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52화 (53/201)

52화. 실기 예행 편돌이 (4)

털이 자라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와 동시에, 팔뚝 전체가 거대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풀어 오른 근육이 돋아있던 힘줄마저 덮어버렸고, 잘 다듬어져 있던 손톱은 짐승의 그것으로 자라났으며….

변화를 멈춘 팔은, 팔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거대했다. 빳빳한 은백색 털로 뒤덮인 팔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이다, 내 얼굴을 보고는 아차 싶으셨는지 바로 덧붙이셨다.

“아.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카운터에 샷건이 있었으면 바로 꺼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숨 좀 고르고….

“그… 괜찮은 거예요? 팔?”

성장통이 극심하셨을 것 같아 여쭤봤으나, 어르신은 슬며시 미소만 짓고 마실 뿐이었다.

“위험하진 않습니다. 제가 휘두르지만 않는다면요.”

이 대답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괜찮은 줄 알기로 했다. 그러니 이건 넘기고, 일단 이 어르신께서 주문 같은 걸 외지도 않으셨으니….

“지금 보여주신 이게 마법은 아닌 거죠?”

“그렇습니다. 제 체질이고, 제 의지대로 제어가 가능하지요.”

“다른 늑대인간분들도 다 그게 가능하신 거고?”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팔만 이렇게 변화시키는 게 대부분의 늑대인간은 불가능한 일이라 한다. 그러니까, ‘증상’이 심한 몇몇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나.

“요즘이야 기술이 발달한 덕에 증상의 경중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옛날에는 그런 게 없었기에, 저 같은 몇몇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차오르는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배로 노력해야 했지요. 이건 그 노력의 부산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노력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얘기 같은데 말이다. 나도 할 수 있는 부류의 노력이면 해보는 게 좋겠다 싶어 여쭤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신 겁니까?”

“음. 옛날에 했던 것 중에는… 아. 우선, 발목에 족쇄를 채웁니다.”

“족쇄요?”

“그렇습니다. 가능한 한 단단한 걸로. 그 후엔, 딱 팔이 닿을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한 위치에 갓 도축한 생고기를 두고 버티는 겁니다. 끓어오르는 본능보다, 채워진 족쇄가 살갗을 파고드는 고통이 더 커질 때까지.”

“어….”

괜히 물어봤네.

“대체로 이런 식이었습니다만, 이건 사장님께 들려드릴 이야기는 아닌 듯하고….”

어르신도 너털웃음을 지으시고는, 짐승의 것처럼 변한 손을 몇 번 쥐었다 피셨다. 그러자, 자라났던 팔과 발톱이 서서히 줄어들어 원래의 팔로 돌아왔다.

이후, 익숙한 손놀림으로 손목시계를 채우고는 말을 이으셨다.

“사장님께서는 그 체질로,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어… 자격증 따는 거요?”

당장은 그렇다. 대답하자, 어르신은 쓴웃음을 지으시고는 마저 덧붙이셨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 말입니다.”

“예?”

의미를 잘 모르겠다. 다 떠나서….

“그게 중요한 겁니까?”

“제 경우엔 그렇더군요. 가령.”

어르신께서 한창 젊었던 시절. 그러니까, 대전쟁 시절에는 체질을 제어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만월을 맞이한 늑대인간의 전투력이 중대 1개 수준의 전투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란다.

“어르신, 옛날 전쟁 때 현역이셨던 거예요?”

“특수 병과였지요. 허나, 그때 얘기를 하려면 날을 꼬박 새워야 할 듯합니다. 하여.”

어쨌든 그 전쟁은 엘프들의 패배로 끝났고, 법과 질서가 생겨나며 늑대인간들은 본능을 해소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근데, 전쟁도 끝난 마당에 그딴 게 있을 리가 있나.

찢고 뜯을 상대가 없었기에, 본능을 해소하는 대신 억누르는 방법을 찾아야 했단다. 어르신이 스스로의 체질을 제어하려 시도한 것도 이 시기.

“처음에는 저도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다짐으로 임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뭐 이런. 허나….”

“네.”

“해내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제어가 어려워지더군요. 굳이 비유하자면, 강박관념에 스스로가 오히려 망가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체질을 억누르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대다수의 늑대인간들이 이 시절에 엄청나게 고통받았다고. 하긴, 안 하던 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래도 어르신께선 방법을 찾으신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방법을 찾았다기보다는… 계기가 생겼었습니다.”

“계기요?”

누군가를 찢고 뜯으면 큰일 날 세상이 됐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된다. 계기는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싶었으나….

“아이가 태어났거든요.”

잠시 후 덧붙이셨다.

“딸이었죠.”

듣고 나서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하.”

“딸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다른 것들보다도 이 생각이 가장 크게 들더랍니다. 언제 어느 때든 항상 이 아이를 품에 안고 싶다고. 짐승의 것이 아닌, 온전한 팔로 말입니다.”

“그렇게 성공하신 거예요?”

“그렇습니다. 첫 만월 때에는 상반신뿐이었지만요.”

이후 어르신의 체질은 딸 아이가 100일을 맞고, 첫걸음마를 떼고, 자신을 바라보며 ‘아빠’라고 부르게 되는 과정에 맞춰 나날이 호전되었고….

제어에 완전히 성공하게 된 시기는 둘째가 태어난 달의 만월. 아들이었다나. 여기까지 말한 어르신은 다소 감상에 젖은 눈빛이셨으나, 곧장 표정을 거두고는 말을 맺으셨다.

“제겐 그게 계기였습니다. 하고 싶었고, 그래서 해낼 수 있었지요.”

“예….”

“그러니 사장님께서도 계기가 생기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신다면 해내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꺼내 봤던 이야기였습니다마는… 다소 길었던 것 같아 송구스럽군요.”

“뭐 송구하실 것까지야.”

체감상 길지도 않았고, 네 노오력이 부족한 거라는 근성론 따위보다 몇십 배는 더 와닿았다. 경험에 입각한 조언이지 않은가. 문제는 이 조언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인데….

“으, 머리야….”

생각하던 와중, 등 뒤에서 맥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엎드려 있던 화녀가 목덜미를 부여잡거나 고개를 흔드는 등 하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고 있는 채였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

“뭔 헛소리를….”

몽롱한 표정으로 중얼대다, 옆자리의 설녀를 바라보고는 곧바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팔을 위로 치켜들자, 뻗은 팔에 열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불꽃에 조명등 다 깨지게 생겼다. 망설일 상황이 아니었던지라, 반사적으로 팔을 부여잡았다.

“아, 씨! 뭔 눈 뜨자마자 싸워요?!”

“참견 마! 이 도둑고양이년 머리끄댕이를 지금 다….”

붙잡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것도 보였다. 불길을 작정하고 키워보려는 의도였던 듯하나, 불길은커녕 아지랑이조차 피어나지 않았다.

“뭐야, 왜 안 나와?”

내가 붙잡고 있어서 이런 건가 보다. 옳다구나 하며 붙잡은 팔에 힘을 주자, 당황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는 바락바락 소리를 쳐댔다.

“너, 네 짓이야? 나한테 무슨 짓 한 거야?!”

“화재 진화 중이고요, 싸우려면 서로 싸대기를 때리든가 하십쇼. 진짜 콩밥 먹고 싶어서 이래요?”

“참견 말라니까?! 이거 놔, 이익…!”

떨쳐내려는 듯 몸부림을 쳤으나, 완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이대로 메치는 게 맞나 고민하고 있자니, 뒤늦게 정신을 처린 설녀가 실랑이 중인 우리 둘을 올려다보았다.

“너.”

풀려있던 표정이 얼굴이 금세 노기로 가득 찼다. 야, 너두?

“너…!”

의자를 덜컹대며 벌떡 일어나서는, 머리맡에 얼음 조각 여러 개를 순식간에 생성해 낸다. 이어서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만들어 낸 얼음 조각들을 이쪽으로 겨누려 했….

“진정하시지요.”

반사적으로 어르신이 앉아계시던 곳을 바라봤으나, 잔상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어느새 설녀의 등 뒤로 다가가신 어르신께서 목덜미를 손날로 툭 건드리셨고, 설녀는 곧바로 축 늘어져 버렸다.

그 설녀를 옆구리에 끌어안은 채로 다가오셔서는…….

“그쪽도.”

화녀의 목을 향해 손을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목젖 부근을 지그시 누르셨다. 붙잡고 있던 팔에 힘이 빠져 놓아버렸더니, 그대로 털썩 무릎을 꿇고는 고개마저 푹 숙여버렸다.

“흐극.”

아예 기절해 버린 설녀와는 달리 의식만은 남아있는 듯했다. 그 앞에 어르신께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셔서는,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젊음은 축복입니다, 아가씨. 허나….”

“무슨….”

“타 이종족을 상처입히는 데에 그 축복을 낭비하시겠다면, 저 역시 좀 더 거친 방법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표정은 너그러웠으나, 눈매만은 차마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날카로웠다. 히끅 숨을 들이쉰 화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눈매를 풀고 날 올려다보셨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다고 하셨지요?”

“네.”

세상엔 모르는 게 훨씬 나은 일이 많고, 치정 싸움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손가락으로 화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번엔 몇 분 갈까요?”

“몸을 가누는 얘기라면, 30분 후면 온전히 걸어 다닐 수 있을 겁니다.”

30분을 더 내버려 둬야 한다는 얘긴데, 그것도 싫다. 사정 봐주는 것도 정도껏이지. 화녀 옆에 쭈그려 앉아, 슬쩍 말을 건네봤다.

“걷기 힘들어 뵈시는데, 대리운전 불러드려요?”

지도 맥이 빠졌는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라. 이게 창조경제지. 어르신도 바로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녀 역시 옆구리에 끌어안아 드셨다.

“슬슬 가봐야겠군요.”

“그러시고, 다음부턴 자주 오세요. 담뱃갑 그림 멀쩡한 것 좀 남겨 둘게요.”

“허어, 굳이 그러실 것까진….”

“사양 마시고. 저도 조언값은 해야죠.”

마음 같아선 피로회복제라도 한 박스 사드리고 싶은데, 안 받으실 것 같다. 여하튼, 어르신께선 이렇게 나가셨고….

다시 혼자 남았다. 바로 테이블에 뒀던 수박 젤리 통을 갖고 계산대로 돌아와, 들었던 조언을 속으로 되새겨 봤다. 명확한 목적. 계기. 사소한 계기든, 거창한 계기든 좋다….

계기라면 있다. 잘 먹고 잘사는 거. 평생 그래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걸 못 하게 될까 봐 이러고 있다. 이걸 못 하면 실기를 조질 거고, 실기를 조지면 자격증을 못 따고… 자격증을 못 따면 여기 붙어있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질 것 아닌가.

그게 다다. 성공이나 개인의 영달 따위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게 뭔지도 몰라, 나는. 그러니까 이제 적당히 하고 말 좀 들어 처먹어 주면 안 되냐? 내 몸뚱어리야?

생각하며 젤리를 굴려봤으나, 여전히 잘 굴러가기만 했다. 하긴, 성공이나 영달은커녕, 잘 먹고 잘사는 게 뭔지도 모르는데.

* * *

뭘 하고 싶어 해야 하며 뭘 계기로 삼아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더란다.

예를 들면 병원에 ‘나 반마법 전문갑니다―’ 하며 이력서를 낸다든지, 누나가 하는 헌터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든지. 뭔 일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돈은 잘 벌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잘 안됐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하며 살 만큼 돈이 궁했으면 진즉에 새우잡이 배를 타러 갔지,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고.

도중에는 때려치우고 다른 방법을 찾아볼까, 생각도 해봤으나 그런다고 마땅한 방법이 떠오를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니 한 우물만 팔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물은 나오지 않았고….

어영부영 아침 9시가 됐다. 5월 7일 토요일.

완연한 봄 날씨였고, 구름 한 점 없어 햇살도 푸근하다. 주말이라 직장인이 몰려오지도 않아 몸은 편했으나, 마음은 전혀 그렇질 않았다. 진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점장이 오기까지 딱 1시간 남았다. 실기까지는 9시간.

이 지경까지 오니, 이젠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보단 점장한테 꺼낼 변명거리만 자꾸 떠올랐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지끈거려서, 아예 계산대 위에 이마를 박은 채로 엎드렸다. 이대로 10분 쉬고 난 뒤면 뭐라도 떠오르겠지….

“아조씨.”

귀에 익은,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익숙한 호박색 눈동자가 빼꼼 날 바라보고 있는 채였다. 꼬마가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오랜만이애여, 아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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