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편돌이-59화 (60/201)

59화. 실기 보는 편돌이 (4)

우선 납골당 밖으로 나왔다. 회의도 할 겸, 찬 바람이 쐬고 싶어서였다. 누나는 금연초를 입에 물려다, 정문 옆의 벤치와 자판기를 발견하고는 내게 물었다.

“야, 커피 뽑아주면 먹냐?”

“어… 블랙.”

“블랙을 먹는다고?”

나도 평소엔 써서 안 먹는다. 근데, 지금은 카페인이 좀 필요할 것 같아.

누나에게 커피 받아 벤치에 앉은 뒤, 시간을 확인했다. 딱 7시 반이었다. 하늘은 어두컴컴해진 지 오래고, 비치는 광원이라고는 머리 위 가로등 하나뿐이다.

한 모금 홀짝여 봤는데, 더럽게 썼다. 정신이 확 드네, 아주.

“편의점 돌아가면 내가 살게, 누나.”

“나중에 사긴 무슨, 300원짜리 커피 사주는 건데.”

“300원은 돈 아냐?”

“아, 그럼 그러든가.”

한 모금 더 홀짝인 후, 들은 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해 봤다.

전달받은 관짝 112개 중, 방부제 통이 쏟아졌던 유골이 든 관짝 하나를 찾아내야 한다. 서류가 분실됐다 하니, 관짝에 적힌 일련번호 같은 걸 찾아다 대조할 수도 없을 거고.

처음 떠올린 방법은, 그냥 장도리로 관짝 따서 내부를 일일이 확인하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방부제를 쏟은 게 문제인 거면, 관짝에 옮겨 담을 때 방부제 가루가 관짝 밑에 묻든지 했을 테니까.

“글쎄다? 내가 이쪽 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이건 누나도 잘 몰라?”

“헌터가 유골 다루는 직종이 아니잖아. 굳이 따진다면… 유골이 안 나오게 하는 직종이지.”

이렇게 말해도 난 모른다. 누나는 금연초 한 모금을 빨아 허공으로 훅 내뱉고는 의견을 말했다.

“내 생각에는… 그래서 끝날 일이면, 진즉에 그렇게 했을 것 같은데….”

“역시 그렇지?”

관뚜껑 열고 닫아서 끝날 일이었으면 애초에 의뢰를 하질 않았을 것 같다. 길어봐야 몇 시간도 채 안 걸릴 테니까. 관짝 내부에 따로 처리가 되어있어서 열면 안 되는 거든가, 밀봉이 철저하게 되어있어서든가….

뭔 이유든 간에 못 여는 이유가 있으니 의뢰를 한 것일 터다. 애초에, 난 관뚜껑 여닫을 몇 시간도 없잖아. 떠올리고 보니 망한 계획 같네.

이렇게 되면, 관짝 외부만 보고 육안으로 뭐가 문제인지 구별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누나, 다른 거 떠올랐다.”

“뭔데.”

“상복 입고 코핀 댄스 음악을 튼 다음에, 어깨에 관짝을 짊어지고 춤을 추는 거야. 어떰?”

시간이 지난 만큼 뼈도 조금은 삭았을 테니, 덜그럭거리는 소리 듣고 이상한 걸 구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뼈 부러지면 니가 물어내냐?”

“농담이고….”

정말 떠오르는 방법이 있긴 하다. 이걸 누나에게 얘기하자, 누나는 반신반의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럴싸하긴 한데… 너 그런 것까지 할 수 있어?”

“나도 몰라. 안 해봐서.”

나도 확신을 갖고 떠올린 방법은 아니었다. 이것 말고는 떠오르는 것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그렇지. 반쯤 식은 커피를 들이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방법대로 한다 치면, 나는 뭘 도와줘야 하나.”

“뭘 도와주긴, 사다리 잡아줘야지.”

* * *

관이 늘어선 방으로 돌아왔는데, 리치 관장이 자리를 비운 채였다.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나보다.

이러면 사후보고가 되겠지만, 차라리 이게 낫다. 제삼자가 보면 저놈이 저기서 대체 뭐 하나 싶을 테니까. 우선, 아까 봐둔 사다리를 정문 옆에 세운 뒤….

단을 끝까지 높이고 펼친 뒤, 사다리를 올랐다. 끝단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니, 진열된 관들 전부가 아슬아슬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밑에서 누나가 외쳤다.

“야 이찬, 그냥 잡고만 있으면 돼?”

“어.”

내려다보며, 요 며칠간 저질렀던 짓들을 되새겨 봤다. 마법도 지워봤고, 골라서도 지워봤고… 살쾡이가 갖고 온 요술 지갑도 하나 터트려봤지.

그중 지갑 터트릴 때 했던 짓을 다시 해보려 한다.

집중해서 뚫어져라 쳐다보면, 마도구가 일그러져 보였던 거. 하나씩 확인하면 한참 걸릴 테니, 아예 높은 데서 한 번에 살펴보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아서고.

관짝 안에 쏟았다는 방부제의 성분이 뭔지 정확히는 내가 모르겠다만, 어떤 식으로든 마법이랑 연관된 가루일 거 아닌가. 영혼 담는 그릇으로 쓴다는 유골에 돌김 방부제를 뿌리진 않았을 테니까.

이걸 달리 해석한다면… 그 유골은 다른 유골들에 비해 마력이 더 많이 들어있는 상태라는 말도 된다. 상태가 다른 만큼, 일그러진 정도도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검증 한번 해본 적 없는 부실한 이론이었으나, 당장은 이것 말곤 달리 믿을 게 없다. 심호흡하고, 눈을 잠시 감은 후, 천천히 떴다.

일그러져 보이기는 했다. 온 사방이 말이다.

“이런 씨….”

오른쪽, 왼쪽, 앞쪽 벽, 예외 없이 온 사방의 수납함들이 죄다 일렁여대고 있다. 바닥에 사열된 관들 역시 마찬가지다. 꼭 망망대해의 돛단배 위에 올라탄 기분이다. 지독한 뱃멀미에 시달리는 듯한….

수 초 뒤에는 옆머리마저 불에 덴 마냥 지끈거려댔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상반신을 사다리 끄트머리 붙잡고 겨우 지탱했다.

“야! 너 괜찮냐?!”

밑을 보니, 누나가 여차하면 붙잡겠다는 얼굴로 나를 향해 반쯤 손을 뻗은 채였다.

“…멀미 와서.”

“멀미? 야, 이찬. 무리하지 말고 일단 내려와서….”

“잠깐만….”

고개 푹 숙인 채로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떴다. 갑작스레 찾아온 증상이라 그런가, 원상태로 되돌아오는 것도 갑작스러웠다. 속으로 수 초 세고 방을 둘러보니, 아까의 멀미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이제 좀 괜찮네.”

“괜찮고 자시고 잠깐 쉬라니까? 너 앞으로 자빠질 뻔했―”

“뭔가 보이긴 했어, 누나.”

“뭐?”

나도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안 한다. 근데, 될 것 같다.

멀쩡한 머리로 되짚어보니, 사방의 일렁임 속에서도 뭔가를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다. 분명 바닥 쪽이었다. 바닥 쪽 관들 중 하나.

“뭐가 보였다는 건데. 주마등?”

“그거 말고, 정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인비저블 썸띵이 있었다니까?”

내가 개소리를 하자, 누나는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 외쳤다.

“니가 본 게 뭔지 난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해봐. 너 자빠져도 받아줄 테니까.”

그래 준단다. 눈 질끈 감은 채로 곱씹었다. 아까 그건 부작용 같은 건가, 아니면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익숙지 않아서 그런 건가, 이거 진짜 되긴 하는 건가.

이걸 계속하면 나한테 문제는 안 생기는 건가….

집어치우자. 딱 하나만 생각했다. 난 이딴 거 고민하겠다고 제 발로 걸어온 게 아냐. 결과를 내러 온 거다.

눈을 뜨자, 다시 세상이 일그러졌다.

사방이 아지랑이마냥 배배 꼬여댄다. 사다리를 붙잡은 손마저 내 손이 아닌 듯 보였다. 그래도, 아까만큼 심하게 어지럽지는 않다. 그래, 나 아직 20대라고.

고개 푹 떨구고, 다른 벽들의 수납함에서 의식을 멀리 떨어뜨렸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바닥의 관들만 보면 된다. 다른 관에 비해 일렁임이 좀 더 심했던 게, 분명 오른쪽 위 구석의….

뭐가 보인다.

“누나. 그, 누나 서 있는 데서….”

“어. 나 서 있는 데서.”

“앞으로 3칸, 오른쪽 끝에서 4번째.”

사다리에서 손 떼고 가리킬 여유가 없어 좌표처럼 얘기했다. 두 번 말하려 했는데, 누나는 내 첫 마디를 듣고는 곧바로 뛰쳐나가 언급한 위치에 멈춰 섰다. 딱 내가 생각한 위치였다.

“앞으로 3칸, 오른쪽 끝에서 4번째, 여기 맞어?”

“…어. 그다음엔….”

“뭐? 다음?”

“다음엔, 누나 서 있는 데서 앞으로 두 칸, 오른쪽으로 세 칸….”

“야, 문제 있는 관 하나라고 했던 거 기억하고 하는 말이야?”

나도 안다. 그래도 보이는 걸 어쩌라고?

처음에 말했던 관짝 외에도 두 군데가 일그러짐이 심하다. 한쪽은 약간, 한쪽은 무진장.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 안에 유골이 아니라 미라가 들어있기라도 한 건지, 뭔지….

어쨌든 다른 관들 백수십 개에 비해 이질적인 건 확실했다. 누나는 의아해하면서도 내가 말한 위치로 움직이고는, 주머니에서 메모장을 한 장 꺼내 뜯어 올려놓았다.

“혹시 몰라서 표시해 놨다. 다음엔?”

“그리고, 누나 서 있는 데서 왼쪽 위 맨 끝에서 두 번째. 그러니까, 내 쪽에서….”

“말 그만하고 쉬어. 어딘지 알겠으니까.”

대답 듣고 곧바로 눈 감았다. 토할 것 같다. 내가 몇 분 이러고 있었던 거야. 1분? 2분?

편돌이가 바코드는 안 찍고 별짓을 다 하네. 사다리 기댄 벽에 등 대고 눈을 지압하는데, 사다리 밑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다보니 리치 관장과 누나가 막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벌써 작업을… 끝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자세한 건 위에 저 친구가 설명해 줄 거예요.”

잠깐 쉬는 사이 누나가 불러온 모양이다. 엉거주춤 사다리 타고 내려와 리치의 얼굴을 바라보니, 기대 반 걱정 반이라는 눈빛이다. 그래도 난 할 거 다 했다.

“관장님. 의뢰 내용이, 112개 관 중 잘못된 관 하나를 찾아달라,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헌데 제가 살펴보니, 잘못된 관이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세 개였어요.”

“…정말입니까? 정확히 어떤 식으로….”

어떤 식으로 어떻게 잘못된 건지는 나도 야매라 잘 모른다. 모른다고 정직하게 대답하기보다는, 좀 더 그럴싸한 구실을 댔다.

“그걸 확인하려면 관을 열고 내부를 확인해야 가능할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힘들 것 같습니다… 관을 열게 되면… 관 내부의 마법진을… 재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관을 못 열고 있던 이유가 이거였나보다.

애초에 내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건이기도 했다. 의뢰는 잘못된 관을 찾아달라는 거였지, 관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알아내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걸 부탁할 거면 장의사를 따로 불러야지.

“그렇다면, 어떻게 잘못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표시해 둔 관들에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렇습니까…?”

“확실합니다.”

확실하진 않다. 관짝을 열고 내부를 확인하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내용이니까.

다만 당장 그럴 수도 없고, 일을 대충 한 거라 여기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회색 눈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던 리치는, 잠시 후… 희미하게 웃었다.

“무척… 힘든 작업…이었던 듯하군요….”

도중에 토할 뻔하긴 했는데, 그게 보이나?

싶었으나, 이마 쪽이 유난히 서늘했다. 손으로 쓸어내려 보니 땀이 흥건하더라. 리치는 인자한 웃음 그대로 바닥에 놓아뒀던 태블릿PC를 집어 들어, 엄지손가락을 슥 대었다.

그러고는 내게 건넸다. 받아 들어 화면을 확인하니, ‘의뢰 완료’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떠 있다.

“고생하셨습니다….”

됐다. 화면을 다시 터치하니, 의뢰가 가득했던 첫 목록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남은 의뢰가 대략 27개쯤. 수십 분 전에 비해 거의 줄어들진 않았다.

도중에 리치 관장이 물었다.

“헌데… 궁금하군요… 어떤 감별식을 쓰신 것인지… 여쭈어봐도…?”

“어… 죄송합니다. 감별식이 좀 복잡해서, 이 자리에서 설명해 드리기는 좀….”

옆에서 누나가 쿡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변명이긴 했다.

“아… 이해합니다….”

리치 관장도 머쓱한지, 잔주름 가득한 미소를 지어왔다. 눈 마주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주름 참 많다. 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 건지….

잠깐. 나이가 많다?

“관장님. 실례지만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하시지요….”

“이 의뢰 목록 중에, 혹시 아는 곳 있으신가요?”

나이가 많다는 건, 연륜이 많다는 말도 되잖아. 태블릿PC를 뒤집어 리치에게 내밀자, 첫 줄을 힐끗 바라보고는 바로 읊조렸다.

“고대어로군요….”

“그렇습니다.”

“흠… 첫 줄은… 방역업체 같습니다만….”

방역업체? 세스코? 가면 벌레 잡게 되는 거 아니냐?

느낌이 영 좋지 않아 걸렀다. 외에도 리치 관장이 순서대로 읊는 것들이… 물류센터, 여기는 허리디스크와 관련해 몹시 안 좋은 추억이 있어 안 되겠고. 시계 전문점, 화학용품점, 은행….

“은행요?”

“그렇습니다….”

“혹시 그 은행 위치도 아십니까?”

“아마… 멀지는 않을 겁니다….”

멀지 않고, 은행. 화이트칼라 직종인 거잖아. 쌀 포대기로 데드스쿼트 하거나 정밀시계 만지작거릴 거 생각하면 차라리 여기가 백 배 나아 보인다.

“그게 37번, 그리고….”

관장이 목록을 마저 읊는 사이, 누나에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나, 은행 어떰.”

“은행? 은행이라… 아니, 은행에서 너 부를 일이 뭐가 있는질 모르겠다. 위조지폐?”

“뭐든 간에 상하차보다는 낫지 않을까?”

“흠… 사라져 버렸군요….”

그 와중에 누가 의뢰 하나를 또 가져갔단다. 이거 안 고르면 나중에 진짜 상하차 하게 될 수도 있겠다. 관장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후, 태블릿PC를 건네받아 37번 의뢰를 눌렀다.

그랬더니, 떠오른 게 글쎄.

[ 은행 ATM 강도를 처리해 주세요. ]

아니, 이걸 왜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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