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편의점 꽃가루 주의보 (2)
내 계획이 이거였다. 마스크를 매대에 딱 2개만 남겨놓은 뒤, 나머지는 사무실에 짱박아 두고 팔리는 대로 재고 채워 넣는 것.
이러면 사재기는 못 할 거 아닌가. 안 보이니까.
사재기 방지한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지만, 내가 이 세상 진상들한테 시달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니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안심을 할 수가 없더라고.
“이 망할 새끼, 카운터 안 지키고 어디 갔어!!”
근데 저 치와와 때문에 다 망했다. 심란한 마음으로 마스크 매대에서 로비로 돌아와 이놈 얼굴을 보자마자 심란함이 두 배가 되었다.
“어… 예. 손님.”
“야, 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냐?”
“누구, 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는데. 너, 방금처럼 카운터 비워놨다가 도둑 들면. 니가 물어내게?”
하는 소리는 평소와 다를 거 없는 개소리라 들어도 별로 화는 안 났고, 심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가 물어내야죠. 제 잘못인데.”
“그 얘기가 아니라, 애초에 잘못을 하질 말라니까?”
“다음부턴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손님, 이건 진짜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요.”
“뭔데.”
“물안경은 대체 왜 쓰고 계신 겁니까?”
목 아래로는 양복에 사원증, 목 위로는 소형견 머리에 물안경. 초현실적인 패션이다.
내가 이세계 패알못인가 싶어 밖을 바라봐도, 물안경 쓰고 걸어 다니는 건 이놈 하나뿐이었다. 이놈 직업이 스포츠용품 방문판매원이어서 이러고 있는 건지, 술자리 벌칙게임을 져서 이러고 있는 건지….
물어보면서도 대답을 들을 거란 기대는 안 했는데, 내 물음에 바로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툴툴거렸다.
“눈 아파서 그런다, 왜.”
“그야 물안경을 쓰셨으니 당연히 눈이 아플….”
묻는 도중 불쑥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꽃가루 때문에 그래요?”
“아니면 뭐, 내가 수영하러 가겠다고 이걸 쓰겠냐?”
“원래 용도가 그거잖습니까.”
“내가 수영을 왜 해야 되는데?”
그래, 네가 굳이 수영을 할 필요는 없지….
다 필요 없으니 마스크 2장이든 20장이든 사서 나가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내 질문이 이놈의 말문을 터버린 듯했다. 울분 가득한 어투로 혼잣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염병할, 하필이면 그딴 데 있는 회사를 다녀가지고….”
“그딴 데면, 그. 혹시 공원 근처 회사 다니시는 겁니까?”
“맞은편, 새끼야.”
이놈이 정말 회사원이 맞긴 맞나 보다. 이런 정신병자 같은 놈도 정상적으로 회사를 다니는데, 나는 도대체….
이어서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혼잣말을 축약해 보니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우선 자기 차 끌고 빌딩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서 일하는 몇 시간 동안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오전 11시에 출근한 사장이 ‘사무실 공기가 왜 이렇게 탁해?’라면서 다짜고짜 창문을 열어 버렸단다.
그러자마자 밖의 꽃가루가 확 밀어닥쳐 버렸고, 고농축 꽃가루들 때문에 사무실이 눈물바다가 되어버렸다고. 여기까진 이해가 되는데 말이다.
“사장한테 창문 열면 안 된다고 아무도 말을 안 했어요?”
“난 말했어. 사장 새끼가 들어 처먹질 않아서 그렇지.”
말을 안 들었다라. 이 부분을 들으니 짐작 가는 게 있었다.
“혹시 회사 사장 종족이 어떻게 됩니까.”
“비글.”
어쩐지….
저명한 동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자면, 의외로 비글의 지능지수가 치와와의 지능지수보다 낮다고 한다. 사냥개까지 해 먹는 견종이 머리가 그렇게 나쁘다고? 같은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비글이 정말 머리가 나쁜 게 아니다. 지능지수 측정방식에 살짝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동물학자들이 ‘사람이 내리는 명령을 얼마나 잘 알아듣고 따르는가’를 기준으로 지능지수를 분류하는데, 비글들 성격이 이렇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성격이 드세다.
말인즉슨, 비글들은 말을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탓에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질 않는 것이다.
그게 우리들 눈에는 지능지수가 낮은 것처럼 보이는 거고. 비글이 괜히 지랄견 3대장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우리 복실이는 착한데요?’ 하며 나한테 따지려거든, 걔가 착한 거니까 말년까지 잘 보살펴 줘라. 여튼, 자기주장 강하고 성격이 드센 사장이 사무실 전체에 꽃가루 테러를 해버렸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어떻게 되기는 시팔, 개판 났지.”
창가 근처에서 일하던 팀장급들을 필두로 전 직원이 눈물 줄줄 흘리며 뛰쳐나가서는 지하주차장에 옹기종기 모여 회의를 했는데, 의견이 3가지로 갈렸다고 한다.
1. 월차를 쓰자. 2. 오늘 일 못 끝내면 내일 야근해야 되니 어떻게든 참… 아니 이건 진짜 못 버티겠으니까 월차를 쓰자.
그리고 3. 눈이 따가우면 물안경을 쓰면 되잖아?
세 번째 의견의 발안자가 치와와였고, 동조해 주는 직원이 아무도 없긴 했지만 이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 하긴, 치와와가 비글만 한 1티어 지랄견은 아니어도 1.5티어 지랄견은 된다.
하여 30분 전까지도 사무실에서 혼자서 일하다 왔고, 집 가면 샤워부터 할 거란다. 다 듣고 나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다고 굳이 밖에서까지 쓰고 다니실 필요가 있어요?”
“내 맘이야, 새끼야.”
제 맘이라니 나도 더 신경 안 쓸란다. 솔직히 인형 탈 알바 중에 찾아오든 겨울에 런닝만 입고 찾아오든 편돌이 입장에선 알 바 아니기도 했고.
여하튼, 이놈은 이번엔 뭘 사러 왔는가.
“수영모 있냐?”
“있겠어요?”
“썅. 그럼 마스크는.”
“그건 있죠. 저쪽 마스크 가판대에….”
“저쪽이 어딘데.”
저쪽으로 치와와를 안내하며 작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 치와와라면 매장의 마스크란 마스크는 모조리 털어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나 마스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니 거기까진 안 갈 것 같았다.
분류가 좀 특이했는데, 오크용 특대 마스크, 고블린용 마스크, 기타 종족별 마스크. 이런 식이다. 각자 머리 크기도 다르고 귀 달린 위치도 다르니 이럴 수밖에 없겠다 싶더라고.
코볼트용 마스크를 둘러보던 치와와 놈은, 포장된 마스크 하나를 집어 들고는 내게 내밀었다.
“야. 이거 좋냐?”
“그건… 좋은지는 모르겠고, 그냥 사지 마십쇼.”
“이 새끼가?”
“제가 팔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고요.”
이놈이 집어 든 게 소형 사이즈라서다.
이 부분을 특히 잘 보고 팔아야 한다. 이게 말이 소형이지, 중학교 갓 졸업한 잼민이조차 착용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조막만 하기 때문이다.
이걸 모르고 ‘3매입’이라는 부분에만 눈이 멀어서 냅다 사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그래선 안 된다. 귀 엄청 아프다. 나중에 잘못 샀다고 포장 뜯은 거 환불해 달라고 하지도 말고. 상식적으로 포장 뜯은 걸 어떻게 환불을 해주냐….
치와와도 분류상으론 소형견이긴 하지만, 그것만 믿고 팔았다가 사이즈가 안 맞기라도 하면 이놈이 냉동고 라디에이터에 영역표시를 해버릴 게 분명했다.
“그럼 뭘 사라는 거야.”
“지금 찾고 있으니까 좀 기다려봐요. 그러니까… 코볼트 대형 1매입이….”
없다. 찾아오는 코볼트 비율이 체감상 30%쯤 되는데, 우리 매장에서 취급을 안 하는 건 아닐 거고.
“오늘은 다 팔려서 없는 것 같습니다. 딴 데 가보셔야 할 거 같은데.”
“오늘은? 그럼 내일은 있어?”
“내일은 있죠. 오늘 정오에 물류 들어올 거니까, 내일 아침에 오시든지―”
이 치와와가 올 때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기는 해도, 없는 걸 없다고 할 때는 군말없이 갔었다.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지.
허나 이건 내가 치와와를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오늘 정오면. 1시간 50분 있으면 물류 온다는 소리냐?”
“그렇게 되긴 하네요. 근데 왜요?”
“앉아 있을라고 그런다.”
이건 또 뭔 소리야. 고작 마스크 사겠다고 1시간 50분을 기다려?
“손님. 뭐 다른 매장서 출입 금지 조치라도 받으셨습니까?”
“그걸 내가 왜 받는데?”
“이것도 아니면, 그… 저희 매장에서 초회한정판 마스크 같은 걸 파는 것도 아니거든요?”
“누가 그딴 거 달라고 했어?”
“아니, 뭐든 간에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런 썅, 매출 좀 올려주겠다는데 이 새끼는 뭔 불만이 이렇게 많아.”
매출이고 나발이고, 네가 나라면 1시간 50분 동안 너랑 같은 건물에 있고 싶겠어?
심지어 이 치와와는 30분 전까지도 회사에서 일하다 왔다고 했다. 이놈이 회사에서 정상적으로 일을 했다는 게 믿기진 않지만… 어쨌든 피곤할 거 아닌가.
“피곤하실 거 아닙니까. 마스크 꼭 필요하시면 몇 개 꿍쳐놓든지 할 테니까, 내일 아침에 찾아가시든지….”
이놈을 내쫓을 명분이 없는 만큼 말로라도 구슬려보려 했으나, 말 한마디에 그것마저 막혀버렸다.
“싫어, 씨발.”
“그럼 어쩔 수 없죠….”
“어우 씨, 얘기하다 보니까 목 탄다. 피로회복제 두 개만 줘봐.”
“…카운터 가 계십쇼.”
음료수 냉장고에서 피로회복제 두 개를 꺼내 카운터로 가져왔다. 계산을 마치고 건네주자, 그중 하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이건 너 먹어라.”
너는 왜 자꾸 나한테 뭘 주냐?
되물으려 했으나, 그럴 새도 없이 테이블로 걸어가서는 자리를 잡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뚫어져라 폰만 쳐다보더라.
하여 계산대에는 박카스 한 병이 덩그러니 남았다. 주니까 받기는 한다만… 회사 다니면서 오만 놈들 다 만나보긴 했지만, 저런 개썅마이웨이는 살면서 정말 처음 본다.
태블릿PC로 틈틈이 뉴스나 좀 봐두려 했는데, 그랬다간 저놈이 근무 중에 딴청 피운다고 행패 부릴 게 뻔하고….
* * *
결국 2시간 가까이 꼼짝도 못 하고 손님만 받았다.
꽃가루 탓인지 손님이 많지는 않았고, 덕분인지 마스크 사재기꾼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없었다. 오래 갈 상황도 아니라서 그런가 봐.
아니면 저 치와와랑 눈 마주치기 싫어서일 수도 있을 거고. 난 모르겠다.
그래도 손님 받고 내보내는 순간마다 틈틈이 치와와를 바라보았는데, 다행히도 저놈이 오는 손님을 일일이 붙잡고 헛소리를 해대지는 않았다.
물론 나한테 안 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야, 매장 음악 클래식 말고 딴 거 없냐?”
“제가 음악 못 바꿔요. 매장에서 알아서 틀어주는 거라서.”
“이런 시팔. 여기 이어폰 팔아?”
“찾아볼게요. 코볼트 전용이….”
기성품 코너를 둘러보니 코볼트 전용이라 적힌 이어폰이 하나 있었다. 귀걸이 형태의 이어폰인데 귀걸이 부속품이 좀 큰 거. 귀 안쪽으로 이어폰 빠지는 걸 방지하기 위함인 듯하다.
부속품 탓인지 가격도 4만 원대로 좀 비싸다. 이걸로 가격흥정을 해오진 않을까 싶었는데, 가격을 듣고도 별 말없이 카드를 내밀어 오더라고.
계산 마치고 건네주자 손으로 확 잡아 뜯고는, 계산대 위에 흩뿌려진 잔부스러기들을 하나씩 긁어모으기 시작한다.
“제가 치울 테니까 그냥 두십쇼.”
“또 뭔 헛소리야. 내 쓰레기를 니가 왜 버리는데?”
매장에서 먹을 거 먹고 방치하는 양반들은 ‘이 쓰레기를 내가 왜 버려?’라는 마인드인데 말이다. 기어코 직접 쓰레기를 주워서는 분리수거까지 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는 미동조차 하질 않더라.
그리고 정오가 되어, 윤하 누나가 왔다.
“야, 이찬! 내 꼴 좀 봐!”
오자마자 자길 보란다. 봤더니 입에 두른 마스크를 포함해 몸 절반이 분홍색으로 변색된 채였다. 말에 화물 매달고 날아다니다 저렇게 됐나 보다.
일단 소감을 말해줬다.
“쩌네.”
“누나가 이렇게 고생하고 산다. 다 봤으면 빗자루 좀 줘. 몸 털게.”
“몸 터는 데 바닥 쓰는 빗자루를 왜 써. 잠깐만 있어 봐.”
여기가 매장이 제법 큰 덕에, 카운터 근처에 손 씻는 용도의 싱크대가 하나 있다. 수건도 걸려있고.
수건을 물에 적셔 짠 뒤 건네주자, 밖에서 몸 털고 오겠다 하고는 나가버렸다. 손에 묻은 물을 바지에 닦고 있자니, 어느새 치와와가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왜요, 또.”
“야. 지금 물류 온 거냐?”
“온 거 맞고요. 마스크 받아 드릴 테니까, 잠깐 자리에 계시면….”
미처 말도 끝내기 전에 정문을 힐끗 바라보고는 곧바로 나가 버렸, 아니?
얼른 따라 나가보니, 이놈이 그새 누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야.”
“네? 저요?”
“그래, 너. 마스크 하나만 줘봐.”