀 지내는 게 싫은 거잖냐.”
“…그렇소.”
그러면 이것도 안 된다. 멍멍이의 눈망울에 물기가 어리고, 그대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이거 참, 직장 구하는 것도 힘든 일이구려….”
이 멍멍이는 이세계에서도 유난히 특별한 놈이다. 말을 하니까.
그 특별함이 밝혀지는 순간, 다시는 자유롭게 지낼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집에서 지내 온 2년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아니면 평생을 어딘가에 갇혀서 지내게 되지 않을까.
그게 싫어 개 목줄을 풀고 맨몸으로 뛰쳐나온 녀석이니 남들 앞에서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는 했다.
당장 나도 체질 탓에 고민 중이기도 하고… 아니지. 나는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이놈은 포메라니안이니 이 녀석 처지가 훨씬 더 고달픈 건가.
“…본견이, 어젯밤엔 공원에 있었는데 말이오.”
찝찝한 기분에 작게 고개만 끄덕였더니, 멍멍이가 마저 말을 이었다.
“먹을 걸 찾기 위해서였소. 옛 주인이 옛날에 먹다 남은 햄버거를 공원 쓰레기통에 버렸던 게 떠올랐거든. 그래서 쓰레기통을 뒤져보려 했는데….”
“성공했냐?”
“실패했소. 분명 햄버거 냄새가 나긴 했지만, 키가 닿지 않았거든. 그래서 포기했고.”
“아이고.”
“수도꼭지도 마찬가지로 키가 닿지 않아서 포기했소. 그런 이유로 그저 정처 없이 공원을 빙빙 돌기만 했다오. 먹을 게 있나 싶어서. 그렇게 돌고, 돌고, 돌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소이다.”
말하며 마찬가지로 자기 몸 역시 빙빙 돌리다 우뚝 멈춰서고는 말했다.
“지금부터는, 본견이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산책을 할 수 있게 됐단 걸 말이오.”
“그래서. 좋았냐?”
“무척 행복했다오. 본견은 밤거리를 걷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거든.”
꼬리를 흔들며 대답해 온다.
“본견이 아직 나이가 어려 잘은 모르겠소만… 배고픔도, 목마름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오. 그러니, 분명 행복해서 그랬던 게 아니겠소이까?”
“그래, 너 행복했던 거 맞어.”
“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참 다행이오. 아무튼, 어제 하루는 그렇게 보냈소이다. 본견이 자유의 몸이라는 걸 실감하고, 동시에 앞으로는 혼자의 힘으로, 스스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도 실감했고….”
“야.”
중간에 말을 끊자, 멍멍이는 어리둥절하다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두 가지 있다.”
할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 꺼내는 게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아무렴 어때.
“하나는 네 처지를 이해해 줄 누군가를 만나는 거. 마음 같아선 나 사는 집에 너 데려다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데, 내가 사는 집이 좀 멀어. 그래서 힘들 것 같고….”
“사장님께는 충분히 신세를 졌으니 너무 심려치 않아 주었으면 하오.”
“그래. 다른 하나는… 내 지인한테 네 얘기 했다가 들은 건데, 네가 영물일지도 모른댄다.”
이 말을 하고 나니, 멍멍이의 고개가 옆으로 홱 기울었다.
“영물? 마실 것 말이외까? 본견이?”
“아니, 니가 개소주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이놈은 개다. 그러니 자유롭게 살더라도, 개들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
문제는 이 멍멍이의 종이 포메라니안이라는 것이다. 최소한 외견은 그렇다. 뒷골목 들개들을 상대로 자유를 부르짖기엔 한없이 연약한 놈이긴 하나, 세상이 마냥 불공평하지만은 않은지 이놈에게 선물 하나를 줬다. 영물이라는 특수성.
점장이 전에 말했었다. 영물은 말하는 재주가 있거나 말을 알아듣는 지능 외에도 특별한 힘이 있을 수 있다고.
“그 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각하고 나면 들개 놈들 상대로 뭐라도 해볼 수 있지 않겠냐.”
그때 예시로 들었던 게 고양이가 컵 띄우면서 놀았다는 거였으니, 이 멍멍이도 노력하면 사이코키네시스까지는 몰라도 이판사판 태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짧게 설명을 마쳤으나, 당사자인 멍멍이는 영 믿기가 힘들다는 눈치였다.
“본견에게 특별한 힘 같은 게 있다니, 생각해 본 적도 없소이다.”
“그럼 지금 말은 어떻게 하고 있는데, 인마.”
“그…것도 그렇구려….”
대답은 이렇게 하면서도 납득을 못 하겠는지 낑낑거리다,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역으로 내게 물어온다.
“사장님. 혹시 사장님께서 특별한 힘이 있다면, 그걸 어떻게 쓰겠소이까?”
순간 정곡을 찔린 듯한 느낌이 들어, 잠깐 대답을 못 했다.
“사장님?”
“…어, 방법을 얘기하는 거냐, 용도를 얘기하는 거냐?”
“어느 쪽이든 상관없소이다. 이 질문이 생뚱맞은 소리라는 건 알지만….”
완전히 생뚱맞은 소리는 아니지. 실제로 특별한 힘이 있긴 하니 말이다. 신경 써서 대답해야 할 질문 같아, 좀 오래 생각하다 대답해 줬다.
“방법은… 내 생각엔, 의지에 달린 게 아닌가 싶다.”
“의지 말이오?”
“어. 특별한 힘이든 생각해 본 적 없는 힘이든, 니가 쓰려고 해야 쓸 수 있는 거 아니겠냐. 반대로 억누르려 하면 억누를 수 있을 거고.”
적어도 난 그랬다. 집에 가고 싶었기에 체질을 억눌러 집에 갈 수 있었고, 도둑놈을 잡고 싶었기에 잡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용도는….
“…그건 나도 모르겠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넌 힘이 있으면 어쩌고 싶은데?”
“음… 본견은….”
말하다 말고는 느닷없이 몸을 웅크려 낑낑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한참 동안 그러다가, 지쳐버린 듯 바닥에 축 늘어져 버렸다.
“방금 뭐 한 거냐?”
“햄버거를 소환해 보려 했소이다.”
어젯밤에 햄버거 못 먹은 게 한이 맺혔나 보다.
“폐기 남은 건 따로 없는데. 하나 사 줘?”
“아니오, 이미 은혜는 산더미만큼 받았소. 말벗을 해주고, 이렇게 조언도 해주지 않았소이까. 허나 본견에게 햄버거를 소환하는 재주는 없는 듯하구려.”
엎드린 채로 기운 없이 중얼거리던 멍멍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른 누군가의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소.”
“니 밥그릇이나 잘 챙겨, 인마.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무슨.”
“물론 그렇게 할 것이오. 본견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허나.”
몸을 일으키고는, 날 뚫어져라 올려다보며 꼬리를 살랑인다.
“만약 될 수만 있다면, 본견은… 사장님처럼 되고 싶구려.”
“그건 또 뭔 소리냐?”
“일체의 면식도 없는 본견에게 조언을 해주고, 깨달음을 얻도록 도와주셨잖소? 생각해 보시구려. 사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쯤 본견은… 본견은….”
돈까스집에 다녀왔겠지. 생각해 보니 내가 아주 큰 일을 했구만?
“그러니 나도 사장님처럼 누군가의 힘이 되고 싶소. 그러지 않는다면 남은 평생을 결코 떳떳하게 지낼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드오.”
본받을 대상을 잘못 정한 게 아니냐는 말이 마려웠지만, 불이 붙은 의욕을 내가 굳이 꺼트릴 필요도 없지. 쭈그려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뭐… 아무튼 잘해 봐라. 가능하면 다치지 말고….”
“노력해 보겠소. 더 있으면 장사에 방해가 될 것 같으니, 이만 가보겠소이다….”
“그래… 어….”
“사장님?”
뭐냐, 이건 또?
“무슨 일 있소?”
“…아이, 아니다. 힘들면 또 나중에 또 들러라.”
어디서 잘 건지, 앞으로 대체 어떻게 할 건지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나가겠다 하니 문은 열어줬다. 이틀 굶으면서도 잘 지냈으니 잘 곳 정도는 정해둔 곳이 따로 있겠지.
이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멍멍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을 때 봤던 광경을 되새겨 봤다.
귀의 상처가 없어져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되나 싶기는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