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실기 보는 편돌이 (3)
간단히 시험 내용을 설명했다.
시험시간은 3시간이고, 3시간 이내에 태블릿PC 화면의 의뢰 60개 중 3개를 골라서 마쳐야 한다. 의뢰를 수주하기 전에 알 수 있는 건 가게 이름뿐, 시험 범위는 학원지구 상가 지역 전체.
이걸 하는 과정에서 하면 안 되는 짓이 좀 많은데, 말하는 게 어째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다는 투라 아예 안 들키게 수작을 부려봤다. 이 근방 지리를 쥐뿔 아는 게 없으니 어쩔 수가 없겠더라.
말을 맺고 반응을 기다리니, 손가락 사이에 빨대를 끼워 돌리던 누나가 손을 멈췄다. 날 바라보는 게 어이없다는 얼굴 반, 감탄하는 얼굴 반이었다.
“너는 그 와중에 그런 잔머리가 굴러가냐?”
“잔머리고 자시고, 이거 말곤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해?”
스마트폰이고 지갑이고 죄다 가져가 버려서 길 찾을 방법이 아예 없었으니까. 이럴 거면 지도라도 좀 쥐여주든가….
“…하긴, 이 동네가 길 잃기 딱 좋은 곳이긴 하지.”
“여튼 이런 상황인데, 나 좀 도와줄 수 있음?”
“도와주는 거야 상관없지. 어차피 할 짓도 없고.”
“누나가 친구가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열이 뻗쳤는지 탁자 밑으로 내 쪼인트를 걷어차 왔다. 비명 지를 뻔했다. 이어서 컵에 빨대를 툭 꽂고는, 탁자 위의 PC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거기 적힌 곳들 중에 혹시 아는 데 있어?”
뭐 하는 곳인지만 알아도 거를지, 말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누나가 곧바로 태블릿PC에 손가락을 대어, 목록을 하나하나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곳인지 확실히 아는 곳이… 네 군데네.”
“어디야?”
“6번이 장례식장, 17번이 헌터 지망생들 재수학원이고, 34번은 연장 취급하는 곳. 56번은… 아마 건설 현장일 거야. 학원 안에서 신설한다는 기숙사 명칭이 이거였거든.”
듣자마자 멍해졌다. 장례식장? 장례식장에서 마법 지울 일이 대체 뭐가 있는 거냐?
“근데 내가 네 입장이라면, 난 이것들 안 해.”
“왜?”
“장례식장부터 따져보면, 여기에서 반마법 전문가 부를 이유가 대개 하나뿐이라서 그래. 장례 도중에 시체에서 잔존마력 발생해서, 그거 지워달라고 부탁하는 거.”
“어….”
“그걸 하려면 관짝을 열고 안의 시체를 만지게 될 텐데, 너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장례식장은 안 되고, 재수학원 경우에는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며, 설비의 안전검사를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이게 못해도 1시간 반은 걸린단다.
“실기 과정에서 맡게 된 의뢰니, 거기서 1시간 반씩 붙잡고 있지는 않겠지만…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그럼 거기도 거른다 치고, 연장 취급한다는 곳은 뭐야. 공구점이야?”
“공구? 어… 아. 미안, 입버릇이라. 연장이 아니라, 헌터들 장비 취급하고 점검해 주는 곳.”
헌터들은 자기 칼이나 다른 장비들을 연장이라고 부르나 보다.
여튼 그 장비 취급한다는 곳에 갈 경우엔, 헌터들 쓰는 장비의 구조를 이해하거나 관련 전문지식이 있어야만 업무가 가능할 거란다. 단순히 장비 안의 마력이나 마법 없애 달라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드물다고.
“마지막으로 건설 현장은, 이거 의뢰한 이종족이 못해도 현장감독쯤 될 거 아냐.”
“…뭐, 일반 인부가 현장에 문제 생겼다고 직접 의뢰를 하진 않을 테니….”
“그치? 그러니 현장감독 직접 만나야 될 건데, 현장감독도 바쁠 테니 30분은 지나서야 나올 거고. 만나는 걸로 끝나는 것도 아냐. 장비도 챙겨 입어야지, 안전수칙 들어야 하지….”
건설 쪽 일해본 이종족 아니면 중간에 얼타느라 시간 훨씬 더 쓸 거라는데, 듣다 보니 아까 오함마 들고 왔던 드워프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양반 자기 오함마는 잘 찾아갔으려나 모르겠네.
“떠오르는 대로 말하긴 했는데… 말하고 보니 부정적인 얘기만 한 것 같아서 좀 그렇네.”
“그런 얘기 들으려고 부탁한 건데, 뭐.”
제비뽑기에서 꽝제비 4개 미리 알았으니 이득이지. 이제 남은 제비 수십 개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인데….
“정 모르겠으면, 애매한 곳 얘기라도 해줘?”
“애매한 곳?”
“21번. 여기서 5분 거리라 가깝거든. 이찬 네가 멘탈에 금 갈 일도 없을 곳이고… 거기 업주가 마음씨가 좋대. 길드에서 잠깐 들은 얘기긴 하지만.”
가깝다. 말인즉슨, 가는 데에 시간 낭비를 덜 한다는 소리다.
멘탈에 금 갈 일 없다, 이건 민간인인 내가 크게 충격받을 일 없을 거란 얘기 같고. 업주가 마음씨가 좋다, 이건 내가 만나본 게 아니니 애매하긴 하지만….
일단 누른 후, 누나에게 말했다.
“21번 일단 골랐음.”
“아직 얘기도 안 끝났는데?”
“도중에 누가 가져가면 얘기해 봐야 의미 없잖아.”
“것도 그렇긴 하네.”
이 상황에서 확실한 거 따지면 욕심이다. 나중에 아무것도 모른 채로 남은 것들 사이에서 씨름하느니, 애매한 거라도 낫다 싶으면 고르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다.
전환된 화면을 살펴보니, 제목만 떠 있던 화면에서 좀 더 세부적인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이걸 읽는 도중, 한 번 넋이 나갈 뻔했다.
“누나.”
“왜?”
“여기 납골당이야?”
의뢰 내용이 대충 이러했기 때문이다. 뼈들 중 잘못된 뼈가 있는데, 그걸 정화해 달라.
누나는 컵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마저 빨대로 빨아 마시고는 말을 맺었다.
“뭐… 시체보단 낫잖아.”
* * *
찾아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누나가 화면에 적힌 지번을 보고는, 어딘지 알겠으니 자기가 같이 가주겠다고 하더라고.
가면서는 이런 말이 떠오르더란다. 얘야, 인생이란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어?
나도 공감한다. 인생이 생각대로 안 되기 때문에 재밌다는 거. 근데 이건 너무 생각대로 안 되잖아….
내가 납골당 가서 뼛가루 담긴 단지 만지작거려야 할 운명인 걸 알았다면, 진즉에 시간 내서 굿판이라도 한번 벌였을 거다. 내 팔자가 대체 몇 바퀴가 더 꼬이려고 이러는 거야?
허나 도착한 직후엔 생각이 바뀌었다. 납골당이 내가 상상한 것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외관은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분위기가 좀… 밝았다. 지나치게.
“고조할아버님, 오늘은 맞는 뼈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렇죠?”
“그… 어어….”
“아이고 할아버님, 턱 빠지시겠어요.”
이게 뭔 대화인고 하니, 정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데 저 멀리서 중형 SUV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와서는 멈췄다. 그러더니 안에서 중년의 나이 든 붉은여우 코볼트와 해골바가지 하나가 내리더라.
땅에 발을 디딘 스켈레톤은 지팡이를 짚고, 붉은여우 코볼트가 뼈만 남은 스켈레톤 손을 잡아 부축하며 나긋나긋 납골당 안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내가 지금 본 게 혹시 이세계식 고려장인가?
이외에도 납골당 정문 밖으로 걸어 나오는 이종족들이 제법 됐는데, 어딜 어떻게 봐도 조상님에 대해 예의를 차리고 왔다는 기색이 아니었다. 어째 내가 아는 사전적인 의미의 납골당이랑은 건축 목적부터가 다른 것 같은….
“너 또 멍 때리고 있냐. 나 먼저 가?”
에이 씨, 모르겠다. 들어가 보면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지.
누나 뒤를 따라 정문으로 들어갔다. 내부의 로비 우측에는 사무실, 정면의 안내데스크에 안내원 하나. 상복에 가까운 검은 복장에 머리에는 검은 양 뿔 같은 게 달려있었으며, 눈가 쪽에 스모키 화장 같은 게 되어있었는데 좀 짙었다. 흑양 코볼트인가 보다.
안내데스크 뒤편에는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문이 가로로 십수 개가량 주욱 늘어서 있고. 저 문 안쪽 방에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을 듯한데, 문짝들 사이의 간격이 좀 멀었다. 항아리만 한 크기의 유골함 보관하기엔 방 크기가 좀 큰 거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왜 분위기가 밝은 건지도, 뭔 일을 하게 될지도 어렴풋이 감이 잡히더라.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다가가자, 안내원이 맥없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서 오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말하기에 앞서 목소리를 좀 가다듬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반마법 자격증 실기시험 의뢰 건으로 방문했습니다. 의뢰자분 직함이 이곳 관장님으로 되어있는 듯한데, 관장님께 연락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오?”
“잠시만요….”
와중에 누나 얼굴을 슬쩍 보니, 웃음 참기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안내양은 데스크 밑으로 허리를 숙이고는,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관장님… 손님 오셨는데요… 그거 맞는 것 같아요… 관 보러 오셨대요….”
외에도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고는 짧게 대답해 줬다.
“금방 나오신대요… 1분 정도… 로비에서 기다려 달라시네요….”
“감사합니다.”
근처에 대기용 좌석 늘어선 걸 봐뒀다. 그쪽으로 가서 앉아 있자니, 누나가 나란히 앉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고 그래? 사람 무안하게.”
“아니, 너 편의점에서 손님 받을 때랑 목소리가 너무 딴판이어서 그렇지. 말투도 마찬가지고.”
“뭐… 지금 유니폼 안 입고 있잖아.”
이게 편의점에서 바코드 찍는 수준의 일이다 싶었으면 나도 적당히 예의 갖추고 말았을 거다. 편돌이가 우렁찬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손님! 이러고 90도 인사하고 그러면 부담스러워할 거 아냐.
지금은 의뢰니 수주니 거창한 단어들이 오가고 있으니, 격식 차려야 할 일 같아서 이러는 거고. 옛날에 회사에서 영업 뛸 때도, 이쪽에서 격식을 차리면 상대측도 날 만만하게 못 보더라. 이렇게 구는 법도 그때 배웠다.
피식피식 웃던 누나는, 내 반응이 시원찮자 김이 샌 듯 표정을 풀었다. 그래도 희미한 웃음은 남아있었다.
“마냥 웃기기만 해서 웃은 건 아니고. 그냥… 네 의외의 일면을 좀 본 것 같아서 그래. 아까 잔머리 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의외의 일면은 뭔….”
“응시자님 계시는지요….”
얘기하는 도중, 노년 특유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서 편하게 대답하려 했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이종족도, 스켈레톤 같지도 않은 무언가였기 때문이다. 저게, 그러니까… 리치?
“아… 앉아 계셨군요.”
이쪽으로 다가온 리치는 복장이며 냄새며 특이할 건 없었으나, 얼굴 쪽 피부가 제 상태가 아니었다. 멀리서 봐도 보였던 뺨 쪽의 빈 공간이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뚜렷하게 보인다.
“관장입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을 할 때마다 작게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몸 괜찮으신 거 맞냐 여쭤보려다, 리치가 눈웃음을 짓고 있길래 관뒀다. 이 세상은 무슨, 적응이 될 만하면 한 번씩 점프스케어가 튀어나와….
“학원 측에서 얘기한 바로는…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움직이면서… 간략히 말씀드리면 될는지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업주가 마음씨는 좋다는 누나 말이 살짝 체감된다. 의뢰하는 입장에서 이런 거 배려하기 쉽지 않은데. 발걸음을 뗌과 동시에, 리치 관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수일 전… 양호한 상태의 유골들을 전달받았습니다….”
출처는 발굴된 유골들, 혹은 생전의 당사자와 유가족들의 동의하에 기증받은 유골 두 종류. 외의 경로로 유골을 입수할 경우엔 얄짤없이 감옥행이라고.
여기까지 들은 시점에서 확신이 생기더라. 이 납골당은 뼛가루 담긴 납골단지를 보관하기 때문에 납골당인 게 아니라, 뼈를 유골 그대로 보관하는 의미의 납골당이란 거.
여기서 취급하는 유골들은 유골 중에서도 특히나 내구성이 좋은 유골들이라고 했다. 듣는 도중, 근무 첫날에 시체 찾으러 왔던 스켈레톤들을 떠올려봤다. 그 스켈레톤들 보낸 시체안치소가 다이소 체인점이었으면, 여긴 본점쯤 되는 모양이지….
“헌데…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첫째는 방부처리가 잘 안된 유골이 하나 있다는 것. 정확히는, 방부처리에서 실수를 하고는 방부처리 끝냈다고 거짓말을 했던 놈들이 있단다.
“어떤 실수입니까.”
“방부제 투여에서… 실수가 있었다… 하더군요….”
커피잔에 설탕 넣다 설탕통째로 쏟아버리면 딱 이 느낌이 아닐까?
그 방부제통 쏟은 유골을 처음엔 모르고 받았는데, 그 유골을 보낸 놈들도 보내고 나서 ‘이거 잘못되면 진짜 콩밥 먹을 것 같은데?’ 싶어 이실직고했다고. 이 덕분에 문제가 있는 유골이 있다는 건 파악을 했는데,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해 일이 꼬여버렸다.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한 문 앞에 멈춰선 리치는, 우리 쪽에 고갯짓을 하고는 문을 열었다. 서늘하고 쾌청한 공기가 훅 밀려오고는 사라지고,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부 풍경을 짧게 요약하면, 관짝이 온 사방에 널린 곳이었다. 어림잡아 100개는 되는 거 같다. 내가 정말이지 깜짝 놀라서 멍하니 있는 사이, 뒤에서 리치가 거들었다.
“서류가… 분실되는 바람에….”
둘째. 직원이 서류를 분실했단다. 서류 떼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못해도 1주일.
원래라면 큰 문제가 아니란다. 다시 떼면 그만이니까. 근데, 이 시간에도 방부처리 잘못된 유골 하나는 하루 단위로 삭아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 유골이 담긴 관짝을 찾아서 반송을 하든 뭐든 해야 하는데, 어디 담겼는지를 알 수가 없다. 서류가 없어서.
“하여… 의뢰를 맡긴 것입니다….”
“관장님. 쉽게 정리하자면, 이 중의 어떤 관 안에 문제의 유골이 있는지를 파악해 달라.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관의 개수가… 정확히 몇 개입니까?”
내 물음에, 리치는 생각할 새도 없이 즉답했다.
“112개…입니다….”
옆에서 누나가 말했다.
“야, 너 큰일 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